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시아노 Tatianus(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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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교부. 호교론자. 신학자. 후에 극단적 금욕주의 를 내세워 파문을 받고 교회로부터 멀어졌다. [생 애] 타시아노는 120년 또는 125년경 아시리아 지 역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42).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Epiphanius Salaminius, 310/320~402/403), 테오도레토(Teodoretus, 3937~ 458?) 등의 교부들은 타시아노의 고향을 시리아라고 언 급하였다. 그 이유는 교부들이 시리아와 아시리아를 혼 동해서가 아니라 타시아노의 부모가 시리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과 수사학을 공부한 타시아노는 "여러 나 라들을 돌아다니면서"(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35) 철 학 · 종교 · 밀교 등을 연구하며 진리를 추구하였지만, 이 방 종교의 불합리성과 비윤리성에 크게 실망하였다. 그는 로마에 도착하여 순교자 유스티노(Justinus, 100/110?~165) 를 만나 제자가 되었고, 성서를 학문적으로 연구하였다 (에우세비오, 《교회사》 IV 29). 그는 유스티노를 "참으로 존 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유스티노로부터 가르 침을 받은 타시아노는 성서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인의 경 건한 윤리 생활에 큰 감명을 받아, 진리 탐구의 기나긴 방 랑의 여정을 끝내고 160년경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29). 그의 개종은 신앙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의한 개종이었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bius Caesariensis, 260/265?~ 339)에 의하면, 타시아노는 학문적으로 커다란 명성을 누 렸다(《교회사) IV 16). 그는 로마에 머물면서 스승 유스티 노와 함께 견유학파(犬儒學派, Cynic)의 철학자인 크레 센스와 논쟁을 하였다. 그리고 유스티노가 165년 순교 하자, 유스티노처럼 로마에 자신의 학교를 개설하였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악의적인 감정을 갖 고 유스티노를 비난하였던 크레센스가 타시아노도 비난 하였기 때문이다(《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19). 타시아노 에 의하면, 유스티노가 순교한 것도 크레센스의 악의적 인 모략과 선동 때문이었다. 2세기에 로마 교회를 크게 위협했던 이단자 마르치온(Marcion, ?~160?)과 맞서 싸운 아시아 출신의 로도(Rhodo)가 타시아노의 제자였다(에우 세비오, <교회사> IV 16). 에피파니오의 저서 《약 상자》(Panarion 46, 1)에 따르 면, 타시아노는 성찬례 때 포도주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오직 물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 때문에 172년경 로마에서 파문당하자, 그는 그리스를 거쳐 메 소포타미아로 가서 극단적인 금욕주의 성격을 지닌 에그 크라테이아파(zppominu. 절제)-성찬례 때 포도주를 사 용하지 않고 물만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과리(Aquar)라 고도 한다-를 창설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시리아, 안티 오키아, 칠리치아, 피시디아 지방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 하였다. 리용의 이레네오(Ireneus Lugdunensis, 130/140?~ 202?)는 "유스티노가 순교한 후에 타시아노는 그리스도 교와 결별하고, 스승의 사상에 반대하여 자신의 학파를 만들었다"(《이단 논박》 I 28, 1)라고 하였다. 에그크라테이아파는 세상과 육체를 적대시하는 윤리관에 입각한 엄격한 금욕주의자들로, 일체의 육식과 술 을 금지하였다. 엄격한 희생과 극기를 이상적인 생활로 간주한 이들은 마르치온과 사투르니누스(Sauumimus, 1세 기 후반)처럼 결혼을 반대하였다. 타시아노는 결혼이 타 락이나 간음과 같은 죄라고 주장하였다(에우세비오, <교회 사》 IV 29 : 이레네오, 《이단 논박》 I 28, 1 ; 히폴리토, <모든 이단에 대한 논박》 VIII 9). 또한 그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며, 결혼하는 것은 악마와 간통하고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극 단적 금욕주의는 인간의 육체를 천시하는 그노시스주의 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타시아노는 많은 작품을 저술하였지만 완전하게 전해 지는 것은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Oratio ad graecos, xoyos Ttpos "EDivvac(m이(이우에우세오, 《교회사》 IV 29) 〈디아테사론)(Diaeessaron, 8ld teooopov)은 일부만 전해 진다. 유실된 작품들로는 내용적으로 인간론에 더 가까 운 《영혼론》, 《악마론》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으 며,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가 언급한(《양탄자) Ⅲ 12, 81, 1) 《구세주에 의한 완전함》이라는 작품도 있다. 타시 아노가 언제 어디에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第一 〔신학 사상]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다른 모든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그리 스도교는 새로운 종교이며 미개한 문화에 속한 것이었 다.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주장에 대해 타시아노는 그리 스인들의 문화적 · 철학적인 우월감을 반박하였다. 그는 그리스 문화와 철학을 전면 부정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우 월성과 고대성을 강조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 철학과 종교에는 참된 진 리가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교만이 참된 철학이고 종교이 다. 그리고 하느님만이 진리 자체이며 구원이다. 그리스 도교는 그리스의 철학이나 종교보다 훨씬 더 오래된 종 교이기 때문에 더 우월하다. 성서는 그 어떤 그리스 작품 들보다 더 오래되었고, 신성한 진리를 지녔다. 그는 태양 과 달, 그리고 여러 피조물을 신으로 숭배하는 그리스인 들의 문화와 철학을 반박하였다. "태양과 달은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내 하인을 숭배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지팡이와 돌멩이를 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4). 타시아노의 일관된 관심사는 유일신 사상이다. 초월성 을 지니신 하느님은 우주 만물의 기원이고 주인이다. 하 지만 타시아노의 신학은 대체로 유대 그리스도교적인 경 향을 띠고 있으며, 어떤 점들은 아주 급진적이고 그노시 스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그의 독창적인 신학 사상 은 로고스 발현 사상과 부활이라는 주제를 제시한 점 그 리고 악마론을 발전시킨 점이다. 그 외에도 천사의 타락 에 대한 우주적인 개념과 성령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지 만, 참신성이 떨어지고 유대교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처럼 될 수 있다고 타시아노는 말하 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에 대해 알아야 하고, 인간을 악마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줄 진리를 깨 달아서 잃어버렸던 성령의 은총을 회복하여야 한다. 그 렇게 되면 최후의 심판 때 인간은 불멸의 보증을 받게 된 다. 이 같은 구원론은 일종의 '지적 구원론' 이다. 그는 아담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왜냐하면 아담은 하느님께 불순종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발렌티누스(Valentius, 1세기 중반~2세기)의 추종 자들처럼 일종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에온' 체계를 만들 었다(이레네오, 《이단 논박》 I 28, 1 : Ⅲ 23, 8 히폴리토, 《모 든 이단에 대한 논박》 VII 9). 그는 새 인간(그리스도, 그와 함 께한 금욕적인 그리스도인)과 옛 인간(아담, 금욕적이지 못해 서 단죄받은 인간)을 극단적으로 대조시키면서 순결하고 금욕적이고 가난한 그리스도인을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 하였다.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은 일관성과 논리성이 부족 하고 장황한 설명이 많기 때문에 일관된 논점을 파악하 기가 어렵다. 그런 탓에 타시아노의 신학에는 정통 그리 스도교 사상과 이단 사상이 뒤섞여 있다. 그는 구약성서 를 하느님의 작품이 아닌 악마 데미우르고스(Dermingos) 의 작품이라고 배척하였고, 바오로의 편지 가운데 일부 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그노시스주의 의 영향을 받은 것이나, 그가 그노시스주의자였다고 단 정지을 수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지 만, 현존하는 작품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만을 갖고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 타시아노는 자신의 스승인 유스티노와 비슷한 점이 많 다. 유스티노처럼 그도 진리를 찾아 방황하다가 그리스 도교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리 스 철학과 이교 사상, 신앙에 대한 입장은 서로 달랐다. 유스티노는 '로고스' (1ogos)에 관한 신학을 통해 이성과 신앙, 학문과 종교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그는 그리스 철 학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면서, 철학이 계시 진리를 이해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러나 타시아노는 이교 문화의 예술 · 학문 · 종교 · 사상 을 모두 거부하면서 그리스 문화를 극단적으로 배척하였고, 유스티노의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교육 방법에 반대 하면서 철저한 흑백 논리로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타시아노는 모든 점에서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극단론 자였고,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155?~230/240?) 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타시아노는 '그리스인들의 테르 툴리아노' 였다. 테르툴리아노처럼 그의 성격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완고하였다. 뜨거운 열정과 지성을 지닌 그는 증거를 들이대며 맹렬하게 헬레니즘을 반박하여 상대방 의 반론을 철저하게 차단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철 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그리스 철학을 마음대로 인용하였 다. 타시아노는 호교론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극단적인 파 괴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는 결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였다. 그의 극단 적인 엄격성과 완고함, 비타협적인 성격은 그의 작품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에 잘 드러난다. 이런 성격 때 문에 그는 자신이 몸담았고 수호하였던 그리스도교를 끝 내 등지고 말았다. [저 서]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 이 저서는 일종의 호교론으로, 총 4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의 저술 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저 술 시기는 대략 170년경, 즉 유스티노가 순교(165)한 이 후부터 타시아노가 이단 사상에 빠지기 전(172)까지의 시기이다. 이 작품은 로마에서 저술되었을 것이다. 그러 나 이 작품이 그리스어로 쓰여졌다는 점과 "여러분 그리 스인"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14)과 "로마인”(《그리스인 들에 대한 연설》 35)을 구별하였다는 점 때문에, 하르나크 (A. von Harnack, 1851~1930)는 그리스에서 저술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저서에서 타시아노의 주된 관심사는 이방인 독자들 로 하여금 자신들의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진리의 길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 그는 성서를 통해 참 진리를 찾았 고, 성서에 나타난 유일신인 하느님과 우주론, 인간론에 감탄하였다. 그는 자신을 진리의 전달자라고 말한다(《그 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17).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자신을 가르친 스승이었고, 그리스 철학보다도 더 위대 한 철학이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그 어떤 철학으로 도 오염되지 않는 신성한 종교이며, 남녀노소를 불문하 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종교라고 하였다(《그리스인들에 대 한 연설》 25, 32). 이 작품은 여섯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론(1~3) 에서 타시아노는, 그리스 문화는 야만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무익하다고 주장한다. 문화적 우월감에 빠져 있 는 그리스인들에게 그는, 그리스인이 자랑하는 모든 업 적은 사실상 그들이 말하는 미개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을 부도덕하고 식인 종이라고 비난하며 박해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반박 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 지혜가 그리스인의 지혜 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이방인들은 비윤리적이고 무절 제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단정하고 절제된 삶을 살기 때 문이라는 것이다. 본론의 첫째 부분(4~7)은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우주론을 논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초월성, '로고스' 의 역사(役事)함, 인간 창조, 부활, 공심판, 천사의 창조, 자 유 의지, 천사의 타락, 아담과 하와의 범죄, 마지막 심 판, 타락한 천사와 악신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하 느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며 초월자이고, 제1 원인이 며 신령한 존재로 세상 만물을 지배한다. 그는 성부와 로 고스의 관계, 사물의 형성과 우주 창조의 관계에 대해 설 명하였다. 둘째 부분(8~20)은 악마른(Daemonologia) 성령론, 심리학, 구원론에 대한 내용이다. 점성술은 모두 악마의 작용이며, 사람은 자유 의지를 남용함으로써 악 마의 노예가 되었다. 이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성령과 일 치하는 것이며, 성령과의 일치는 인간성을 회복하는 최 선의 방법이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악마의 유혹에 빠져 범죄함으로써 신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악마는 물질과 온갖 악의 모상이며, 뉘우칠 수도 없고 은총을 회 복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 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뉘우치고 희생 · 극기함으로써 불멸의 은혜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 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각 오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셋째 부분(21~30)에서는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도교 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 스의 제신, 의학, 연극, 정치, 도덕은 불합리하고 비도덕 적이며 무가치하다. 그리스 연극은 악폐만 끼치고, 원형 경기장은 마치 도살장을 방불케 하며, 그리스의 춤과 음 악과 시 등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처럼 그리스 철학과 법은 거짓과 모순 덩어리이지만, 그리스도교는 참 진리 를 지녔으며 구세주의 육화는 영원한 생명의 보증이다. 넷째 부분(31~41)은 그리스도교의 고대성과 윤리성을 강조한다. 그는 소위 연대기적인 증거를 제시하면서, 그 리스도인이 그리스인들보다도 더 오래되었고 권위가 있 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모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Homeros, 기원전 9~8세기경)에게서 끝난다. 유대교에서 유래된 그리스도 교는 그리스의 종교보다도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리 스도교가 참 진리의 종교라는 것이다. 타시아노는 그리 스인들의 도덕적인 타락과 방탕함을 비난하면서 그리스 도인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교의 가르 침과 윤리는 사람을 온갖 사리사욕, 시기, 질투에서 해방 시킨다. 자유와 해방과 구원은 그리스 사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내용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부도 덕하고 식인종이다"라는 비난은 다 조작된 것이며, 이런 비난과 고발은 오히려 그리스 종교와 풍습에 해당된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 끝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설명하 면서, 하느님께 귀의할 것을 그리스인들에게 호소하였 다. 자신도 한때 어리석었지만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을 알게 된 이상 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 는 언제든지 반대자들과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 하면서 작품을 끝맺는다(42) 《디아테사론》 : 네 복음서에서 중복된 내용들을 빼내 어 종합 · 정리한 다음 일관되게 예수의 생애를 편집한 이 저서는 신약성서 정경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가치 가 있으며, 성서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작품 은 5세기에 성서의 정경이 확정되기 전까지 시리아를 중 심으로 한 동방 교회에서 전례 때 공식적으로 복음서로 사용되었으며, 동방 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저서는 요한 복음서의 그리스도론을 기본으로 하여 예수의 생애를 연속적으로 일관되게 서술하면서, 네 복 음서의 내용을 비교적 자유롭게 발췌하며 복음서의 순서 를 바꿔 놓았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 도의 족보에 대한 내용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 저서는 이런 형식으로 쓰여진 최초의 작품은 아니지만, 이런 유 형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작품이다. 여 기에는 당시 유행하던 외경 작품들 가운데 금욕주의적이 고 반유대적인 내용과 그리스도 가현설적인 내용들이 들 어 있다. 《디아테사론》은 아마도 타시아노가 로마에서 메소포 타미아로 돌아간 후에 저술되었을 것이다. 작품의 원본 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쓰여진 것이 이 작품의 원본인지 시리아어로 쓰여진 것이 원본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짧은 단편들만 남아 있는 이 작품의 제목 을 근거로 판단할 때, 원본은 그리스어로 쓰여졌을 것이 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승사를 근거로 판단할 때에는 시리아어로 쓰여졌을 가능성이 많다. 360~370년경 에프렘(Ephracm, 306?~373)이 《디아테 사론 주석서》를 저술하였지만, 이 작품의 원본은 유실되 었다. 하지만 《디아테사론 주석서》의 아르메니아어 번역 본이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며, 그 외에도 단편적인 아랍 어, 페르시아어, 라틴어 번역본들이 있다. 이 책의 라틴 어 번역본은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최초의 번역서일 것이라고 학계에서는 추측한다. 1934년 그리스어 역본 이 시리아의 두라에우로로조(Duma-Eumps)에서 예일 대학 고고학 탐사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 작 품이 254년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한다. 타시아노가 《디아테사론》을 저술할 때, '어느 정도까 지 마르치온의 복음서에 반대하여 저술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그가 마르치온의 가르침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 았나?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주 제들이다. (V 《디아테사론》 ; → 두라-에우로포스 ; 에 프렘 ; 에피파니오 ; 유스티노) ※ 참고문헌  (PG》 6, 803~888/ Tatian, Oratio ad Graecos and Fragments, Oxford, Clarendon Press, 1982/ Battista Mondin, Storia della Teologia, vol. I, Bologna, Edizioni Studio Domenicano, 1996, pp. 93~96/ B. Altaner, Patrologia, trans. by A. Babolin S. I., Assisi, Marietti, 1983, PP. 73~751 David W. Bercot ed., A Dictionary of Early Christian Beliefs, Massachusetts, Hendrickson Publishers, p. 638/ F. Bolgiani, (DPAC》 11, PP. 3354~33571 G. Bosio · E. dal Covolo . M. Maritano, Introduzione ai Padri della Chiesa : Secoli I e II, Torino, Società Editrice Internazionale, 1993, PP. 184~194/ Jean Danielou, Nuova Storia della Chiesa : dalle Origini a S. Gregorio Magno, trans. by A. Milanoli Berti, Genova, Marietti, 19890, PP. 146~147/ Johannes Quasten, Patrologia, vol. I, trans. Nello Beghin, Assisi, Marietti, 1992, Pp. 195~201/ Manlio Simonetti · Emauela Prinzivalli, Letteratura cristiana antica, vol. I, Forli, Piemme, 1998, PP. 292~307/ William A. Jurgens, The Faith of the Early Fathers, vol. I, Minnesota, The Liturgical Press, 1970, Pp. 65~68/ S. Di Cristina, L'idea di dynamis nel De Mundo e nell'Oratio ad Graecos di Taziano, Augustinianum 17, 1977, pp. 458~504/ H.R. 드롭너, 하성수 역, 《교부학》, 신학 텍스트 총서 2.2, 분도출판사, 2001, pp. 158~162. [盧成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