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155-29 소재. 1971년 9월 17일 수색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
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남가좌1 · 2동, 북가좌1 · 2동 전 지역, 연희1동, 홍은3동, 중동, 성 산동 일부. [교 세] 1972년 1,238명, 1980년 3,721명, 1988년 7,006명, 1993년 5,317명. 〔역대 신부] 초대 김영화(金榮和) 바오로(1971. 9~ 1974. 5), 2대 김충수(金忠洙) 보니파시오(1974. 5~1978. 9), 3대 김형식(金亨植) 베드로(1978. 9~1983. 8), 4대 임태경(任泰景) 루가(1983. 9~1989. 10), 5대 차원석(車元錫) 토마(1989. 10~현재).
〔공소 시대〕 본래 이 지역에는 수색 본당의 신자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5년 9월 서강대학교 재학생 제희우(諸禧雨, 요셉)가 불우 아동 선도에 뜻을 두고 청년 교우들과 함께 증가동(현 남가좌동) 동사무소 로부터 북가좌동 산 13번지 소재 흙벽돌집 1동을 빌려 광일(光日) 야간학교를 설립한 것이 오늘의 복음 터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부터 이 야간학교에서는 중등 과정을 가르치는 한편 주 2시간의 종교 교육을 병행 함으로써 전교 활동에 앞장섰고, 매월 1회 정도 예수 고난회의 박 유스티노 신부를 초빙하여 주일 미사를 봉헌 하였다. 그러자 본당이 멀어 불편을 겪고 있던 인근의 신자들이 하나 둘씩 이 미사에 참례하여 신앙 공동체를 이 루게 되면서 1967년 4월에는 서강대학교 예수회 신부들과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주일 미사와 교리반을 정착시키 게 되었다. 그 결과 1968년 9월 무렵에는 주일 미사 참례자 150여 명, 주일학교생 70여 명으로 증가하게 되었 으나, 가좌동 동사무소의 요구로 흙벽돌집을 양도해야만 하였다. 이에 교우들은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조직하 는 한편 같은 해 10월 북가좌동 119-12번지 김일분(바울라)의 집으로 집회소를 옮기고, 본당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의 동의 아래 예수회 파우어(Thomas Power, 權) 신부의 집전으로 주일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후 공 동체 신자들은 주보 <금모래>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사도직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70년 1월 교구의 도움을 얻어 현 본당 소재지에 대지 385평을 매입한 뒤 그해 12월에는 그 위에 16평의 천막을 건립하고 수색 본당(주 임 신부 : 김윤상 베네딕도)의 공소로 발족하게 되었다. 가좌동 공소 신자들은 이때부터 성당 건립 기성회(회장 : 한 국무)를 새로 조직하는 동시에 건립 기금 마련에 힘써 1971년 5월 시멘트 블록 건물(40평)을 임시로 짓고 축 성식을 가졌다. 그 결과 같은 해 9월 17일 마침내 본당 승격을 보게 되었다.
〔설립과 성장〕 본당 승격 후 신자들은 곧 사목 협의회(회장 : 제희우 요셉)를 구성하고, 초대 김영화(바오로) 신 부와 협의하여 성당 건립 운동을 추진해 나갔다. 그리고 전교 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성가회 수녀들을 초빙하고, 1972년 4월에는 주보 <모래알>을 창간하였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이때 창간된 <모래알> 은 기존에 발간되던 <금모래>의 후신으로 1978년 5월 교구 주보에 통합되기 전까지 본당의 주요 홍보지 역할 을 하였다. 본당의 성당 건립 작업이 보다 구체화된 것은 제2대 김충수(보니파시오) 신부가 부임한 뒤였다. 이
때 신자들은 1975년 2월 성당 건립 위원회를 새로 조직하고, 성당 신축 2개년 계획과 4천만원 모금 계획을 수 립한 후 이듬해 5월 기공식을 거행함으로써 건립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신자들 대부분이 영세한 탓에 기금 문제 로 일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은 끝에 1978년 4월 8일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제3대 김형식(베드 로) 신부 재임기에는 우선 성당 부속 시설물을 갖춘 뒤 평신도 사도직 단체 구성에 노력하였다. 그 결과 1976 년에 모니카회, 1977년에 요셉회, 연령회 등이 발족을 보게 되었다. 이후 본당 신자들은 지금까지 전교 활동의 강화, 단체의 확대, 신심 운동의 활성화, 초교구적인 교류 등 내실을 기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이 기간 동안에 성모의 뜰이 조성되었으며, 광주대교구 완도 본당의 성당 신축을 지원하고, 완도의 어린이 40명의 서울 나들이도 주선하였다. 특히 1981년의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1984년의 103위 시성식, 1989년의 세계성 체대회 등을 통해 초본당적 일치감을 드러내게 되었다.(→ 서울대교구) 〔車基眞〕
가좌동 본당
加佐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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