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영〕Co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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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는 원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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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는 원주민들.

아프리카 대륙 중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국가로, 공식 명칭은 콩고 공화국(République du Congo). 북쪽으로 카메룬과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남동쪽으로 콩고 민주공화국, 서쪽으로 가봉과 접한다. 면적은 342,000k㎡, 인구는 3,110,000명(203)이며, 수도는 브라자빌(Brazzaville)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주민의 절반이 콩고 부족이다. 인구의 50%가 가톨릭 신자이고, 8%가 토속 신앙을 믿는다.
1414년 콩고 지역이 포르투갈인에게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이 지역에는 로앙고(Loango) 왕국과 테케(Teke, Anziku) 왕국이 가장 번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콩고 왕국의 속국이었으나 유럽 상인의 노예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18세기 초부터 프랑스인 선교사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연안에는 많은 상업 항구들이 생겨 소왕국들을 이루고 있었다. 1875년부터 중앙 아프리카 탐험을
시작한 프랑스의 탐험가 브라자(P.-P.-F.-C. Savorgnan de Brazza, 1852~1905)는 1880년 콩고 강 유역을 탐험하고 테케족과 그들의 왕국을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1883년에는 로앙고의 빌리족(Vili)과도 비슷한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가 체결한 첫 번째 조약은 1882년 프랑스령 콩고 식민지(현재의 가봉 포함) 수립을 위한 기초가 되었다. 1905년 행정 개편에 의해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내에 무아앵(Moyen) 콩고 식민지가 세워졌다.
1946년 무아앵 콩고는 프랑스 의회로 보낼 대의원들을 선출하였으며, 1958년에는 주민 투표에 의해 프랑스 공동체(La Communauté : 프랑스 본국과 해외 식민지 · 보호령 · 신탁 통치령을 포함한 전 프랑스 영토의 총합체, 1946년에 창설된 '프랑스 연합' 의 후신) 내의 자치 공화국이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국명을 '콩고 공화국' 으로 바꾸고 완전 독립하였다. 독립 후 아프리카 이익 옹호 동맹(UDDIA)의 당수인 율루(F. Youlou)가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1963년 쿠데타로 축출당하였다. 뒤이어 마상바 데바(A. Massamba-Debat)가 대통령에 취임하여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화를 추진하였다. 1968년 응구아비(M.
Ngouabi) 소령이 지휘한 또 한 차례의 쿠데타가 발발하였고 그 결과 1970년 1월 '콩고 인민 공화국' 이 수립되었으나, 정국 불안은 계속되었으며 응구아비는 1977년에 암살당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욤비 오팡고(J. Yhombi-Opango) 장군이 국가 원수로 선출되었지만 1978년에 일어난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사수 응궤소(D. Sassou-Nguesso) 대령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1978년에 또 한 차례 일어난 쿠데타 결과 헌법의 효력이 정지되었으며, 1979년에 새로운 헌법이 승인되었다. 이 헌법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 응궤소는 서방 세계와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였다. 1991년에 제출된 새로운 헌법 초안은 이듬해 실시된 국민 투표로 확정되었고, 그해 8월 리수바(P. Lissouba)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새 대통령과 사수 응궤소 전(前) 대통령을 지지하는 양편 민병대들 간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그 결과 1997년 10월 19일 리수바는 부르키나파소로 도주하였고, 그가 이끌던 정부 관료들은 콩고 민주 공화국에 망명을 신청하였다. 10월 25일 사수 응궤소가 대통령직에 올랐으나, 축출된 리수바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반군 민병대가 조직되어 정부군을 공격하면서 콩고는 내전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 내전으로 15,000여 명이 사망하고 외국인은 철수하였으며, 브라자빌 등 주요 도시 및 산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는 악화되었다. 1998년 1월 국민 회의가 열려 3년간 전환기를 두고 2000년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모든 정파가 참석한 가운데 2001년 3~4월 콩고 범민족 대화(Dialogue national sans exclusive)가 열렸고, 4월 17일 범민족 대화 종료와 함께 '콩고 재
건 및 평화 협정' (La convention pour la Paix et le reconstruction du Congo) 서명이 이루어져 안정을 되찾았다.
〔가톨릭의 역사〕 15세기 이후 포르투갈 노예 무역 상인들에 의해 이 지역에 최초로 가톨릭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베르나르딘(Bernardine)이 1663년 로앙고 왕국을 방문하여 잠시 가톨릭이 확산되는 듯하였으나, 1666년 이후 이들의 활동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콩고 지역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1776년 이후였다. 1883년 성령 수도회가 로앙고 왕국에 선교지를 세웠으며, 1886년 프랑스령 콩고(French Congo) 대목구가 설정되었고, 1955년 교계 제도가 설정되어 수도인 브라자빌이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1960년 8월 15일 콩고는 독립을 하였지만 정치적 불안정,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 부족들 간의 경쟁,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 등은 전교 활동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1950년대 이후 콩고의 가톨릭은 교육 분야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였으나, 콩고 정부는 1965년 가톨릭계 학교를 모두 국가가 관리하는 공립 학교로 강제 전환하였다. 1980년 들어 사수 응궤소 대통령이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면서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졌고, 1992년에 치러진 콩고 의회 선거에서는 오완도(Owando) 교구의 콤보(E. Combo) 주교가 책임자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시 콩고의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였고, 이에 콩고의 주교들은 정치인들에게 계속적으로 평화를 호소하였다. 최근에는 브라자빌 대교구의 주교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의 경제적 부채를 억제하고자 석유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것을 요구하고있다. 주교들은 2002년 7월 11일 발표된 성명서를 통해 국가와 교회, 그리고 각종 사회 단체의 대표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국가의 석유 생산과 수입을 관장하도록 할것을 촉구하였다. 현재 콩고에서의 가톨릭 활동은 복음의 전파 이외에 교육 · 사회 · 경제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03년 현재 콩고의 가톨릭 신자수는 전체 인구의 50%인 1,556,000명이며, 대교구 1, 교구 5, 지목구 1, 성당 143개에, 대주교 3, 주교 6, 신부 288(교구 소속 193, 수도회 소속 95), 수사 36, 수녀 225명이 있다.

※ 참고문헌  David B. Barret ed.,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 A Comparative Survey ofChurches and Religion in the Modem WorldAD 1900~2000, Oxford · Nairobi, Oxford Univ. Press, 1982/ Europa Publications eds., Africa South ofthe Sahara 2002 -Congo, 2002/ John S. Mbiti, African Religion and Philosophy, New York, Praeger, 1969/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298. [徐相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