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델, 폴 루이 샤를 마리 (1868~1955)

Claudel, Paul-Louis-Charles-Ma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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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델.

클로델.

프랑스의 가톨릭 시인. 극작가. 외교관.
〔생 애〕 클로델은 1868년 8월 6일 프랑스 북부 피카르드 지방의 엔(Aisne) 주에 속하는 빌뇌브쉬르페르앙타르드누아(Villeneuve-sur-Fère-en-Tardenois)에서 태어났다. 상류층 가문인 그의 가족은 1882년 파리로 이사를 했으나, 넓은 공간과 탁 트인 지평선을 좋아하던 클로델은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또한 전학 간 파리의 일류 학교인 루이 르 그랑(Louis-le-Grand) 고등학교의 분위기와 교육에 혐오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당시 교사들이 대부분 따르던 유물주의와 과학 만능주의가 클로델의 감수성과 창의적인 욕구를 채워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랭보(A. Rimbaud, 1854~1891)의 시를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1886년 12월 25일 클로델의 일생에서 전환기를 이루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던 성탄을 보내다가 우연히 파리 노트르담 주교좌 성당에 들어가 저녁 기도의 성가를 듣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신앙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클로델은 어떤 갈등을 겪는 일이 있더라도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회의를 품지 않았다. 그는 1889년 한 해 동안 파리 법률학교(L'Ecole de Droit et des Sciences Politi-ques de Paris)를 다녔고, 이듬해인 1890년에 외무부의 공무원이 되어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그의 첫 번째 극작품인 《황금 머리》(Tête d'Or)를 출판하였고, 두 번째 희곡인 《도시》(La Ville)를 통해 작가로 등단하였다. 클로델은 당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중심 인물이 된 시인 말라르메(S. Mallarmé, 1842~1898)에게 시 몇 편을 보냈는데, 말라르메는 이 시들을 칭찬하면서 클로델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1892년 클로델은 《비올렌 처녀》(LaJeune Fille Violaine)의 첫 번째 초고를 썼다.
1893년 그는 미국 뉴욕의 부영사 발령을 받고 부임한 뒤 그곳에서 《비올렌 처녀》를 개작하고 《교환》(L'Echan-ge)이라는 극작품을 썼으며, 다음해에 보스턴의 영사로 부임하였다. 1895년에는 중국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이때부터 1908년까지 상해, 복건성의 복주(福州), 북경, 천진(天津) 등에서 활동하였다. 이 기간 동안 첫 번째 산문시 《동양의 앎》(Connaissance de l'Est)과 《제7일의 휴식》(Le Repos du septième jour)을 썼고 《도시》와 《비올렌 처녀》를 개작하였다. 1900~1906년까지 클로델은 다양한 체험을 하였다. 1900년 그는 직업 외교관과 시인의 길을 포기하고 베네딕도회에 입회하려 하였다. 그러나 입회 허가를 받지 못하자 낙담하였고, 결국 외교관으로서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중국으로 가는 배에서 클로델은 로즈(Rose Vetch)라는 유부녀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그녀의 자녀 4명과 함께 생활하였다. 4년 후 그녀는 클로델을 떠났지만, 이 옳지 못한 열정에 대한 체험은 그에게 죄의식 및 하느님의 자비와 인내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 주었다. 1901년 클로델은 《나무》(L'Arbre)라는 제목으로 개작한 《황금 머리》와 《도시》, 《비올렌 처녀》를 출판하였고, 문학계에 서 높은 평판을 얻었다. 1905년에는 로즈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정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정오의 분할》(Partage de Midi)을 썼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 사이에서 번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
1906년 클로델은 르네(René Sainte-Marie Perrin)와 결혼하여 화목한 가정 생활을 하며 5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이후 프라하(1908)의 영사, 프랑크푸르트(191)와 함부르크(1913)의 총영사, 브라질(1917)과 코펜하겐 (1919)의 전권 공사를 역임하였고, 일본(1922), 미국(1927), 벨기에(1933) 주재 대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외교관 활동을 하면서도 그의 집필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이고 잘 알려진 《5대 송가》 (Cinq grandes Odes, 1910)는 1900~1908년까지 자신의 시학과 신앙 및 내면 세계를 밝히는 내용의 시들을 모아 고백체로 쓴 작품집이다. 그는 1911년 3부작으로 구성된 역사극 중 첫 번째 작품인 《인질》(L'Otage)을 썼는데, 다른 두 작품인 《질긴 빵》(Le Pain dur)과 《모욕당한 아버지》(Le Père humili)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과1919년에 각각 마무리되었다. 19세기의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 3부작에 등장하는 마음씨 고약한 인물 들은 클로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사실주의적으로 묘사되었다.
1911년에 《비올렌 처녀》를 다시 개작하여 제목을 《마리아에게 고함》(L'Annonce faite à Marie)으로 바꾸었는데, 이 작품은 클로델의 극작품들 중에서 처음으로 1912년에 무대에 올려졌다. 1924년 클로델은 세계적인 걸작품으로 평가를 받은 《비단 구두》(Le Soulier de Satin)를 완성하였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정오의 분할》에서 묘사한 로즈에 대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승화시켰다.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책》(Le
Livre de Christophe Colomb, 1933)은 미요(D. Milhaud, 1892~1974)에 의해 음악으로 만들어졌고, 오라토리오 《화형대 위의 잔 다르크》(Jeanne d'Arc au Bûcher)는 오네게르(A. Honegger, 1892~1955)의 음악으로 1938년 공연되었다.
1935년 외교관직에서 은퇴한 클로델은 그르노블 근처에 있는 저택에서 생활하였다. 그는 성서를 공부하여 주석서 《요한의 묵시록 개론》(introduction à l'Apocalypse, 1946)을 출판하였고, 연출가와 함께 자신의 작품을 희곡으로 여러 번 개작하였다. 1946년에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된 클로델은 1955년 2월 23일에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향과 평가〕 클로델은 20세기 프랑스의 시와 희곡 분야에서 매우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에 상징주의적 흐름에 속하는 시인처럼 보였으나, 모든 전통적인 미학을 떠나서 자신의 고유한 창작론을 확립하였다. 이 창작론의 특징은 작가의 정신 세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클로델은 가톨릭 작가이다. 이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 '가톨릭' 이라는 단어가 지닌 본래의 의미 그대로 일체의 모든 것을 포착하려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세속적인 일에 애착이 강하였다. 그런 탓인지 그가 설정한 인물들은 정복자이며 고집이 세고, 욕망에 이끌려 죄를 많이 짓는 사람들이다. 이 경우, 욕망은 남녀 간의 정열이나 돈에 대한 탐욕 혹은 명예욕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다가 겪게 되는 시련과 절망을 통해 하느님께로 이끌린다. 이런 인물들이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여성이 중재 역할을 한다. 하지만 클로델에게 있어서 여성은 단순히 성별을 뜻하기보다 인간 개개인 안에 존재하는 감수성과 직관 그리고 거룩함(聖)을 향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남성은 신비를 부인하며 이치를 따지고 지배하려는 이성(理性)을 뜻한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는 하느님의 세계와 인간적인 세계가 명백하게 구분되지만, 그것들 사이에 지속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 그는 독자나 관람자로 하여금 다양한 기법으로 현실 속에서 하느님의 활동을 체험하게 한다. 그래서 인간의 내적 갈등이 무대화 된 클로델의 극작품은 비극적인 색채가 진하면서도 생기가 넘치며 낙관적이다.
클로델의 작시법과 미학은 그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드러낸다. 그에게 있어서 생명의 기운은 하느님의 입김으로 부터 나오는데, 생명이 움직이는 모든 형태는 시의 재료가 될 가치가 있다. 그래서 그의 극작품에서는 극도로 긴장된 비극적인 장면에도 웃음이 넘치는 일이 등장한다. 이 점에서 극작가로서의 클로델은 셰익스피어(W. Shakespeare, 1564~1616)와 비교할 수 있으며, 위고(V. Hugo, 1802~1885)가 정의한 낭만주의적인 드라마를 실현한 사람이다. 작시법에 있어서도 클로델은 독창적인데, 비평가들은 그가 만들어낸 행(行)의 양식을 '클로델풍 절(節)' (verset claudélien)이라고 한다. 그는 각 행을 인간이 숨을 들이마시다가 내쉬는 움직임의 리듬에 따라 쓴다. 왜냐하면 시인의 사명은 하느님의 끊임없는 창조적인 활동과 호흡하면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 활동을 해명해 주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클로델은 당시 프랑스 문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향으로 하느님을 믿게 된 작가들과 젊은이들이 많다. 현재도 그의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은 교회의 교리가 가르치는 도덕적인 체계가 아니라 인간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클로델이 체험하고 증거하는 하느님은, 아무리 실수가 많더라도 그리고 세속적인 욕심을 통해서라도 인간이 구원을 받아 충만함을 누리게 하려는 분이다. → 가톨릭 문학, 프랑스의)
※ 참고문헌  Paul Claudel, Oeuvres en Prose, Paris, Gallimard ed., La Pleiade, 1965/ - Théâtre, Paris, Gallimard ed., La Pleiade, 1966/ 一, Joumal, Paris, Gallimard ed., La Pleiade, 1968~ 1969/ 一, Oeuvres poétiques, Paris, Gallimard ed., La Pleiade, 1968/ J. Petit, Claudel et l'Usurpateur, Paris, Desclée de Brouwer, 1971/ G. Antoine, Paul Claudel ou I'Enfer du génie, Paris, Laffont ed., 1988/ 폴 클로델, 이선영 ,《마리아에게 고함》,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 2001/ 정진주, <폴 클로델 작품에 나타난 맹인들>, 《경산대 논문집》 36(1997. 12), pp. 49~65/ 一, <폴 클로델 작품에 나타난 침묵>, 《한국 프랑스학 논집》 28( 1999. 11), pp. 195~215/ 박혜숙, <폴 클로델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책에 나타난 합일 연구>, 서강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2. 〔H. Lebr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