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영]Croa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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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 서부에 있는 국가로, 공식 명칭은 크로아티아 공화국(Republic of Croatia). 북동쪽으로 세르비아, 북쪽으로 헝가리, 북서쪽으로 슬로베니아, 초승달 모양으로 굴곡진 부분 전체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 끝으로 몬테네그로, 이탈리아와는 바다를 두고 국경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56,542k㎡, 인구는 4,660,000명(2003)이며, 수도는 자그레브(Zagreb)이다. 공용어는 크로아티아어이고, 크로아티아인이 89.6%로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세르비아인 4.5%, 기타 민족 5.9%로 구성되어 있다. 알바니아인 · 오스트리아인 · 독일인 · 우크라이나인 · 집시 · 유대인 등 다양한 소수 민족들이 있으며, 이들의 권리는 소수 민족을 위한 특별법에 의거하여 보장받고 있다. 대부분의 크로아티아인들은 가톨릭을 믿으며, 세르비아인 인구 비율만큼의 동방 정교회 신자들이 있다.
현재의 크로아티아 지역에는 본래 트라키아인(Thracia)이 거주하였지만, 기원전 4세기부터 그리스인이 해안 지대에 들어와 거주하였으며, 기원전 3세기에는 로마제국이 크로아티아에서 알바니아에 이르는 구(舊)유고슬라비아 일대를 속주로 삼았다. 슬라브 민족이 5세기경 최초로 발칸 반도로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남슬라브계의 크로아티아 민족은 7세기경 오늘날의 크로아티아 지역을 포함한 발칸 지역으로 대거 이주 · 정착한 후 924년 남슬라브 민족 역사상 최초로 크로아티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헝가리의 라슬로 1세(László I, 1077~1095)가 1091년 왕국의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1102년부터 헝가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였으나, 헝가리의 지배하에서도 자체 의회를 갖고 있었으며, 법률상으로는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다. 13세기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어 합스부르크 가의 세습지가 되었다.
1526년 헝가리가 오스만 투르크와의 '모하치(Mohács) 전투' 에서 대패하면서 크로아티아 대부분의 지역이 오스만 투르크로 넘어가 1699년까지 그들의 통치를 받았다. 184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한 주가 되었다가, 1866년 헝가리의 자치주이자 이름뿐인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Slavonia) 왕국으로 전환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고, 1918년 크로아티아는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1929년 10월 국명을 유고슬라비아로 개칭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의 발발로 나치 독일의 침입을 받아 점령당하자 1941년 4월10일 파시스트 테러 조직인 우스타샤(Usta)의 수장 파벨리치(A. Pavelic, 1889~1959)를 수반으로 한 괴뢰 정권이 탄생하였다.
티토(J.B. Tito, 1892~1980)가 이끄는 파르티잔(Partizan)들이 1945년 자그레브를 점령한 후 이 정권은 인민 정부로 전환되었고,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 세르비아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몬테네그로 · 마케도니아 등 6개 공화국의 연방 인민 공화국이 결성되었다. 1963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으로 국명을 바꾸고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에 일어난 민주화의 물결이 크로아티아에도 미치게 되어 1990년 봄 자유 선거로 공산당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와 함께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가톨릭의 역사〕 크로아티아에 가톨릭이 최초로 전파된 때는 9~10세기경으로, 당시 이 지역은 세속 국가들 사이에서 동로마(비잔틴) 제국과 프랑크 왕국(이후 신성 로마 제국) 그리고 로마 교황청의 정치적 관계가 얽혀 복잡한 세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이해관계는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중 어느 편에 속하는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아바르인(Avar)을 정복한 후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한 카를 대제(768~814)의 프랑크 왕국에 굴복하여 로마 교회의 관할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주로 아퀼레이아(Aquileia)와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온 프랑크 선교사들에 의해 개종되었다. 925년 토미슬라프(Tomislav)가 크로아티아인으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르고 왕국의 기틀을 다짐으로써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에 가톨릭은 급속한 발전을 보였고, 오늘날 크로아티아 대부분의 지역과 보스니아 내륙 지역까지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14세기경에는 3개의 대교구와 17개의 교구로 교회의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오늘날의 보스니아 인근 지역까지도 관할하는 방대한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526년 오스만투르크와의 모하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기 시작하였으며, 보스니아 지역의 대부분이 이슬람으로 개종함에 따라 가톨릭의 규모 역시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1852년 자그레브 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되었으며, 2명의 대주교가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그러나 1929년 유고슬라비아로 국명이 바뀐 뒤, 세르비아 정교회계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가톨릭의 영향력은 더욱 축소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나치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연방 인민 공화국이 1946년에 결성된 후 공산주의자 티토는 본격적으로 가톨릭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여 자그레브의 스테피낙(A. Stepinac) 대주교가 16년 동안 투옥되었으며, 가톨릭계 학교들은 모두 폐교되었다. 또한 공립 학교 내에서의 모든 종교 교육이 금지되었으며, 가톨릭 관련 건물 역시 모두 몰수당하였다. 그러나 1948년에 시작된 티토와 소련 사이의 이념적 충돌은 유고슬라비아 내에 서방 세력의 영향력이 미치는 계기가 되었고, 종교에 대한 탄압도 감소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한 이후 이 지역에는 점차 개혁과 개방의 요구가 거세어졌고, 결국 1990년 공산 정권이 붕괴된 후 이듬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 헌법의 초안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1991년 크로아티아로 독립한 후,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와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간의 내전이 발발하였다. 크로아티아 내에서 세르비아계의 영향력이 큰 크라지나(Krajina) 지역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 내전은 1995년까지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가톨릭 신자와 신부들이 사망하였으며 상당한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1995년 12월 데이턴 협정Dayton Agreement)으로 크로아티아는 안정을 되찾았고, 이후 가톨릭 교회는 자그레브의 보자닉(J. Bozanic) 대주교 관할하에 점차 종교의 자유를 회복하였다. 현재 교회는 초 · 중등학교와 병원 및 기타 복지 기관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크로아티아의 유일한 라디오 방송인 마리자(Marija)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다. 1998년 10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여 스테피낙 대주교의 시복식을 거행하였다.
2003년 현재 크로아티아의 신자수는 총인구의 81%인 3,772,000명이며, 대교구 4, 교구 10, 군종교구 1, 성당 1,554개에, 대주교 9, 주교 18, 신부 2,260(교구소속 1,444, 수도회 소속 816), 종신 부제 2, 수사 84, 수녀 3,436명이 있다.
※ 참고문헌  Fred Singleton, A Short History of the Yugoslav Peoples, London, Cambridge Univ. Press, 1985/ Marie-Miadeleine Davy, Enciklopedoja Mistika, Zagreb, Naprijed, 1990/ P. Shelton, 4, 2003, pp. 370~372/ 2004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p. 298. [白鐘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