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주의

快樂主義

〔라〕hedonismus · 〔영〕hed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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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과 기준으로 삼는 학설.
그리스어로 '쾌락' 을 의미하는 '헤도네' (ἡδονή)에서 유래한 이 학설은, 쾌락이란 선이고 추구할 만한 것이며 고통은 악이므로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쾌락은 감각적 · 육체적 욕구가 충족될 때 일어나는 즐거운 감정, 즉 쾌감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감각적 쾌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성적 · 정신적 쾌락도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종류의 쾌락이 있을 수 있고, 따라서 철학사에는 다양한 종류의 쾌락주의가 존재한다. 쾌락주의는 심리학의 연구 과제가 될 수 있으나 주로 윤리학적 관점에서 논의된다.
〔역사적 고찰〕 서양 철학사에서 쾌락주의는, 기원전 3세기에 키레네 학파(Cyrenaic)에 의해 논의되었다. 이 키레네 학파의 창시자인 아리스티포스(Aristippos, 기원전 435?~366)에 의하면, 덕은 쾌락의 충족으로 얻어지며 쾌락은 유일한 선이자 최고의 선이다. 따라서 쾌락은 그 강도와 순수성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가장 좋은 쾌
락은 고통이 전혀 섞이지 않은 쾌락이다. 키레네 학파는 미래가 우리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지금 당장의 감각적 · 육체적 쾌락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현재를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쾌락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아리스티포스가 주장한 쾌락주의의 이상은 육체적 욕망을 추구하되 지혜로 쾌락을 지배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키레네 학파의 쾌락주의는 아리스티포스의 뒤를 이은 테오도로스(Theodoros)에 이르러 더욱 이기적인 쾌락주의로 변하였다. 테오도로스는 정치적 · 종교적인 어떤 종류의 이타적인 행동과 제도도 거부하였으며, 개인의 관능적 쾌락 추구에만 몰두하고 희생, 우정, 타인을 위한 복지, 법률, 도덕 등은 경시하였다.
키레네 학파의 쾌락주의는 헤제시아스(Hegesias)에 이르러 염세주의로 변하였다. 헤제시아스에 의하면, 대부 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실제로 쾌락을 얻지 못하므로 쾌락주의의 이상은 달성될 수 없으며 쾌락을 얻을 수도 없다. 쾌락을 얻을 수 없다면 인생은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적극적으로 쾌락을 얻지 못할 때 최선의 방법은 고통에서 도피하는 것이며, 고통을 피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죽음을 택하는 길이다. 가장 축복받은 사람은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 즉 이미 죽은 사람이다. 따라서 현자는 인생 자체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된다. 헤제시아스는 수많은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키레네 학파의 쾌락주의는 쾌락만을 추구하려던 당초의 목표와는 정반대로 외적 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최고선으로 설정하게 되는 모순에빠지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쾌락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학파는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이 학파는 키레네 학파와는 달리 순간적인 감각적 · 육체적 쾌락보다는 영원한 정신적 쾌락을 강조하였다. 이 학파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Epicuros, 기원전 341~270)는 마음의 안식과 쾌락을 결합시킴으로써 고통을 피하고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평정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쾌락주의를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공포는 정신의 안정에 위협이 되며, 그중 가장 나쁜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제거되어야 한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내세에 관한 것으로 내세가 있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쓸데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상태에서는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헛된 것이며 어리석고 불필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가 '신들처럼 자유롭기 위해서' 는 행복이 우리의 의식 안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덕은 평정(ataraxia, 평온함)으로 나타나며, 더욱 바람직한 덕들은 쾌적함, 단순함, 절제, 온화함 등이다. 따라서 절제된 쾌락이나 영적 가치가 육체적 · 물질적 가치보다 우월하다. 마음은 미래의 기쁨을 예견하고 과거의 기쁨을 기억 속에 보존하면서 이를 비축한다. 영적 쾌락의 자원으로 현재의 비참함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우정을 제외한 사회적 인간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혼은 그것이 수반하는 근심과 책임감으로 말미암아 모든 형태의 공적인 일과 마찬가지로 거부되었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이 쾌락을 우중(愚衆)의 실천적 태도로 폄하한 이후 쾌락주의는 스토아 학파와 중세 철학에서 배척되어 2,000년 동안 사라졌다가 18세기에 영국의 철학자들, 특히 공리주의자들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윤리학적 직관주의에 반기를 든 공리주의자들은 도덕적 행위의 목적을 쾌락이
충족된 상태인 행복으로 보았다. 벤담(J. Bentham, 1748~1832)은 쾌락이란 오직 한 가지일 뿐이며, 양적인 면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쾌락은 동일하므로 도박이나 시 낭송이 나 똑같이 좋은 것이다" 라고 말하였으며, 쾌락은 즐기는 것이므로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데에서 오건, 갓난아기의 엉덩이를 핀으로 찌르는 데에서 오건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각자는 자기 자신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으며, 도덕이란 개인적 행복, 즉 쾌락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는 고통을 극소화하고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쾌락주의를 윤리학적으로 더욱 세련된 형태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비 판〕 증거 부족 : 쾌락주의는 쾌락이 선이라고 가정하는데, 그것을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다. 이것은 욕구의 대상은 욕구이기 때문에 욕구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예컨대 건강에 해로운 음식물이나 마약 등은 쾌락을 줄 수도 있으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며 더구나 선일 수 없다. 한편 귀찮고 힘든 공부나 봉사는 당장 쾌락을 주지는 않지만 바람직한 것이다. 따라서 쾌락 그 자체를 반드시 선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가치 없고 만족스럽지 못한 쾌락 : 정신병자, 알코올 및 마약 중독자의 쾌락과 건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즐거움은 동일시될 수 없다. 가학증 환자나 피학증 환자가 폭력에서 얻는 쾌락은 가치 없는 것으로서 선일 수 없으며, 성적 쾌락이 반드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A. Schopenhauer, 1788~1860)는 성적 쾌락은 결코 충족되지 않으며 일시적으로 성적 욕구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만족스러운 사랑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랑의 충족이 성적 경
험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사랑과 성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욕구 충족은 쾌락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우리가 참으로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설혹 그런 것들이 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우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것들을 추구하는 데에서 어려움이 생겨난다"라고 루이스(C.I. Lewis, 1883~1964)는 갈파(喝破)하였다. 요컨대 쾌락은 인간의 심리 상태와 그것에 대한 이전의 경험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므로 쾌락은 선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의 삶에서 선한 것들의 대부분은 즐거운 것이 아니며 쾌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 인내와 절제는 선한 것이나 쾌락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벤담의 공리주의를 '돼지 철학' 이라고 비난한 칼라일(T. Carlyle, 1795~1881)은 벤담의 이기적 쾌락주의는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그 시대를 타락시키는 데 이바지하였으며, 이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인해 악한과 비겁자들이 증가하였다고 갈파한 바 있다. 현대 사회의 황금만능주의는 쾌락주의의 변형으로 사리사욕과 행복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죽음의 문화를 만연시키고 있다. 선행과 덕의 실천은 때로 우리에게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쁨도 가져다준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고통이자 기쁨이듯이, 인간의 삶 역시 고통이자 기쁨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쾌락만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공리주의 ; 벤담, 제러미 ; 에피쿠로스 ; 쾌락)

※ 참고문헌  J. Ritter hg., Historisches Wörterbuch der Philosophie, Bd. 3, pp. 1023~1025/A New Engl. dictionary on hist. principles, James & Murray, Lond., vol. 5, p. 190/ Encyclopedia of Philosophy, New York, vol. 3, 1967, p. 4321 A. Schopenhauer, P. Deussen hg., Werke, Bd. 11, p. 621 M. Scheler, 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 Bern, 1954, p. 341/ W.S. Sahakian, Ethics, Boston, Beacon Hill, 1974. 〔秦敎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