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울러, 요한네스 Tauler, Johames(1300?~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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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코회의 신비가. 설교가. 요한네스 에크(Johannes Eckhart, 1260~1328), 하인리히 주조(Heinrich Suso 또는 Heinrich Seuse, 1295?~1366)와 함께 14세기 독일 신비주 의를 대표하는 인물. [생애와 활동] 타울러는 1300년경 당시 독일 지역인 슈트라스부르크(Strassburg, 현 Strasbourg)의 부유한 집안 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연도에 대해서는 증명할 문 서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14세 이상이어야 수도회에 입회할 수 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15~20세에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을 것이다. 도미니코 회의 양성 지침에 따라, 그는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수도 원의 회칙과 영성, 물리학 · 천문학을 포함한 자연 철학, 논리학, 윤리 철학, 성서, 신학 등을 공부하였다. 일반적 으로 이 교육을 마치면 쾰른의 수도회 대학에서 대학 과정(Studium generale)을 밟았으나, 타울러가 정말 쾰른에 서 공부를 하였는지, 그리고 에크하르트의 강의를 듣고 이 기간 중에 주조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한다. 그것을 증명할 어떤 문헌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타울러의 신학 사상에 강 하게 나타나는 에크하르트의 사상과 노선을 감안할 때, 그가 에크하르트와 접촉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 다. 만약 접촉하였다면 그 시기는 1325~1329년 타울 러가 라인 강 상류에 머물렀을 때이거나, 에크하르트가 슈트라스부르크 수도원에 머물렀던 시기(1313~1322) 중 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타울러는 단지 에크 하르트의 저서를 통해 그를 알게 되었고, 그의 사상을 계 승하였을 수도 있다. 타울러는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탄핵하려는 당시의 흐름을 거슬러 주조와 함께 에크하르트의 사상에 나타나는 가톨릭 사상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또 그를 변호하고 그의 영성을 이어 간 면에서 에크하르트의 훌륭한 제자 라 할 수 있다. 신학 공부를 마친 타울러는 젊은 나이에 설교 직무를 맡았는데, 개인 영성 지도가 어려웠던 당시 의 수녀원에서 그가 했던 설교는 주로 수도 생활에 도움 이 되거나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길에 대한 신비주 의 신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336년부터 그는 슈 트라스부르크에서 위대한 설교자, 영적 지도자로서의 명 성을 얻었다. 타울러와 그가 속한 수도원은 아비뇽에 거 주하던 교황 요한 22세(1316~1334)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루트비히 4세(1328~1347) 사이에서 황제의 편을 들 었다. 그 결과 수도원과 소속 수사들 전체가 1329년 교 황으로부터 성무 집행 정지를 받았고 이 조치는 1353년 까지 이어졌다. 1338~1339년에 그들은 바젤의 도미니 코회 수도원으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타울러는 설교와 강의를 하였다. 또한 바젤 교구 소속인 뇌르들링겐(Heinrich Nördlingen) 신부와 함께 라인 지역을 포함하여 독일 어권 국가에 급속히 확산되던 '하느님의 벗들회' (Gottesfreunde) 지도에 전념하였다. 1342년 수도원이 다시 슈 트라스부르크로 귀환하였지만, 타울러는 1346년에야 귀환하였다. 이후 그는 이곳에서 '하느님의 벗들회' 를 조 직하였다. 그의 설교자로서의 활동은 슈트라스부르크나 쾰른, 바 젤에 있는 수녀원만이 아니라 라인 지역의 베긴회원들 및 사회적 지위나 직업의 구분 없이 신앙심이 깊은 남녀 평신도들,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에게까 지 확산되었다. 그의 명성은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까지 널리 퍼졌다. 1346년에 그는 수녀원에서 설교하기 위해 여러 차례 쾰른을 방문하였으며, 벨기에와 파리에 도 갔다고 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타울러는 1361 년 6월 16일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학 사상과 영성] 타울러의 신학 사상은 그가 살던 시대의 신비 신학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에크하르트의 사상을 계승한 그는 영혼 안에 개입된 은총에 대한 본체 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본성적으로 하느님의 것 인 영혼 안에 내재한 신적 본질, 영혼의 다양한 능력, 인 간 영혼과 하느님과의 동일시 그리고 하느님 안에 태어 나는 여러 방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의 심리 적인 면을 중시하고, 하느님을 찾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 를 따르고 모방하며 그의 수난에 참여해야 함을 강조하 는 것은 에크하르트와 다른 점이다. 그는 아레오파지타 의 디오니시오(Dionysius Areopagita)에 호감을 갖고 있었 고, 신플라톤주의를 많이 따르고 있다. 타울러에 의하면, 구원을 향한 정진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자기 자신 에 대한 인식이다. 즉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서는 자신을 정화시키는 계속적인 금욕 생활이 필요하 다. 타울러는 설교를 통해 결핍, 오류, 잘못된 행동, 궤 도를 벗어난 자신의 처신을 바로 볼 수 있을 때까지 자기 정화와 극복이 필요하다고 자주 언급하였다. 이러한 자 기 성찰은 외적인 행위를 잘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내부 에 있는 충동성을 알기 위한 것이다. 타울러는 인간을 세 부류로 구분하였다. 즉 감각적이 고 본능적인 외적 인간, 지성을 지닌 이성적 인간 그리고 영혼의 가장 승고한 부분인 영적 인간 등이다. 이 관점은 사도 바오로의 사상과 유사하다. 외적 인간은 윤리적인 삶으로 정화되어야 하고, 금욕으로 조절되면 이성적 인 간이 나타난다. 이성적 인간은 지성과 교육을 통해 하느 님이 주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복종하여야 한다. 이렇 게 하면 인간의 우월적 부분인 영적 인간이 나타난다. 이 세 부류의 인간은 세 단계의 인간 성숙에 부응한다. 하느 님에게 접근하는 길은 바로 이 세 단계의 점진적인 상승 에 있다. 타울러가 사용하는 핵심적인 용어는 하느님을 향한 영혼, 영혼의 능력이다. 그는 에크하르트처럼 인간 본성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다루고 있다. 명상은 바 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방법이다. 인간은 이를 위해 자 신이 받은 은사인 영혼의 모든 능력과 온 정력을 다해야 한다. 영적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서 타울러는 '심정' (心情, Gemut)과 '근저' (根底, Grund)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심정' 은 신적 행위에 순종하고 대답하는 영혼의 가장 깊은 내적인 부분으로, 인간을 하느님에게로 되돌아가도 록 촉진하는 영혼의 역동성이다. 즉 영적 영혼을 구축하 고 있는 지성이나 의지의 가장 승고한 부분으로서, 단순 하고 본질적이며 형상적인 방법으로 끝없이 선하고 자애 롭고 진실한 하느님에게로 향한다. 타울러에게 영적 존 재는 친밀하면서도 끝없이 초월적 긴장 안에 있는 신적 인 불티이며, 이 불티는 신적 심연에 이르기 전까지는 결 코 쉬지 않는다. 하느님과의 합일은 영혼의 가장 친밀한 밑바닥인 '근저' 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영혼은 이 신 적 심연에서 진정한 자아〔眞我〕, 창조되기 이전의 자아 상태와 만난다. '근저' 는 영혼이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 이며, 가장 내적이고 고독하고 신비로우면서도 자유로운 어둠이다. 타울러는 심연적인 밑바닥(Gmnd)과 영혼의 가장 승고한 본질적인 열망인 '심정' 을 동일시한다. 밑 바닥이나 인간 지성과 의지의 가장 높고 승고한 부분인 '심정' 은 영적 영혼의 두 측면일 뿐이다. 삼위 일체의 하 느님은 창조 이전 상태인 심연(Grund)에 머무르고 있으 며 이곳의 주인이다. 아들(예수 그리스도)이 아버지(하느 님)로부터 좇아 난 것처럼, 하느님은 인간 영혼을 자신으 로부터 좇아 나게 하였다. 인간 영혼은 아들 안에서 아버 지로부터 좇아 난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아들과 함께 하느님과 하나 됨으로써 다시 합류한다. '심정' 으로 인 해 인간은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을 알 수 있고, '신화' (神化)될 수 있다. '신화' 는 몇 명 의 특수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 인에게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자기 벗음' , 즉 '자기 무화' 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 준비 과정 으로 고독, 내적인 정신 집중, 소음으로부터의 도피, 감 각과 사고의 번잡함으로부터의 벗어남, 그리고 무엇보다 내적 '자기 무화' 가 필요하다. 타울러는 감각과 영성의 정화를 위한 '어두운 밤 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후 에 이 말을 십자가의 요한(Joannes a Cruce, 1542~1591)이 다시 사용하였다. 하느님과의 합일에서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영혼 바닥에 있는 그분의 현존에 대한 내적 체험 이다. 이 체험은 하느님에 의해 변형되고 성화된 영혼 안 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지각하는 인지적 체험과는 달리, 심연에서 자신을 완전히 벗음으로써 체험하는 영혼의 초 월적 변형으로 인한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사랑의 경험 이다. 이러한 하느님과의 합일 체험은 오래 계속되는 것 이 아니라 전광처럼 잠시 반짝이는 일시적인 것이다. 이 런 의미에서 합일 체험은 명상적 시간이지 명상적 삶이 아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데 있어 신비 명상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타울러에게 신비 명상 은 완전을 향한 지속적인 강한 욕구를 유지시키기에 중 요한 것이다. 타울러가 주조나 에크하르트와 다른 점은 영혼의 상승을 성령의 은총과 연결시킨 점이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서 영혼의 계속적인 움직임은 바로 성령이며, 성령의 은 사 중에 특히 탁월한 것은 인간을 명상으로 이끄는 지성 과 지혜이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 (Thoms Aquinas, 1224/1225~1274)의 견해를 따랐다. 그는 성령의 은사를 적극적 · 수동적 성령의 선물로 나누는데, 적극적인 것은, 덕의 실천에서 시작하여 영적 청빈을 실 천하는 단계이다. 그렇게 되면 영적 인간은 신적 삶으로 전향하는데, 이 단계에서 하느님의 성령과 인간의 영혼 이 합일된다. 하느님께 전적으로 맡겨진 인간의 영혼은 고정 관념과 개념이 끊어지고 감정, 성찰의 인식마저 없 어진 '근저' 에서 완전 수동적이 되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하느님이 자신의 본성인 영을 인간에게 내줌 으로써 인간 영혼은 하느님의 영과 통합되고 동일시된 다. 그러나 피조물과 신적 존재와의 동일시에 있어 타울 러가 에크하르트와 구별되는 것은 인간의 영이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자기를 잃어버리고 신적 심연의 바다에 빠지게 될 때 영적 자아는 융해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 라 본질적으로 신적 어두움에 완전히 침투하는 것이다. 이 합일은 지성의 인식적 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완전 수동성 안에서 일어나는 애정적인 합일이다. 이 상태가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하기 때문에 언어로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자신의 심연(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는 타울러의 신비 신학은 동양 종교, 예를 들 면 힌두교, 불교, 도교의 신비 사상과 유사성이 많다. 신비주의에 있어 타울러는 에크하르트보다 윤리적 · 심리적인 면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일상 생활을 극복하 는 데 더 실제적이었다. '근저' 를 정화시키는 것 역시 하 느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그분이 어떤 것을 주든 만 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이며, 어떠한 상황에 서도 그분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신비적 합일 체 험을 하고 난 뒤에도 현실로 돌아와 하느님의 뜻을 실천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 태어나는 것은 그리스 도의 삶과 수난을 따름으로써 하느님의 뜻에 자기를 맞 추는 삶에 있었다. 타울러는 계속 사랑을 실천하는 삶 안 에 명상적 삶을 살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것은 활동적 삶 이 단순히 명상적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결실 자체이 기 때문이다. 타울러는 설교에서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교회에 나가기 위해 하던 일을 내팽개치는 사람보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사람이라고 하 였다. 이처럼 그는 내적 자유를 강조하였다. [저 서] 타울러는 생존 시 단 한 권의 책도 출판하지 않았다. 그의 설교집은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에 의해 만 들어졌다. 그의 설교는 144개라고 전해지지만 84개만 남아 있고, 이중 80개가 타울러가 쓴 것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타울러의 최초 설교집은 1498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는 서문이나 결론 부분이 없다. 1508년 아우구스타(Auguta)에서 출판된 책은 루터(M.Luther, 1483~1546)가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 하였다. 1548년 콜른에서 타울러의 저서가 최초로 카르 투지오회 회원인 수리우스(Lorenz Surius)에 의해 라틴어 로 번역되어 《신적 체계》(Institutiones divinae)라는 제목 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으로 그의 사상은 급속히 유럽에 전파되었다. 이 책에는 153개의 설교, 30개의 서간 그 리고 영성, 찬미가 등 10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타울러의 설교집은 주로 수녀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신비적인 경향을 지니며, 인간 의지의 노력의 중요성을 다루기보다는 하느님의 은총과 그분의 섭리에 맡기는 행 위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형식 면에서는 전례력에 따른 성서 말씀을 해석 · 설명함으로써 주제에 따른 설교의 구 조적인 규율을 지키고 있다. 설교집은 높은 수준의 신비 주의 사상을 일반인들이 잘 이해하도록 단순하고 풍부한 은유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성격상 일정한 구조로 설교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질서가 부족하고 혼합적인 경향을 보이며, 주로 회개로의 초대를 다루고 있다. [평 가] 타울러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려 는 '하느님의 벗들회' 의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였고, 에 크하르트의 신비 사상을 변호하였으며, 자기 성찰은 없 고 외적 형식에 얽매인 바리사이파적 그리스도인을 비판 하였다. 루터는 구원의 길이나 인간의 업적에 대한 회의 주의, 인간의 내적 유혹을 이해하는 데 타울러의 설교를 사용하였고, 그로 인해 타울러를 프로테스탄트 개혁자 중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또한 완전한 수동성 안에서 하 느님과의 합일을 원하였던 그의 신비주의 신학은 정적주 의(靜寂主義)로 몰렸고, 16세기에 프랑스, 스페인 및 벨 기에에서 그의 설교는 비난받거나 금지되었다. 1578년 예수회 신학자인 가니시오(P. Canisius, 1521~1597)의 변 론에도 불구하고, 타울러의 저서는 예수회에 의해 금서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아빌라의 데레사(Theresia ab Avila, 1515~1582), 십자가의 요한, 벨라르미노(R.F.R. Bellarminus, 1542~1621), 십자가의 바오로(Paulus a Cruce, 1694 ~1775)에 의해 그의 명예는 다시 회복되었고, 17세기의 프랑스 학파에 의해 호평을 받았다. 보쉬에(J.B. Bossuet, 1627~1704)는 타울러를 가톨릭 교회의 가장 전통적인 신 비주의자 중 한 사람으로 칭송하였다. 타울러는 투명하 고 밝은 영성과 깊은 사상으로 '조명받은 박사' , '탁월 한 박사' 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 독일 신비주의 ; 신 비 신학 ; 신비주의 ; 에크하르트, 요한네스 ; 주조, 하 인리히) ※ 참고문헌  B. Lavaud, L'angoisse spirituelle selon J.T., Études Carmélitaines 23, 1936/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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