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툴리아노, 권투스 셉티무스 플로렌스 Tertullianus, Quintus Septimus Flomms(155~~~3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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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교부. 호교론자. 최초의 라틴 신학자. [생 애〕 테르툴리아노는 155년경 카르타고의 이교 가 정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총독 관저의 백인대 장이었다. 그는 법률을 전공한 후 변호사가 되어 로마에 서 크게 활약하였고, 195년경 그리스도교에 귀의한 다 음에는 카르타고에 머물면서 자신의 문학 · 철학 · 법률 등 모든 지식을 활용하여 신앙 옹호에 전념하였다. 예로 니모(Hieronymus, 347~419)의 《명인록》(De viris illustribus, 393) 53에서는 그를 사제(司祭)로 칭하지만, 근거가 희 박한 증언이다. 사실 테르툴리아노는 자신을 한 번도 사 제라고 칭하지 않았으며,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그는 끝 까지 평신도였으리라고 여겨진다. 테르툴리아노는 195~220년까지 신학 전반에 걸쳐 수많은 귀중한 저서들을 저술하였으며, 라틴 교부들 중 에서 아우구스티노(Augusinus Hipponensis, 354~430) 다 음으로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신학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다방면에 탁월한 학식을 가지고 있던 그는 불굴의 투지와 인내 그리고 정열적이며 수사학적 표현과 신랄한 풍자로 신앙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모든 대상, 즉 이교 도, 유대인, 이단자들에게 대항하여 어떠한 타협이나 양 보도 없이 명확한 논리로 그들의 오류를 논박하였다. 그 로 인해 그의 작품은 대부분 논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의 회개 동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교리적 인 접근을 통해서가 아니라 유스티노(Justinus, 100/110?~ 165)처럼 그리스도교와의 극적인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 진 것으로 짐작된다. 혹독한 박해 중에 자신의 믿음을 고 수하며 죽어 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웅적 삶과 모습이 테르툴리아노를 감동시켰으리라 추정된다. 사실 그는 저 서들에서 이 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진실과 진리는 유일한 판단 기준이었다. 그는 이를 위하여 몸바쳐 싸우면서 온갖 이단적 오류 를 논박하였다. 그는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과격한 성 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으며, '진리에 미친 사람' 이라 는 평을 받을 정도로 진리에 집착하였다. 그의 저서들에 는 '진리' (veritas)라는 단어가 162번이나 나온다. 그에 게 있어서 이교 사상과 그리스도교 사상을 구별짓는 기 준은, 하느님께 대한 참된 인식이냐 거짓 인식이냐로 나 타난다. 그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운 목적도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였 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참된 하느님이며,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바로 진리를 터득하고 진리 안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교도들은 진리를 배척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진리 때문에 고통받고 때로는 죽어 가며, 바로 이 진리는 이교도와 그리스도인을 구별짓는 척도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테르툴리아노는 지나 칠 정도로 진리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의 깊은 종교심 과 진지한 삶의 자세에서 연유된 체험이며 고백이다. 그 는 단순히 법률학도나 수사학자가 아니라, 믿음과 실천 의 사람이었다. 박해 상황에서도 굳센 믿음을 간직하였 고, 누구나 하느님을 자유로이 믿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 다고 외쳤다. 그는 진리와 신앙 때문에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확신의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호교론》 (Apologeticum, 197) 끝머리에서 이와 같은 심정, 즉 순교 에 대한 각오를 명백히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박해 중에도 피신할 수 없음을 주장하며 가르쳤다. 그러나 테르툴리아노는 206년경부터 이단인 몬타누스주의(Montanismus)에 물들기 시작하였고, 213년 이 이단의 지도자가 된 후에는 가톨릭 교회를 신랄하게 비 판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다혈질적인 성격과 극단 적이고 과격한 성품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 의 몬타누스주의는 성령의 내려오심과 그 은사들을 강조 하였을 뿐, 이론적 체계를 세우지 못하고 다만 몇 가지 행동 규범만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테르툴리아노가 이 이단에 몰입하면서 뛰어난 필치로 이론적인 체계를 세웠 는데, 윤리적인 엄격주의는 보존하면서 비이성적인 요소 들은 과감히 제거하였다. 테르툴리아노는 몬타누스주의 를 개혁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교단을 만들어 나 갔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이를 '테르툴리아노주의' 라고 부르기도 한다. 몬타누스주의 또는 테르툴리아노주의는 정통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단죄를 받았지만, 테 르툴리아노주의 추종자들은 5세기 아우구스티노 시대까 지 카르타고에 존속하였다고 한다. 평신도였던 테르툴리아노는 극단적인 윤리 생활을 강조하면서, 배우자와 사별한 후에 재혼하는 것은 간음과 같기에 불가하고, 박해 중에 피신하는 것도 배교와 같은 큰 잘못이며, 배교와 살인과 간음을 저지른 대죄인의 경 우에는 교회도 사해 줄 수 없다고 가르쳤다. 또 그는 신 자 공동체의 보편적인 사제직을 강조하여 반(反)교계주 의를 부르짖었다. 즉 성령에 의한 내면적 교회와 주교들 에 의한 외적인 교회를 대비시키면서, 성령에 의한 내면 적 교회만이 참되고 진실되며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하였 다. 반면 주교들에 의한 외적인 교회는 인위적이며 멸망 을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사망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30~240년경 으로 추산되며, 끝까지 가톨릭 교회에 돌아오지 않았다. 따라서 테르툴리아노의 저서들을 읽을 때는 저술된 연도 가 다음의 시대 구분 중 어디에 속하는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제1 시기인 가톨릭 신앙 시기(195~206), 제2 시기인 반(半)몬타누스주의 시기(206~212), 제3 시기인 몬타누스주의 신봉 시기 또는 테르툴리아노주의 이단 시 기(213~20)이다. 제1~2 시기의 저서들은 교리적 측면 에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제 3 시기의 저서들은 주로 교회론적 측면에서 가톨릭 교회 의 제도들에 대해 과격한 비판을 하며, 윤리적인 측면에 서 지나친 엄격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 다. 현재 전해 오는 테르툴리아노의 저서는 총 31종이 있다. [문체와 신학 용어 개발] 테르툴리아노가 개성이 뚜렷 한 인물임을 반영하듯이, 그의 문체 역시 독특하다. 수사 학의 방법에 따라 유창한 화법을 구사하면서도 직설적이 며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는 치체로(M.T. Cicero, 기원전 106~43)와 세네카(L.A. Seneca, 기원전 55?~서기 39?)의 고전적인 라틴어 문체에 따라 고급 라틴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여러 문제에 대한 질문과 반문을 열거한 다음, 이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명백한 해답을 제시한다. 대조 법(對照法)을 좋아하였으며, 때로는 언어의 유희를 통하 여 논리적 귀결을 꾀하기도 하고, 자기 식의 고유한 표현 을 통해 의도한 바를 역설하였다. 그가 구사한 어휘와 문 장 그리고 표현 등은 타치투스(Tacitus, 56?~120?)에 버금 갈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이단자들을 논박할 때에 그 는 법률가 출신답게 명쾌한 논리를 펴지만, 적대자를 완 전히 굴복시킬 때까지 비슷한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반 복하여 역설하기 때문에 때로는 지루한 느낌도 준다. 그 러나 테르툴리아노의 라틴어 문장은 간결하기로 유명하 다. 이에 대해 이미 르랭(Lérins)의 빈천시오(?~450?)는 "말마디 하나하나가 곧 문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정도 다"라고 평하였다. 사실 테르툴리아노는 라틴어의 장점 을 최대한 이용하여 각종 분사 구문과 단축 용법 등을 많 이 구사하고 있어, 그의 라틴어 문장을 대할 때는 마치 퀴즈를 푸는 듯한 인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라틴 교부들 가운데에서도 테르툴리아노의 문장은 가장 어려운 문장 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그의 본문을 현대어로 번역하면 본문보다 훨씬 길어질 수밖에 없다. 테르툴리아노가 라틴 교회의 신학 발전에 미친 가장 큰 공로는 최초의 라틴 신학자였으며 뛰어난 신학 사상 을 개진하였다는 점뿐만 아니라, 라틴어 신학 용어들을 많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호페(H. Hoppe)가 지적하듯이, 테르툴리아노는 981개의 라틴어 신조어(508개의 명사, 284개의 형용사, 28개의 부사, 161개의 동사)를 만들었다. 테르툴리아노 이전에도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려는 시 도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가 만든 라틴어 신조어들은 교회의 전례와 신학을 개진하기 위한 전문 용어들로서 라틴 신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교회 라틴어의 창시자' 라는 평을 받고 있다. 테르 툴리아노가 최초로 라틴 교회 신학의 품위를 문학적인 측면에서 높여 놓았을 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측면에서 라틴어 발전 자체에도 큰 공헌을 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 서] 호교론적 작품들 : 《이교인들에게》(Ad Nationes, 197)와 《호교론》은 유사점이 많은 저서들로, 같은 해 에 저술되었다. 테르툴리아노는 이 두 저서에서 그리스 도인들에 대한 이교도들의 박해가 이성과 정의에 어긋나 며, 무지의 소산임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호교론》은 그 의 저서들 중 가장 비중 있는 작품으로, 지방 행정관에게 쓴 것이다. 그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그리 스도인들이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것은 황제에 대한 반 대가 아니라 진실한 삶의 선택이며, 오히려 신자들은 국 가의 안녕과 통치자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역 설하였다. 그리고 아무리 잔혹한 박해로 신자들을 죽이 더라도 신자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하면서, "그리스 도인들의 피는 씨앗이다" (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 : 《호교론》 50, 13)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테르툴리아 노는 15년 후에 아프리카의 총독 스카풀라에게 《스카풀 라에게》(AdScapulan, 212)라는 호교적 항의 서간을 보냈 다. 그는 인간은 종교 자유의 천부적 권리를 갖고 있으 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부당하다고 항변하였다. 또한 신자들은 황제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적대시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대하며, 황제는 하느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았을 뿐이라고 강변하였다. 《영혼의 증명》(De testimonio animae, 198~200)은 인간에게 영혼이 존재한다 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하느님의 존재와 그 속성, 상선벌 악 및 사후 문제 등 종교의 근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영혼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그리스도교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강변하면서 이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부각시 켰다. 한편 《유대인 논박》(Adversus Judaeos, 196)은 유대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역설한 작품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신적 능 력을 상실하였으며, 대신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열렸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법은 모세 이전에도 존재하였으며, 법 의 기원은 인간 창조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정법(神定法)이며 자연법이다. 유대인들의 율법은 이 자연법을 요약하고 확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구 약에서 이미 예언된 분으로서, 하느님의 법을 완성하고 세상 만민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구세주임을 강조하였다. 논쟁적 작품들 : 《이단자들에 대한 항고》(De praescriptione haereticorum, 198~200)는 체계적이며 특징적인 내용 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가톨릭 교회와 이단자들의 관계를 법적 투 쟁의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성서는 신앙의 규범이 되 는데, 문제는 진리가 '전승의 정통성' 안에서 전해져 오 느냐에 있다.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위탁하였기 때문에 사도들만이 권위 있는 후계자들이며, 그들은 교회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수 행하였기 때문에 이 사도적 전승밖에는 어떠한 진리의 전승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진리를 따르지 않 는 교회 밖에 있는 이단자들은 성서를 인용하거나 사용 할 자격과 권리가 없다고 역설하였다. 이 저서의 부록 (46~53장)에는 32개의 이단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테르툴리아노는 이단들을 세부적으로 논박하는 작품들을 남겼는데, 특히 그노시스주의 계통의 이단 분파들 을 논박한 작품들이 많다. 《마르치온 논박》(Adversus Marcionem, 207~212)은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방대하며, 총 5권으로 되어 있다. 그는 이단자인 마르치온(Marcion, ?~160?)의 저서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구약의 창조의 신과 신약의 구원의 신은 서로 적대되는 신이 아니라 같 은 하느님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약속되고 예 언된 메시아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이 저서는 논박서이 지만 내용 면에서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종합하고 있 다. 《그리스도의 육신》(De carne Christi, 208~211)과 《육 신의 부활》(De resurrectione mortuorum, 208~211)은 서로 연관성이 있는 저서들로서, 인간 육신을 천시하고 구원 을 부인하는 그노시스주의자들을 반박하면서 그리스도의 참다운 육화(肉化)와 인간 육신의 부활 및 구원을 역 설하고 있다. 이 두 저서에서 그는 그노시스주의의 발렌 티누스파, 아펠레스파 그리고 마르치온의 이단 사상을 집중적으로 논박하였다. 특히 《발렌티누스 논박》(Adversus Valentinianos, 208~211)을 통해 발렌티누스파를 좀 더 심도 있게 논박하였다. 이 외에도 논박서로 《헤르모제네 스 논박》(Adversus Hermogenem, 200~206), 《전갈 처방》 (Scorpiace, 211~212) 등이 있다. 교의 신학적 저서들 : 《프락세아스 논박》(Adversus Praxean, 213~217)은 성삼론에 관한 이단들, 즉 모달리즘 (modalismus)과 성부 수난설(patipessianismus)을 논박한 저서이다. 이 책은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 이전까지 성삼(聖三, Trinitas)에 관한 교의를 가장 잘 체계화시킨 저서로서, 노바시아누스(Novatianus, 200?~?)의 《성삼론》 (De Trinitate)은 물론 후대의 많은 교부들이 이 저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성세론》(De baptismo, 198~200)은 세 례성사와 견진성사의 내용과 성사적 의미를 강조한 첫 번째 작품으로서 전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컨틸라를 우두머리로 하는 성세 반대론자들은 물로 씻는 외적인 목욕으로 영혼의 정화와 영생을 가져올 수 없다고 주장 하였으나, 테르툴리아노는 이에 대항하여 세례성사는 원 죄와 본죄를 씻어 주고 영생을 보증해 주는 하느님의 초 자연적 은총의 신비임을 설파하였다. 그는 또 박해 중에 살던 당시 신자들 사이에 널리 유통되던 '물고기' (ix'6) 암호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스어로 물고기를 뜻하는 이 단어는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말에서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을 모아 만들어진 것으로서 중요한 신앙 고백의 뜻을 담고 있으며, 신자들은 세례의 물에서 새로 태어날 때 '작은 물고기들' 이 된다고 하였 다. 《영혼론》(De anima, 208~211)은 《마르치온 논박》 다 음으로 긴 작품이다. 이 책에서 테르툴리아노는 영혼의 본질과 그 영적 특성을 논하면서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관념론과 영혼의 선재(先在) 사상을 배격하였다. 즉 인간의 영혼은 육신과 동시에 창조된다 고 하면서 영혼의 성장, 죄, 잠, 꿈, 인간 육신의 사후 영 혼의 상태 등에 대해 설명하며, 인간이 죽은 다음 모든 영혼은 '하데스'스' (6%) 溟府)로 가서 최후 심판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순교자들의 영혼은 직접 하느님 품으로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윤리 · 영성적 작품들 : ① 박해와 순교에 관한 저서들 : 《순교자론》(Ad martyras, 197)은 초기의 작품으로서, 테 르툴리아노는 자신의 입교 동기가 되었던 순교자들의 굳 은 믿음과 영웅적인 용기에 대해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당시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던 예비 신 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저서를 썼다. 《인 내론》(De patientia, 200~206)은 신자들이 지녀야 할 인내 의 필요성과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인내는 주님을 닮을 수 있는 훌륭한 덕이며, 악마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무 기이다. 그리스도의 삶은 인내와 순명의 삶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신자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로 신앙을 지키고 구원의 길로 정진하며 순교의 고통까지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월계관에 대하여》(De corona, 211)는 군대 병영 안에 서 신자 군인이 우상 숭배에 뿌리를 둔 월계관을 쓰기를 거부함으로써 순교하게 된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 이 저 서는 당시에 많은 신자 군인들이 신앙을 지키려다 순교 하였음을 말해 준다. 《우상 숭배에 대하여》(De idololatria, 208~211) 역시 비슷한 주제로, 신자 군인이 군복무 중에 황제 숭배나 우상 숭배 의식을 거부해야 하는 문제를 다 루고 있다. <박해 중 피신에 대하여》(De fuga in persecutione, 213)는 신자들이 박해 시에 피신해야 하느냐의 문 제를 다루고 있다. 《아내에게》(1, 3)와 《인내론》(13)에서 는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할 위험이 있으면 피신하라고 권 하지만, 이 저서에서는 박해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오 는 것이니 피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213년에 저술된 이 저서에서는 몬타누스주의적인 엄격주의가 엿 보인다. 이와는 다른 주제로 《경기 관람에 대하여》(De spectaculis, 198~200)에서는, 신자들에게 원형 극장과 같은 공 공 경기장에 구경하러 가지 말라고 하였다. 당시 경기장 에서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는 칼싸 움이 벌어졌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경기장에서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제1부에서는 칼싸움의 역사, 제2 부에서는 그의 윤리적 측면을 다루었다. ② 기도와 재계에 관한 저서들 : 《기도론》(De oratione, 200~206)은 예비 신자들을 위해 쓰여진 작품이다. 그는 구약의 기도와 신약의 기도를 비교 검토하면서 가장 완 벽한 기도문인 '주님의 기도' 를 해설하였다. 그리고 기 도할 때에 무릎을 끓고 일어서고 손을 올리고 목소리는 낮게 하라는 등 기도의 실천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는데, 이런 것들은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사랑의 표시이며 겸손 과 자제의 의미라고 설명하였다. 반면 《재계론》(齋戒論, , De jejunio adversus Psychios, 213~217)에서는 몬타누스주 의적인 엄격주의가 엿보인다. 그는 이 저서에서, 일체의 양념이나 맛있는 음식을 취하지 않도록 한 엄한 재계의 방법을 제시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느슨한 재계의 방법을 비판하고 있다. ③ 죄 사함에 관한 저서들 : 《통회론》(De paenitentia, 200~206)은 신자들의 죄 사함 가능성과 그 방법을 설명 하고 있다. 그는 세례성사가 죄 사함을 위한 유일하고 결 정적인 방법임을 강조하며, 세례받은 후 범죄하였을 경 우에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고 하였다. 이 두 번 째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파문받은 신자는 공적 고백을 해야 하며, 교회에서 지정한 참회와 화해의 절차를 어떻 게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저서는 교회 가 사죄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주고, 초대 교회에서 실시되었던 고해성사의 방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이 다. 그러나 몬타누스주의에 빠진 이후에 저술한 《수치 론》(De pudicia, 217~222)에서는 제도적인 가톨릭 교회에 는 사죄권이 없고, 영적인 교회만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 고 주장하였다. 그는 우상 숭배와 간음과 살인 등 세 가 지 중죄에 대한 죄 사함의 가능성을 일체 배제하였다. ④ 복장과 여성의 윤리에 관한 저서들 : 테르툴리아노 는 여성들의 윤리에 대해 매우 엄격한 편이었다. 《여성 복장론》(De cultu feminarum, 200~206)에서 그는 여성 신 자들에게 시대적 유행의 노예가 되지 말고 단정한 옷차 림을 할 것을 권하며, 금, 은, 보석 등의 장신구나 화장 품은 교만과 정욕을 자극하는 악마의 발명품이라고까지 혹평하였다. 이 저서에 의하면 당시의 여인들이 입술 연 지를 바르고 머리 염색도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는 올바른 몸가짐과 절제로 정결한 몸을 간직하도록 권하였 다. 또한 《동정녀들의 베일 착용에 대하여》(De virginibus velandis, 211~212)에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1장 5-16절에 근거하여, 결혼한 성인 여성들뿐만 아니 라 일정한 나이에 이르고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도 교회 의 관습에 따라 베일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외투 에 대하여》(De pallio, 222~223)는 가장 짧은 작품으로, 테 르툴리아노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호하는 저서이다. 그 는 로마식 외투(Toga)를 입지 않고 전통적인 외투(Pallium)를 입는 것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대답하면서 의복 발전의 역사를 설명하였다. ⑤ 결혼에 관한 저서들 : 《아내에게》(Ad uxorem, 200~ 206)는 테르툴리아노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음을 예측하고 아내에게 영적 유언 형식으로 쓴 작품으로, 어 떠한 경우에도 재혼을 하지 말도록 당부하면서 결혼이 지니는 신성성, 성사성,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 등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신자와 비신자 사이의 결혼은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라고 권하였다. 한편 《정결의 권고》(De exhortatione castitatis, 211~212)는 최근 아내를 잃은 친구에게 쓴 편지 형식의 저서로서, 재 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살라고 하였다. 그는 사도 바오로 의 권고(1고린 7, 27)에 근거하여 재혼은 일종의 간음이 라고 단죄하였다. 앞의 《아내에게》에서는 그리스도인들 의 결혼의 장점들을 강조하고 재혼 금지는 권고 수준이 었지만, 이 저서에서 재혼을 죄악으로 단죄하는 것은 몬 타누스주의의 색채를 드러내는 것이다. 《단일혼(單一婚) 에 대하여》(De monogamia, 213~217)는 결혼과 재혼에 관 한 세 저서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저서이지만, 재혼을 더 극단적으로 배척하였다. 그는 결혼 자체를 금하는 그노 시스주의자들과 재혼을 인정하는 가톨릭 교회를 모두 비 난하면서, 결혼은 창조주 하느님의 뜻이며 재혼은 간음 이라고 단죄하였다. 〔신학 사상] 신앙과 이성 : 그는 신앙을 설명하기 위해 이성적인 논리를 사용하기보다는 모순을 통한 역설적 설 명을 더 좋아하였다.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나는 믿 는다" (Credo quia absurdum)라는 식의 표현은 그의 저서 들에 자주 나오는 개념이다. 예를 들면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하 느님의 아들이 죽으셨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묻히신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불가능 한 일이기 때문에 확실한 것이다"(《그리스도의 육신》 5, 4) 라고 선언하였다. 또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철학의) 학파와 연구소가 어떻게 교회와 화합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사실 솔로몬 행각에서 받은 가르침 은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야 하는 가르침이다. 따 라서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더럽히고 때묻게 할 온갖 사상, 스토아, 플라톤, 변증론 등을 멀리 버려야 한 다. 예수 그리스도를 지닌 우리가 어떤 다른 체계와 논쟁 하거나 복음 이외에 어떤 것을 더 찾을 필요가 있는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믿음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이단자들에 대한 항고》 7)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신앙과 이성, 신학과 이교 철학 사이의 조화를 꾀하 기보다는 이성에 대한 신앙의 초월성을 강조하면서 새로 운 삶의 결단을 역설하였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동시대 알렉산드리아의 교부들인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나 오리제네스(Origenes, 185~253)가 신앙과 이성 또는 성서와 철학의 조화를 시도한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신학과 법 : 테르툴리아노 자신이 변호사였던 관계로 그의 논리 주장은 철학 사변적이기보다는 법률적인 성격 을 띠고 있다. 집권자들인 박해자들에게는 법의 정의에 따를 것을 호소하며, 명백한 법과 규정이 있는데도 불구 하고 이를 반대하는 이단자들과 논쟁하는 것 자체가 무 익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법의 개념은 그의 신학 사 상을 이해하는 데 기본 열쇠가 된다. 하느님은 법의 제정 자이며, 법에 따라 심판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복음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법"(《단일혼에 대하여》 8)이기 때문에, 이 법을 어기는 것은 죄가 된다고 설파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께 의합한 일을 하 는 것은 선행과 공로가 되는데, 하느님이 그것을 명하였 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최고 입법자이며 심 판관인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은 구원의 보증이 된다. 그 는 교회 가르침의 핵심인 '사도 신경' 을 신앙의 규범 (Regula fidei) 또는 신앙의 법(Lex fidei)이라고 부르면서 성삼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프락세아스 논 박》 2장, 《이단자들에 대한 항고》 13~14장 및 그 외 여 러 곳에서 언급되는 '사도 신경' 은 3세기 초 로마에서 편집된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에 나오는 내용과 매우 유사하여 서로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성삼론과 그리스도론 : 테르툴리아노가 이룩한 신학적 공헌은 특히 성삼론과 그리스도론 분야에 있다. 그는 '성삼' (Trinias)이란 용어를 쓰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존재를 '위격' (persona)이란 이름으로 부른 첫 번째 교부 이다. 즉 "같은 하나의 신성을 지닌 성삼은 곧 성부, 성 자, 성령"(《수치론》 21)이며, "삼위는 하나의 본체와 하나 의 신원(身元)과 하나의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 (《수치론》 2)라고 설파함으로써 성삼 안에 하나의 신적 본성과 세 위격이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모달리즘 또는 성부 수난설을 주장하는 프락세아스를 논박하면서 성삼위의 성서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성삼이란 숫자 가 순수한 단일성과 연결되지 않는 양 아직도 너에게 걸 림돌이 된다면, 유일하고 단일한 분께서 '사람을 우리의 모상과 유사함에 따라 만들자' (창세 1, 26)라고 복수(複 數)로 말하신 그 까닭을 묻겠다. 유일하고 단일한 분이 시라면, '사람을 내 모상과 유사함에 따라 만들겠다' 라 고 말씀하셔야 하지 않았겠는가? 또 이어서 나오는 구절 에서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 중에 하나처럼 되었다' (창 세 3, 22)라고 하는데, 유일하고 단일한 분이심에도 불구 하고 복수로 말씀하셨다면 우리를 속이고 있거나 희롱하 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성자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 들이 해설하는 것처럼 그분이 천사들에게 이 말씀을 하 셨단 말인가? 아니면 말씀하신 분 자신이 동시에 성부이 며 성자이며 성령이셨기 때문에 자신을 복수로 표현하시 면서 자기 자신에게 말씀하셨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분 곁에 계셨던 분들은 그분의 '말씀' 이신 제2위 성자 와 그 '말씀' 안에 계신 제3위 성령이셨기 때문에 '만들 자' , '우리의' '우리들 중에' 등 복수로 말씀하신 것이 다. 그분께서 누구와 함께 그리고 누구와 비슷하게 인간 을 만드셨겠는가? 그분은 장차 인간을 입게 되실 성자와 장차 인간을 성화시키실 성령께 말씀하고 계셨으며, 성 삼의 일치에서 나온 봉사자들과 중재자들과 더불어 말씀 하셨던 것이다"(《프락세아스 논박》 12). 또 그는 그리스도 론에서 하나의 위격 안에 두 개의 본성, 즉 신성과 인성 이 결합되어 있다고 명확히 설파하였다. 이러한 그의 성 삼론과 그리스도론은 '성자 종속론' 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약점은 있지만, 후대의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 었을 뿐 아니라 니체아 공의회(325)와 칼체돈 공의회 (451) 교의 결정의 기초가 되었다. 마리아론 : 테르툴리아노는 그리스도의 육신을 부인하 는 그노시스주의자 발렌티누스파의 주장에 대항하여, 예 수 그리스도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ex Maria) 실제로 태어나서 참다운 인간 육신을 지니고 계신다고 역설하였 다.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입증하려는 열정에서, 마리 아가 출산에서(in partu) 그리고 출산 후에(post partum) 동정성을 잃었다고 말하였다(《그리스도 육신》 23). 다시 말해 마리아가 남자의 씨를 받지 않고 잉태하였다는 점 에서 동정녀이지만, 출산 후에는 출산을 통해 처녀막을 잃었다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동정녀가 아니라고 말한 것 이다. 또 그는 마리아를 둘째 하와로 부르면서, 하느님의 구원 행업 안에서 마리아가 담당하는 역할을 부각시켰 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상과 유사함을 지닌 인간이 마 귀에게 감금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 마귀와 정면 대결하 는 방식으로 구출해 내셨다. 죽음을 초래하였던 악마의 말이 아직 처녀였던 하와 안에 들어갔듯이, 마찬가지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말씀이 동정녀에게 들어가셨다. 이는 여성을 통해 멸망에 떨어졌던 것을, 같은 여성을 통 해 구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하와는 뱀의 말을 믿 었지만,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말씀을 믿었다. 전자가 뱀 을 믿어 저지른 잘못을 후자는 신앙으로써 고쳤다. 그런 데 너(발렌티누스)는 '하와가 그때에 마귀의 말을 통해 아 무것도 잉태하지 않았다' 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녀는 분 명히 잉태하였다. 마귀의 말은 그녀에게 씨가 되었으며, 그녀는 이에 굴복당했기 때문에 고통 중에 출산하였다. 마침내 그녀는 자기 동생을 살해한 악마를 낳은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마리아가 낳은 아들은 육신으로는 형제 이며 동시에 자신의 살인자인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 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여인의 모태 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악한 형제가 남긴 기억을 말소시 키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인간이 들어가 이미 단죄받았던 그곳에서 나오셔야 하였 다"(《그리스도의 육신》 17). 교회론과 죄 사함 : 테르툴리아노는 교회를 "어머니이 며 주인인 교회" 라고 부름으로써 교회가 지닌 품위와, 교회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존경을 드러냈다. 한 분의 아 버지이신 하느님이 있듯이, 한 분의 어머니인 교회가 있 다는 것이다. 교회는 신앙의 그릇이고 진리의 수호자이 며, 교회만이 진리를 전수하고 성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 에 이단자들은 교회에 머무를 수도 없고 성서도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수치론》에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 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여 설명하는데, 아 담이 잠든 뒤 그의 옆구리 갈비뼈를 통하여 하와가 창조 되었듯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옆구리 상처에서 교 회가 탄생하였다고 말하였다. 한편 《통회론》에서 그는 교회가 죄 사함의 권한을 가 지고 있다는 전통을 확인하면서, 죄 사함의 절차를 설명 하였다. 교회로부터 파문을 받은 신자는 먼저 개인적인 회개와 보속을 하면서, 신자 공동체 앞에서 직접 자기 죄 를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주교와 신자 들 앞에 엎드려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간청한다. 이 때부터 그는 속죄자로 분류되어 보속을 해야 하며, 공적 으로 화해가 선포될 때까지 교회의 전례에 참석할 수 없 다. 파문받은 사람의 이러한 참회 절차는 테르툴리아노 가 창안한 것이 아니라, 당시 교회에서 실시되고 있던 관 례를 정리한 것이다. [평 가] 가톨릭 교회의 규범과 그리스도교 교의의 기 초를 놓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이교도와 유대 인과 이단자들을 명확한 논리로 논박한 테르툴리아노 같 은 위대한 학자가 스스로 정통 교회를 떠나 이단 집단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동시에 그가 왜 그렇게 하였는지에 대해 큰 의문이 생긴다. 그의 생애를 보면, 그가 어디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정신적으로 방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그는 이교에서 그리스도 교로 개종하였고, 다시 그리스도교에서 몬타누스주의로 옮겨갔으며, 몬타누스주의 이단에서 또다시 자기 집단을 만들어 나갔다. 이러한 그의 심적 변화 내지 정신적 방황 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테르툴리아노 자신은 윤리적 으로 철저하게 사는 엄격주의자였으며, 조금도 타협할 줄 모르는 과격한 인물이었다. 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 한 동기를 보면, 당시 카르타고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진 리와 신앙을 위해 용감히 목숨을 바치고 생활에 있어 모 범적이었다. 그가 늘 동경하고 추구하던 교회 공동체는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처럼 복음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 고, 성령의 은사 안에서 계속 쇄신되는 교회의 모습이었 다. 그러나 카르타고 교회는 개종자들이 점점 늘어 수적 으로는 성장하였지만, 이에 비해 신자들의 신앙 생활의 질은 점차 낮아져 갔다. 교회 안에 배교자들과 죄인들이 많아졌고, 바람직하지 못한 성직자들도 생겨났다. 테르 툴리아노는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참을 수가 없어 성령 의 역사하심을 외치며 초대 교회의 순수한 생활을 추구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몬타누스주의에 빠져들었지만, 거기 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집단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의 심리적인 변천 여정은 그의 저서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테르툴리아노 사후 20년도 안 되어 카르타고의 위대 한 주교가 된 @프리아노(Cypianus, 200/2107~258)의 전 기 작가인 폰시오(Pontius, ?~260)와 예로니모의 증언에 의하면, 치프리아노는 매일 테르툴리아노의 글을 읽었으 며 그를 '스승'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실 치프리아노 의 작품들을 보면, 테르툴리아노의 저서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저서들이 많다. 치프리아노는 이처럼 테르 툴리아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자신의 저서에서 한 번도 그를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테르툴리아 노는 초기 그리스도교 라틴 문학의 시조(始祖)로 평가받 을 정도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신학 분 야에서 라틴어 용어들을 개발하고 정착시킨 공로자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오리제네스, 로마의 히폴리토(Hippolytus, 170~236)와 동시대의 인물이며, 이 세 사람은 모 두 지역 교회의 신학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리제네스가 그리스 교부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고 한다 면, 테르툴리아노는 라틴 교부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고 할 수 있다. (→ 그노시스 ; 노바시아누스 ; 마르치온 ; 모달리즘 ; 몬타누스주의 ; 성부 수난설 ; 오리제네스 ; 치프리아노) ※ 참고문헌  테르툴리아누스, 이형우 역주, (테르툴리아누스 : 그리스도의 육신론》, 교부문헌 총서 8권, 분도출판사, 1994/ H.R. 드 롭너, 하성수 역, 《교부학》, 분도출판사, 2001, Pp. 237~250/ Bibliographie critique de la première littératuré latine chrétienne, Paris, 1999/ Oprea omnia, A. Reifferscheid . G. Wissowa · A. Kroymann . H. Hoppe · V. Hulhart · Ph. Borleffs = 《CSEL》 20, 47, 69, 70, 76 (1890~1957) ; 《C.Chr.SL) 1~2(1954)/ T.D. Braun, Deus Christianorum. Recherches sur le vocabulaire doctirinal de Tertullien, Paris, 19771 D. Rankin, Tertullian and Church, Cambridge, 1995. [李瀅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