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속한 지혜 문학 작품 중 하나. 예전에는 '전도서' (傳道書)로 불렀다.
〔책의 이름〕 이 책의 히브리어 이름은 '코헬렛' 인데, 이 단어에는 '설교자 · 연사 · 집회의 의장' 등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 책이 오랫동안 전도서' 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것은 유대교에서 시작하여 예로니모(Hieronymus, 347~419)를 거쳐 루터(M. Luther, 1483~1546)에 이르는 한 전통에서 코헬렛을 '전도자' 혹은 '전도사' 로 이해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책의 실제적인 내용이 전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지혜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굳이 번역하자면 '설교자' 혹은 '설교자의 책' 정도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역하여 코헬렛으로 부르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저자와 저술 시기〕 저자의 이름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책 속의 '나' 가 솔로몬 왕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현대적인 의미에서 솔로몬이 이 책의 저자는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를 받은 인물이라는 이스라엘의 전승에서(1열왕 3, 3-15) 솔로몬을 이 책의 저자라고 하는 것은, 코헬렛의 지혜가 곧 하느님의 지혜라고 말하는 고대적 방식을 따른 것이다. 또 실제로 솔로몬이 잠언 등 많은 지혜 문학 작품을 지었다면(1열왕 3, 3-15 : 5, 9-14),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후대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성서의 많은 책들이 그러하듯이 코헬렛 역시 책의 중심 부분은 한 명에 의해 쓰여졌다. 하지만 그 저자는 이스라엘 안에서 전승된 지혜 문학적 가르침을 중심으로 고대 근동과 그리스의 지혜 문학적 요소들을 받아들여 쓴 것이고, 후대의 편집 과정에서 삽입된 작은 부분들도 여러 곳에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책 전체에서 시종일관 과격하게까지 보이는 코헬렛의 혁신적인 사상에 비추어 볼 때, 이를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기능을 가진 전통적인 지혜의 가르침들이 후에 첨가되었으리라는 의견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의 저술 시기에 대해서도 학자들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언어나 문장의 형태론과 구문론적 특징 등으로 추정할 때 대체로 기원전 4세기 중엽에서 3세기 초 정도, 보다 좁힌다면 기원전 3세기 중엽 정도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책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는 생활 양식이나 성전과 제사 등에 비추어 볼 때 예루살렘에서 저술되었다고 추정된다.
〔구 조〕 코헬렛의 전체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충분한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으나, 몇 가지 분명한 결과는 있다. 우선 1장 1절이 책의 표제 혹은 제목에 해당되는데, 여기에서 코헬렛을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왕" 즉 솔로몬으로 소개한다. 이어지는 1장 2절의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말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서, 마지막 부분인 12장 8절에 반복되면서 전체의 말씀을 앞뒤로 감싸고 있다. 마지막 부분인 12장 9-14절은 명백히 후대에 책을 편집하면서 첨가한 발문이고, 1장 3-11절은 공간적으로는 태양 · 바람 · 바다 · 강물 등이,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언급되는 우주론적 차원의 시적인 운율을 가진 노래이다. 이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이후에 전개되는 지혜 문학적 가르침과 넓은 의미에서 공통된 주제를 갖지만, 문체의 상이성이 뚜렷하게 나타나므로 이 부분 역시 12장 9절 이후의 발문과 함께 편집자가 첨가한 부분이다. 따라서 1장 12절- 12장 7절이 코헬렛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몸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본론에 해당하는 1장 12절- 2장 26절과 3장 1절- 12장 7절도 문체상의 차이를 보인다. 즉 전자는 1장 1절의 소개에 어울리게 코헬렛이 왕으로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온갖 시도를 다해 보았지만 이루지 못하였다는 내용으로, 여기에는 궁중을 배경으로 하는 언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반면 후자에는 더이상 왕에 대한 언급이 없고, 내용 역시 왕실과 구체적인 관련성이 없는 일반적인 가르침이다. 그런데 1장 12절- 2장 26절 역시 1장에서 2장으로 넘어갈 때 사용하는 언어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1장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왕으로서의 경험이 주된 내용이라면, 2장은 코헬렛이 자신의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사색하는 듯한 보편적인 언어로 되어 있다. 특히 2장은 "허무로다" 혹은 "허무요 바람잡는 일이다" 라는 표현을 5번 사용하는데, 이것은 3장 이후의 가르침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말씀이다. 따라서 1장 12절- 2장 26절은 왕으로서의 코헬렛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을 배경으로 3장 이후에 전개되는 본격적이고 보편적인 가르침을 미리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1장 12절- 12장 7절의 몸체에서 1장 12절- 2장 26절이 도입부의 기능을 하고, 3장 1절- 12장 7절이 코헬렛의 가르침의 중심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3장 1절- 12장 7절은 논리적으로 뚜렷한 연관성이 없는 크고 작은 단락들의 모임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런 이유로 코헬렛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3장 1절- 6장 9절과 6장 10절- 12장 7절 사이에는 코헬렛이 사용하는 특징적인 언어나 지혜에 관한 태도에서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수 있다. 즉 전자에서는 '나는 ~을 보았다' 라는 형식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실상의 실례를 들면서, 지혜를 얻는 것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후자에서는 이런 문체가 상당히 줄어들고, 보다 보편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서 던지는 말씀들의 비중이 커진다. 동시에 지혜에 대한 긍정적인 가르침의 비중 또한 뚜렷해지는데, 마치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장 12절-2장 26절이 두 부분으로 나뉠 때 나타나는 구체적인 경 험과 보편적인 사색의 대조가 3장 1절- 6장 9절과 6장 10절- 12장 7절 사이에도 유사하게 보인다. 예를 들면 "지혜" 혹은 "지혜로운"이라는 단어는 책의 서두 부분인 1장 1절- 2장 26절에 16번(1, 13. 16[2회]. 18 ; 2, 3. 9. 12. 13. 14. 15. 16[2회]. 19[2회]. 21. 26) 쓰인 데 비해, 3장 1절- 6장 9절에는 단 2회(4, 13 ; 6, 8) 등장한다. 더구나 6장 8절은 지혜가 별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맥락이다. 그런데 6장 10절 이후에는 발문(12, 9-14)을 제외하고도 31회나 사용되면서 거의 모두 긍정적인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코헬렛의 주요 관용구인 "허무요 바람잡는 일이다" 혹은 그에 상응하는 표현들과 "알다", "찾다"라는 용어를 비교할 때, 전자는 대부분 6장 9절 이전에, 후자는 6장 10절 이후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문체상의 변화는 코헬렛이 근본적으로 인간이 세상의 질서-코헬렛에서 뚜렷이 말하지는 않지만, 하느님이 놓은 질서 즉 하느님의 역사를 말한다-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그 질서에 따라 사는 길은 열려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코헬렛의 전체적인 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1 책의 표제(제목)
1. 2 12장 8절과 함께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 "모든 것이 허무로다"
1. 3-11 책 전체의 머리말 : 우주와 인간사 모두를 언급하며, 책 전체의 흐름에 상응하는 내용을 던지고 있음
1. 12-12. 7 코헬렛의 몸체
1. 12-2. 26 몸체의 서두 : 코헬렛 자신의 고백
3. 1-6. 9 세상의 질서를 파악하는 지혜를 얻을 수 없음, 그 노력의 헛됨
6. 10-12. 7 지혜롭게 사는 길
12. 8 가르침의 마무리 : 1장 2절과 같은 언어로
12. 9-14 후대의 발문
〔신학적 가르침〕 코헬렛의 구조 파악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책 전체를 일관하는 가르침을 끌어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코헬렛이 난해한 사상을 전개하거나 어려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바를 일정한 논리적인 흐름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전개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전개 방식은 코헬렛의 정신에도 부합하는데, 엄밀한 논리로 전개 한다는 것이 자신의 주장에 그만큼 신념을 갖는 것인 반면, 코헬렛은 줄곧 인간이 세상의 질서를 알 수 없다는 생각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다" , "허무로다", "먹고 마시고 즐기자" 등 책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이러한 언어로 인해 코헬렛은 자주 회의론자 혹은 비관주의자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이 많이 가졌다고 생각될 때 자만하지 말고, 없다고 여겨질 때에도 결코 실망하지 않도록 이끌어 준다. 허무로다 · 허무요 바람잡는 일이다 : "허무로다"(הֶבֶל)는 구약성서에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 우상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용어이다. 구약성서 전체에서 73번 사용된 이 단어가 코헬렛에서는 38번 나올만큼 이 말은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를 형성한다. 코헬렛은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겪는 일조차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코헬렛에게 세상 일이 되어 가는 이치는 곧 하느님이 놓은 질서이며, 인간은 그것을 알고 싶어하지만 그 노력이 헛되다는 것이다.
코헬렛이 과거의 역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의 현자로서 그가 이런 선언을 하는 것은 과거 하느님 백성이 겪어 온 일에 대한 뚜렷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야훼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하신 약속을 출애급을 통해 이루어 주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며 십계명을 주셨다. 하느님의 계명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이후에도 계속 출애급에서 얻은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은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가나안 땅에서 그들의 역사는 계명과 반대되는 길로 가고, 결국 유배의 길을 떠나게 된다. 하느님의 역사를 분명히 체험하고 그 길을 제 시하는 계명을 받고도 그것이 생명의 길임을 알아듣지 못하여 다시 죽음의 길로 간 지난 역사는 코헬렛에게 인간 인식의 한계를 고백하는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태양 아래서 벌어지는 일, 즉 하느님이 놓으신 질서가 인간에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은 회의론이나 비관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다. 하느님의 말씀 혹은 거기에서 연유하는 유익한 가르침들은 과거의 전승에 모두 있기 때문에 코헬렛은 그 가르침을 반복하려 하지 않고, 대신 그 앞에 서 있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사색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즐겨라 : 코헬렛이 즐겨 사용한 대표적인 관용구 중의 하나가 "먹고 마시고 즐겨라"인데, 문맥에 따라 표현을 약간 달리하면서 반복되었다(2, 24-25 ; 3, 12-13 ; 5, 17-18 ; 8, 15 ; 9, 7-9 ; 11, 8-9). 그런데 이 표현이 책 안에서 매번 인간이 애써 노력하는 일들이 헛되다는 선언과 결합되어 나오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즉 '인간이 지혜를 얻으려 애를 써도 성공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이루려 해도 하느님이 정하여 놓으신 때에 따라 되어 가니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길 일이다' 라는 식의 가르침인데,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얼른 듣기에는 약간 퇴폐적일 수도 있는 이 말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코헬렛이 항상 '이 세상에 하느님이 만들어 놓으신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 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코헬렛의 통찰에 따르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이루려고 하는 것은 다분히 그 안에 억지스러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이 추구하는 바를 보면, 권력이 있든 없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간에 모두 삶을 즐기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눈이 어두워 그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기쁘게 살며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것은 하느님이 태초부터 인간의 마음 속에 놓아 준 질서라고 할 수 있다. "먹고 마시고 즐겨라"는 것은 이런 상징성을 가진 언어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좋은 지향에서 시작한다 하더라도 무언가 억지로 이루려고 할 때보다, 오히려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서로 공유하는 길이 하느님이 놓으신 질서를 더 잘 따르는 길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코헬렛이 즐기라는 말을 할 때마다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헬렛은 이렇게 세상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을 인간이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 길을 따라 사는 길은 열려 있다고 가르친다. 하느님에 대한 인식 : 책 전체를 지배하는 회의주의적이고 극단적인 언어들이 코헬렛의 본래 특징이라고 단정하는 경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통적인 지혜의 가르침을 주는 단락들이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코헬렛이 은연중에 하느님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뚜렷한 증거는 바로 위에서 살펴본 "먹고 마시고 즐겨라"는 관용구들이 단 한 번도 예외없이 하느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고 하느님이 좋게 보시는 바이며, 하느님을 떠나서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고 매번 역설한다. 이 말씀을 본문의 흐름에서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인간이 늙어 가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노래하는 12장 1-7절은 전체가 문장론적으로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는 말에 걸려 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 (3, 14 ; 5, 6 ; 7, 17 ; 8, 12-13)은 지혜 문학 전체의 핵심적인 주제인데, 코헬렛이 이 주제를 깊이 성찰하지는 않으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이 그분 앞에 가져야 할 태도임을 도처에 언급한 것은 책 전체의 흐름과도 잘 어울리며, "먹고 마시고 즐겨라" 라는 조언이 결코 그러한 행위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차원을 열어 준다. (⇦ 전도서 ; → 구약 성서 ; 지혜 문학 ; 축제 오경)
※ 참고문헌 박 요한 영식, 《간추린 성문서 입문》, 성바오로출판사, 1998/ 一, 《코헬렛의 지혜와 즐거운 인생》, 성서와 함께, 1997/ 롤랜드 E. 머피, 박 요한 영식 역,《생명의 나무》, 성바오로출판사, 1998/ J.L. Crenshaw, 강성열 역, 《구약 지혜 문학의 이해》, 한국장로교출판사, 1993/ -, 《ABD》 2, pp. 271~280/ G. von Rad, Wisdom in Israel, Partheon Press, Nashville Tennessee, 1972. 〔金宗壽〕
코헬렛
〔히〕קהֶלֶת · 〔그〕Ἐκκλησιαστής · 〔라〕Liber Ecclesiastes · 〔영〕Ecclesias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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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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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의 여왕을 만나는 솔로몬. 그는 코헬렛의 저자로 추측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