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숭배 塔崇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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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기리는 불탑(분황사 모전 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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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기리는 불탑(분황사 모전 석탑) .


탑을 석가모니(釋迦牟尼, 기원전 624~544?)와 그의 가 르침으로 기리면서 불교 신앙을 고취하는 활동. '불탑 신앙' 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불탑(佛塔) 또는 사리 탑(舍利塔) 숭배를 일컬으며, 후대에 출현한 경탑(經塔) 숭배도 탑 숭배에 포함된다. 탑은 화장을 장례법으로 채택한 불교에서 '사리' 로 불 리는 유해를 묻고 그 위에 돌이나 흙을 높이 쌓는 일종의 무덤으로, 석가모니의 열반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석가 모니의 유해를 봉안(奉安)하고 그 위에 석가모니를 기리 기 위하여 돌이나 흙으로 쌓은 구조물을 불탑 또는 사리 탑이라고 한다. 후대에는 사리 대신 경전을 봉안한 탑도 출현하였는데, 이러한 탑을 불탑과 구분하여 경탑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탑 숭배란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으로 탑을 기리면서 불교 신앙을 고취하는 활동이다. 탑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로는 '스투파' (stupa)와 '차이티아' (caitya)가 있다.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 은 채 혼용되었지만, '스투파' 가 좁은 의미로 쓰일 때 불 탑 또는 사리탑을 가리킨다. 이것을 탑사(塔寺)라고 번 역한 것은 불탑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거처가 주변에 붙 어 있기 때문이다. '차이티아' 는 사리가 봉안되어 있지 않은 탑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스투파' 와 다르다. '차이 티아' 는 본래 묘(墓)나 전당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탑묘 (塔廟)나 영묘(靈廟) 등으로 번역된다. [배 경] 석가모니의 장례는 주로 재가 신자들에 의해 화장으로 거행되었는데, 시신이 연소한 후에 남은 유해 인 사리는 장례를 주관한 말라족(Mallas) 사람들에 의해 수습되었다. 후에 석가모니의 열반 소식을 들은 다른 일 곱 부족들이 사리의 분배를 요구하였으나, 말라족은 이 를 거부하였다. 사리의 분배를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나 기 직전에 중재가 이루어져 사리는 여덟 부족에게 균등 하게 분배되었다. 각 부족은 자국에 사리를 봉안하고 탑 을 세움으로써 '근본 8탑' 으로 불리는 불탑이 최초로 출 현하였다. 사리 외에도 시신의 재와 같은 다른 유물을 봉 안한 불탑도 건립되었다. 이 탑들은 석가모니의 유언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네거리의 중앙에 건립되었 다. 불탑은 이와 같이 재가 신자들이 숭배하는 대상이었 으므로 불탑의 관리도 그들이 맡았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지 100여 년이 지난 후부터 인도 의 불교는 부파(部派) 시대로 접어든다. 각 부파는 승원 의 안정과 풍요 속에서 대중의 교화보다는 아비달마(阿 毘達磨, Abhidharma)로 불리는 교리 연구에 주력하였다. 이 시대에 교리 연구는 크게 진전되었지만, 교단은 안팎 으로 세속화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승가는 재가 신 자에게 공덕을 쌓게 하는 매체로서의 기계적인 기능만을 갖게 되어, 정신적 감화를 바라는 재가 신자의 욕구에 부 응하지 못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불탑은 재가 신자들 에게 신앙의 구심점으로 부상하였다. 율장(律藏)의 규정 에 따라 불탑과 승원은 상호 불가침의 관계에 있고, 불탑 과 불탑에 속하는 재물은 불보(佛寶)에 속하며 출가자들 은 승보(僧寶)에 속하기 때문에 불탑에 거주할 수 없었 다. 불탑은 넓은 의미의 승원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본질 적으로는 승가로부터 독립하여 재가자들에게 소속되었 다. 이 점에서 불탑은 재가자들에게 신앙의 거점이 될 수 있었다. 불탑을 숭배하고 지켜 온 재가자들에게는, 난해하게 전개되는 교리보다는 과거에 생존하였던 석가모니에 대 한 동경과 찬탄이 신앙의 원천이었다. 이러한 동경과 찬 탄은 석가모니를 점차 초인화 · 신격화하면서 새로운 종 교 운동을 야기하였는데, 대승 불교는 바로 이러한 운동 에서 태동하였다. 서기 1세기 무렵부터 부파 소속의 불 탑도 출현하였지만, 대부분의 불탑들은 부파 교단에 소 속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때 대승 교도가 존재하였다면, 그들은 부파에 소속되지 않은 불탑을 근거지로 삼아 전 도 활동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탑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신앙 운동의 배후에는 찬불 문학의 주도자들이 있었다. 서기 1세기 이후에 크 게 활동한 이들이 석가모니불을 찬탄하고 경건한 믿음을 강조할 때, 이들은 교리를 초월한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 게 되며, 교리를 설명하는 논사들과는 다른 입장을 갖게 된다. 석가모니의 간략한 전기는 이미 율장에 수록되어 있지만, 석가모니가 어떤 경로를 거쳐 성불(成佛)에 이 르렀는지, 또 어떠한 수행을 하였는지 등의 문제를 고찰 하면서 그들의 관심은 찬불 문학으로 발전하였다. [탑 숭배의 전개] 대승 불교가 태동하던 시기에 불교 내부의 현저한 변화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불탑을 통해 부처를 찬탄하고 숭배하는 재가자 위주의 집단이 승원을 중심으로 교리 연구에 주력하는 부파 불교에 비판적 태 도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불탑 숭배와 불상 제작 등으로 부처를 신격화한 것은 그러한 태도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생담(本生譚, Jataka) 등의 불전(佛傳) 문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행하였다. 서력 기원을 전후로 불 탑이 활발하게 건립된 이후에는 출가자도 불탑 예배에 참여하였으며, 사원 내에 정사(精舍)와 불탑이 병존하게 되었다. 원래 부파 교단에서는 불탑 신앙의 성행을 바라 지 않았던 듯하지만, 나중에는 불탑 신앙이 승가 내에서 도 수용되었으며 부파에 소속되지 않은 불탑도 많이 있었다. 불탑 예배의 특징은 관불(觀佛) 삼매를 유도하는 것이 다. 이것은 일념으로 부처를 생각하는 고행적인 예배의 반복 과정에서 부처가 나타나는 삼매에 빠지는 것으로, 초기 대승 경전에서는 반주(般舟, pratyutpanna) 삼매, 즉 불현전(佛現前) 삼매라고 한다. 이러한 종교 체험이 보 살이라는 자각을 일으키고, 이로부터 부처의 구제력을 강조하는 교리가 발전하여 불탑 교단이 성립되었을 것으 로 추측된다. 부처의 신격화는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대승 불교의 선구자들은 부처의 절대성과 자비성은 무한하다고 믿었다. 이 믿음의 불교는 부처의 전기와 본생담 등을 통해 확산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부 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즉 부처는 과거에 무한한 수행을 거듭한 과보(果報)로서 성불하리라는 수 기(授記)를 받았다고 하며, 이 같은 결과를 얻게 된 원인 으로는 이타적 정신으로 실천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들었다. 여기서 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부처의 본원(本願) 이라고 주장하여, 부처처럼 노력하는 자를 석가모니의 전신(前身)인 보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 부처 숭배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석가모니를 대신할 부처의 탐구이 며, 다른 하나는 부처 자체의 영원성을 추구하여 그 속에 서 석가모니의 위치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전자는 불탑 숭배자를 중심으로 하는 재가 신자들 사이에서 부처 중 심의 불타관으로 전개되어 구제불에 대한 믿음과 보살로 서의 자각을 중시하게 되었고, 후자는 법(法) 중심의 불 타관으로 전개되어 전자를 뒷받침하는 교리적 기반을 형 성하게 되었다. 이 경우에 법'법' 이란 석가모니가 깨달은 진리로서 석가모니불과 동일시되는 법이다. 이 법을 담 고 있는 것이 경전이므로, 경전도 사리처럼 숭배의 대상 이 되어 《법화경》(法華經)의 경우처럼 경탑 숭배도 출현 하게 되었다. 후대에 대승 불교의 실천론을 제시한 《학처요집》(學處 要集)에서는 불탑 예배를 보살의 정신과 연관지어 설명 하였다. 이에 의하면 불탑을 숭배하는 자는 일체 중생을 위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야 하며, 탑을 예배하는 데서는 자비에 머물러 사람들의 이익이 되도록 행위하여 보리(깨달음)를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불탑을 승 배하는 자는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전형이다. [탑 숭배와 보살] 보살이라는 자각은 불탑 신앙을 배 경으로 하여 일어났다. 불탑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주로 재가 신자였고, 이들은 엄격한 수행을 할 수 없었으므로 부처의 자비에 매달려 구제받기를 희구하였다. 이들 중 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은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불탑에 재산이 있고 이것을 호지(護持)하여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이들은 온전한 평신도와는 다르면서 도 승가에는 속하지 않은 비승비속(非僧非谷)의 전문가 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불탑 예배자들을 위해 부처의 전생이나 생애를 설명하면서 부처의 위대성과 큰 자비 등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찬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처의 구제력에 관한 교리가 성립하게 되었다. 부처의 자비를 강조하는 것은 신자를 불탑으로 유인하기 위해서 도 필요하였을 것이다. 이들 중의 일부는 관불 삼매에 들 어 부처의 행적을 본받아 수행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때 본보기가 되었던 것은 석가모니불 의 전신이었던 보살로서의 수행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자신도 보살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때 자각된 보살이 대승 불교의 보살 관념과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대승 불교의 보살은 불교도가 창출하여 희구한 이상적 인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보살은 특히 대승 불교의 신자들에 대한 호칭이 기도 하며, 종래의 불교인에 대치되는 자로서도 그 위상 이 부여된다. 다시 말하면 대승 불교에서 말하는 일반적 인 보살은 단지 보리심을 일으킬 뿐인 보살이다. 성불이 결정되어 있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수기도 받지 않았 으며, 다시 물러서거나 타락하는 일도 있는 범부의 보살 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보살로서의 자각이 자 비와 구제의 차원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소위 범부 보 살이라는 대승 불교의 보살 관념이 일반화되었다고 이해 할 수 있다. 탑 숭배를 배경으로 하여 흥기한 대승 불교는 이후 불 탑 대신 경전을 숭배의 대상으로 강조하면서 점차 법(대 승 경전)을 절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 보살도를 이론화하는 과정에 아비달마의 교학을 도입하여, 재가 보살 대신 출가 보살을 이상상으로 제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불탑 교단과 보살단의 문제] 대승 불교의 모태와 선 도자로서 불탑 교단과 보살단이 상정되기도 한다. 불탑 에 거주하여 불탑을 관리하고 불탑의 보시물로 생활하면 서 종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출가 수행자 의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불교인이었다고 추정되는데, 이들이 기존의 승단과는 다른 불탑 교단으로 간주된다. 한편 출가자들도 점차 탑을 숭배하는 재가자 집단에 참 여하게 되고 경제적 기반도 확립되자, 이들은 기원전 1 세기 무렵부터 기존의 승단에 대항하는 보살단으로 단결 하였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도 더욱 진보적 이고 신앙심이 강렬한 한 무리가 서력 기원의 전후 시기 에 새로운 입장을 추구하여, 새로운 경전의 결집이라는 종교 문학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불탑 교단에서 대승 불교 흥기의 모태 를 구하는 학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불탑이 나 승원, 그 양자가 결합하여 형성된 가람(伽藍)의 실제 양상을 고고학 내지 건축사적 관점으로 논할 경우에는 그 학설을 용인하기 어렵다. 특히 대승 불교가 성행하였 다고 추정되는 서북 인도에서도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입증할 만한 실체적인 증거가 없다. 이 같은 반론은 인도 불교사에서 대승 교단으로 불릴 만한 조직체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는 데에서 제기된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대승 불교라는 흐름이나 운동이 존재하였다 는 사실은 부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불탑 교단, 대승 교 단, 보살단과 같은 표현은 편의상 그러한 환경적 분위기 를 실체시하여 일컫는 말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불탑 교단이라는 실체는 확인되지 않을지라도, 탑 숭 배가 대승 불교를 탄생시킨 원동력이었음은 결코 부정되 지 않는다. 초기의 대승 경전들이 탑 숭배를 설명하고, 부처 앞에서 참회하고 예배하기를 권하는 것은 탑 숭배 와 대승 불교의 밀접한 관계를 단적으로 시사하는 것이 다. → 대승 불교 ; 보살 ; 부처 ; 불교 ; 사리 ; 석가모 니) ※ 참고문헌  杉本卓洲, 《亻ソ ド佛塔の研究 一佛塔崇拜の生成 と 基盤》, 京都, 平樂寺書店, 1984/ -, 〈敗 0菩 - 人間 の理 想像 と 現實像〉, (亻 ソ ド 思想における 人間觀》 京都, 平樂寺書店, 1991/ 中村元, 《プ ソ タ の世界》, 東京, 學習研究社, 1980/ 塚本啓祥 編, 《法華 の文化 と 基盤》, 京都, 平樂寺書店, 1982/ 平川彰, 亻 ソ 卜佛教史》 上, 東京, 春秋社, 1974/ - 외 編, 《大乘佛教 とは何 力>》, 講座 · 大乘佛教 1, 東京, 春秋社, 1981/ - 외 編, 大乘佛教 そそ周邊》, 講座 · 大乘佛教 10, 1985. 〔鄭承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