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필로, 안티오키아의 (120?~180/191?)

Theophilus Antioch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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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안티오키아의 주교. 그리스 교부. 호교가. 축일 은 10월 13일. 〔생 애〕 테오필로는 120년경 시리아의 유프라테스 강 근처 이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아우톨리쿠스에게》 2, 24). 그는 수사학과 철학 등의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으 며, 성서를 읽고 깊이 묵상하면서 그리스도교에 귀의하 게 되었다(《아우톨리쿠스에게》 1, 14). 169년에 안티오키 아의 여섯 번째 주교로 선출되어 185년경까지 주교직에 머물렀다(에우세비오, 《교회사》 4, 20). 오늘날까지 전해지 는 테오필로의 유일한 작품은 《아우톨리쿠스에게》(Ad Autolycum)이다. 이교도인 친구 아우톨리쿠스를 그리스 도교에 귀의시키려는 목적으로 저술된 이 책은, 아우톨 리쿠스가 던진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세 권으로 엮어져 있으며, 마지막 권은 180년 이후 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제3권에서 로마 제국의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의 죽음 (180. 3. 17)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오필로가 세상 을 떠난 시기에 대해 확실하게 언급하는 자료는 없지만, 안티오키아 주교좌의 두 번째 계승권자로 세라피온이 선 출된 190년 또는 191년 이전에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180년 이후에서 191년 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테오필로는 주교 신분으로 가톨릭 교회의 신앙을 공적 으로 옹호한 유일한 호교 교부이다. 호교 교부들 중 유스 티노(Justinus, 100/110?~165)와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2세기)는 황제에게 호교서를 썼고, 타시아노(Tatianus, 120/125?~?)는 그리스인들을 향하여 호교서를 썼다. 반면 테오필로의 《아우톨리쿠스에게》는 익명의 저자가 쓴 《디오그네투스에게》(Epistola ad Diognetum)와 함께 특 정 개인을 겨냥하여 쓰여진 호교서이다. 호교 교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갈래는 그리스 철학과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교 진리를 설명하였던 교부들이다. 예컨대 유스티노는 그리 스도가 육화되기 이전에 이미 모든 철학자들은 하느님 말씀(로고스)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고 보았으며, 아테나 고라스 역시 그리스 시인들과 철학자들은 이미 그리스도 교 신앙의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둘째 갈래는 이교 철학과 문화를 비난하고 단죄하는 배 타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교부들인데, 안티오키아의 테오 필로가 여기에 속한다. 비록 타시아노처럼 이교 철학과 문화를 악마적인 것이라고 몰아붙이지는 않았지만, 이교 저술가들과 철학자들은 헛되고 무익한 영광을 추구하면 서 스스로는 참된 것을 알아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다 른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지도 못한다고 비난하였다. 테 오필로에게 있어서 이교 철학과 문화는 어리석은 것이 며, 달콤한 꿀이 발린 독약과 같이 해로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아우톨리쿠스에게》 2. 12). 왜냐하면 고전 문학과 그리스 철학은 이미 성서로 대체되었다고 보았기 때문 이다. 〔저 서〕 테오필로는 《아우톨리쿠스에게》 제1권에서 미신 행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하느님을 숭배하는 것과 황제를 공경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그에 따르면, 황제는 정당한 존경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하 느님처럼 예배의 대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황 제를 세운 것은 그를 통하여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 하려는 것이지, 황제로 하여금 사람들의 숭배를 받게 하 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황제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도록 그를 위해 기도 할 뿐이다. "나는 황제를 공경하지만 숭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황제를 위해서 기도할 뿐이다. 황제도 하느 님에게서 생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직 하 느님, 참된 하느님만을 숭배한다" (1, 11). 제2권에서는 이방 종교나 그리스 사상가들의 오류들 을 지적하는데, 특히 하느님과 세상의 기원에 대한 그리 스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하여 창세기 가 전해 주는 창조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의 창조와 구 원을 설명한다. 이 점에서 《아우톨리쿠스에게》는 비록 짧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교 최초의 창세기 주해라고 할 수 있다. 제3권에서는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윤리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 은 현명하게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 그리스도인들은 절 제할 줄 알고 단일한 혼인을 하며, 정결을 지키고 불의를 몰아내고, 죄를 뿌리뽑고 정의를 구현하며, 법을 지키고 부모에게 효도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모시 며, 진리를 최고 규범으로 여긴다"(3, 15). 또한 그리스 도교가 그리스 철학보다 더 오래된 전통과 권위를 지닌 종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호메로스(Homeros, 기 원전 9세기)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들보다 모세가 훨씬 더 고대의 인물임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였다. 《아우톨리쿠스에게》 외에 테오필로가 저술한 모든 작 품은 분실되었다. 테오필로는 자신이 맡고 있던 안티오 키아 교회를 이단자들의 해악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헤 르모제네스 반박》(Adversus Hermogenem)과 《마르치온 반박》(Adversus Marcionem)을 저술하였다(에우세비오, 《교 회사》 4, 24).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155?~ 230/240?)는 테오필로의 이 저서들을 활용하여 《헤르모 제네스 논박》을 집필하였고, 테오필로의 《마르치온 반 박》은 리용의 이레네오(Ireneus Lugdunensis, 130/140?~ 202?)의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과 테르툴리아노 의 《마르치온 논박》의 모델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예로 니모(Hieronymus, 347~419)의 증언에 따르면, 테오필로 는 《솔로몬의 잠언》과 《복음서 주해》(《명인록》 25) 및 《네 복음서의 조화》(서간 121)도 저술하였다. 또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다룬 《역사서》도 썼다(《아우톨리쿠스에게》 2, 30 ; 3, 19). 〔사 상〕 테오필로는 신약성서가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 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저술가 이다. 마치 예언자들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구약성서 를 기록하였듯이, 신약성서 저자들도 성령의 영감을 받 아 성서를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말씀과 복 음서의 말씀은 서로 일치한다. 왜냐하면 예언자들과 복 음서 저자들 모두 하느님의 유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하였기 때문이다"(《아우톨리쿠스에게》 3, 12). 따라서 테 오필로에게 있어서 복음서가 '거룩한 말씀' 인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또한 그는 바오로의 편지들을 가리켜 "하느님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명령한다" (3, 14)라고 말 함으로써, 신약성서 전체를 성령의 영감을 받은 작품으 로 보았다는 것을 드러낸다. 테오필로는 현존하는 그리스 교부들의 문헌 가운데 성 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일컬어 '삼위 일체' (tp1os, trinitas)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교부이다. 그는 해 와 달이 창조되기 전 사흘이라는 이미지에서 삼위 일체 를 연상해 냈다. "천체가 창조되기 전 사흘은 삼위 일체 의 전형으로서 하느님,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지혜를 가리키는 것이다"(2, 15). 테오필로는 스토아 철학 용어를 빌려 말씀(로고스)과 성부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말씀은 성부와의 관계에서 분명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상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다. 처음에는 말씀이 성부의 태중에 '계셨고' (내재 말씀, xoyos 'evoioferog) 세상 창조 때 성부가 모든 것에 앞서 말씀을 '내보내셨다' (발출된 말씀, 26yos mppoppukos) . 성 부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창조하였고, 말씀인 성자와 지혜인 성령을 통해 이 세상에서 일한다. 그 까닭 에 테오필로는 성자와 성령을 성부의 '손' 이라고 표현하 였다. 이 사상은 이레네오, 테르툴리아노, 알렉산드리아 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에게 영향 을 끼쳤다. 테오필로는 다른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인간 영혼의 불 멸성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즉 인간의 영혼이 불멸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을 잘 지켰을 때 주어지는 보상 일 뿐, 영혼의 본성 자체는 가멸적인 것도 불멸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2, 27). 이처럼 테오필로는 신약성서와 유대 문화의 상호 연속성을 옹호하면서도, 고전 문학과 이교 철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거나 배타적인 자세를 취한 호교 교부이다. (→ 교부 ; 호교가) ※ 참고문헌  《PG》 6, 1024~1168/ R.M. Grant, Theophilus of Antioch. Ad Autolycum Text and Translation, Oxford, 1970/ G. Bosio · E. Dal Covolo · M. Maritano, Introduzione ai padri della chiesa. secoli I e II, Torino, 1990, pp. 208~222/ M. Fiedrowicz, 《LThK》 9, 2000, p. 1472/ P. Nautin, 《DPAC》 2, 1984, pp. 3405~3406/ J. Quasten, Patrology 1, Westminster, 1950, pp. 236~242/ M. Simonetti, Letteratura cristiana antica 1, Casale Monferrato, 1998, pp. 352~369/ M. Simonetti · E. Prinzivalli, Storia della letteratura cristiana antica, Casale Monferrato, 1999, pp. 82~84/ N. Zeegers · V. Vorst, 《DSp》 15, 1991, pp. 530~542. 〔崔元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