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라집(350?~413)

鳩摩羅什

〔범〕Kumārajīva

글자 크기
2

범어로 쓰여진 인도의 불교 경전을 한역한 역경승이요 중국 삼론종(三論宗)의 시조. 당(唐)의 현장(玄弉, 596?~664)과 더불어 중국 불교의 양대 역경승으로 꼽히 고 있다. 그가 번역한 경전은 이후 동아시아 불교인들에 의해 널리 이용되어 왔으며, 그 이전 약 250년 간에 걸 친 시행 착오적 번역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평 가되었다. 불교 경전사에서는 구마라집의 번역을 구역이 라 하며, 현장의 것을 신역이라 한다. 구마라집의 전기는 중국의 사서 《출삼장기》, 《고승 전》, 《진서》, 《광홍명집》 등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본래 인도 브라만 계급 출신인 부친과 중앙아시아 구자국(龜 玆國, Kucha) 왕의 누이동생 사이에 태어난 그는 7세 때 모친을 따라 출가하였으며, 9세 때 모친과 함께 인도 서 북부 캐시미르 지방으로 가서 반두닷타(Bandhudatta) 스 승으로부터 소승 불교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그 리고 고향인 구자국으로 돌아오기 전 카쉬가르(Kashgar, 疏勒)라는 곳에서 '베다' 등 인도의 여러 학문을 배웠으 며, 특히 수티야소마(Sutyasoma)를 통해 대승 불교 사상 에 접하면서 이후 대승 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구자에 귀국해서는 20여 년 간 대승 불교의 전파에 힘썼고, 옛 스승 반두닷타를 대승으로 전향시키 기까지 하였다. 379년, 구마라집의 명성이 중국의 전진(前秦) 왕 부 견(符堅)에게 알려지자, 그는 구마라집을 수도 장안에 데려오려는 목적에서 382년에 여광(呂光)이라는 장군을 보내 구자국을 멸하고 구마라집을 사로잡아 오도록 하였 다. 그러나 그 사이에 전진이 망하고 부견이 살해되었다 는 소식을 들은 여광은 후량(後梁)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구마라집을 17년 간이나 중국 서북부 양주(涼州)에 붙 들어 두었다. 그 후 후진(後秦)의 요흥(姚興)은 401년에 후량을 토벌하고 드디어 그를 장안으로 데리고 왔다. 독 실한 불교 신자였던 요흥은 그를 국사로 모셨고, 10여 년 동안 역경과 강론에 전심하도록 후원해 주었다. 그 결 과 구마라집은 중국 체류 13년에 걸쳐 35부 3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경전을 번역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 서도 《대품반야경》, 《묘법연화경》, 《아미타경》, 《유마 경》, 《대지도론》, 《중론》, 《백론》, 《십이문론》, 《십지론》, 《성실론》, 《십송률》 등이 특히 유명하다. 이로써 구마라집이 장안에 온 401년은 중국 불교사에 하나의 커다란 획을 긋게 되었다. 그의 탁월한 번역으로 인해 이전의 부정확했던 경전 번역과 불교 이해, 특히 유 교나 도가 사상과 같은 중국 고유의 사상과 개념을 바탕 으로 하여 이질적인 불교 사상 이해를 추구하던 격의(格 義) 불교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본격적인 불교 이해의 기반이 놓여지게 되었다. 아울러 대승 불교의 핵심 사상 인 공(空) 사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중 론》(中論)을 번역하여 중국인들의 올바른 공 사상 이해 에 획기적인 공헌을 하게 되었으며, 《중론》은 《십이문 론》, 《백론》과 더불어 중국 삼론종의 기본 경전이 되었 다. 당시 그의 문하에는 3,000명의 학승들이 모여들었 는데, 그 가운데서도 도생(道生), 승조(僧肇), 도융(道 融) , 승예(僧叡)를 4대 제자로 꼽는다. ※ 참고문헌  Kenneth Chen, Buddhism in China,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4/ 카마다(鎌田茂雄), 《중국 불교사》. 〔吉熙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