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북동쪽에 있는 계곡. 올리브 산과 예루살렘 사이에 가로놓여 있다.
키드론이란 명칭은 '어두운' 혹은 '흐린' 그리고 불분명한' 이란 의미를 가진 어근 '카다르' (קָדָר)에서 유래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키드론이 매우 깊은 계곡임을 말해 준다. 키드론 골짜기는 예루살렘 북동쪽의 산헤드리아(Sanhedia)라는 해발 788m의 산등성이에서 시작되어 스코푸스(Scopus) 산을 서쪽으로 끼고 약 2.5km나 뻗어 나할 에고짐(Nahal Egozim)까지 이른다. 키드론 골짜기와 나란히 많은 계곡들이 남쪽으로 뻗어 있는데, 키드론 골짜기는 힌놈의 골짜기(Hinnom Valley)와 만난 후 남쪽으로 뻗어 마르 사바(Mar Saba)를 지나 사해까지 흘러간다. 키드론 골짜기 동편에는 다윗 성이 있다.
키드론 골짜기의 중요성은 키드론 골짜기와 키드론의 지류들이 예루살렘 지역의 지형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키드론 골짜기는 다윗 성뿐만 아니라 성전 산까지 보호하면서 힌놈의 골짜기와 함께 예루살렘 전체를 방어한다. 예루살렘의 유일한 수원(水源)인 기혼(Gihon) 샘은 키드론 골짜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샘의 물을 다윗 성 안으로 끌어들여 모아 놓았던 실로암 연못도 키드론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혼 샘의 위쪽 물줄기를 막아 다윗 성 서쪽 밑으로 돌려 끌어들인 것도 바로 히즈키야이다" (2역대 32, 30)라는 기록에서 확인된다. 헤로데 아그리파 1세(기원전 10?~서기 44)가 유대의 왕으로 통치하던 시대(41~44)에는 키드론 골짜기의 서쪽으로 굽는 부분에 제3의 성벽을 쌓아 예루살렘을 방어하였다. 한편 키드론 골짜기 가운데 서쪽 면은 바람이 잘 통하는 바위 지형으로 무덤을 위한 동굴을 만들기 쉬운 곳이므로 오래전부터 예루살렘의 공동 묘지 역할을 하였고, 오늘날에도 골짜기의 서쪽 면을 따라 거대한 공동 묘지가 형성되어 있다.
구약성서에서 키드론은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칠 때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거기에서는 개울로 기록되어 있다(2사무 15, 23). 분열 왕국 시대에 종교 개혁을 실시한 아사(기원전912-871), 히즈키야(기원전 716~687), 요시아(기원전 640~609) 왕은 키드론 골짜기에서 예루살렘을 더럽히던 많은 우상들을 불태웠고(1열왕 15, 13 ; 2열왕 23, 4. 6. 12 ; 2역대 15, 16), 예레미야는 키드론 골짜기 지역을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곳으로 여겼다(예레 31, 39-40). 후기 시대에는 키드론 골짜기 부분을 '여호사밧 골짜기' 라고 불렀으며, 유대교의 구전에 따라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죽은자가 부활하는 곳으로 믿었다.
신약성서에서 키드론 골짜기는 예수가 잡히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지나간 곳이다(요한 18, 1). 키드론 골짜기에서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는 기슭에 예수가 기도하던 게 쎄마니 동산이 있다(마태 26, 36). (→ 예루살렘)
※ 참고문헌 M. Avi-Yonah, (EJ) 10, pp. 987~988/ W.H. Mare, Kidron, Brook of, 《ABD》 37~38/ -, The Archaeology ofthe Jerusalem Area, Grand Rapids, 1987. 〔金永珍〕
키드론
[히]קִדְרוֹן · [그]Κεδρών · [라]Cedron · [영]Kid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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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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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남쪽 언덕에서 바라본 키드론 골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