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시치오 Tharsic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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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성체를 들고 있는 타르시치오 성인.
성인. 로마의 순교자. 복사와 첫 영성체하는 어린이들 의 수호 성인. 축일은 8월 15일. [역사적 행적] 그의 행적은 교황 다마소 1세(366~384) 의 <성체를 위한 소년 순교자〉라는 타르시치오를 위한 헌시에 언급된 것이 전부이다. 이 헌시에서 교황은 타르 시치오와 스테파노를 대비시키고 있다. 즉 스테파노가 유대인들이 던진 돌로 순교한 것과 마찬가지로 타르시치 오도 성체를 모신 가운데 이교도들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그는 "성난 개처럼 날뛰는 폭도들에게 성체를 빼앗기느니 죽음을 택하겠다"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말을 하였다는 것은 교황 다마소 1세가 강력하게 증언하기에 신빙성이 있다 고 여겨진다. 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설 에 의하면 타르시치오는 교황 스테파노 1세(254~257)의 복사로 일하였다지만, 이는 교황 다마소 1세의 시에 나 오는 내용을 근거로 꾸며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타르 시치오는 3세기 중반에서 4세기 초반 사이에 순교하였 다. 그의 무덤은 비아 아피아(Via Appia)에 있는 성 갈리 스도(St. Callistus)의 카타콤바에 있으며, 교황 다마소가 명한 문구가 후에 새겨졌다. 그리고 7세기경에 교황 제 피리노(199~217?)와 함께 같은 무덤에 안장되었다. 타르 시치오는 3세기경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심하던 시절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학자들의 추측에 의하 면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 때라고 한다. 그러나 데 치우스 황제(249~251)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전설과 공경] 타르시치오는 복사의 수호 성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소년다운 용기와 신앙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신앙을 위해 박해를 이겨내 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 다. 6~7세기경에 다마소의 카르멘(Carmen des Damasus)이 쓴 《스테파노 교황의 수난》에서는 타르시치오가 교황 스테파노 1세의 복사로 묘사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 람들의 존경과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가 서기 257년에 순교한 것으로 나와 있다. 특히 타르시치 오는 어린 나이에도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여 성 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타르시치오에 관한 전설은 많은데, 그중 하나는 다음 과 같다. 타르시치오가 살던 3세기 말경에 많은 그리스 도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다. 한번은 미사가 끝난 후 신 부가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이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였으나, 아무도 감히 감옥까지 성체를 모 시고 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가는 도중 이교도들에게 붙잡혀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어린 타 르시치오가 나서서 그 일을 자청하였다. 너무 어린 것을 걱정하는 신부에게 그는 자신이 어리기 때문에 경비병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신부도 이 말에 동의하였 다. 그래서 타르시치오는 성체를 모시는 임무를 맡게 되 었다. 그런데 감옥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 들은 같이 놀자고 강요하지만 타르시치오는 급한 일이 있다고 거절하며 서둘러 가려 하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의 손에 있는 성체를 발견하고 빼앗으려 하자, 이를 거 부하는 타르시치오와 친구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급기 야는 친구들이 돌로 그를 쳤다. 이때 지나가던 군인이 이 들에게 다가오자, 친구들은 도망가고 타르시치오는 온몸 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군인에게 자신을 주교에게 데 려다 줄 것을 부탁하여 주교를 만난 타르시치오는, 성체 를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들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하며 숨을 거두었다. 이보다 좀 더 변화된 전설은 다음과 같다. 타르시치오 는 복사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는 이교도들이 그리 스도인들을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 살해하던 때였다. 어 느 날 신부가 미사를 마친 후 이 지하 감옥에서 죽어 가 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전해 주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모 두 그 일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타르시치오가 나 서서 그 일을 자청하였다. 지하 감옥으로 가는 도중에 친 구들을 만나 다툼이 벌어지고 폭행을 당한 그는 길에 쓰 러지게 되었다. 이때 그리스도교 신자인 한 군인이 나타 나 타르시치오를 구하고 신부에게 데려갔다. 그 와중에 도 타르시치오가 성체를 그대로 간직한 것을 발견한 신 부는 매우 기뻐하였다. 이러한 전설들은 모두 어린 그리 스도교 신자들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교황 다마소 1세가 타르시치오에게 헌정한 시의 내용 을 응용하여 영국의 추기경인 와이즈먼(N.P.S Wiseman, 1802~1865)이 쓴 《파비올라 혹은 카타콤바의 교회》(Fabiola or the Church of the Catacomb, 1854)라는 소설로 타르 시치오 이야기는 유명해졌다. 이 소설에는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전설적인 이야기는 미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1920년경에 설립된 타르시치오 형제단(Tarcisius-Brunderschaft)이 주도한 성체 신심 운동에 활용되었다. (⇨ 달시시오 ; → 다마소 1세) ※ 참고문헌 J.P. Kirsch,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XIV, K. Knight, 2003/ Ekkart Sauser, Biographisch-Bibliographishe Kirchenlexikon, Band XI, Verlag Traugott Bautz, 1996, pp. 543~544/ Josef Rist, Tharsicius, Biographisch-Bibliographische Kirchenlexikon, Band XI, pp. 777~778/ 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996, p. 448. 〔李種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