서부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코트디부아르 공화국(République de Côte d'voire)이며, 영어권에서는 아이보리코스트(Ivory Coast)라고도 한다. 북쪽으로 말리, 동쪽으로 부르키나파소와 가나, 서쪽으로 기니 · 라이베리아와 접하고 있다. 이 국가의 전체 면적은 322,460k㎡, 인구는 16,940,00명(2003)이며, 법적 수도는 야무수크로(Yamoussoukro), 경제 수도는 아비장(Abidjan)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고, 국교는 없지만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으며, 22% 정도가 그리스도교를 믿는다.
초기 정착민인 코트디부아르의 해안 원주민 부락민들은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럽 열강이 상아와 노예를 얻기 위해 15세기부터 조금씩 이 지역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이 지역에서 상아가 많이 산출된다고 하여 상아 해안(象牙海岸, Ivory Coast)이라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 지역은 식민지 쟁탈전이 한창이던 19세기 말까지 노예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코트디부아르는 1893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북쪽 사하라 사막을 넘어 이슬람 문화가 전파되었기 때문에 연안보다는 내륙 지역이 발달하였다.
프랑스는 17세기 말 코트디부아르의 아시니(Assini)와 그랑바상(Grand-Bassam)에 교역소를 설치하였으며, 19세기에 들어 현지 추장들과 조약을 체결하였다. 코트디부아르는 1893년 프랑스의 식민지로 설정되었으며, 1908~1918년 무력으로 프랑스에 완전히 장악되었다. 1903년에 해안 지역에서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철도는 1935년 보보디울라소(Bobo Dioulasso)까지 연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중에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의 통치령으로 있다가, 1946년 프랑스 연합(Union Française : 프랑스 본국과 해외 식민지 · 보호령 · 신탁 통치령을 포함한 전 프랑스 영토의 총합체, 1946년에 창설되었다가 1958년 '프랑스 공동체' 로 개편됨)에 포함되었다. 1년 뒤 북부의 주민들은 분리 · 독립하여 오트볼타(Haute Vol-ta, 현 부르키나파소) 공화국을 건국하였다. 코트디부아르는 1958년 펠릭스 우푸에부아니(Félix Houphouët-Boigny)의 지휘하에 평화적으로 자치권을 얻었고,
1960년 프랑스로부터 완전 독립하였다. 우푸에부아니는 독립과 함께 대통령직에 선출되었는데, 선출 직후부터 수시로 발생하던 폭력 사태와 두 차례의 쿠데타 음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을 계속해서 유지하였다. 1993년 그가 갑자기 사망하자, 앙리 코낭 베디에(Henri Konan Bé-dié)가 1995년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1999년 전(前) 육군 참모총장 로베르 귀에이(Robert Guéi)를 중심으로한 군인들이 처우 개선에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켜 국정을 장악하였으나, 2000년 10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로랑 그바그보(Laurent Gbagbo)가 귀에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외국으로 망명하였던 귀에이를 중심으로 한 군부 쿠데타가 계속되어 현재 코트디부아르는 사회적 ·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가톨릭의 역사〕 코트디부아르 지역에 처음 들어온 선교회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였다.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은 해안 지역을 따라 사는 아그니족(Agni, Anyi)을 비롯한 여러 토착 부족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펼쳤다. 1844년경 마리아 성심회(Congregation of the Holy Heart of Mary) 신부들이 이 지역에 들어왔지만, 본격적인 복음 전파는 코트디부아르 지목구가 설정되고 아프리카 선교회(Society of African Missions)가 들어온 1895년이 되어서야 가능해졌다. 1918년까지는 선교 활동이 미흡하였으나, 이후 급속히 발전하여 가톨릭계 학교들이 설립되었다. 첫 번째 아프리카인 사제 서품식이 1934년에 있었고, 1955년에는 교계 제도가 설정되어 아비장 대목구가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결과 이 지역의 가톨릭 전교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이전까지는 아프리카 토착 음악이나 악기들의 사용이 전례에서 금지되었으나, 공의회 이후 이런 것들이 허용 · 권장되어 많은 주민들이 가톨릭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우푸에부아니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인 야무수크로의 바실리카식 대성당과 아비장의 대성당 건축에 기부금을 제공하는 등 가톨릭에 많은 관심과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코트디부아르의 가톨릭은 교육계 진출을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고, 그 결과 현재 약 280개와 40여 개의 가톨릭계 초 · 중등학교가 있다.
한편 이 지역은 무슬림들의 가톨릭에 대한 견제가 심하여 20세기 중반 이후 종교 갈등이 심화되었지만 2000년 아그레(Agre) 아비장 대교구장과 무슬림의 대표가 양 종교 간의 화합과 앞으로의 관계 증진을 위한 만남을 가지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2003년 현재 코트디부아르의 가톨릭 신자수는 전체 인구의 17%인 2,880,000명이며, 대교구 4, 교구 10개에, 추기경 1, 대주교 4, 주교 12, 신부 813(교구 소속 530, 수도회 소속 283), 종신 부제 6, 수사 324, 수녀 948명이 있다.
※ 참고문헌 David B. Barret ed.,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 A Comparative Survey ofChurches and Religion in the Modern World AD 1900~2000, Oxford · Nairobi, Oxford Univ. Press, 1982/ Europa Publications eds., Africa South of the Sahara 2002 -Cote D'Ivoire, 2002/ John S. Mbiti, African Religion and Philosophy, New York, Praeger, 1969/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298. 〔徐相鉉〕
코트디부아르
[프]Côte d'Ivo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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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왼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