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예수회 신부. 콜롬비아 선교사. 흑인의 사도. 축일은 9월 9일.
〔생 애〕 1580년 6월 26일 스페인 카탈루냐(Cataluna)의 베르두(Verdú)에 있는 한 농가에서 태어난 것 외에클라베르의 유년 시절에 관하여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는 바르셀로나(Barcelona) 대학에서 공부한 후 1602년 8월 7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1604년까지 타라고나(TaIragona)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후 헤로나(Gerona) 예수회 대학에서 잠시 공부한 뒤(1604~1605) 1605년에 마요르카(Mallorca)의 몬테시온 예수회 대학에서 1608년 까지 철학을 연구하였다. 이곳에서 같은 예수회원인 로드리게스(A. Rodriguez, 1533~1617) 수사를 만났는데, 그는 신대륙으로 가서 선교하라고 클라베르에게 권고하였다. 그 영향으로 선교사가 되려는 뜻을 품게 된 클라베르는, 다시 바르셀로나 대학으로 옮겨 약 2년 동안 신학을 더 공부하였다. 그리고 관구장의 지시로 다른 3명의 예수회원들과 함께 1610년에 콜롬비아 카르타헤나(Cartagena) 항에 도착하였다. 그는 1612~1615년까지 콜롬
비아의 수도인 보고타(Santa Fé de Bogota)에서 신학 공부를 더 하였고, 1616년 카르타헤나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당시 콜롬비아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며, 콜롬비아의 인디오들은 혹독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스페인인들은 그들을 노예로 삼아 광산이나 농장에서 강제 노동을 시키고, 앙골라(Angola)와 서아프리카 여러 곳에서 잡아온 흑인 노예들을 짐승처럼 대우하며 잔혹한 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처참한 대우를 받는 흑인 노예들을 많이 접하게 된 클라베르는 종신 서약을 하면서 고통받는 흑인 노예들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수도명을 흑인 노예들의 영원한 노예 베드로 클라베르' 라고 지었다. 클라베르는 카르타헤나에 오기 전에 이미 오랫동안 노예들을 돌보며 선교 활동을 펼쳤던 예수회원 산도발(A. de Sandoval, 1576~1652) 신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흑인 노예에 대한 애정과 열성을 인정받은 후 산도발 신부의 지도로 흑인 노예들을 돌보았다. 또 스페인 정부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붙잡힌 흑인들을 실은 배가 항구에 들어오면 통역자 및 간호사들과 함께 그들을 치료해 주고 따뜻하게 돌보아 주기도 하였다. 클라베르는 손에 십자가를 높이 쳐들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준비해 온 음식과 의약품들을 봉사자들과 함께 나누어 주었으며, 오랜 여행으로 지치고 질병에 감염된 이들을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한편 그림을 이용하거나 통역자들을 통하여 노예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용 막사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나병에 걸린 노예들을 돌보아 주면서 그들의 벗이 되었다. 클라베르는 40여 년 동안 흑인 노예들을 위하여 헌신하였는데, 그가 생전에 세례를 준 흑인 노예만도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클라베르는 하루 종일 노예들을 방문하여 고해성사를 주었고, 카르타헤나의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그의 영적 자녀가 될 정도로 전 생애를 흑인 노예들을 위해서 살았다. 그는 흑인이 아닌 일반 신자가 고해성사를 받으러 오면 "나는 흑인 노예들의 고해 신부입니다"라고 말하며 거절하였다. 또 귀부인이 찾아와 성사받기를 청하자, "나의 고해성사는 당신의 화려한 옷에 걸맞지 않습니다. 나의 성사는 가난한 흑인 노예들의 것입니다" 라고 거절 하였다고 한다. 1650년 전염병에 걸렸다가 곧 회복되었으나, 세상을 떠나기 전 4년 동안 누워서 생활해야 하였다. 하지만 이때에도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그에게 분풀이하는 흑인 노예들의 행패를 감수해야 하였다. 클라베르는 1654년 9월 8일 카르타헤나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1851년 시복되었고, 1888년에 교황 레오 13세(1878~1903)에 의해 시성되었다. 레오 13세는 1896년에 클라베르 성인을, 흑인 노예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현재 클라베르 성인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특히 콜롬비아 선교의 수호 성인이며 흑인의 사도로 불린다.
〔공경과 의의〕 클라베르 성인은 생존 시에도 이미 성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의 탁월한 영성과 신심, 그리고 흑인 노예들을 통해 드러난 기적 이야기까지도 모두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적으로 전해졌다. 그는 비록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며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그를 존경하던 많은 시민들과 성직자들에 의해 성대하게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일부 현대 비평가들은 산도발 신부나 클레베르 성인이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공식적인 발언이나 행위를 명백하게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권위에 의존하거나 이용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흑인 노예들에게 보여 준 클라베르의 사랑과 인본주의적인 선교는 복음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삶이었기에, 흑인들의 사도라고 칭해질 만큼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인권에 대한 배반과 폭력이 만연된 현대 사회에서 클라베르 성인에 대한 공경은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특히 미국 교회에서는 이 성인의 축일을 흑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과 이민자들의 인권이 올바르게 인정받도록 활동하여야 할 사명을 되새기는 날로 기념하고 있다. (→ 라틴 아메리카 ; 콜롬비아)
※ 참고문헌 H. Vivas Salas, 《NCE》 3, pp. 922~923/ H. Beylard, 《Cath》 11, p. 354/ Michael Hakenes, 《LThK》 2, pp. 1217~1218/ Jos E. Vercruysse, S.J. 《TRE》 16, pp. 663~665/ Gerald H. Anderson, Biographical Dictionary of Christian Missions, New York, Simon & Schuster Macmillan, 1998, p. 137/ Les Bénédictins de Ramsgate réd., Dix Mille Saints Dictionnaire hagiographique, Brepols, Belgique, 1991, p. 410/ André Vauchez, Storia Dei Santi e Della Santit Cristiana, vol. 8, Grolier Hachette International, 1991, p. 300/ David Hugh Farmer, The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88, p. 90/ Enzo Lodi, trans. by Jordan Aumann, O.P., Saints of The Roman Calendar, Society of St. Paul, 1992, pp. 259~261/ Claude Lugon, Les Missions de L'Amérique du Sud aux XVIIᵉ et XVIIIᵉ sièc les et la République des Guaranis, Histoire Universelle des Missions Catholiques, vol. 2, ed. Librairie Gund, Paris, 1957, pp. 246~250/ H. Tüchle · C.A. Bouman· J. Le Brun, Nouvelle Histoire de L'Église-Réforme et Contre Réforme, Seuil, 1968, pp. 408~412/ 후안 카트레트, 신원식 역, 《예수회 역사》,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1994, pp. 105~ 106, 141~143. [梁蕙貞]
클라베르, 베드로 (1580~1654)
Claver, Petrus
글자 크기
11권

성 클라베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