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동 본당
太平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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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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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통영시 태평동 369-1 소재. 1929년 5월 25일 옥포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 으며, 설정 당시 명칭은 '신정' 이었으나, 이후 '통영' · '충무' 를 거쳐 1985년 3월 현 명칭으로 개칭하였다. 주 보는 묵주 기도의 모후. 관할 구역은 통영시 정량동, 태 평동, 동호동, 문화동, 중앙동, 항남동, 서호동, 명정동, 도천동 전 지역. 관할 공소는 욕지 공소. [교 세] 1964 년 1,141명, 1968년 1,368명, 1974년 1,505명, 1980 년 2,262명, 1985년 2,056명, 1990년 2,565명, 1995 년 2,217명, 2004년 2,546명. [역대 신부] 초대 송남호 (宋南浩) 요셉(1929. 5~1931. 5), 2대 이민두(李敏斗) 타 대오(1931. 5~1936. 6), 3대 유선이(柳善伊) 요셉(1936. 6~1941. 12), 4대 장병화(張炳華) 요셉(1942. 8~1943. 2) 5대 정수길(鄭水吉) 요셉(1943. 2~1946. 9), 6대 박동준 (朴東俊) 마티아(1946. 9~1961. 8), 7대 정삼규(鄭三圭) 요한(1961. 8~1962. 6), 8대 함영상(咸英相) 비오(1962. 6~ 1964. 8), 9대 김두호(金斗湖) 알로이시오(1964. 8~1965.1), 10대 정순구(鄭淳九) 요한(1965. 1~1970. 10), 11대 임태경(任泰景) 루가(1970. 10~1976. 1), 12대 박주선(朴 周善) 안토니오(1976. 1~1979. 1), 13대 박해준(朴海俊) 치릴로(1979. 1~1985. 6), 14대 박두환(朴斗煥) 베네딕도 (1985. 6~1989. 7), 15대 김용호(金容鎬) 안셀모(1989. 7~1992. 11), 16대 조영희(趙泳熙) 아나니아(1992.11~1996. 2), 17대 이윤호(李潤浩) 필립보(1996. 2~2001.1), 18대 김용백(金容白) 요한(2001. 1~현재). 통영 지방에 처음으로 복음 전파가 시작된 것은 1925 년 통영군 정량리에 거주하던 윤원중이 거제 고현 방면 으로 추수차 갔다가 공소인 듯한 농가에서 천주교의 교 리와 전례에 대해 배우고 세례를 받은 뒤, 평소 친교가 있던 강훈익에게 전교하면서부터이다. 같은 해 동더리에 사는 김봉서(요셉)는 대구에서 영세하고 돌아와 윤원중 · 강훈익과 긴밀한 유대를 가지면서 동더리 소재 정성 집(안토니오)의 집에 처음으로 공소를 설치하였다. 이들 의 적극적인 선교 활동으로 신자수가 늘어남에 따라 1928년 윤원중의 집에 공소를 설치하여 기존의 공소를 이곳으로 이전하였고, 이와 함께 동더리 소재 강훈익의 집도 크게 고쳐 공소를 설치하였다. 이같이 나날이 발전 하는 이 지역의 교세에 주목한 옥포 본당 주임 김후상 (金厚相, 바오로) 신부는 1929년 5월 25일 통영면 신정 리(현 서초동) 248번지에 20평의 목조 건물을 지어 신정 본당을 분리 · 설정시켰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남호 신부는 성가 지도에 주력하여 젊은 여신자들을 중심으로 성가대를 조직하였고, 1931년 4월 통영면이 통영읍으로 승격하면서 본당명을 신정에서 통영으로 개칭하였다. 2대 주임 이민두 신부는 사제관을 비롯하여 식당 · 창고 · 화장실 등 부속 건물을 신축하였다. 5대 주임 정수길 신부는 광복 후 보다 넓은 성당을 짓기 위해 적산 가옥을 물색하던 중 일본인들이 지은 절(현 본당 자리)을 발견하고 이를 인수받기 위해 노 력하였다. 6대 주임 박동준 신부는 부임 직후 본당 내에 청년 단체인 칠성회를 발족시켰고, 1947년에는 전임 신 부 때부터 인수받기 위해 노력하였던 일본 절을 불하받 아 내부 시설을 대폭 개조한 뒤 성당을 이전하였다. 1951년에는 한국 전쟁 때 본당으로 피난 온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소속 수녀들에 의해 본당 내에 성모유치원 과 복자양재학원이 운영되었다. 1953년 여신자들로 이 루어진 성모 성심회를 조직하는 한편, 1955년 9월 1일 에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자 본당명을 통영에서 충무 로 개칭하였으며 1957년 1월 21일에는 부산 대목구가 설정됨에 따라 대구 대목구에서 새 대목구로 소속이 바 뀌었고, 같은 해 본당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하여 다윗의 탑 · 치명자의 모후 · 파티마의 모후 쁘레시디움 을 창설하였다. 또한 1957년 6월 17일부터 통영 충렬사 에서 운영하던 한산여자중학교를 인수, 충렬여자중학교와 충렬여자상업고등학교로 변경 ·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60년 1월에는 신심 단체 활동을 육성하는 데 노 력하여 칠성회를 발전적으로 해체 · 개편시켜 추사이망 회(追思已忘會)라는 청년 단체를 새로 조직하였다. 7대 주임 정삼규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과 함께 냉담자 가정을 방문하여 급격히 늘어난 교세에 따른 냉 담자 증가를 막고자 노력하였다. 8대 주임 함영상 신부 는 신심 단체 활동보다 영신적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 여 레지오 마리애를 포함한 본당 내의 여러 단체들을 해 산시켰으며, 1964년에는 통영군 산양면 신봉 마을에 산 양 공소를 개설하였다. 10대 주임 정순구 신부는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중시하여 본당 단체들의 활동을 재개시켰 으며, 대건회와 매괴회를 새로 조직하였고, 꾸르실료를 도입하여 평신도로 하여금 꾸르실료 교육을 받도록 하였 다. 1965년에는 마리아의 푸른 군대(현 파티마의 세계 사 도직)에 본당 신자들을 가입하도록 하였으며, 성모유치 원(1962. 11 폐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시립 도서관으 로 무료 대여함으로써 지역 사회에 천주교회에 대해 새 로운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런 가운데 1966년 2월 15 일에 마산교구가 설정되자 충무 본당은 새 교구로 소속 이 바뀌었다. 그 후 1968년 9월 5일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이듬해 4월 20일에 연건평 270평의 성당 · 사 제관 · 강당 회의실 사무실 등과 별관인 수녀원을 완공 한 뒤, 6월 9일 주한 교황 대사 로톨리(H. Rotoli) 대주교 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1대 주임 임태경 신부는 충무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던 시립 도서관 건물을 인수받아 내부를 대폭 수리한 뒤 학생 회관으로 사용하여 주일학교와 학생회 활동의 터전 이 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대건회를 본당 평신도 활동의 주축이 되도록 지도 육성하여 본당의 크고 작은 행사와 운영을 이끌어 나가도록 하였다. 12대 주임 박주선 신부 는 본당에 선교 수녀가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껴 동정 성 모회에 요청, 1976년 2월에 3명의 수녀가 본당에 부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해체되었던 레지오 마리애 를 부활시켜 1976년 5월 6일 상지의 옥좌 쁘레시디움 창단을 시작으로 여러 개의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으며 , 7월 18일에는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를 창설하였다. 같 은 해 평신도들의 요청으로 유치원 설립 공사를 시작하 여, 1977년 3월 9일에 충무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3대 주임 박해준 신부는 1979년 10월 9일 본당 설립 50주 년 행사 거행과 함께 본당 분할 기초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에 1982년 11월 7일에 분할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공사를 시작한 뒤, 1985년 3월 11일 공사를 완료하여 대건 본당을 분리 · 설정시켰는데, 이때 본당명 을 충무에서 현 명칭인 태평동으로 개칭하였다. 14대 주임 박두환 신부는 1986년 3월 1일 사제관 증 축 및 성당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 6월 1일에 마무리하였 다. 15대 주임 김용호 신부는 1991년 6월 29일 본당 분 할을 위한 부지를 본당 신자에게 기증받아 공사를 시작 하였는데, 이 공사는 16대 주임 조영희 신부 재임기인 1995년 2월 20일에 완료되어 북신동 본당이 분리 · 설 정되었다. 17대 주임 이윤호 신부는 1999년 5월 23일 경상대학교 해양 과학 운동장에서 본당 승격 70주년 기 념식을 거행하였으며, 12월 25일에 불우 이웃 돕기 차 원에서 사랑의 선물 나누기 행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2000년 9월에는 중 · 고등부 청소년을 위한 영화방을 개 장하였다. 18대 주임 김용백 신부는 2001년 11월 25일 중앙 간선 도로 개설 공사에 따른 토지 편입으로 사제관 과 회합실을 신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신축 추진위원 회를 구성하였다. 이후 2년여 기간 동안 성당 안팎의 보 수 · 조경 공사와 더불어 수녀원과 사제관 신축 공사를 실시하였다. 2004년 사목 지침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중심으 로 하는 신앙 생활과 가정 성화' 로 정한 태평동 본당은 항상 성서를 가까이 하고 가정 기도의 날을 정하는 등 신 앙 생활과 가정 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충무 본 당 ; 통영 본당 ; → 마산교구 ; 북신동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마산교구 설정 10주년 기념 경축 준비위원회 편, 《교구 설정 10주년 기념》, 천주교 마산교구, 1976/ <태평 본당 60년사》, 천주교 마산교구 태평 교회, 1989. 大學院 [白秉根] ② 대전교구 소속 본당. 대전시 중구 태평2동 355-7 소재. 1985년 2월 19일 유천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 정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태평1 동 전역과 태평2동, 오류동 일부 지역. 〔교 세] 1985년 999명, 1987년 1,713명, 1992년 3,199명, 1997년 2,795명, 2003년 1,890명. 〔역대 신부] 초대 박상옥 (朴商玉) 토마스(1985. 3~1990. 8), 2대 유재식(俞載植) 안셀모(1990. 8~1992. 3), 3대 안상철(安商哲) 미카엘 (1992. 3~1994. 8), 4대 이계창(李啓現) 아우구스티노 (1994. 8~1999. 1), 5대 나기순(羅基淳) 루도비코(1999. 1~2004. 2), 6대 이광근(李光根) 베드로(2004. 2~현재). 대전교구는 유천동 본당의 신자수가 점점 증가하자 본당의 분가를 계획하여, 1979년 10월 현 태평동 본당 소 재지의 대지 1,557.02㎡를 매입해 두었다. 그 뒤 태평 동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전입 인구가 늘고 신 자도 증가하자, 1985년 2월 마침내 태평동 본당을 설정 하였다. 초대 주임 박상옥 신부는 본당 소재지에 조립식 건물(165.28㎡)을 지어 임시 성당으로 삼은 후, 임시 사 제관으로 건물을 매입하고 수녀원으로 사용할 건물은 임 차하였다. 1986년 8월에 성당 신축 공사의 제1차 단계 로 지하실, 사제관 등 총 935.53㎡ 규모의 공사에 착수 하여 이듬해 6월에 준공하였으며, 11월에는 임시 사제 관을 매도하고 성당 인접 대지 188.42㎡를 매입하여 성 당 대지 면적은 총 1,745.45㎡가 되었다. 1988년 3월 부터 성당, 수녀원, 교리실 등의 신축을 위한 제2차 성당 신축 공사가 시작되어 1989년 2월 준공 검사를 마치고 12월에 성당 봉헌 미사를 드렸다. 2대 주임으로 유재식 신부가 부임한 후, 1991년 8월 에는 처음으로 보좌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이 한층 안정 적으로 발전해 나가게 되었다. 3대 주임 안상철 신부는 1994년 4월에 50명 정원으로 노인 대학을 열었고, 4대 주임 이계창 신부는 인접 주택(태평2동 355-26번지)을 구 입하여 성당을 확장시켰다. 1995년 1월에는 태평동 본 당 출신 첫 사제인 한태호(韓汰昊, 미카엘) 신부의 사제 서품 첫 미사가 봉헌되었다. 그리고 1997년 8월 31일에 는 이계창 신부의 회갑 및 사제 서품 30주년 기념식과 더불어 《하느님 내 하느님》(가톨릭출판사) 출판 기념회를 가졌는데, 특별히 이날 이 신부는 1억원을 불우 신학생 을 위한 기금으로 기탁하였다. 1998년 2월에는 태평동 본당 출신 두 번째 사제인 정성룡(鄭成溶, 세례자 요한) 신부의 첫 미사가 있었고, 1999년 1월에는 인터넷 시대 를 맞이하여 본당 홈페이지를 개설하였다. 5대 주임 나기순 신부가 부임한 직후 가진 본당의 날 행사에서는 신평초등학교 학생 540여 명이 참석하여 야 외 미사 및 작은 운동회를 가지며 친교와 단합을 다졌고, 10월 18일에는 나기순 신부의 서품 25주년을 기념하는 은경축 행사가 있었다. 2000년 5월 경로 잔치와 더불어 무료 건강 검진도 함께 실시하였고, 7월에는 본당 내 모 든 좌석에 성서를 비치하였다(약 400권). 또한 8월에는 통일 기금 봉헌식을 가졌는데, 매일 100원씩 저축함으 로써 통일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고 구체적인 실천 방 향을 모색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을 둔 것이었다. 2003 년 4월에는 활발한 활동을 위해 선교 사랑방(77.8㎡)을 준공하여 개소식을 가졌으며, 현재 6대 주임 이광근 신 부가 태평동 본당을 맡아 사목과 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태평동 본당은 비록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본당의 자 력으로 성당 건축을 추진해 나가던 초창기부터 가정 성 화, 신자 재교육, 친교 등에 역점을 두고 사목 · 선교 활 동에 힘을 기울여 왔다. 또한 가정 성화를 위해서 가족 단위의 기도, 미사 참례, 교리 공부 등을 통한 성가정 육 성에 주력하였으며, 신자 재교육을 위해서는 매주 목요 일 성인 대상 교리를 시행하고 교리 연구회와 성서 연구 회 등을 결성 · 운영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의 친교를 증 진하기 위해 구역 · 반 단위의 기도회와 야유회를 갖고, 본당 주보 축일(9월 20일)에는 야외 미사, 성가 경연 대 회, 교리 경시 대회, 체육 대회, 윳놀이 등 다채로운 행 사를 펼치고 있다. 또한 선교를 위해 매년 4~5회 예비 자 인도 기간을 정하여 입교 운동을 벌이고 관내 불우 이 웃을 지속적으로 돕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본당을 선 정하여 지원하는 활동도 펴 오고 있다. (→ 대전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崔先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