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레네

[그]Κυρήνη · [라 · 영]Cyr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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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론의 샘터.

아플론의 샘터.

북아프리카 리비아 북동부에 있는 도리스(도리아)인의 도시. 기원전 631년경 에게 해 티라(Thira) 섬에서 이주한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졌던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지중해 연안에서 약 15km 지점에 있다.
키레네는 키레나이카(Cyrenaica) 연합 왕국의 수도로, 기원전 440년까지 8세대 동안 그리스인들의 통치하에서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570년경 그리스 이주민들이 계속 유입되자 그리스와 리비아의 힘 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관계가 끊어졌으며, 이후 내부의 파벌 싸움이 계속되어 기원전 525년경에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곧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키레네는 지적 중심지 중 하나였다. 아리스티포스(Aristippos, 기원전 435?~366)에 의해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한 학파인 키레네 학파(Cyrenaic)가 창시되었는데, 이 학파의 특징은 '쾌락주의' 로서 쾌락을 선한 것으로 보고 쾌 락 추구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다. 키리네 학파는 기원전 3세기 초까지 존속하였으며, 이후 에피쿠로스(Epi- curos) 학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321년 이집트의 프톨레메오스 왕조(기원전 305~30)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이후 의학이 발전하였으며, 지리학자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기원전 276?~194?)도 키레네 출신이다. 유대교의 역사가인 요세푸스(F. Josephus, 37/38?~100?)의 기록에 의하면, 프톨레메오스 1세(기원전 305~282)가 유대인들을 키레네와 리비아의 다른 도시들로 보내면서 유대인들과 키레네가 관련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지리학자인 스트라보(Strao, 기원전 64/63~서기 23?)에 의하면, 키레네에는 네 계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첫째 계층은 시민이고, 둘째 계층은 농부, 셋째 계층은 이방인, 그리고 넷째 계층이 유대인이었다. 따라서 키레네의 유대인들은 그리스인들로부터 불평등한 대접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키레네 유대인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로마인들의 무수한 칙령을 통하여 알 수 있다(1마카 15, 23). 프톨레메오스 시대에 키레네 유대인들의 권익
이 보장되기는 하였지만 이들의 권리는 많은 제약을 받았으며, 특히 예루살렘 성전에 기부금을 보낼 수 없었다. 기원전 96년부터 키레네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기원전 67년에는 크레타와 통합되어 로마 제국 속주의 수도가 되었다.
키레네 유대인들의 권익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기원전 14년 로마 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27~서기 14)와 유대의 왕인 헤로데 아그리파 1세(41~44)가 개입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키레네의 유대인 공동체는 팔 레스티나의 유대인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어 하스모네 가문의 봉기에 관한 역사는 키레네 사람 야손(Jason)에 의하여 기록되었다(2마카 2, 23). 기원전 1세기 경에는 많은 키레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마태 27, 32 ; 마르 15, 21 ; 루가 23, 26 ; 사도 2. 10 ; 6, 9).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키레네 출신 유대인들은 서기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요나단(Jonathan)이 주동이 되어 봉기를 일으켰으나 로마의 총독 카툴루스(Catullus)에 의해 진압되었으며, 트라야누스 황제(98~117)의 통치 말기에 일어난 키레네 유대인들의 봉기(115~117) 이후 키레네는 점차 쇠퇴하였다. 결국 642년 아랍인들에 의해 점령되면서 도시는 사라지고 말았다.
신화에 의하면, 키레네는 강의 신 페네이오스(Peneios)의 아들이자 라피테스족의 왕인 히프세우스(Hypsseus)가 물의 님프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그녀는 보이오티아(Boeotia)의 왕인 아타마스(Athamas)의 세 번째 아내가 된 테미스토(Themiso)와 아스티아구이아(Astyaguia)의 자매로서 미모가 뛰어났으며 사냥을 잘하였다. 키레네는 테살리아(Thessalia) 지방의 펠리온 산에서 아버지의 가축을 해치는 사자와 맨손으로 격투를 벌였는데, 마침 전차를 타고 지나가던 아플론(Apollon)이 그 광경을 보고 반하여 그녀를 전차에 태워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로 데려가 그곳에 그녀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우고 여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리비아의 키레네 시는 그리스 티라 섬의 식민시로서 그리스에 곡물을 공급하는 곡창 지대였으며, 키레네 유적에서 아폴론 신전 등이 발굴되었다. 키레네는 아폴론과의 사이에서 아리스타이오스(Aistaios)와 이드몬(Idmon)이란 두 아들을 낳았는데, 이드몬은 멜람푸스(Melampous)의 아들인 아바스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또 군신(軍神) 아레스(Ares)와의 사이에서 트라키아(Thracia) 지방에 살던 비스톤인들의 왕 디오메데스(Diomedes)를 낳았다.
키레네는 신약성서에만 등장하는데, 이 도시와 관련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시몬이 키레 네 출신이다(마태 27, 32). 또 키레네에 사는 유대인들은 오순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 을 받아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것을 체험하였다(사도 2, 10).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키레네인들을 위한 회당이 있 었으며(사도 6, 9), 키레네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안티오키아에 전하였다(사도 11, 20). 또한 안티오키아 교회의 지도자 중에 키레네 사람 루치오(Lucius)가 있었다.(→ 쾌락주의)

※ 참고문헌  W. Ward Gasque, 《ABD》 I, pp. 1230~1231. [金永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