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교. 성인. 프랑크 왕국에 로마 전례를 소개하였고, 주교좌 성당 성직자들의 공동 생활에 관한 규칙을 저술 한 인물. 그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표기가 있다 (Chrodegang, Chrodegand, Godegrand, Gundigran, Ratgran, Godigang, Sirigang). 축일은 3월 6일.
〔생 애〕 크로데강은 712년경 현재 벨기에 북동부 림 뷔르흐(Limburg) 주의 하스바니아(Hasbania) 혹은 하스판구아(Haspangua)에서 프랑크족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근거는 희박하지만 후대의 전승에 따르면, 그의 어머 니는 카를 마르텔(Charles Martel, 715~741)의 딸이었다고 한다. 그는 생 트롱(Saint-Trond)의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중 베네딕도(Benedictus, 480?~547?)의 수도 규칙을 알게 되었고, 교육을 마친 뒤 카를 마르텔의 궁정으로 들어가 그의 서기가 되고 737년에는 총리가 되었다. 메츠 교구의 주교가 세상을 떠나자 741년 10월 1일 혹은 742년 9월 30일에 크로데강은 메츠의 주교가 되지만, 후에 카롤링거 왕조 최초의 왕이 되는 피핀 3세(Pippin Ⅲ, 751~768)의 요청으로 세속적인 사무도 계속 담당하였다.
피핀 3세의 절친한 친구였던 크로데강은 교회와 국가의 복지를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였다. 그리고 피핀 역시 교회의 개혁 문제에 대하여 그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였으며, 세속의 법과 영적인 법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꾸준히 애썼다. 크로데강은 자신의 교구에 로마 전례와 그레고리안 성가를 도입하였으며, 주교좌 성당 사제단의 공동 생활을 도입하고 생활 규칙도 저술하였다. 그리고 초기에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 로마의 전례를 따랐으며, 성가대원들을 로마로 파견하여 로마 전례와 성가를 배우게 하였다. 주교좌 성당인 성 스테파노 성당의 사제단은 청빈 서약은 하지 않았으나 수도원에서 공동 생활을 하였으며, 베네딕도 규칙과 라테라노 법을 기초로 그가 저술한 규칙을 따랐다. 사제단은 공동으로 성무 일도를 바쳤고, 수도원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잤으며, 매일 공동으로 모여 34장으로 된 규칙서를 하루에 한 장씩 읽었다. 이렇게 해서 크로데강은 역사적으로 의전 사제단(ChapterofCanons) 설립의 선구자가 되었다. 768년에 이 규칙서는 86장으로 늘어난다. 이 규칙서의 내용은 메츠 근처의 다른 교구들에도 전파되었고, 이탈리아와 로마 교회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경건왕 루트비히 1세(814~840)가 816년에 반포한 《참사 위원 제도서》(Institutio Canonicorum)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크로데강 주교는 748년에 메츠 근처의 고르즈(Gorze)에 교구 소속의 성 스테파노 성당을 세웠고, 모젤(Moselle)에는 성 베드로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훗날 겐겐바흐(Gengenbach)와 로르슈(Lorsch)에도 역시 수도원을 세웠다(764). 그는 교황 바오로 1세(757~767)로부터 하사받은 성 라자로의 유해는 로르슈 수도원에, 성 그로고니오(Grogonius)의 유해는 고르즈 수도원에 모셨다.
753년 프랑크 왕국의 새 왕이 된 피핀은 크로데강을 로마로 보내어, 당시 롬바르드족에게 잡혀 있던 교황 스테파노 2세(752~767)에게 피신처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리고 교황을 프랑스의 살롱쉬르마른(Chalons- sur-Marne) 남쪽의 폰티온(Ponthion) 궁전으로 안내하였다. 크로데강은 이때 로마에서 돌아오면서 메츠 교구에 그레고리안 성가를 도입하였다. 마인츠(Mainz) 대교구장인 보니파시오(675?~754) 대주교가 순교하자, 교황은 그에게 팔리움을 하사하여 대주교로 서임하고 프랑크 교황 사절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메츠 교구를 대교구로 승격시키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크로데강 대주교는 754년 4월 14일 라옹(Laon) 근처의 퀴에르지(Quiery)에서 열린 프랑크족의 총회를 주재하였고, 프랑크 영주들로 하여금 롬바르드족 왕인 아이스툴프(Aistulf, 749~756)에 맞
서 싸워 교황령을 되찾도록 설득하였다.
경건하고 자비로운 심성을 지녔고 라틴어와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크로데강은 프랑크 교회의 개혁자인 보니파시오의 후계자로서 23년 동안 사목하면서 개혁을 위한 교회 회의들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중 하 나인 베르(Ver) 교회 회의(755)의 문헌은 그가 저술한 규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 주는데, 이 교회 회의 문헌의 11항이 바로 그가 미친 영향의 결과이다. 크로데강은 766년 3월 6일 메츠에서 세상을 떠났다. (→ 스테파노 2세 ; 의전 사제단)
※ 참고문헌 C.E. Sheedy, 《NCE》 3, 2003, pp. 563~564/ G. Hocquard, 《Cath》, pp. 1094~1095/ A. 프란츤, 최석우 역, 《세계 교회사》, 신학 텍스트 총서 2.1, 분도출판사, 2001/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99. [宋炯萬]
크로데강, 메츠의 (712?~766)
Chrodegang de Metz
글자 크기
11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