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신화화

脫神話化

[영]demythologizing · [독]Entmythologisier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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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루터파 교회의 신학자인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이 주장한 실존론적 성서 해석 방법. 신약성 서에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들은 당시의 신 화적 표상과 사고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기에 이를 현대 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실존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신화화' (非神話化) 또는 '탈신화론' (脫神 話論)이라고도 한다. [종교사학적 배경] 종교 개혁 이후 17세기부터 18세 기에 근대 과학의 발흥과 함께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사 상이 대두하여 그리스도교와 격하게 대립하였다. 계시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존립 자체가 도전받을 정도였다. 영국에서는 이른바 이신론(理神論, deism)을 제창한 허 버트(E. Herbert, 1583~1648)가 모든 종교를 자연 종교의 입장에서 이해할 것을 주장하면서 계시보다는 이성이 확 실한 이해의 수단이 된다고 하였다. 그 결과 삼위 일체나 육화에 관한 교회의 교리는 이성에 반하는 것으로 부인 되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18세기의 합리주의를 초 극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을 재건한 사람이 슐라이어 마허(F.E.D. Schleiermacher, 1768~1834)였다. 계몽주의와 함께 당시의 2대 풍조 중 하나였던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종교에 있어서 내적 경건을 중요시하면서, 종 교는 교리보다 생활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려 하였다. 그의 명저 《종교에 관하여 : 종교를 멸시하는 지 성인에게 행한 강론》(Uber die Religion : Reden an die Gebildeten unter ihren Verächterten, 1799)은 그와 같은 종교적 특색이 있는 책이었다. 여기서 그는 종교의 본질은 사유 나 행위가 아니라 경건한 감정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감 정을 분석하려고 하였다. 경건은 일차적으로 직관과 감 정을 중시하는데, 하느님에 대한 감정은 '절대 의존 감 정' (Abhangigkeitsgefuhl)이라이라는 것이다. 종교를 인간의 심정으로 파악함으로써 합리적 이성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 계몽주의나 이신론의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한 것 이다. 이처럼 종교의 본질을 인간의 심정에 바탕을 둔 감 정 경험에서 구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은 근대 자유주 의 신학의 길을 열어 놓았다. 자유주의 신학이 처음에 시도한 것은 성서의 역사적 · 비판적 연구였다. 따라서 역사학을 비롯하여 근대 과학 의 방법론에 의해 성서나 그리스도교 신앙이 새롭게 해 석되었다. 그 선구자는 《비판적으로 고찰해 본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kritisch bearbeitet, 1835~1836)의 저 자 스트라우스(D.F. Strauss, 1808~1874)인데, 그는 복음서 를 비판하며 복음서 안의 신화적 요소를 해소하였다. 또 바우어(F.C. Baur, 1792~1860)는 헤겔(G.W.F. Hegel, 1770 ~1831)의 변증법적 역사 해석으로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해 독자적으로 해명하려고 하였다. 그의 영향으로 종 교 신학의 중점은 성서를 다른 문헌과 동일한 비판적 연 구를 하는 문헌학적 고등 비평으로 발전시켰다. 또 19세 기 자유주의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친 리출(A. Ritschl, 1822 ~1889)은 형이상학적 · 사변적인 방법을 배제하였다. 그 리고 그리스도교의 중심은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 윤 리적 만남이라고 강조하면서 윤리적 의지를 중요시하였 다. 그의 신학은 또한 가치 판단의 신학이라고도 하는데, 그리스도교 신앙이 인간의 윤리적 향상에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 앙의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시대와 관련한 하느님에 관 한 지식은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리츨의 영향을 받은 많은 학자들이 등장하였는데, 그중에서 그리스도교 연구에 종교학, 종교사학의 연구 방법을 적용하여 과학 적 연구를 일층 발전시킨 이른바 종교사학파가 나타났 다. 요약하면,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를 절대 화시키지 않고 상대화시킨 후에 다른 종교와 동렬에 놓 고 역사적 · 사회적 현상으로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동양 의 세계, 유대교, 헬레니즘의 여러 세계와의 비교 연구가 중시되었다. 양식사적 연구는 이 종교사학파가 성서 연 구에 남긴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슐라이어마허 이래의 자유주의 신학과는 현저하 게 다른 경향이 등장하였다. 즉 슐라이어마허가 인간 중 심적으로 생각하였던 신학을 하느님 중심으로 방향 전환 한 것이다. 이런 경향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오토(R.Otto, 1869~1937)였다. 그는 자신의 명저 《성스러움의 의 미》(Das Heilige, 1917)에서 슐라이어마허가 '절대 의존 감 정' 이라고 말하였던 것보다 더 직접적인 감정 체험의 필 요성을 지적하였는데, 그것을 누멘(Numen)적인 대상에 대한 감정, 비합리적이고 신비한 감정이라고 하며 이 비 합리적인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스 러운 것' , 즉 '전혀 다른 것' (das Ganz-andere)으로서의 초 월적 대상으로부터 종교의 본질적 이해가 출발할 수 있다 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자유주의 신학 을 철저히 극복하고 발전시킨 것이 변증법 신학이다. 변 증법 신학은 실존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55)의 변증법적 사유 방법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브루너(H.E. Brunner, 1889~ 1966), 고가르텐(F. Gogarten, 1887~1967) 투르나이젠(R. Thurneysen, 1857~1940) 등을 대표로 한다. 그중에서도 바 르트(K. Barth, 1886~1968)는 《로마서 주석》(Der Kommentar zum Römerbrief, 1919)에서 변증법 신학의 기초를 세웠 다. 그는 성서의 본질이 성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증언하고 있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 느님의 구원 행위가 나타나는 하느님의 말씀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유주의 신학이 성서를 그 시대의 관점 에서 비판한 데 비해, 시대가 성서를 통해 증언되는 말씀 으로 비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하느님만 을 신으로 하는' 신 중심적인 근본 명제가 확립되어 '하 느님의 말씀의 신학' 이 성립되었다. 브루너는 슐라이어 마허 이후 자유주의 신학의 특색을 역사주의와 심리주의 라고 하면서, 이러한 인간학적 신학에 의해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파악할 수는 없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초월적인 신에 이르는 길은 체험도 아니고 인식도 아니며, 하느님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오는 것을 믿는 신앙으로 가능하다고 하였다. 바르트도 인간이 자신을 회복하지 않 는 한 하느님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즉 인간 자신의 힘 만으로는 할 수 없고, 하느님이 인간을 자신에게로 이끌 어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결국 변증법 신학은 인간의 죄 로 인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단절 및 인간적 노력의 불 가능을 강조하는 초월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불트만의 탈신화화] 이상과 같은 역사적 문맥에서 보 면 불트만은 종교사학파에 속하며 복음서의 양식사 연구 를 발전시킨 선구자라고 할 수 있지만, 일찍부터 바르트 의 변증법 신학에도 공감하였다. 그러나 그는 종교사학 파의 역사적 비판주의와 변증법 신학의 계시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객관주의의 양쪽에 편향적인 위험이 있음을 통 찰하고 그 시정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성서 해석을 방법 론적으로 시도하였는데, 그것이 이른바 그가 제안한 탈 신화화이다. 성서에는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불트 만이 들고 있는 예로서 '하늘에 오른다' 거나 '음부(陰 府)로 내려간다' 혹은 수많은 기적의 이야기, 그리고 그 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대리 보상 등이 신화적 요소들이 다. 성서 시대에는 그것이 신화로서 이해되지 않고 직접 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근대적 인간 에게는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불트만은 그러한 신화를 제거하는 형식으로 탈신화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 였다. 왜냐하면 그런 식의 탈신화화는 신화를 제거한다 고 하면서 그 신화와 함께 있는 케리그마(Kerygma)도 제 거하기 때문이다. 불트만에 따르면, 케리그마란 신화와 나란히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 그 속에 내재 해 있는 것이다. 즉 종교사학파에서처럼 신비적 종교성 도 아니고, 자유주의 1학자들에게서처럼 무시간적 진리 도 아니다. 또한 헤겔의 영향하에 있는 절대 정신도 아니 며, 계몽주의자들에게서처럼 영원한 이성적 진리의 완성 도 아니다. 오히려 케리그마는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 보이신 결단의 행위에 대한 사신(使臣, Botschaft) 이다. 불트만은 신약성서가 "하느님이 인간의 구원을 가 져온 한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책"이라고 말하였 다. 그 사건은 신화론적 방법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신화는 제거해서도 안 되고 제거될 수도 없으며, 오히려 그것은 해석(interretieren)되고 설명(auslegen)되)되고 이해 (verstehen)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표현 하는 것과 같은 유비적 표현도 정당하다. 하느님의 행위 는 인간의 삶 속에서 사건이 되어야 하고, 하느님의 사랑 이 구체적 인간인 우리에게 경험되어야만 비로소 인간은 하느님의 행위에 대해 본래적으로(eigentich) 말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존적인 경험은 인간에 대한 신적 인 행위의 사실성을 말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보면 그 가 '탈신화화' (Entmythologisierung)라)라고 한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있다. 불트만 자신도 이 말이 적절한 말 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였는데, 탈신화화란 말은 일반 적으로 신화를 제거한다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런 표현보다는 신화에 대한 '실존론적 해석' 이 란 표현이 그의 사상을 보다 더 잘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불트만은 신약성서의 케리그마(선교) 이해에 탈신화화를 제창함으로써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신약성서 케리그마의 각각의 동기가 고대의 신화적 세계상이나 사유 형식에 따라 표상되었다는 것을 중요시 하고, 19세기 이후 자유주의 신학이 그것을 근대적 사고 에 근거해서 비판적으로 선택하고 삭제한 결과, 신약성 서의 케리그마도 삭제되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였다고 주 장하며 케리그마의 신화적 표상의 적극적 해석을 주장하 였다. 불트만에 의하면 신화는 객관적인 세계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자기를 세계 내에서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해, 즉 인간의 자기 이해를 표상하는 것 이다. 그 때문에 신화는 세계관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학 적인 것, 즉 실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 하였다. 불트만은 케리그마를 인간에게 실존적 결단을 추진하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그에 대응하여 자신의 실 존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비신화화 ; → 고가르텐, 프리드리히 ; 누멘 ; 리출, 알브레히트 ; 바 르트, 카를 ; 불트만, 루돌프 ; 슐라이어마허, 프리드리 히 에른스트 다니엘 ; 스트라우스, 다비트 프리드리히 ; 자유주의 신학) ※ 참고문헌  R. Otto, 길희성 역, 《聖스러움의 意味》, 분도출판 사, 1987/ Walter Schmithals, 邊鮮煥 역, 《불트만의 實存論的 神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 Rudolf Bultmann, History and Eschatology, Harper Torchbook, 1957/ -, Jesus Christ and Mythology, S.C.M., London, 1960. [李恩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