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본당
九里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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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구리시 수평동 434-1 소재. 1974년 5월 9일 상봉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 되었으며, 주보는 성 베드로. 관할 구역은 갈매리를 제외 한 구리시 전역과 미금시의 도농동, 지금동, 가운동. 〔교 세〕 1974년 839명, 1977년 1,754명, 1983년 3,576명, 1994년 5,122명. 〔역대 신부〕 초대 로반(Myles Roban, 노) 마일스(1974. 5~1978. 4), 2대 딜론(Daniel Dillon, 도일 석) 다니엘(1978. 4~9), 3대 제닝즈(Norman Jennings, 진) 노르만(1978. 9~1980. 7), 4대 코터(Jeremiah Cotter, 주) 예 레미아(1980. 9~1984. 5), 5대 코너즈(Kevin Connors, 고) 가비노(1984. 5~1987. 11), '6대 듀간(James Dugan, 홍) 야 고보(1987. 11~1991. 11), 7대 모리세(Michael Morrissey, 모) 미카엘(1991. 11~1994. 9), 8대 김주영(金柱榮) 루가 (1994. 9~현재). 〔공소 시대〕 1972년 초 남양주군 구리읍 수택 5리에 이 지역 신자 몇 사람의 힘으로 천막을 마련하고 상봉동 본당 소속 구리 공소가 시작되었다. 당시 상봉동 본당 주 임 브라질(Sean Brazil, 진) 요한 신부가 1972년 12월 현 본당 대지 1,071.07㎡를 매입, 1973년 6월 909.09㎡의 성당 및 부속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그 해 12월 완 공하고 1975년 6월 1일 축성했다. 이에 앞서 1973년 1 월에는 전교사 김진승(베드로, 1983년 6월까지 재임)을 파견하여 교리 교육을 시작하였다. 〔설립과 발전〕 1974년 5월 9일 본당으로 승격한 후 예비자 입교식, 주일학교 학생과 교사들에 대한 세미나, 성지 순례 등을 통하여 교육과 신심 강화에 주력하였다. 1979년 사순절에 반별 지역 미사를, 1980년 5월부터는 구역별 반상회를 시작하였고 본당 신자들의 영성, 특히 기도 생활에 역점을 두는 한편 이웃 선교를 강조하였다. 1983년 5월 성당을 남양 시장 2층으로 임시 이전하고 성당 건물을 철거한 후 그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 건축 면적 909.09㎡의 새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하여 그 해 8월 지하 성당을 완공하고 입주한 후 11월 19일 축 성하였다. 그리고 성당 주보를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에서 '성 베드로' 로 바꾸었는데 이는 본당 초창기부터 10여 년 간 전교사로 활동하다가 1983년 6월 11일 선종한 김 진승(베드로)을 추념하기 위해서였다. 1985년 2월 마석 본당을 분리시켰고, 1987년 11월 성당의 미완공 부분에 대한 공사를 재개했다. 한때 본당이 위치한 주변의 지역 민들 상당수가 경제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서울로 이주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신자들 상호간에는 생활 수준의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로서의 강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 1994년 9월부터 그 동안 본당 사목을 맡 아 오던 골롬반회 선교사를 대신하여 한국인 신부가 파 견되기 시작하였다. (→ 서울대교구)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