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굼 〔히〕תַּרְגּוּם 〔영〕Targ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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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굼은 항상 히브리어로 쓰인 토라와 병행하여 읽고 낭독해야 하였다.

타르굼은 항상 히브리어로 쓰인 토라와 병행하여 읽고 낭독해야 하였다.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경전. 〔의 미〕 타르굼이라는 단어는 아카드어 '타르굼만누' (targummannu, turgummannu)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의미는 '통역관' 이다. 이 단어를 사용하던 지역은 주로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자리잡은 아시리아였다. '타르굼만 누' 앞에는 항상 직업을 나타내는 한정사 '루' (lú)라는 접두어가 붙어 (직업적인) 통역관' 이라는 뜻으로 쓰인 다. 이 용어가 히타이트와의 무역이 활발하였던 아시리 아에서 처음 생겨나 널리 쓰인 뒤에는 사용되지 않은 것 으로 보아, 그 어원은 아카드어가 속한 셈어가 아닌 히타 이트어와 같은 인도-유럽어(Indo-European)인 것으로 여 겨진다. '타르굼만누' 는 히타이트어인 '타르쿰마이' (tarkummai-), 즉 '번역하다, 해석하다' 에서 빌려온 차용 어이다. 그래서 이 어근은 무역 · 행정에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통역 또는 번역' 을 의미한다. 랍비 히브리어(Rabbinic Hebrew)에서 '티르겜' (תִּרְגֵּם) 이라는 동사는 히브리어 성서를 다른 언어로, 대개 아람 어나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것을 뜻하지만, '타르굼' (תַּרְגּוּם)이라는 명사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즉 히브리 어 성서를 당시 히브리어를 모르던 유대인들을 위하여 아람어로 통역 · 번역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당시 유대교 회당에서는 통역 · 번역하는 사람들을 '메투르게 만' , '투르게만' 또는 '함메투르겜' 이라 불렀다. 한편 미 쉬나(야다 4, 5)에서는 다니엘서와 에즈라서의 아람어로 쓰인 부분(에즈 4, 8-6, 18 ; 7, 12-26 ; 다니 2, 4ㄴ─7, 28)을 '타르굼' 이라 불렀다. '티르겜' 동사는 '번역하다, 통역하다' 라는 의미 이외 에 랍비 히브리어에서 성서 구절이나 미쉬나를 같은 언 어인 히브리어로 '설명하다' 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타르굼' 에는 그리스어 '헤르메네우오' (ἑρμηνεύω)나 라 틴어 '인터프레토르' (interpretor)처럼 '다른 언어를) 통 역 · 번역하다' 라는 뜻과 '(같은 언어로) 설명하다' 라는 뜻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제작 배경〕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제국의 침입으 로 유대인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유대인들이 이민족의 땅으로 흩어지게(diaspora) 되자, 불과 몇 세대 만에 히브리어가 그들의 일상 용어에서 사라지게 되었 다. 기원전 10세기부터 다마스커스를 중심으로 상권을 장악한 아람인들은 서서히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을 아람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렇다 할 강대국이 없 었던 그 시기에 아람인들은 활발한 무역 활동을 통해 고 대 근동 전체를 아람어권으로 만들었다. 물론 팔레스티 나 지역에서도 아람어화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은 이러한 '근동 지방의 아람어화' 에 촉매 구실을 하였다. 페르시아 제국 시대(기원전 539~333)가 끝나기도 전에 아람어는 유대인들의 언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들 즉 인도에서 그리스, 박 트리아(Bactria)에서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 제국 의 외교 언어가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아람어는 당시의 국제 공용어(lingua franca)인 동시에 제국의 궁 중 · 외교 언어였다. 히브리어가 구어(口語)의 역할을 상실하자, 유대인들 의 경전 전통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에즈라서와 다니엘 서의 일부가 아람어로 쓰인 것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또한 히브리어 성서를 아람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었다. 성서의 본질이 하느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면, 타르굼은 성서를 새로운 시대 에 맞게 해석하는 유대인들의 '토착화 작업' 이었다. 이 때부터 타르굼이 경전으로 자리매김하여 정통주의 유대 인들에게 제2의 토라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토라는 두 번 읽고 타르굼은 한 번 읽어라" 는 지침에 따라 매주 주 어지는 성서 구절을 묵상하였다. 유대교 회당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9) 때에 생 겨났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왕정이 사라진 이때, 낯선 나라에서 유대인 포로들을 결속시켜 줄 구심점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였다. 그들을 위로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구심체가 바로 '성서' 였으며, 성서 는 예루살렘의 제사를 대신하고 다윗 가문의 메시아 기 대를 북돋워 주는 유일한 자구책이었다. 경전에 대한 그 들의 관심은 히브리어 성서를 당시 유대인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으로 이어졌고, 이런 번역과 경전을 해석 할 장소, 즉 회당이 필요하게 되었다. 타르굼은 히브리어 성서를 단순히 일상 통용어인 아람 어로 바꾼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데, 즉 성서 본문을 번역하는 것 외에 주석을 달거나 히브리어 원전에 해석 을 추가하기도 하였다. 타르굼의 역할은 히브리어 원문 을 보존하면서 여러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해석을 제공 하는 것이었다. 타르굼은 각 지방의 아람어 방언으로 쓰 였기 때문에 성서 해석상의 차이점을 인정하며, 서기 7 세기 이후 아람어가 아랍어로 대치되었을 때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유대교 랍비들은 타르굼의 이런 기능, 즉 히 브리어 성서를 아람어로 번역하고 해석하는 장소인 유대 교 회당의 예배를 통해서 자신들의 권위를 다졌으며, 이 런 번역과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내용이 첨삭되었 다. 그들은 또한 성서와 타르굼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공식 예배에서 같은 사람이 타르굼과 히브리어 성서를 모두 읽을 수 없었으므로 한 사람이 두루마리에 히브리 어로 쓰인 토라를 읽으면, 통역자는 공개적으로 구전 토 라인 타르굼을 아람어로 낭독하였다. 타르굼은 항상 히 브리어와 병행하여 읽고 낭독해야 하였다. 〔유대인의 삶과 타르굼 모세 오경〕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기원전 587) 뒤 바빌론 유배를 겪으면서 모세 오 경, 즉 토라는 유대인들 삶의 중심이 되었다. 물론 모세 시대나 왕정 시대에도 모세 오경(토라)을 중요시하였다. 그만큼 토라는 이스라엘 민족 생존의 한 부분(출애 13, 9) 이자 이스라엘 백성이 따라야 할(출애 24, 12) 삶의 지표 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 요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지낸 희생 제사였다. 광야에서 맺은 계약의 궤로부터 시작하여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 에 이르기까지는 제사가 너무 강조된 탓에 토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의 파 괴와 바빌론 유배로 희생 제사를 바칠 수 없게 되자, 토 라는 하느님과 통교할 아무런 대안도 없던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고 한 민족의 결속력을 강화시켜 주는 구심점이 되었다. 토라는 바빌론 유배 때 회당이 생기면서 그들 삶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성전이 재건된 제2 성전 시대에도 제사와 더불어 그들의 신앙과 민족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기둥이 되었다. 이때에는 누구도 토라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었다. 에즈라는 바 빌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토라의 가치를 더욱 드높 였고(느헤 8장), 그 결과 토라는 유대인들과 긴밀한 관계 를 맺어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토라는 유대교 예배 의식의 핵심이며, 토라를 낭독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공공 장소에서 토 라를 읽는 것에 관한 가장 오래된 성서 기록은 신명기 31장 10-13절이며, 두 번째 기록은 에즈라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토라를 읽어 주는 구절(느헤 8, 1-8)이다. 정 규적으로 토라를 읽는 예배 의식은 탈무드(메길 4, 1)에 서 찾아볼 수 있다. 탈무드를 쓴 랍비에 따르면, 모세는 안식일과 축일 및 초하룻날에 에즈라는 월요일과 목요 일 아침 그리고 안식일 오후에 토라를 읽으라고 지시하 였다. 이 같은 관습은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 한 칠십인역이 이미 공공 낭독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기원전 3세기 이전에 형성된 것 같다. 이러 한 공공 낭독이 바빌론 유배 때 형성되었다고 보는 의견 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요세푸스(《아피오에 대항하여》 2, 175)와 필로(《꿈에 대하여》 2, 127)의 저서 및 신약성서 (사도 15, 21)에서 이런 토라의 공공 낭독을 기록하고 있 다. 미쉬나(3, 4-6)는 적어도 서기 2세기까지 이런 낭독 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탈무드(메길 29b)는 팔레스티나에 서 3년을 주기로 토라 전체를 읽었다고 언급하였다. 이 밖에 타르굼은 초등 교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 였다. 탈무드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교육은 토라를 연구 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전통적으로 현자들은 토라가 인간의 삶을 지탱해 주는 근간이라 여겼다. 따라서 나이 와 상관없이 누구나 랍비 밑에서 계속 토라를 공부해야 하였다. 이런 교육의 특징은 '토라를 위한 토라' 이다. 따 라서 토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 지 시행 강령이 주어진다. 첫째, 토라를 밤낮으로 묵상해 야 한다(여호 1, 8). 즉 다른 것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토 라를 삼지 말고 그 자체로 즐겨야 한다. 둘째, 토라의 연 구 목적인 하느님의 명령을 준수해야 한다. 토라 연구가 실천보다 더 우선하는 이유는, 충실한 연구에는 실천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토라를 공부하는 학교, 즉 '베이트 핫세페르' 는 회당의 부속 기관으로서 예루살렘에 480개 가 있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히브리어 문법을 배웠고, 나중에는 타르굼을 바탕으로 아랍어나 이디쉬(Yiddish) 로 쓰인 성서가 저술되기도 하였다. 아랍어로 쓰인 성서의 기록이 쿰란에서 발견된 것 (4QTgLv, 4QTgJb, 11QTgJub)으로 보아 타르굼은 랍비 시대 이전에 기록되었으며, 당시의 랍비들이 타르굼의 권위를 드높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예가 모세 오경을 번 역한 옹켈로스 타르굼과 예언서를 번역한 요나단 타르굼 이다. 특히 옹켈로스 타르굼은 여러 종류의 타르굼 중에 서 정통 유대인들로부터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받 고 있는데, 이는 바빌론의 유대인들이 발전시킨 팔레스 티나 타르굼의 역본이다. 타르굼은 대다수 팔레스티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으며, 모두 히브리어와 아람 어 및 성서 주석에 정통한 학자들의 작품이다. 현재 본문 의 유동성과 상관없이 그 내용은 전통적으로 정해진 것 이다. 할라카에 따르면 구전 타르굼은 유대교 회당에서 전해졌지만, 기록된 타르굼은 이미 탈무드 시대의 예배 의식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종 류〕 모세 오경─팔레스티나 타르굼 : ① 네오피티 1(Neofiti 1) : 1956년 마초(A.D. Macho)는 바티칸 도서 관에서 모세 오경의 팔레스티나 타르굼 수정본(Codex Neofiti 1)을 발견하였는데, 이 수정본은 그때까지 도서 관 목록에서 타르굼 옹켈로스로 잘못 분류되어 있었기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네오피티는 세 명의 필사자 들이 쓴, 거의 손상되지 않은 사본이다. 간기(刊記)에는 비테르보의 질(Giles de Viterbo, 1469~1532)을 위하여 1504년에 로마에서 필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수 정본은 11세기 말 로마에 거주하였던 나단 벤 예위엘 (Nathan Ben Yewiel)의 작품 《아룩》(Aukh)과 유사한 부 분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 이전의 작품일 수도 있다. 대체로 네오피티의 번역은 틀에 박힌 듯 있는 그대로 이며, 단편 타르굼(Fragmentary Targum)이나 차명 요나단 (Pseudo-Jonathan)보다 내용은 적고 단어 설명이 많다. 행간과 여백에는 적어도 열 명의 다른 필사자들이 주석 을 달아 놓았는데, 이는 그 안에 여러 가지 팔레스티나 타르굼 해석 전통이 있다는 증거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10장 4절에 대한 두 가지 번역 가운데 두 번째 번역은 '라손 아헤르' (다른 번역)라 불린다. ② 차명 요나단 : '요나단 벤-우치엘의 타르굼' 이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초판 제목에서 따왔으나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이 작품은 타르굼 요나단(Targum Yehonatan) 이 아니라 타르굼 예루샬미(Targum Yerushalm)를 가리 킨다. 14세기 므나헴 베냐민 레카나티가 이 타르굼을 바 빌로니아에서 쓴 예언서 타르굼으로 착각하고 잘못 주장 한 것이다. 차명 요나단은 모세 오경 가운데 부연 설명이 가장 많 으며, 그 분량이 히브리어 본문의 두 배에 이른다. 여러 전통적 해석을 모두 모아 놓았기 때문에 타르굼의 가장 오래된 자료와 가장 최근 자료가 공존한다. 차명 요나단 에서는 랍비 문헌에 없는 요소들도 발견되는데, 이 작품 의 마지막 편집 시기는 서기 7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차 명 요나단은 긴 편집 과정을 거쳤다. 최초의 판본은 아세 르 포린스(Asher Forins)의 《하미샤 훔셔 토라》(베네치아, 1590~1591)이다. 런던의 대영 도서관에 소장된 판본(Ms. Add. 27.031)에는 편집자 도미니코 지에로솔로미타노 (Dominico Gierosolomitano)의 서명이 있다(런던, 1598). ③ 카이로 게니자 단편들(Cairo Geniza Fragments) : 카 이로의 게니자에서 일곱 개의 사본이 발견되었는데, 팔 레스티나 타르굼에서 인용된 구절을 담고 있다. 본래 모 세 오경 타르굼 전체가 있었으나 일부만 발견된 것 같다. 한 사본(칼레, D=Kahle D)은 창세기, 출애굽기, 신명기의 일부를 담고 있으며, 어떤 사본들은 히브리어 본문과 아 람어 해석을 모두 담고 있다. 카이로 게니자 단편들은 현 존하는 팔레스티나 타르굼의 최초 사본이며, 이 중 가장 오래된 사본인 칼레 A는 8~9세기 것이다. 이 사본들은 팔레스티나 타르굼의 어떤 수정본과도 정확하게 일치하 지는 않지만, 몇 군데에서 일치점이 발견된다. ④ 단편 타르굼(Fragmentary Targum) : 이 작품의 초판 은 '타르굼 예루샬미' 라는 이름으로 봄베르크(Daniel Bomberg)의 《랍비 성서》(Biblia Rabbinica, 베네치아, 1516-1517=Bomb 1)에 수록되었다. 봄베르크의 본문과 관 련 있는 사본은 바티칸판(V=Ebr. 440, fols. 198~227, 바티 칸 도서관, 13세기), 뉘른베르크판(N=Solger 2, 2, fols. 119~147, 뉘른베르크 시립 도서관, 1291), 라이프치히판 (L=B.H. fol. 1, 라이프치히 대학 도서관, 13~14세기), 모스크바 판(M=Ms 3, Giinzburg Collection, 모스크바, 16세기), 사손 (Sasson)판(s=Ms 264, 사손 모음집, 17세기) 등 다섯 개가 있다. 이 사본들 사이의 관계를 보면, Bomb 1과 M은 N 의 필사본이다. 그리고 S는 Bomb 1이나 《랍비 성서》의 두 번째 판인 Bomb 2(베네치아, 1524~1525)에서 베꼈다. 그러나 V와 L은 N과 다른 전통의 사본이며, V와 L도 서 로 다르다. V는 모세 오경에서 908절을 포함하며, N은 833절, L은 293절을 포함한다. V · N · L은 길이가 다 르지만, 겹치는 부분은 하나의 수정본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단편 타르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단편 타르굼 은 서부 아람어 즉 팔레스티나 타르굼이다. 둘째, 단편 타르굼은 모세 오경의 일부만을 옮겼다. 셋째, 단편 타르 굼에는 하가다식 표현이 많고 직역한 구절도 있다. 그렇 다면 단편 타르굼의 본문 형태가 왜 이렇게 변하였을까? 몇몇 이본(異本)들은 팔레스티나 타르굼의 완전한 본문 을 만들기 위해 각각의 부분을 보완하여 만들어졌다. 이 것들은 네오피티의 난외 참고 구절과 성격이 같다. 그러 나 단편 타르굼은 타르굼 토셉토트(Targum Toseftot)처럼 옹켈로스를 보완하기 위해서 쓰여진 모음집이다. 토셉토 트와 단편 타르굼은 팔레스티나에서 옹 켈로스가 가장 중요한 성서 번역본으로 등장하였을 때 생겨난 듯하다. 옹켈로스 는 하가다가 아니기 때문에 팔레스티나 타르굼의 하가다를 보존할 필요가 있었 다. 토셉토트는 옹켈로스의 필사자들에 게 알려진 팔레스티나의 해석 전통을 무 작위로 모아 놓았지만, 단편 타르굼은 팔 레스티나 타르굼의 완전한 수정본을 보 다 체계적으로 요약하였다. 그리고 옹켈 로스와 다른 모든 팔레스티나 타르굼 자 료들을 수집하였고, 하가다가 아닌 자료 는 생략하였다. ⑤ 타르굼 토셉토트 : 옹켈로스의 하 가다 구절들을 한데 모아 '토세프타' (Tosefta) 또는 '토세프타 예루샬미' (Tosefta Yerushalmi)라 불렀다. 이것은 분명 팔레스티나 타르굼 자료에서 가져온 첨 가이다.이들의 목적은 옹켈로스의 문자적 번역을 윤색 하여 쉬운 언어로 풀어쓰는 것이다. 토셉토트는 옹켈로 스의 본문에 첨가되기도 하고 난외에 쓰여지기도 하며 본문 끝에 모아지기도 한다. 토셉토트와 단편 타르굼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단편 타르굼은 대개 직역이 지만 토셉토트는 장황하게 설명한다. 둘째, 단편 타르굼 은 서부 아람어의 언어학적 특징을 지니는 반면, 토셉토 트는 옹켈로스처럼 동부 아람어의 특징을 지닌다. ⑥ 축제 모음집(Festival Collections) : 유대인 축제와 특별한 안식일에 읽어야 하는 모세 오경 타르굼이 있다. 이러한 본문의 성격이 보들레안 사본(Heb. e 43, fols. 57~67=칼레 F)의 간기에 나온다. 축제 모음집과 팔레스티나 타르굼의 관계는, 설교적인 미드라쉬(예를 들면 라브 카하나의 페시크타)와 주석적인 미 드라쉬(예를 들면 이슈마엘 랍비의 메킬타)의 관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축제 모음집들의 내용이 저마다 다른 것으로 보아 공동의 원본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⑦ 타르굼 시들 : 이 시들의 특징은 '에젤 모세' 라는 시에 잘 나타난다. '에젤 모세' 의 형식은 알파벳 이합체 시(alphalbetic acrostic)이며, 내용은 모세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이야기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 면 타르굼은 아니지만, 이 시는 과월절 일곱째 날 읽는 모세 오경(출애 14-15장) 타르굼과 관련이 있다. '에젤 모세' 는 파리 사본 110에서는 출애굽기 14장 29절 뒤에 첨가되고, 함부르크 대학 도서관 사본 335에 서는 타르굼 구절들과 뒤섞여 있다. 이 시는 팔레스티나 타르굼과 비슷한 성서 구절을 하가다적으로 각색하였다. 파리 사본과 함부르크 사본이 타르굼을 다른 방식으로 서술한 것은, 회당에서 그 시를 다른 방식으로 읽었기 때 문일 것이다. '에젤 모세' 는 4~5세기 파피루스 조각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된 것이 틀림없다. 과월 절 일곱째 날과 관련된 다른 아람어 시들로는 '샤바트 하호데쉬' (거룩한 안식일), '샤부오트' (안식일), 그리고 '모세의 죽음에 관한 시' (신명 34장) 등이 있다. 예언서(Nebiim) : ① 타르굼 요나단(Targum Jonathan) : 옹켈로스가 모세 오경의 타르굼이라면, 요나단은 예언서 의 타르굼이다. 타르굼 요나단은 예언서에 대한 바빌로 니아의 공식 타르굼이다. 그러나 요나단에 대한 정보는 불확실하다. 탈무드(수 카 28a)에 따르면, 그는 힐렐 랍비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그가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와 동시 대인이라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한편 바르텔레미(Barthelemy)는, 탈무드(메길 3a)에서 언급한 책이 아람어 번 역본이 아니라 테오도시온 그리스어 번역본이라고 주장 하였다. 탈무드 곳곳에 예언서 타르굼은 품베디타(Pumbeditha) 학교의 교장인 라브 요셉 바르 하야(Rav Yosef bar Hayya, 270~333)가 저술하였다고 적혀 있으며, 타르 굼 이사야서 5장 17절에도 "라브 요셉이 번역한 대로" 라는 표현이 있다. 타르굼 요나단은 바빌로니아의 권위 있는 사본이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몇몇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형식이 소개된다. "이 구절에 대한 타르굼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요나단을 옹켈로스와 비교할 때 언어나 번역상의 특징은 거의 같 다. 다만 요나단이 옹켈로스보다 조금 더 설명이 많고, 시 구절들에 대한 부연 설명이 더 많다(판관 5장 : 1사무 2, 1-10). 요나단에는 편집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이며, 옹켈로스와 같은 시기에 바빌로니아에서 쓰여진 것 같 다. 옹켈로스처럼 본문이 안정적인데도 요나단의 사본들 간에는 이본들이 많다. 본문 비평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윗 모음(supralinear)을 가진 동부 예멘 사본들(대영 도서관 사 본 Or. 2210과 Or. 2211)과 티베리아 모음을 첨가한 서부 사본들을 평가한 것이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예멘 사 본들이 바빌로니아 타르굼의 형태와 가깝다고 가정한다 ② 팔레스티나 토셉토트(Palestinian Toseftot) : 코덱스 레우클리니아누스(Codex Reuchlinianus)는 '타르굼 예루 샬미' 또는 '타르굼 아헤르' (Targum Aher)라는 이름으로 전 · 후기 예언서의 80구절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은 아 마도 수정본의 일부이거나, 예언서에 대한 완전한 팔레 스티나 타르굼의 수정본인 것 같다. '이스라엘 땅의 토 세프타' (Tosefta of the Land of Israel) 또는 단순히 '토세프 타 라는 이름으로 다른 몇몇 사본 단편이 발견되었다. 옹켈로스의 팔레스티나 토셉토트가 그런 것처럼 이들 토 세프타 역시 요나단을 보완하기 위해서 쓰여졌으며, 본 래 팔레스티나에서 쓰여져 요나단의 아람어로 재구성되 었다. 이들은 아마도 요나단이 예언서의 팔레스티나 타 르굼을 대치할 때 생겨났을 것이다. 성문서들(Ketubim) : 탈무드 시대에는 성문서 타르굼 이 바빌로니아에 없었으나, 현재는 에즈라서, 느헤미야 서, 다니엘서를 제외한 성문서 타르굼이 남아 있다. 이들 가운데 몇 권을 바빌로니아 학자 라브 요셉(Rav Yosef) 이 저술하였다고 랍비 문헌은 전한다. 중세의 학자들은 성문서 타르굼을 '타르굼 예루샬미' 라 불렀는데, 이 타 르굼들의 하가다적, 언어학적, 그리고 번역상의 유사점 때문에 '타르굼 예루샬미' 라고 부른 것이다. 성문서 타르굼은 모세 오경 타르굼만큼 학자들의 관심 을 끌지 못하였다. 모세 오경의 팔레스티나 타르굼처럼 본문이 안정되지 않아 대부분의 성문서 타르굼은 여러 수정본들이 있다. 애가 타르굼의 경우 적어도 두 개의 수 정본이 존재하는데, 예멘 사본(or. 1476, 대영 도서관, 런 던)과 서부 사본(코덱스 우르비나스 1, 바티칸 도서관)이 그 것이다. 이 두 수정본을 비교하면 예멘 사본이 더 정확한 모음을 제공하지만, 서부 사본이 예멘 사본보다 더 오래 되었고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아가 타르굼과 코헬렛(전도서) 타르굼에도 적용된다. 서부와 예멘의 사 본들은 두 개의 다른 축제 두루마리(릇기와 에스델서)를 가지고 있으나, 그들이 어떤 수정 과정을 거쳤는지는 불 분명하며, 특히 에스델서의 경우는 설명하기 어렵다. 봄 베르크는 자신의 《랍비 성서》에서 에스델서의 두 타르굼 을 구분하여 하나는 아무런 수식 없이 '타르굼' 이라 부 르고, 다른 하나는 '타르굼 세니' 라 불렀다. 이런 구별이 없는 예멘 사본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본문들은 에스델 타르굼의 두 수정본을 섞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를 에 스델의 제3 타르굼이라 부르는데, 이는 《안트웨르펜 폴 리글롯》(1569~1572, 안트웨르펜〔앤트워프〕에서 만든 다중 언 어 성서)에서만 발견된다. 시편, 욥기, 잠언의 타르굼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책이 다. 욥기에서는 한 구절에 두세 개의 해석이 나오는데, 첫 번째는 직역이고 두 번째는 대개 '타르굼 아헤르' 의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타르굼은 다른 수정본이었던 것 을 합쳐 하나로 만든 것이다. 타르굼 잠언은 시리아역 성 서인 페쉬타(Peshita)와 상당히 일치한다. 타르굼이 페쉬 타를 원본으로 삼았는지, 아니면 페쉬타가 타르굼을 원 본으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둘은 매우 흡사하다. 〔번역상 특징〕 하느님을 의인화하는 표현을 피함 : 타 르굼은 하느님을 의인화(擬人化, anthropomorphism)하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가능한 한 다른 말로 바꾼다. 랍비들 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영성을 지키려는 염원과 그것을 체계화한 교리에서 이러한 번역들이 생겨났다고 보았다. 그러나 타르굼이 항상 비의인화를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 다. 타르굼에서도 의인화의 표현들이 발견된다. 타르굼 과 동시대에 쓰인 랍비 문헌들에서도 하느님을 의인화한 예가 많기 때문이다. 의인화를 피한 표현들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이원론적인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다소 과장된 문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동시대화 : 타르굼은 성서를 동시대화하는 경향이 있 다. 마치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성화를 그릴 때 그 시대 네덜란드의 의복 형태와 주위 환경을 그대로 이용 하여 묘사한 것처럼, 타르굼의 저자들은 성서 시대의 사 람과 장소를 자신들 시대의 사람과 장소에 그대로 적용 하였다. 팔레스티나 타르굼에서는 창세기 10장에 등장 하는 세계의 나라 이름들을 모두 동시대화하여 타르굼 저자 시대의 나라 이름으로 바꾸어 옮겼다. 표현의 중복 : 타르굼은 "내가 너의 눈에서 호의를 찾 는다면" (창세 18, 3)을 "내가 지금 너의 눈에서 은총과 호 의를 찾는다면"(네오피)으로, "나는 주님에게 찬송할 것이다" (출애 15, 1)를 "나는 주님 앞에서 찬양하고 송축 할 것이다”(네오피티)로 바꾸어 본문의 단어나 구절을 반 복하였다. 이러한 반복은 단순한 문체일 수도 있고, 두 단어가 흔히 함께 어울려 쓰이는 상투적인 말일 수도 있 다. 그 예로 "은총과 호의"(에스 2, 17), "찬양하고 송축 하다" (다니 2, 23) 등을 들 수 있다. 또 이것은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한 판본들의 혼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반 복에서 두 번째 단어나 구절은 대개 첫 번째의 동의어이 거나 동의 구절이지만, 두 번째 단어나 구절이 첫 번째와 반대인 경우도 있다. 연상 번역 : 이는 머투르게만이 A본문을 번역할 때 B 본문에 나온 구절의 영향을 받아 번역하는 것이다. 출애 굽기 16장 31절에서는 만나에 관해 "그 맛은 꿀 섞은 과 자 같았다" 라고 하였는데, 이를 네오피티는 "그 맛이 꿀 섞은 빵과자 같았다"로 옮겼다. 그런데 민수기 11장 8절 에 나오는 유사 구절에서는 만나의 맛을 "기름 과자 맛" 이라고 표현하였고, 이 구절을 네오피티는 "꿀 섞은 케 이크 같은 맛이라고 번역하였다. 이 연상 번역에 심리 적인 요소가 작용하였는지는 명료하지 않으나, 머투르게 만이 유사 구절을 무의식적으로 적용한 것 같다. 상호 보완적 번역 :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연상 번역 의 한 종류이다. A본문의 한 단어를 B본문의 한 단어로 대치하기보다는 유사 단어들끼리 결합하여 상호 보완적 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다. 네오피티는 창세기 4장 2절 의 "땅을 부치는 농부"와 창세기 9장 20절의 "땅의 사 람"을 모두 "땅을 일구는 사람" 으로 번역하였다. 수사식 번역 : 이는 성서의 평이한 문장을 반대 느낌 이 드는 문장처럼 번역하는 것이다. 흔히 부정어를 생략 하거나 첨가함으로써 그 의미를 바꾼다. 창세기 4장 14 절의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합니다"를, 네오피티는 "당신 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제가 당신에게서 숨는 것이 불가능합니다"라고 번역하였다. 한편 어떤 타 르굼은 같은 문장을 의문사가 없는 의문문으로 바꾸어 반대의 의미로 옮기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위의 구절을 차명 요나단은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셨 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신에게서 숨는 것이 가능합니 까?" 라고 번역하였다. 〔옹켈로스 타르굼에 나타난 하느님 개념〕 하느님에 대 한 개념 : 타르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느님의 초 월화' 이다. 그래서 옹켈로스에서 하느님을 언급할 때에 는 언제나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사적 용어 를 넣었다. 그 결과 의인화의 표현들이 비의인화의 표현 들로 바뀌었다. 하느님에 대한 여러 가지 속성들이 타르굼에 나타난다. 첫째, 히브리어에서 '하느님의 입' 은 제유적(提喩 的) 표현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 으로 바뀌었다(신 명 1, 26. 43 ; 8, 3 ; 9, 23 : 34, 5). 그리고 히브리어에서 '하느님의 목소리' 는 '하느님의 메므라(מֵימְרָ)의 목소 리' 로 옮겨진다.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메므라' (מֵימְרָ, 말씀)라는 단어를 넣음으로써 하느님의 권위에 걸맞지 않는 인간과 하느님의 직접적인 만남을 피한다(신명 4, 33. 36 ; 5, 24. 25). '하느님의 메므라' 는 때때로 인간과 직접 닿을 수 없는 하느님의 존재나 힘을 나타내기도 한 다. 이 구절은 하느님의 직접 나타나심을 피하려는 완곡 한 표현이다(신명 1, 32 ; 2, 7 ; 5, 5). 둘째, 창세기 6장 6-7절의 "하느님의 후회"라는 구절은 '주님께서 메므라 를 통해 후회함' 으로 재해석되었다. 하느님이 후회하실 행동을 하셨더라도 완벽한 분으로 묘사해야 하였기 때문 에 '메므라' 를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셋째, 옹켈로스에 서는 하느님의 전능(omnipotence)을 강조하는 말을 전지 (omniscience)를 강조하는 말로 바꾸어 옮긴다. 그래서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창세 18, 14)를 "주님 앞에 숨길 일이라도 있느냐?" 로 바꾸었다. 넷째, 하느님의 비가시성을 표현하여 하느님 이 인간의 눈으로 직접 관찰되는 것을 피하였다. 예를 들 면 "그들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뵈었다" (출애 24, 10ㄱ)를,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영광을 뵈었 다"로 바꾸었다. 다섯째, 하느님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 고 하여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창세 3, 8)를 "하느님의 메므라의 소리를 들었다" 로 바꾸었다. 여섯 째, 출애굽기 15장 18절의 "주님께서는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시는도다" 라는 형태의 하느님이 미래만 지배한다 는 구절은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하느님이 통치한다는 옹켈로스의 교리에 어긋난다. 그래 서 옹켈로스는 "주님, 그분의 왕국은 영원하시며 영원까 지 견디리라" 로 번역하여 시간의 초월성이라는 하느님에 대한 속성을 표현하였다. 일곱째, "하느님의 길들"이라 는 히브리어 구절은 타르굼에서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길"로 바뀐다. 인간의 완벽하고 옳은 길은 하느님이 인 정한 길이다(창세 18, 19 ; 신명 8, 6 ; 10, 12 : 11, 22 ; 19, 9 ; 26, 17 : 28, 9 : 30, 16). 히브리어 본문이 이 구 절들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길들을 따라서" 라고 적은 것 은, 인간과 하느님이 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 하기 위한 것이다. 여덟째, 스승이신 하느님을 묘사하면 서 그분은 모든 가르침의 원천이라고 번역하였다. 타르굼은 우상들이 실제로 존재하거나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표현들을 생략한 다. 그래서 히브리어 본문에 나타나는 다른 신의 존재, 다른 민족의 신들에 대한 암시나 언급을 회피하였다. 또 한 "다른 신들"이란 용어를 "우상"이란 단어로 옮기는 데, 신명기에서만 21번 등장하였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으로 다른 신에 대한 언급을 피하였다. 우선 “엘로힘”(אֱלֹהִים) 대신에 '두려움' 이라는 명사에 서 파생된 "다홀라" (דַּחַלָּה)를 사용하였는데, 이 단어는 "신"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창세 31, 32 ; 출애 32, 4 ; 34, 17 ; 레위 19, 4 : 신명 29, 25 : 32, 17. 37). 두 번째로 이방 신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다른 신들"(출애 23, 13-14 ; 신명 7. 14)이나 "이방의 신들" (창세 35, 2. 4 : 신 명 31, 16) 또는 "나라들의 신들" (신명 6, 14 ; 29, 17) 대 신에 "이방 나라의 우상들" (גִּלּוּלֵי הַגּוֹיִם)로 번역하였으 며, 외국 신들에 3인칭 복수 대명사 어미를 덧붙여 "그들 의 신들"이라고 더욱 비하하였다. 단순히 "우상들"이라 는 단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출애 34, 16 ; 민수 25, 2 신명 7, 16).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 옹켈로스는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서 실제로 인간은 하느님과 가까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걷거 나 함께 있을 수 없으므로 하느님을 '세킨타' (סַכִּינָה) 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이 아닌 '세킨타' 와 접촉한다. 히브리어 본문에 나타나는 하느님과 인간의 친밀성이 옹켈로스에서는 다르게 표현되었다. '하느님을 경외함'을 나타내는 적절한 표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이다. 타르굼은 여기서 하느님의 직접적인 반응 을 배제하고,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절충하기 위 하여 '~앞에' 라는 전치사를 첨가시켰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존경을 표시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인간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 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섬기는 것' 이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은 '하느님 앞의 행동' 으로 인간에게 반응한다. 옹켈로스에서 보여 주는 하느님은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이다. "하느님을 찾고, 발견하고, 매달리는" (신명 1, 36 ; 4, 4. 20. 29. 30 ; 10, 20 ; 11, 22 ; 13, 11 ; 18, 13 : 29, 17 ; 30, 2. 10. 20)이라는 히브리어 본문 구절들이 옹켈로스 에서는 "하느님의 두려움을 찾고, 발견하고, 매달리는"이라고 바뀌었다. 옹켈로스에서 인간은 '하느님' 을 찾거 나 만날 수 없고, 그분 존재의 증거나 자취를 찾을 뿐이 다. 히브리어 본문은 시나이 산이나 다른 곳에서 하느님 을 '보았다' 라고 전하지만. 옹켈로스는 '나타나셨다' (드 러내셨다)로 바꾸어 옮겼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인간의 오감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좀 더 추상적 이고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분임을 강조하였다. 즉 인 간과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고 있다. 하느님 이 '직접' 내려와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였다는 구절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구절이었다. 그래서 옹 켈로스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그의 두려움으로 '끌어내신다' 라고 묘사한다. 옹켈로스는 하느님의 행위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능동태 동사보다 수동태 동사를 선호하였다(신명 7, 15). 그래서 인간의 잘못에 대한 하느님의 직접적인 반 응을 '야기된 반응' (induced response)으로 바꾸어 표현하 는 것이다. 인간의 부적당한 행동은 하느님 '앞에서' 화 가 나 질투를 야기시킨다. 그리하여 옹켈로스에서는 히 브리어 본문의 '하느님의 분노' 를 '뜨거움' 이나 '연기'로 표현한다. 그리고 하느님이 인간에 대한 혐오 때문에 '그의 얼굴을 감춘다' 를 '자신의 존재를 치운다' 로 바꾸 어 말한다. 한편 하느님이 여전히 의인화의 표현으로 쓰 이기도 하지만, 옹켈로스는 히브리어 본문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더 거리를 둔다. 다른 신학적인 개념들 : ① 죄와 벌의 심판 : 조상의 죄를 후손들에게 그대로 적용하던 구약의 개념을, 랍비 신학에서는 후손들이 조상과 같은 죄를 지었을 때에만 적용하였다. 옹켈로스 타르굼의 출애굽기 8장 11ㄴ절에 서도 그들의 자녀 역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였기 때문 에 그 죄에 알맞는 벌을 받는 것이다. ② 의로운 사람에 대한 미래의 보상 : 하느님이 준 규 정과 법률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다가올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진다(레위 18, 57 : 신명 32, 12 ; 33, 6). 옹켈로스는 토라에서 약속된 장수는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세계에서 이루어진다고 가르 쳤다. ③ 메시아 사상 : 옹켈로스에서 메시아 사상은 오직 세 곳(창세 49, 10-12 ; 민수 24, 17-20. 23-24)에서만 나 온다. 민수기 구절은 쿰란 문서의 《전쟁 두루마리》(11, 6)와 《다마스커스 문헌》(7, 18-19)에서 인용한 것이다. 옹켈로스에서 말하는 메시아 사상은 유대 땅에서 다윗 왕정과 주권의 회복, 예루살렘과 그 시민의 보호, 성전 재건, 의로움과 이상적인 토라의 확산, 교육, 윤택한 생 활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전제한다. 이런 상황들은 원수 에 대한 앙갚음이나 폭력이 없는 완전한 평화를 반영한 다. 그러므로 사회는 토라를 통해서 평화와 풍요와 정의 로 한층 더 나아지며, 그 토라는 우주적인 공동의 법이 된다. [의인화를 피하기 위한 신학적인 개념〕 메므라 : 타르 굼에 나오는 메므라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명령' 의 의미로, 셈어의 어근 '아마르' (말하다)는 성서 시대 이 후의 히브리어, 아람어, 아랍어에서 '명령하다' 라는 의 미가 덧붙여진다. 둘째 '자기 자신, 자기 영혼, 자기 마 음' 이란 의미이다. 히브리어의 '네페쉬' (נֶפֶשׁ, 영혼)나 아 랍어의 '타무르' 에 대명사 어미가 붙어 '자기 자신' 이라 는 의미로 쓰이는 것처럼 메므라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긴스부르거(O.M. Ginsburger)는 《타르굼의 의인화론》 (Die Anthropomorphismen in den Targumim, Braunschweig, 1891)에서, 메므라는 하느님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피 하려는 완곡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메므라의 사용 목 적이 '초기 형태' 에서 '후기 형태' 로 변하는 것을 감지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초기의 메므라는 신적 존재가 인간 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으 로, 하느님은 인간처럼 말하거나 명령하지 않는다. 그러 나 하느님은 인간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하느님의 영성 과 인간의 본능은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메므라는 하느 님을 인간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후기 에는 하느님을 '육체적' 으로 부르는 것 자체를 부정하였 다. 단지 하느님을 인간과 구별하기 위해서 메므라를 사 용하기 시작한 것이, 후대에는 하느님 이름을 부르는 것 조차 기피하게 된 것이다. 만일 하느님이 문장 안에서 인간 행동의 간접 목적어 로 쓰이면, 아래의 두 낱말이 메므라 대신 사용된다. 즉 하느님의 말씀에 관한 이야기에는 '~앞에' 라는 전치사 를 사용하고(창세 4, 10. 13 ; 25, 21 ; 출애 14, 15 ; 15, 25 ; 19, 8-9 ; 민수 14, 28), 제의나 행동에는 ~의 이름 을 위하여' 를 사용한다(출애 22, 19 ; 레위 16, 8-9). 초기 에는 '하느님/주님의 소리' 가 '하느님/주님의 메므라의 소리' 로 번역되어 메므라는 단순히 두 단어의 완충어 구 실을 하였다. 그러나 후기에는 하느님에 대한 육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으므로 '하느님/주님의 소리' 가 옹켈로스 에 의해 '하느님/주님의 메므라의 소리' 로 번역되지만, 여기서 '소리' 는 히브리어 본문처럼 하느님의 실제 목소 리(창세 3, 8)가 아니라 '명령' 을 의미하였다. 예카라 : 아람어 예카라(יְקָרָא)의 추상적인 의미는 '존경, 웅장함, 화려함' 등이며 좀 더 구체적인 의미는 '값어치, 값' 이다. 옹켈로스에서 이 단어는 히브리어 본 문의 '카보드' (כָּבוֹד, 웅장함)에 대응되는 단어로 하느님 을 가리킬 때(출애 16, 7. 10 ; 24, 17 ; 29, 43 ; 33, 18. 22 ; 40, 34 ; 레위 9, 6. 23) 쓰이며, 히브리어 본문에서 카보드가 쓰이지 않은 경우에(출애 3, 6 : 24, 10. 11 ; 민 수 12, 8) 인간에게 사용되었다. 또한 '화려함' 이나 '웅 장함'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없는 경우에도, 하느님의 현현을 나타낼 때(창세 28, 13 ; 출애 3, 1 ; 4, 27 : 18, 5 : 20, 17 ; 24, 13 ; 레위 9, 4. 6. 23 ; 민수 10, 33)와 하느님 이 나타난 장소를 떠날 때(창세 17, 22 ; 18, 23 ; 출애 35, 13) 또는 하느님의 현현이 돌아갈 장소가 언급될 때(민수 10, 36) 사용된다. 긴스부르거는, 하느님의 웅장함이 하 느님의 현현과 떠남 사이의 중간 시점에 존재하는데, 이 것이 '세키나트 예카라' (영예의 현존)라는 복합어로 표현 된다고 말하였다. 세킨타 : 세킨타는 '살다' 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세키 나 (שְׁכִינָה)의 여성 단수형으로, 이 단어의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는 타르굼 창세기 9장 27절에 나온다. "그 는 셈의 천막들 안에서 살게 해 주실지어다"라는 히브리 어 본문의 문장을, 타르굼은 "그의 세킨타가 셈의 천막 에서 머물게 하실 것이다"로 옮겼다. 후대에는 추상 명 사 세킨타를 '성전' 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타르굼은 하느님을 "현존하시는 장소"(출애 25, 8 ; 29, 45. 46 ; 민 수 5, 3 ; 35, 34)로 지칭한다. 또한 타르굼은 세킨타를 하 느님에게 적용하는데, 이는 하느님이 인간들 사이에 함 께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느님이 특정한 장 소에 머물거나 움직임을 표현할 때, 전치사 '~가운데' , '~쪽으로' , '~와 함께' 가 쓰인 본문에 세킨타를 끼워 넣는다(출애 17, 17 ; 33, 3. 5. 16 ; 34, 9 ; 민수 11, 20 ; 14, 14. 42 ; 16, 3 ; 35, 34 ; 신명 1, 42 ; 3, 24 4, 39 ; 6, 15 ; 7, 21 ; 33, 16). 이 외에도 세킨타는 종종 히브리어 본문의 하느님의 '이름' 을 가리킨다(출애 20, 21 ; 신명 12, 5. 11. 12). 이 와 비슷하게 하느님의 '현현' 과 '얼굴' 에 대한 번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출애 33, 14. 15 : 34, 16 ; 민수 6, 25 ; 신명 31, 17. 18). (→ 랍비 문학 ; 미드라쉬 ; 미쉬나 ; 바 빌론 유배 ; 아람어 ; 토세프타 ; 회당) ※ 참고문헌  배철현,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가톨릭출판사, 2001/ ─, 《타르굼 아람어 문법》, 가톨릭출판사, 2001/ D.R. Beattie · M. McNamara · M.J. McNamara eds., Aramaic Bible : Targums in Their Historical Context, Sheffield Academic Press, 1994/ M. Aberbach · B. Grossfeld, Targum Onkelos to Genesis : A Critical Analysis Together with an English Translation of the Text, KTAV Publishing House, 1982/ A. Sperber, The Bible in Aramaic : The Pentateuch According to Targum Onkelos, vol. I, Brill, 1959. 〔裵哲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