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중서부 적도에 걸쳐 있는 국가로, 동쪽으로 탄자니아 · 부룬디 · 르완다 · 우간다, 서쪽으로 콩고와 대서양 연안에 있는 앙골라의 고립 영토인 카빈다(Cabinda), , 남쪽으로 앙골라, 동남쪽으로 잠비아, 북쪽으로 수단 ·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과 접한다. 면적은 2,345,410k㎡이고 인구는 52,520,00명(2003)이며, 수도는 킨샤사(Kinshasa)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나 링갈라어와 스와힐리어 등도 널리 쓰인다. 국교는 없으나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가톨릭을 믿으며, 그 외에 프로테스탄트(20%)와 이슬람교(10%) 등을 믿는다.
현재의 콩고 민주 공화국에 가장 먼저 정착하여 살았던 종족은 수천 년 전부터 이곳에서 생활한 피그미족(Pygmies)으로 추정된다. 최초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왕국은 카탕가(Katanga, 현 Shaba) 지역의 루바(Luba) 왕국이었다. 루바 왕국은 16세기에 콩골로라는 이름의 한 무사가 카탕가 지역의 작은 추장령(酋長領)들을 정복하여 중앙 집권적인 정부를 수립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서북쪽에는 다수의 작은 추장령 연합체인 쿠바(Kuba) 왕국이 있었는데, 18세기 들어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1500년대 초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와 노예 무역을 시작하였으며, 그 뒤 다른 서구 세력도 밀려오 기 시작하였다. 19세기 말까지도 비교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내륙 지역도 벨기에의 왕 레오폴 2세(Leopold II, 1865~1909)가 1885년 그 지배권을 주장하였으며, 1908년에는 공식적으로 벨기에 식민지가 되어 '벨기에령 콩고 (Belgian Congo)로 불리게 되었다. 20세기 중엽부터 아프리카 각지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이 지역에서도 독립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하여 비교적 뒤늦게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일단 시작이 되자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957년 백인과 흑인 모두가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1959년 격렬한 독립 운동이 있었으며, 1960년 6월 30일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신생 콩고 민주 공화국의 정부는 취약하였으며 독립 후 한동안은 부족 간의 분쟁으로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다. 그러다 1965년 군장성 출신인 모부투 세세세코(J. Mobutu Sese Seko)가 집권하면서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었으며, 1971년에는 국호를 자이르(Zaire)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이후 32년간에 걸친 모부투의 독재와 부패, 인권 탄압 등으로 다시 극심한 반(反)정부 운동이 일어났으며, 결국 카빌라(L.D. Kabila)가 이끈 반란군이 1997년 5월 모부투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카빌라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국명을 다시 예전의 이름인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그는 민주화를 약속하였으나 국내외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정치를 펼쳐 새로운 독재자로 비난을 받았고, 2001년 측근에 의해 살해되어 현재는 그의 아들 조셉 카빌라가 대통령직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前) 대통령 만델라(N.R. Mandela) 등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중재로 정부군과 반군 간의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내전으로 인하여 많은 국민들이 경제적 · 정신적으로 핍박을 받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인도적인 도움이 절실한 실정이다.
〔가톨릭의 역사〕 콩고 민주 공화국 지역에 가톨릭이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1482년 디에고 카오(Diego Cao) 가 이 지역을 탐험하면서부터였다. 본격적인 복음 전파는 1490년경부터 시작되었으며, 포르투갈의 프란치스코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선교사들이 파견되었다. 적극적인 선교 활동의 결과, 후에 왕위에 오르는 은진가(M. Nzinga, 1506~1543)가 1491년 세례를 받은 후 1543년에는 아폰수(Alfonso)로 이름을 바꾸고 평생을 가톨릭 신자로 살았다. 그의 아들인 엔리케(D. Henrique)는 포르투갈에서 신학 교육을 받고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518 년 최초의 아프리카 흑인 주교로 서임되었다.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은 1640년 콩고 지목구를 설정하고 이탈리아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가 사목을 담당하게 하였다. 1682년에는 신학교가 설립되어 아프리카인 사제들을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가톨릭 신자들이 계속해서 증가하자 이 지역의 왕들은 선교사들의 파견을 계속적으로 요청하였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자국 출신의 선교사들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선교 보호권(padroado)을 주장하며 포르투갈인 선교사들만을 인정하였다. 결국 1760년대 포르투갈의 수상 폼발(Sebastião de Carvalho, Marquês de Pombal, 1699~1782)의 교권 반대 정책은 이 지역 내 교회의 몰락을 가져왔고, 선교 단체들의 활동 역시 19세기까지 급격히 감소하였다. 결국 이 지역은 1865년 성령 수도회가 콩고 강 하부 지역의 사목을 담당하고 보마(Boma)에 선교지를 설립할 때까지 무종교의 상태로 돌아갔다.
벨기에의 아프리카 성모의 선교사회(백의의 선교사회)는 1878년까지 탕가니카(Tanganyika) 호수의 동쪽 지역에 진출하여 이 지역에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1884~1885년에 걸쳐 개최된 베를린 회의
를 기점으로 현재의 콩고 민주 공화국은 벨기에 왕 레오폴 2세의 사유지로 넘겨졌다. 그는 이 지역을 콩고 자유국(Congo Free State)으로 명명하였는데, 그의 무자비한 착취에 세계 각국이 비난을 가하자 벨기에 식민지로 편 입시켜 1908년 '벨기에령 콩고 로 이름을 개칭하였다. 가톨릭 교회는 1906년 5월 26일 벨기에 국왕과 협약을 맺고 이 지역에 보다 많은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또한 이 협약으로 이 지역은 정부로부터 선교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동안 선교 활동은 다소 주춤하였지만, 전쟁 이후 새로 생긴 도로나 통신 시설들을 통해 선교 활동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59년 교계 제도가 마련되었으며, 20세기 들어 국가의 교육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가톨릭은 독립 이전 콩고 민주 공화국 초등학교 3분의 2의 운영을 담당하였다. 특히 초등 교육 분야는 국가의 장려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1924년 이후 빠르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계에서의 활동은 1960년 6월 벨기에로부터 완전 독립한 이후 중단되었다. 독립 후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많은 선교 단체들이 폐쇄되었으며, 계속되는 내전으로 인하여 많은 신부 · 수사 · 수녀들이 살해당하였다. 특히 모부투는 1965년 11월 대통령직에 취임한 후 모부투이즘(Mobutuism)이라는, 스스로를 우상화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사실상 가톨릭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은 금지되었고, 교회에서 설립한 소신학교는 공립 학교로 전환되었으며, 성탄절을 비롯한 종교 관련 휴일도 모두 금지되었다.
1977~1978년에 폭동이 터지자 모부투 대통령은 자신의 반(反)그리스도교적 통치를 완화하기 시작하였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0년 콩고 민주 공화국과 가톨릭 사이의 화해 차원에서 이 지역을 방문하였다. 1970년대 공립화되었던 학교들이 1986년 이후 다시 사립화되어 교회는 또다시 많은 학교들을 운영하며 콩고 민주 공화국의 교육 분야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특히 1974년 킨샤사에 세운 신학교는 자이르주교 회의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킨샤사의 주요 가톨릭 기관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이 대학은 아프리카 신학의 모체로서 아프리카 전통 종교와 문화의 이해 및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 종교 센터를 운영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정세가 불안하여 많은 가톨릭 성직자와 신자들이 현재 박해를 받고 있다. 한 예로 1997년 8월 24일에 로마 가톨릭 성직자 및 수녀 등이 포함된 280명 이상의 비무장 민간인들이 남부 키부(Kivu) 지방의 카시카(Kasica) 교구와 그 주변에서 무장 반군 및 르완다 정부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무장 반군들은 또한 많은 민간인들을 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3월 콩고 민주 공화국의 주교들은 프로테스탄트 · 이슬람 지도자들과 손을 잡고 평화 구축을 위한 화해 전도의 캠페인을 시작하며 종교 간의 일치를 꾀하고 있다.
2003년 현재 콩고 민주 공화국의 가톨릭 신자수는 전체 인구의 54%인 28,420,000명이며, 대교구 6, 교구
41, 성당 1,254개에, 추기경 1, 대주교 8, 주교 54, 신부 3,902(교구 소속 2,647, 수도회 소속 1,255), 종신 부제 10, 수사 1,346, 수녀 6,405명이 있다.
※ 참고문헌 David B. Barret ed.,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A Comparative Survey ofChurches and Religion in the Modern WorldAD 1900~2000, Oxford · Nairobi, Oxford Univ. Press, 1982/ John R. Crawford, The Protestant Missions in Congo : 1878~ 1969/ Cecilia Irvine, The Church ofChrist in Zaire, Indianapolis, Christ Church, 1978/ Marvin Marckowitz, Sword and Cross : The Political Role of Christian Missions in the Belgian Congo, 1908~1960, Stanford, Hoover Institution Press, 1973/ L. Jadin, 《NCE》4, 2003, pp. 103~106/ G. Iwele, 《NCE》4, 2003, pp. 106~ 108/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298. 〔徐相鉉〕
콩고 민주 공화국
〔프〕République Démocratique du Co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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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