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케, 에밀 조제프 Taquet, Emile Josph(1873~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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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파리 외방전교회 한 국 선교사. 세례명은 에밀리오. 한국명은 엄택기(嚴宅基) 1873년 10월 30일 프랑스 북부 캉브레 (Cambrai)의 에크(He- ck)에서태어난 타케는 1892년 9월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에 들어 간 후 1897년 9월 사 제 서품을 받았다. 그 리고 10월 프랑스를 떠나 이듬해 1월 5일 리굴로(A.P. Rigoulot, 睦) 신부와 함 께 서울에 도착하였다. 1898년 4월부터 부산 초량(현 범 일) 본당의 3대 주임과 1901년부터 마산(현 완월동) 본당 의 초대 주임을 역임하였고, 동래, 밀양, 김해, 진주 등 지에서도 활동하였다. 1902년 4월에는 제주 한논(현 서귀포) 본당의 3대 주 임으로 부임하여 본당을 홍로(현 서귀포시 서홍동)로 이전 하는 한편, 신축 교난(辛丑敎難, 제주 교안)으로 인해 촉 발된제주도민과 천주교인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14년 목포 산정동 본당의 카넬(M.-J. Canelle, 簡弘模) 신부와 나주 계량(현 노안) 본당의 카다 스(J. Cadars, 姜達淳) 신부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징집되 어 프랑스로 귀국하자, 타케 신부는 홍로(현 서귀포) 본당 에 재임하면서 산정동 본당과 계량 본당에서도 사목 활 동을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산정동 본당의 5대 주임으 로 부임한 후에도 홍로 본당과 계량 본당의 사목을 계속 담당하였고, 진도, 장성, 영광, 함평 등지에서도 전교 활 동을 벌여 나갔다. 또한 사목 활동 중 식물들을 관찰하여 이를 학계에 보고하고, 채집한 식물을 유럽의 식물 박물 관으로 보내는 등 식물 생태 조사에도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 타케 신부는 1922년 8월 대구의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사제들을 양성하였고, 식물의 육종(育 種)과 개량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1928년 10월 페네(J.C. Peynet, 裵嘉祿) 신부의 뒤를 이어 성 유스티노 신학교 3대 교장에 취임하였으며, 1940년 7월 67세의 고령으 로 교장 직에서 물러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와 성영 회 책임 신부로 활동하였다. 1952년 1월 27일 심장마비 로 사망하여 대구 주교관 묘지에 묻혔다. (⇨ 엄택기 ; → 서귀포 본당 ; 완월동 본당) ※ 참고문헌 〈天主敎會報〉 《M.E.P. 선교사 약전》 《가톨릭 사 전》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문사, 1987/ 《위텔 주교 일기》 2~6, 한국교회사연구소. 〔梁仁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