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성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빌리발트. 세례명은 알로이스(Alois) . 한국명은 공낙도(孔樂道).
쿠겔만은 1894년 1월 24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교구에 속한 란겐노이프나흐(Langenneufnach)에서 태어났다. 1907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김나지움과 딜링겐(Dillingen) 소신학교에서 1915년까지 공부하였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후인 1919년 6월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20년 7월 16일 유기 서약을 하였다. 그 후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운영하던 철학 대학에서 철학 과정을 마치고 뮌헨 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1924년 7월 19일 뮌헨의 오틸리엔콜레크(Ottilienkolleg) 신학원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8월 17일 한국 선교사가 되어 로트(L. Roth, 洪泰華, 1890~1950), 노이기르크(P. Neugirg, 俞, 1894~1967), 괴스틀러(B. Köstler, 高, 1897~1947) 신부와 함께 11월 21일 서울 백동(현 혜화동)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약 10개월 동안 바인거(M. Bainger, 方, 1891~1945) 신부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1925년 10월 용정 본당의 보좌 신부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26년 6월 백동의 수도원으로 돌아와 원내 임무를 맡았고, 1927년 돈화 본당에 속한 한국인 신자들을 담당하는 보좌 신부로 부임하였다. 1928년에 연길 지목구의 설정이 준비되면서, 그는 원산 대목구 소속이 되어 그해 3월 6일 수도원으로 돌아와 원내 소임을 맡았다.
1930~1934년에는 원산 본당 보좌를 역임하였으며 1934년 고산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 후 1935년에 덕원 신학교의 교수로 부임하여 라틴어, 독일어, 종교학 등을 가르치며 영성 지도 신부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 수도원 합창단의 일원으로 전례를 풍성하게 하였다. 1949년 5월 10일 북한 공산당에 체포되어 평양 인민 교화소에 수감된 그는 8월 5일 옥사독 강제 수용소로 옮겨져 1953년 10월 23일까지 감금 생활을 하였다. 그 후 만포 수용소로 이송되었다가 북한, 중국, 러시아, 동독을 거쳐 1954년 1월 24일 독일성 오틸리엔 수도원으로 귀환하였다.
본국으로 송환되어 건강을 회복한 후 그는 투칭(Tutzing)의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분원인 케르슐라흐(Kerschlach) 수녀원에서 지도 신부로 일하였다. 1959년 왜관 수도원으로 재파견되어 수도원에 머물면서 순심중 · 고등학교의 마오로 기숙사 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쳤다. 1965년 건강 문제로 독일로 휴가를 가 있던 중, 브레히터(S. Brechter, 1910~1975) 총아빠스의 권고로 독일에 계속 머물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1975년 11월 16
일 밤 심장 마비로 선종하였으며, 성 오틸리엔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 덕원 면속구 ; 연길교구)
※ 참고문헌 A. Kasper · P. Berger, HWAN GAB(還 甲), Miunsterschwarzach, 1973/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이정순 엮음, 《원산 수녀원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88/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 Erzabtei St. Ottilien, Schematismus 1924~1946, St. Ottilien/ Todesanzeige von Abtei St. Ottilien, 1975. 〔宣智勳〕
쿠겔만, 빌리발트 (1894~1975)
Kugelmann, Willib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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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