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회 성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베드로 가니시오. 세례명은 게르하르트(Gerhard) 한국명은 구걸근(具傑根) .
1884년 5월 24일 파더보른(Paderborn) 대교구에 속한 마크데부르크(Magdeburg)에서 태어난 퀴겔겐은, 고향에서 김나지움을 다니다가 1905년에 아헨(Aachen)의 김나지움을 졸업하였다. 그 후 본(Bonn) 대학교에서 2학기 동안 철학 공부를 하였으며, 1906년 8월 1일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07년 10월 20일 신설된 슈바이클베르크(Schweilklbarg) 수도원으로 정주(Stabilitas)를 옮겨 유기 서약을 하였다. 1909년 7월 26일 딜링겐(Dillingen)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1911년 1월 6일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서울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도착한 퀴겔겐 신부는, 실업 학교인 승공학교(崇工學校)와 사범 학교인 승신학교(崇信學校)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그의 돋보이는 업적은 저술 활동으로, 그는 1916년에 《요한덕해》(要漢德解)라는 사전을 저술하였다. 이미 한국어가 된 3,000여 한자를 수록한 후 한자 발음을 한글로 적고 한글과 독일어로 풀이한 이 사전은, 한국에 부임하는 신임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이 한글과 한문 공부를 할 때 기본 교재로 사용되었다. 퀴겔겐 신부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본국에서의 재정 지원이 끊어졌을 때인 1916년부터 수익성이 좋은 서양식 양봉을 시도하여 수도원에 많은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 1917년부터는 게르스통(Gerstung)이 저술한 《벌과 양봉》(Der Bien und seine Zucht)이라는 책에 근거하면서 자신이 1918년에 저술 한 《양봉 교과서》에 기초를 둔 양봉 강좌를 개설하였는데 많은 수강생이 몰렸다. 또한 1924~ 1928년까지 40,000개의 독일어 표제어를 담은 1,350쪽의 《독한 사전》을 편찬하였고, 1931년에는 종교적인 어휘에 치중한 《한독 사전》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1933년에는 덕원 수도원과 연길 수도원이 함께 계획한 성가책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1920년 8월 5일 원산 대목구가 신설되고 그 사목을 베네딕도회 성 오틸리엔 연합회가 맡게 되자, 퀴겔겐 신부는 1921년 가을 팔도구 본당의 2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부근 10개 공소에 조양학교(朝陽學校)의 분교를 설립하였다. 당시 팔도구에는 4,000명의 신자와 31개의 공소가 있었다. 1923년 4월 육도포 본당이 팔도구 본당에서 분리 · 신설되자, 그는 보좌인 바인거(M. Bainger, 方, 1891~1945) 신부와 함께 이곳에 부임하였다. 또한 1924년 6월 육도포 본당에서 훈춘 본당을 분리 · 설립하자, 이곳에 부임하여 1930년까지 사목하였다. 설립 당시 훈춘 본당에는 16개 공소에 929명의 신자들이 있었다. 1928년 7월 연길 지목구가 설정되자, 그는 다른 11명의 신부들과 함께 연길 지목구 소속 선교사가 되었다. 그 후 1930년 3월부터 1년여 동안 본국으로 휴가를 떠났는데, 이 기간 동안 선교 자금 마련을 위해 수많은 강연을 하였다. 1931년 다시 돌아온 그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던 곳에 연길 상시 본당이 설립되자 주임 신부로 부임한 후, 1932년 대지를 매입하여 임시 성당을 짓고 해성학교(海星學校)를 설립하였다. 이듬해에는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여 사목의 협조자로 수녀들을 초청하였다. 1939년 1월 연길 대목구장 브레허(T. Breher, 白化東, 1889~1950) 주교는 퀴겔겐 신부를 수도원으로 불러 부원장 겸 선교 총무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중일 전쟁의 발발과 일제의 간섭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였다. 1946년 5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연길 수도원이 폐쇄되면서 다른 수사들과 함께 붙잡힌 그는 1949년까지 남평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다가 풀려났다. 그리고 1950년 12월 24일 연길을 떠나 1951년 초 독일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으로 귀환하였다.
퀴겔겐 신부는 한국 전쟁 직후인 1953년 12월 1일부터 1955년 말까지 부산에 있던 '독일 적십자 병원' 에서 수석 통역사로 봉사하였다. 1956년 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64년 5월 12일 숙환으로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 연길교구 ; 연길 상시 본당 ; 팔도구 본당)
※ 참고문헌 A. Kasper · P. Berger, HWAN GAB(還甲), Miinsters-chwarzach, 1973/ 부산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 60년사 편찬위원회 편, 《은혜의 60년》, 부산 올리베타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95/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 韓興烈, 〈延吉教區 天主教略史〉, 《가톨릭청년》 41호(1936. 10)/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 Erzabtei St. Ottilien, Schematismus 1924~1946, St. Ottilien/ Todesanzeige von Abtei Schweiklberg, 1964. 〔宣智勳〕
퀴겔겐, 카니시우스 (884~1964)
Kügelgen, Kanisius
글자 크기
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