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를리에, 장 쥘 레옹 (1863~ 1935)

Curlier, Jean Jules Lé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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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외방전교회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레오. 한국명은 남일량(南一良).
1863년 9월 13일 프랑스 질루아(Gillois)에서 출생, 1886년 9월 13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89년 3월 3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한국 파견이 결정되어 1889년 5월 1일에 프랑스를 떠나 6월 21일 서울에 도착하였고, 첫 임지인 강원도 이천 지방으로 내려가 쿠데르(V. Couderc, 具) 신부와 함께 전교 활동을 벌여 나갔다. 1890년 8월에는 충청도 내포 지역에 내려가 양촌(현구합덕)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1892년 초에 사제관 겸 성당을 세우고 사목 활동을 하였으나,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서울로 피신해야만 하였다. 같은 해 간양골(현 충남 예산군 예산읍 간량리) 본당이 폐쇄되자 내포 지역 일대와 천안 · 공주 등의 공소를 맡아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고, 1895년 아산의 공세리 본당, 1897년에 공주(현 공주 중동) 본당, 1901년에 부여의 금사리 본당을 분리시켰다.
퀴를리에 신부는 양촌이 장차 본당의 중심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장소를 물색한 끝에 합덕지(合德池) 인근 언덕의 땅을 매입한 후, 1899년에 사제관 겸 성당을 완공하여 그곳으로 본당을 이전하고 '합덕 본당' 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양촌 본당과 합덕 본당 재임 기간 동안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 학교를 설립하고, 고아들을 위한 성영회도 운영하였다. 1904년에는 합덕 본당을 떠나 공주 본당으로 가서 그곳에 사제관을 건설하는 등 전교 활동을 위한 기반 확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충청도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리내리는 것을 확인한 퀴를리에 신부는 조선 대목구장 뮈텔(G-.C.-M. Mutel, 閔德孝) 주교에게 간도(間島)와 같은 벽지로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때마침 간도에 보낼 새 선교사를 찾고 있던 뮈텔 주교는 그를 간도의 영암촌(英岩村)으로 파견하였다. 1909년 용정(龍井, 1932년 '용정 하시' 로 변경)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그는 용정 일대를 중심으로 화룡(和龍)과 연길(延吉) 등 간도의 서쪽 지역에서 활동 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이 제공한 집과 부지에 성당과 사제관을 건설하고, 7~8개의 공소를 설치하여 1년에 두번씩 순회함에 따라 신자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1911년발생한 화재로 성당과 사제관이 전소되자, 이듬해에 간도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건축 양식의 벽돌 양옥 성당과 사제관을 세웠다.
1921년 5월 황해도의 매화동 본당 4대 주임으로 임명된 퀴를리에 신부는 양지촌 · 안흘리 · 고촌 등지에 공소를 신설 혹은 부활시켰고, 1926년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봉삼유치원(奉三幼稚園)을 개원하였다. 1931년 연로하여 본당 사목에서 완전히 은퇴한 그는 약 2년간의 투병 끝에 1935년 6월 6일 사망하여 매화동 성당 뒷산에 묻혔다. (⇦ 남일량)

※ 참고문헌  《M.E.P. 선교사 약전》/ 《한국가톨릭대사전》 《뮈텔 주교 일기》 1~6,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黃海道天主敎會史》, 황해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84/ 한국교회사연구소 · 구합덕 본당 100년사 자료집 편찬위원회 편, 《구합덕 본당 100년사 자료집》, 천주교 구합덕 교회, 1990.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