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 본당

太宗臺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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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영도구 동삼1동 231-2 소재. 1972년 1월 29일 동삼동 공소에서 동삼동 본당으 로 승격 · 설립된 직후 다시 태종대 본당으로 명칭이 변 경되었다.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동삼 1 · 2 · 3동 전 지역. [교 세] 1973년 452명, 1979년 812명, 1985년 1,206명, 1991년 1,800명, 1997년 2,730명, 2004년 3,189명. 〔역대 신부] 초대 김유재 (金有宰) 그레고리오(1972. 1~11), 2대 한도준(韓道俊) 마태오(1972. 11~1973. 7), 3대 유창호(劉昌鎬) 토마스 (1973. 7~1980. 2), 4대 김태호(金兌) 알로이시오(1980. 2~1984. 1), 5대 이영식(李永植) 히지노(1984. 1~1986. 2) 6대 권지호(權支浩) 프란치스코(1986. 2~1988. 2), 7대 문성호(文聖皓) 바오로(1988. 2~1989. 1), 8대 손덕만(孫 德萬) 토마스(1989. 1~1990. 2), 9대 마스(P. Mares, 마필 운) 필립보(1990. 2~1994. 2), 10대 김계춘(金啓春) 도미 니코(1994. 2~1995. 2), 11대 손원모(孫元模) 요한 그리 소스토모(1995. 2~1999. 1), 12대 박혁(朴赫) 스테파노 (1999. 1~2003. 10), 13대 김정욱(金正旭) 바오로(2003. 10~현재). 영도 지역의 첫 신자는 1900년경 박해를 피해 이곳으 로 이주해 온 순교자의 후손 장수하(비오)와 장사문(바 오로)이었다. 이 지역은 이후 이들 일가를 중심으로 작 은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신자들은 당시 10리 이상 떨어 진 청학 본당을 오가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인구가 급증하고 전교 활동으로 신자수가 증가하자, 당시 청학 본당 9대 주임이었던 김영제(金永濟, 요한) 신부는 공소의 필요성 을 절감하고 1964년 현 태종대 본당 부지 1,370평을 매 입하였다. 김 신부는 이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소 건립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동삼동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후 안나회와 성모회가 발족되어 본당 설립 기틀을 마 련하였고, 1969년 3월에는 공소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이 창단되며 신자들이 점차 증가하였다. 1970년 충무동 해안 지대의 매립으로 철거민들이 이 지 역으로 집단 이주하고 각종 군수 공장이 입주함에 따라 동삼동 일대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신자들 은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여 전교반을 조직하고 전교 활 동에 매진하였으며 그 결과 신자수가 400여 명으로 증 가하였다. 그리하여 본당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1972년 1월 29일 태종대 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으 로 김유재 신부가 부임하였다. 3대 주임 유창호 신부는 부임 직후 증가하는 신자수에 비하여 사용하고 있는 성당 건물이 너무 협소하다고 판 단, 1974년 2월부터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7월에 성당(82평), 사제관(38평) 및 기타 시설들을 완공하고 이 갑수(李甲秀, 가브리엘)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가졌 다. 유 신부는 재임 기간 동안 효율적인 본당 운영을 위 해 사목위원회 및 교사회 · 학생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1975년 11월에는 지역 사회와 유대를 강화하고 가난한 신자 가정을 돕고자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였다. 이와 함께 동산동 일대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자들의 모금을 바탕으로 본당 내에 지하수를 개발하였다. 또한 본당 수녀와 성모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본당 관할 내에 있는 한국 해양 대학 학생들을 교리반으로 인 도하여 5년 동안 100여 명의 영세자를 배출하였고, 1977년 8월에는 성모 신심 함양을 위해 성모 동굴 제막 식을 거행하였다. 이듬해 10월에는 파티마 공의회의 정 신을 살리자는 취지하에 각종 신심 단체를 조직하는 한 편, 본당의 모든 사목 행정이 구역장과 평신도 협의회를 통해 운영되도록 조정하였다. 4대 주임 김태호 신부는 부임 직후 옛 사제관을 개조 하여 수녀원으로 만든 후 1980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 녀회 분원을 마련하였고, 1984년 수녀원을 신축하여 10 월에 축복식을 가졌다. 5대 주임 이영식 신부는 본당 레 지오 단원이 증가하자 1985년 6월 청학동 본당 꾸리아 에서 독립하여 '사랑의 모후' 꾸리아를 창설하였다. 1986년부터 약 10년간 태종대 본당의 사목을 담당한 신부들은 단기간 본당에 재직하거나 인근 다른 본당의 주임 신부직을 겸하면서 주일에만 태종대 본당에 와서 미사를 드리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 태종대 본당 의 사목 활동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손원모 신부는 침체된 본당 사목에 다시 활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소공동체 모임을 활성화시키고, 각 종 사도직 단체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12대 주임 박혁 신부는 선교 활동에 사목의 초점을 맞 추어 1999년 9월부터 거리 선교 현수막을 걸고 선교 포 스터를 게시하는 등 홍보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1월부 터는 방문 선교에 중점을 두고 관할 구역내 비신자 가정 을 방문하는 등 선교 활동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2002 년 2월부터 새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2월 지상 3층, 지하 1층(726평)의 성당을 완공한 후 정명조 (鄭明祚,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 다. 새 성당은 교회 건축물의 전통미와 기능성을 강조하 는 현대 건축술이 적절히 조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아 10 월 부산시가 주관하는 '2003년 부산다운 건축상 비거 주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현재 13대 주임 김정욱 신 부는 소공동체를 주축으로 사회 복지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 동삼동 본당 ; 부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 회사연구소 편, 《敎區 三十年史》, 천주교 부산교구, 1992.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