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여겨지는 순교자. 성인. 여행자와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 성인. 축일은 7월 25일.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성인들 중 한 사람이다.
〔전 설〕 크리스토포로의 생애나 죽음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다만 《로마 순교록》(Marty- rologium Romanum)에 따르면, 그는 데치우스 황제(249~251) 시기에 리치아(Lycia)에서 순교하였는데 쇠 몽둥이로 맞아 육체가 약해진 상태에서 화형을 당하였지만,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보호를 받아 죽지 않았고 수차례 화 살을 맞아도 끄떡없자 결국에는 참수되었다고 한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가나안 혹은 아랍의 왕비가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려 아들을 얻었다. 이교도인 왕은 이 아들에게 오페루스(Offe-mus)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아폴로(Apollo) 신에게 봉헌하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센 청년으로 자라난 오페루스는 가장 힘이 세고 용감한 사람에게만 봉사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용감한 왕과 악마에게 자신을 의탁하였지만, 둘 다 용기가 없었다. 왕은 악마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하였고, 악마는 길거리에 있는 십자가를 두려워하였다. 오페루스는 다시 새로운 주군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은수자를 만났는데, 그는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바치라고 권고하면서 신앙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다. 이렇게 해서 오페루스는 크리스토포로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을 위해서, 사람들이 물살이 사나운 냇물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을 기꺼이 맡기로 하였다. 어느 날 한 아이를 어깨에 얹고 냇물을 건너는데, 그 아이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더니 결국은 온 세상을 어깨에 짊어진 것만 같았다. 그 아이는 스스로 세상의 창조주이며 구세주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크리스토포로에게 자신의 막대기를 땅에 꽂아 보라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종려나무로 자라난 그 막대기에는 열매가 달려 있었고, 이 기적은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켰다. 이에 화가 난 리치아의 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온갖 고문을 가한 뒤에 참수하였다. 그런데 크리스토포로를 참수할 때 튄 피 한 방울로 자신의 병이 낫자, 마침내 왕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그리스에서 전해지는 이 전설은 6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9세기 중반 무렵에는 프랑스에까지 전파되었다. 본래 크리스토포로 성인은 옛 순교자 열전에 기록된 순교자들 중 한 사람으로, 본래 간단한 형태였던 그리스와 라틴 순교자 열전은 곧 다양한 전설들로 각색되었다. 초기에 크리스토포로라는 이름은 '그리스도를 가슴에 간직한 사람' (Christbearer)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으나, 12~13세기에는 실존했던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위대한 성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과정에서 그가 거인이었다는 이야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냇물과 아이의 무게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그리스도의 멍에를 진 한 영혼이 겪는 시련과 투쟁을 나타내려는 의미일 것이다.
〔역사성과 공경〕 순교자 크리스토포로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수회원인 세리리오(Nicholas Seririus)는 성인 호칭 기도에 대한 글에서 그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몰라누스(Molaus)도 성화에 대한 역사서 《그림과 거룩한 모습》(De picturis et imaginibus sacris, 1570)에서 그에 대해 언급하였다. 성인에 대한 공경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450년 율라리우스(Eulalius) 주교가 칼체도니아(Calcedonia)에 세우고 452년 9월 22일 봉헌한 성당이다. 그리고 536년에 같은 지방에 성인의 이름을 딴 수도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크리스토포로 성인에게 봉헌된 한 작은 교회에는 532년에 랭스의 레미지오(Remigius de Reims, 437?~533?)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었다(Acta SS., 1 Oct. 161). 또한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도 크리스토포로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Ep. x., 33)를 전하며, 스페인의 이시도로(Isidorus Hispalensis, 560?~636)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성무 일도서와 미사 경본에는 크리스토포로 성인을 기리는 기도와 미사가 수록되어 있다. 1386년 티롤(Tyrol)과 포어 아를 베 르크(Vorarlberg)에서는 크리스토포로의 전설에 따라 여행자들을 위한 형제회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1517년 케른텐(Kärnten),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 작센, 뮌헨에는 성 크리스토포로 금주(禁酒) 모임이 있었다. 그리고 베네치아와 다뉴브(도나우) , 라인을 비롯하여 결빙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강변 지방에서는 크리스토포로가 중요한 공경 대상이었다.
크리스토포로 성인의 그림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시나이 산의 수도원에 있는 것으로, 그 연대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밖르츠부르크(Würzburg) , 뷔르템베르크(Württemberg), , 보헤미아에서는 성인의 얼굴을 새긴 동전이 주조되기도 하였다. 성인의 조각상은 교회와 가정집 그리고 다리에 흔 히 설치되었는데, 그의 조각상과 그림에는 흔히 이러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크리스토포로 성인의 모습을 간직하는 사람은 그날 두려워하거나 쓰러지지 않으리라." 그는 제책업자, 정원사, 선원 등의 수호 성인이다. 또한 번개가 칠 때나 폭풍이 불 때, 일식 때와 전염병이 돌 때 사람들은 성인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청한다. 그의 상징은 나무와 아기 그리스도, 지팡이이다. 하지만 1969년 개정된 전례력에서 그의 이름은 삭제되었다.
※ 참고문헌 E. Day, 《NCE》 3, 2003, p. 562/ G. Bardy, 《Cath》 2, pp. 1092~1093/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p. 97~98. 〔宋炯萬〕
크리스토포로 (?~?)
Christopho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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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크리스토포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