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세례명은 빈첸시오. 한국 이름은 구마슬(具瑪瑟)
프랑스 로데(Rodez) 교구의 부스케(Bousquet)에서 1859년 1월 21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실 한 천주교 신자인 부모님 밑에서 신앙심을 키우며 독학으로 공부하여 생피에르(Saint-Pierre) 소신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고, 선교사가 되고자 1880년 9월 파리 외방전 교회에 입회한 후 1884년 9월 20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한국 선교사로 발령을 받고, 11월 19일 프랑스를 떠나 이듬해 5월 5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쿠데르 신부는 서울에서 얼마 동안 한국어 등 한국 문화를 배운 후 황해도 수안의 진고개로 떠났다. 당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은 콜레라와 심한 기근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비참한 상태였다. 그는 수안 지역에서 2년 동안 활동하며 장련과 송화를 비롯하여 장련의 금복이 · 창바위 · 중골 등의 작은 마을에까지 교우촌을 형성하였다. 재임 기간 중에는 신자들과 함께 지역 복구 작업 등에 참여하며 교세 확장에 전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이 지역은 2년 사이에 신자수가 급증하였다. 그 후 1887년 7월 로(J.L. Rault, 盧若望) 신부에게 이곳을 맡기고 강원도 이천 본당으로 옮겨갔다.
쿠데르 신부는 이천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일대와 함경도 평안도의 총 28개 공소를 관할하였다. 당시 그가 담당한 강원도 동부 지역은 한국에서 가장 가난했던 곳으로, 신자들은 제각기 흩어져 감자를 경작하며 매우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다. 이에 쿠데르 신부는 교우촌 건설에 힘쓰면서 신자들과 함께 일하며 적극적으로 전교 활동을 전개하였고, 이러한 노력으로 1891년경에는 그 지역 신자가 1,100여 명에 이를 만큼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그는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글을 가르쳐 누구나 성서를 읽고 쓸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이와 같이 활발한 전교 활동을 펼치던 쿠데르 신부는 1892년 4월 27일 연례 피정 묵상 참석차 서울로 가던 중 장티푸스가 창궐하던 마을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5월 1일 갑자기 고열로 쓰러져 같은 달 15일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현재 그의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M.E.P. 선교사 약전》/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黃海道天主教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뮈텔 주교 일기》 I,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洪延周〕
쿠데르, 뱅상 (1859~1892)
Couderc,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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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