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화 土着化 [라]inculturatio [영jincultu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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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민족의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토착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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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민족의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토착화이다.


어느 특정한 지역의 교회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 안 에 자신을 뿌리내리는 것. 교회는 몸담고 있는 어느 지역의 민족, 사회, 문화와 대화를 계속함으로써 그리스도교적 경험 및 가치의 중요 성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특정한 지역의 교회는 그 지역 의 고유한 문화적 가치를 깨닫고 배우고 익히며, 이들을 그리스도교적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개념의 발전] 토착화는 교회의 복음 전파 초기부터 본질적인 요소였으며, 특히 선교 영역에서는 늘 강조되 어 왔다. 예를 들면 1659년에 선교사들에게 내린 포교 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의 지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프랑스나 스페인 혹은 이탈리아 등 유럽의 어떤 나라들을 중국인들에게 그대로 심어 놓으려고 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것이 아닌 신앙을 가져다주십시오. 어떤 민족이든 그 민족이 갖고 있는 예절이나 관습이 전혀 사악한 것이 아니라면, 신앙은 결코 그것을 거부하거나 파괴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보존하고 보호하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착화의 개념이 정립된 것은 최근 의 일이다. 즉 1975년 이후에야 오늘날의 토착화를 의 미하는 '인쿨투라시오' (inculturatio)의 개념이 정리되었 고, 가톨릭 교회 내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 는 1943년 인류학자인 헤르스코비츠(M.I. Herskovitz)가 만든 신조어 '인컬처레이션' (enculturation)과 밀접한 연 관이 있다. 즉 '인' (en)과 '컬처레이션' (culturation)의 결 합으로, 어느 개인이 자신이 속한 고유한 문화적 집단의 일원이 되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1959년 세구라 (D. Segura)는 선교학적 의미에서 토착화를 지칭하는 인 컬처레이션' (inculturation)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 였다. 이는 'en' 을 '육화' (incamation)를 의미하는 'n' 으 로 대치한 단어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육화 의 신비가 토착화의 근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용 어가 보다 넓게 수용된 것은 1975년 로마 우르바노 대 학교에서 개최된 국제 선교학 학술 회의 및 제32차 예수 회 정기 총회에서였다. 이어 1977년 주교 대의원 회의 에서 '인쿨투라시오' 란 용어가 사용되었고, 1979년 3월 2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성서 위원회에 한 훈시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 끝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 적 권고 <현대의 교리 교육>(Catechesi Tradendae, 1979.10. 16)에 '토착화' 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토착화 또는 문화 순응이라는 용어는 신조어이지만, 육화라는 크나큰 신비의 인자하심을 대단히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53 항). 이후 토착화라는 말이 교회 내에서 본격적으로 사용 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교황은 수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를 방문하면서 '아프리카 각국은 먼 곳으로부터 온 선구 자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후, 고유한 민족의 특질과 심성과 함께 복음대로 살아야 하며, 더욱이 인간의 가치 를 숙고하면서 언어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습으로 복음을 번역해야 한다' 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였다. 198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폐막 20주 년 기념 특별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는 토착화에 대해 다 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토착화는 인간 문화가 그리스도 교에 수용됨으로써 그 문화의 참된 가치의 내적 변모가 이루어지는 것과 여러 가지 인간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 가 삽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임시 총회 최종 보고서 I,C, 6 ; RM 52). 또한 1988년 10월 교황청 국제 신학 위원회는 <신앙과 토착화>(Faith and inculturation)라는 문헌을 발표 하여 토착화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의 적용 에 신중을 기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토착화의 기본 요 소들과 다른 양상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토착화의 과정은 주어진 사회 · 문화적 상황 안에 그리 스도의 메시지를 침투시키려는 교회의 노력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교회는 주어진 사회 · 문화적 상황 안에서 사 람들이 그 상황에 내재한 고유한 가치들에 힘입어 성숙 해지고, 동시에 이 가치들을 복음과 조화시켜 나가도록 촉구한다. '토착화' 란 단어는 성장의 의미를 포함하는 데, 복음이 사회적 상황과 만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그 룹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더욱 풍요로워지게 된다는 의 미이다"(1~2항). 199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 1990. 12. 7)을 반포하여 토착화 에 대해 재강조하였다(52~54항). 특히 토착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유성과 순수성을 손상하지 말 것 (52항)과 올바른 의미의 토착화는 '복음에 합치되고 보 편 교회에 일치한다' 는 두 가지 원리에 의존해야 함(54 항)을 강조하였다. 〔복음과 문화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들] 가톨릭 교회에 서는 고유 문화와 그에 대한 새로운 선교적 접근을 표현 하기 위해 '인쿨투라시오' 라는 신조어의 사용을 선호한 다. 이를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토착화' 라고 번역하 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문화 순응' 이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복음과 문화 관계를 설명하는 또 다른 표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가 '인쿨 투라시오'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른 용어들이 지 닌 다음과 같은 한계성 때문이다. 적응 또는 문화 적응(adaptation) : 이 용어는 과거 교 회에서 선교 활동의 기본 원칙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 러나 이 표현들은 그리스도인 생활과 메시지, 주어진 문 화와의 다소 외부적인 관계를 나타내며, 지역 문화에 대 하여 진지하게 숙고하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 한 용어이다. 현지화(indigenizaon) : 이 용어는 토착인의 문화적 유 산과 상황에 중점을 두기에, 변화하는 문화에 적절히 대 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토착화의 지속적인 과정을 제대 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과거 식민주의를 연상시 키는 등 부정적인 의미가 있어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 지 않는다. 문화 변용(acculturation) : 이는 문화들 간의 상호 작용 과 그에 따른 변화를 서술하기 위해 문화 인류학에서 사 용하는 개념으로, 서로 문화가 다른 그룹들 간의 만남과 그 만남의 결과로 얻어지는 문화적 변화를 지칭한다. 그 러나 "교회는 그 사명과 본질에 따라 인류 문화의 어떤 특수 형태에 얽매이지 않기에"(사목 42항), 문화 변용이 라는 개념은 교회와 문화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차용될 수 없다. 상황화(coneechalaliahion) : 이 용어는 종종 교회가 주 어진 문화적 '상황' (context) 안에서 정착해 가는 과정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며, 복음 혹은 그리스도교 메시지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교회와 문화 간의 만남을 적절하게 이루는 '두 가지 길' 이 있다 는 특성을 나타내지 못한다. 상호 문화화(interculturaion) : 이 신조어는 '인쿨투라 시오' 라는 용어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1980년 탄자 니아 므완자(Mwanza) 교구장인 블롬주(Joseph Blomjous) 주교가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인쿨투라시오' 가 문화를 단지 복음화해야 할 대상으로만 판단할 위험이 있다며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에는 풍부 한 전통 문화가 이미 존재하고, 따라서 이들 문화는 그리 스도교와 더불어 서로 발전되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다. 그러나 이 용어는 개념이 명료하지 않기에 널리 사용 되지 않고 있다. 문화의 복음화(evangelization of cultures) : 이 표현은 토착화 과정의 한 측면, 즉 복음 선포가 인류 문화에 미 치는 영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용어를 쓰면 교회가 주어진 문화 안에 현존하는 존재가 되며, 삶과 예배의 형 태 안에서 주어진 문화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개념을 전 달하지 못한다. [양 상] 토착화라는 말이 비록 새로운 용어이기는 하 지만, 그것은 초기부터 교회의 복음 전파를 구성하는 본 질적인 요소였다. 토착화는 "인간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수용됨으로써 그 문화의 참된 가치의 내적인 변모가 이 루어지는 것과 여러 가지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가 삽입 되는 것" 으로 이해할 수 있다(<교회의 선교 사명> 52항 : 사 목 58항 참조). 따라서 토착화 과정에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양상이 있다. 하나는 교회가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문화 의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의 다양성이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리스도교의 메시지가 지역 교회의 문화 상황에 미치는 영향을 '외적 토착화' (inculturation ad extra)라고 부른다. 이는 복음의 힘으로 그 민족의 문화가 쇄신되고 정화되어 발전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내적 토 착화' (inculturation ad intra)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리스 도교의 메시지가 표현되고 생명을 갖게 되는 데 있어서,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 미한다. 이로써 그 민족의 문화 안에 존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토착화 과정은 그 지역에서의 교회의 뿌리내림과 그 지역 문화의 쇄신이라는 두 개의 양상으로 나뉠 수 있 다. 하지만 출발점은 늘 계시된 메시지와 믿는 이들의 공 동체 안에 현존하는 부활한 그리스도이다. 또한 토착화 가 실현되는 곳은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의 민족 가운데 살고 있는 지역 교회, 그리고 보편 교회와 통교 중에 있는 교회이다. 물론 토착화의 임무는 소위 말하는 젊은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문화는 계속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며, 교회는 이 문화를 식별해 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오래된 교회가 있는 지역에서도 토착화의 사 명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토착화를 통해 민족의 문화 속 에 교회가 뿌리내리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독특한 체 험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체험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지역 주민들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그들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발전 시키며, 더욱 보편된 일치로 이끄는 대화의 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전체는 교회가 표지이 며 실재라는 메시지와 현실을 보여 준다. 〔과 정] 번역 단계 : 주어진 문화 안에서 그리스도교인의 삶과 메시 지가 정착하게 되는 단계이다. 보통 이 단계에서는 복음 전파의 시작과 주어진 문화 영역 내에서 신앙심 깊 은 집단의 형성이 함께 이루어진다. 복음 전파자에게 이러한 시작 단계 는 새로운 문화의 가치에 대한 학습 기간을 의미한다. 즉 그 지역의 문 화, 종교 심성, 습관 등을 배워야 하 는 것이다. 대상자들이 이해할 만한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서 선교사들에게는 이러한 새로운 문화적 가치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 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였을 때, "교회는 토착화를 통하 여 교회 자신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표지가 되고 선교의 유효한 도 구가 된다" (<교회의 선교 사명> 52항) . 융합 보완 단계 : 토착화 과정의 제2 단계는 지역 교회가 그 지역 문 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이해하는 충분한 능력과 다양한 문화 수준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는 일정 정도의 능력을 얻었을 때 시작된다.즉 변형 (transfomation)의 단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외적 토착화 의 관점에서 이것은 문화에 대한 복음 전파의 효과들이 명백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내적 토착화의 관점에서는 교회의 전통적 구성 요소들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표현하 기 위한 통찰력, 정화, 그리고 새로운 형식의 창조를 의 미한다. 그러므로 지역 교회는 교회의 보편적 유산에 충 실하고 민족 문화와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진정 한 인간 표상과 모순되는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예언자 적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사목 22항 참조). 이러한 방법 으로 지역 교회는 삶과 메시지를 통해 지역 문화를 재정 향시키고, 새롭게 하며, 활력을 불어넣는 주체이자 원동 력이 된다. 창조 단계 : 이 세 번째 단계는 새로운 친교(communion)를 맺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친교는 먼저 그 민족 문화와 친교를 지닌 지역 교회의 수준에서 이루어 진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에는 가톨릭적 본성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이때 친교는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 가 "사랑의 문명화" 라고 불렀던 것을 이룩하는 방향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개방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합당하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내고, 고유한 문화의 바탕 위에서 교회 공동체를 더욱 풍부하게 하여 결국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그 공동체는 정의, 진리, 인간 존중의 바탕 위에 성립된 공동체를 의 미한다. 결론적으로 토착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 다. 토착화는 지역 교회의 그리스도인 체험을 그 민족의 문화 안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체험은 그 지역 문화의 요소 안에서 자신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 문화를 활력 있게 하고 정향시키며 쇄신하는 힘이 되어 해당 문화뿐만 아니라 보편 교회도 풍요롭게 하여 새로 운 일치와 친교를 형성한다. [영 역] 내적 토착화 : 내적 토착화 과정은 네 가지 주 요 영역에서 발생한다. 이 네 가지 영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Unitatis Redintegratio, 1964. 11. 21) 제3장에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듯이 전례, 영성, 신학, 규율이다. <선교 교령>(Ad Gentes Pivinitus, 1965. 12. 7) 제3장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이 네 영역들이 각 민족 문화의 재능과 특질에 적합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22항). 토착화와 관련하여 <전례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1963. 12. 4)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거 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그리스도교 백성이 거룩한 전례에 서 풍성한 은총을 더 확실히 받도록 전례 자체의 전면 쇄 신을 적극 추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전례는 신적 제정 으로서, 변경할 수 없는 부분과 변경할 수 있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으로, 전례 자체의 가장 깊은 본질에 잘 부합되지 못하는 것들이 그 안에 잘 못 끼여들었거나 또는 덜 적합해진 것들이 있다면 바꿀 수 있고 또 바꾸어야 한다" (21항). "교회는 신앙이나 공 동체 전체의 선익에 관련되지 않는 일에서, 엄격한 형식 의 통일성을 적어도 전례에서는 강요하고자 하지 않는 다. 오히려 여러 민족과 인종의 정신적 유산과 자질을 계 발하고 향상시킨다. 그리고 각 민족들의 풍습에서 미신 이나 오류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호의로 존중하고, 또 할 수 있다면 고스란히 보 존하며, 더욱이 참되고 올바른 전례 정신에 부합하기만 하면 때로는 전례 자체에 받아들인다”(37항).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에서는 동방 교회들에 대해 말하면서, 이러한 영역에서 "정당한 다양성"(17항)을 말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교회들은 이미 설립된 상태이고, 오래된 역사로 존경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토착화를 위 한 임무 앞에서 동방 교회의 경험은 마치 하나의 모범과 도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본 동 방 교회들의 예들은 한편 주의를 촉구하며, 그러므로 사 랑과 보편 교회로서 공동체 정신을 보존, 강화시켜야 한 다. 반면 <선교 교령>에서는 전래 역사가 짧은 지역의 교 회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곳에서는 폭넓은 토 착화 작업이 여전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 러나 두 교령 모두, 다양한 역사 · 문화적 환경들 안에서 보편 교회가 펼치는 선교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토착화의 사명에서 하나인 가톨릭 교회의 일치는 본질적 인 것이다. "신생 교회들은 온 교회와 긴밀한 친교를 유 지하여야 하고, 교회 전통의 요소들을 고유 문화와 결합 시켜 서로 힘을 주고받아 신비체의 생명을 증대시켜야 한다"(선교 19항).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메시지 의 다양한 표현들은 교회의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세계에서 교회의 단일성을 명시해 주는 지표가 된다. "관습과 관례의 다양성은 교회 일치에 지장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교회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그 사명을 다하는 데에 적지 않게 이바지한다"(일치 16항). 신학생 교육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 1992. 3. 25) 에서도 신학의 토착화에 관한 문제에 특별한 주목을 요 구하고 있으며, 또한 이 영역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55항). 이 논의는 동방 교회 '교리의 여러 가지 신학적 표현' 에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 두 개의 중 요한 구절에 주목하고 있다. "계시 진리의 탐구에서 하 느님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다양한 방법과 접근법을 동방 과 서방에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계시된 신비의 어떤 측면을 어떤 때에 이 사람보다 저 사람이 더 적절히 이해 하고 더 분명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므 로, 그러할 때에 그 다양한 신학적 표현들은 흔히 대립한 다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보완한다고 말하여야 한다" (일 치 17항). 신생 교회들은 각자의 주된 사회 · 문화적 영역 에서 신학적 고찰을 활발하게 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 계시하시고 성서에 기록되고 교부들과 교도 권이 가르친 사실과 말씀을 새롭게 연구하여야 한다. 이 렇게 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신앙이 민족들의 철학이나 예지를 고려하여 이해를 추구할 수 있는지, 또 어떠한 방 식으로 그들의 풍습과 인생관과 사회 질서가 하느님의 계시로 밝혀진 도덕과 합치할 수 있는지 더욱 분명하게 파악될 것이다" (선교 22항). 교회 생활의 다른 영역들처럼 신학 연구와 성립(formation) 영역에서도 토착화 과정이 성령의 인도로 더욱 심 도 있는 일치와 보편성으로 이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 다. "하나로 살아가는 그러한 지역 교회들의 다양성은 갈라질 수 없는 교회의 보편성을 더욱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교회 23항). 외적 토착화 : 외적 토착화에서 토착화 영역은 인간 문화 전체이다(사목 53~56항). 문화의 복음화는 교회에 서 늘 강조하여 온 것이다. 특히 교황 바오로 6세는 <현 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1975. 12. 8)를 통해 다음과 같이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였다. "교회로서 복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더 넓은 지 역에서 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 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 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고 하겠다"(19항). . "복음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복음화가 마치 문화를 겉치장하는 것처럼 장식하는 것이 아니고, 문화의 깊은 근원에까지 생명력 있게 복음화하는 것이다"(20항). 교황 요한 바오 로 2세 역시 <현대의 교리 교육>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 하고 있다. "우리는 교리 교육이나, 보다 일반적으로 말 하는 복음 선교나, 그것이 일정한 문화나 여러 문화들 한 가운데에 복음의 능력을 옮겨다 주는 것을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53항). 즉 문화의 중심에 복음의 힘을 발휘 하자고 하며, 교황 바오로 6세와 같이 역동적인 복음화 활동을 촉구한다. 어느 고유한 문화 안에 교회가 심어지면, 교회는 그 고 유한 문화의 요소들을 체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그리스도교적 진리와 새로운 삶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 는 새롭게 받아들인 문화 요소들을 이용해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더욱 적합하게 선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창조하는 데 공헌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문화를 식별하는 것이다. 즉 복음과 일치하는 것, 복음에 반대되는 것을 가려내어야 한다. 문화란 인간의 소산이 므로 때로는 죄악으로 점철될 수 있기 때문에, 고쳐지고 높여지고 완성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는 완 성된 것,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계속 발 전해 나가야 하는 것이기에 교회는 이 문화를 정확히 식 별해 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식별 기준은 완전한 인간이 되신 그리 스도에게서 찾아야 한다. 사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복음과 문화의 만남 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상을 형성해 나간다. 왜냐하면 인간이 복음과 문화를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그 인간상 은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고, 다른 한편으로 는 여러 다양한 문화와의 접촉으로 변천해 나갔다. 그 시 대마다 추구하는 인간상도 다르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상을 정립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과 문화의 만남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류 역사 속에서 사회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명 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의 실존에 관한 진리, 그의 인격적 존재와 그의 공동체와 그의 사회적 존재에 관한 진리를 충만히 갖추고 있다. ···이 인간이야말로 교 회가 자기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따라 걸어 야 하는 첫째가는 길이다. 인간은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 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이다"(<인간의 구원자> 14항). 인간의 영적 유산에 존재하는 '말씀의 씨앗 에 의해 예 비된 복음과 문화의 만남은, 모든 역사를 통해 인간이 진 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진정한 모습은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속에서 분명히 밝혀져 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인간 문화들에 의해 성취되어 왔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 리스도인의 표상은 복음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드러 난다. 또한 이러한 표상은 세계관과 인간관, 사회적 규범 과 제도, 기술, 과학, 예술 등이 다양한 문화들 안에서 발전하기 위한 원칙이자 규범이기도 하다. 이 모든 발전 에서 중추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양도할 수 없는 인간 의 존엄성과 자유이다. 모든 인간들은 더욱 인간화된 사 회 건설을 위해 대화라는 공통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모 든 이들은 여기에 최선을 다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신학적 요소] 토착화 과정에 대한 신학적 고찰은 선 교학과 문화 신학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이것은 문화 인류학에 대한 기본적 지식 없이는 해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 기 위해서는 교회의 역사를 '토착의 역사' 라는 관점에 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계시 신학 : 토착화의 신학적 고찰은 반드시 모든 토 착화의 모범이자 원천이 되는 하느님의 계시를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양한 문화들이 구원의 신비에 대한 계시를 보여 주고 있으며, 성서 자체는 문화사(文 (史史)의 유물(monument)로 간주될 수 있다. 연약한 인간 의 언어로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은, 말씀이 인간이 되었 다는 점에서 완벽한 표현에 다다른 하느님의 사랑을 드 러낸다. 성서 본문의 형식은 문화적으로 조절되었기 때 문에, 그것의 전달과 주해는 반드시 연구되어야 한다. 아 울러 성서가 담고 있는 메시지의 문화적 함축성 또한 연 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제는 성서가 어떻게 특정 전통 개념과 관습들에 동화되었고, 한편으로 다른 것들은 거 부하였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는 창조와 부활 사건의 구원 신비에 비추어 그 진정한 의미를 찾아 야 한다. 창조 신학 : 토착화 신학은 성서적 근거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창조주가 '창조의 협력자 (cocreator)인 인 류에게 세상을 다스리도록 위탁한 사명을 강조하고 있 다. 어떤 전승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인간이 모든 피조물 에 '이름을 붙였다' 는 사실을 들어 상징화하고 있다. 인 간 존재는 창조 질서를 관리하고 '문화' 를 창조할 것을 요구받는다. 창조주가 설정한 질서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상 숭배의 다른 형식들은 문화의 가치를 손상시키며, 하느님 홀로 영광받아야 한다는 것을 거부한다. 창조 신 학은 항상 구원 신학의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 즉 놀라 운 방법으로 이루어져 온 것은 더욱더 놀라운 수단을 통 해 다시 이루어져 왔다. 토착화와 그리스도의 신비 : 토착화 과정에 대한 그리 스도론적 고찰을 육화의 신비에 한정시키려는 경향이 있 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음 문헌은 그와 같은 접근 을 정당화시키는 차원에서 종종 인용된다. "교회는 구원 의 신비와 하느님께 받은 생명을 모든 사람에게 가져다 줄 수 있도록, 바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강생으로 함께 살아가셨던 사람들의 사회 · 문화적 상황에 스스로 매이 셨던 그러한 움직임으로, 이 모든 집단으로 파고들어 가 야 한다" (선교 10항). 그러나 이 문헌의 의도는 라틴 신학 에서의 십자가 신학에 대립하여 육화의 신비를 구원 사 건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소위 그리스 신학에 대한 암시 를 읽으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주어진 문화 안에서 그리 스도인의 신앙과 삶이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육 화의 과정' 으로 토착화를 바라보는 것은 자동적으로 구 원의 효과를 갖게 하여 교회의 삶으로부터 부활의 신비 를 제거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현존해 가는 것' 은 단 지 구원의 신비에 관한 통교를 위한 하나의 조건일 뿐이 다. '지속적인 육화' 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교회와 전승 이라는 역사적 중재를 회피하고, 육화라는 이름 아래 그 것의 참된 실체를 부정한다. 육화란 그리스도 자신의 충 만함을 드러내는 부활의 신비를 향해 질서지워진 완전한 육화의 섭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필립 2, 6-11 참조). 토착화의 그리스도론적 고찰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체험을 실현하며 그 체험이 문화 요소로 전형(轉形)되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새로운 문화와 형태로 정화 되고 변화되는 기간, 그리고 문화적 · 교회적인 수준에서 새로운 통합과 친교의 출현이라는 세 단계를 보여 준다. 이러한 세 단계는 성모 마리아의 아드님으로서 인류 역 사 안에 말씀이 들어옴, 예수의 직무와 자기 비움(kenosis) , 주님이 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상응한다 고 볼 수 있다. 복음과 문화의 만남은 광범위한 토착화 신학 안에서 다음과 같은 사도적 케리그마에 대한 다양한 형태를 검 토할 때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우선 '완전하게 됨' (히브 5, 9 : 10, 14 ; 11, 40 등)이다. 영광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완전한 방법으로 하느님이 창조할 때 의도하였던 존재가 되며, 영광을 받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 안 에서 하느님은 완전한 방법으로 인간이 된다. 둘째는 '새로운 창조' (갈라 6, 14-16 : 2고린 5, 17-18)이다. 이 같은 새로운 창조에서 이전의 구원의 길은 더이상 가치 있는 규범이 아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가만이 따라야 할 규범이며, 인류의 화해와 새로운 일치 의 원천이다. 마지막으로 '재현' (에페 1, 10. 22 이하)이 있는데, 육 화보다 재현이 토착화 과정의 으뜸가는 유비(類比)이다. 재현은 지역 문화를 완성시키고 신앙을 새롭게 하는 육 화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 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 의 분" (골로 1, 18)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지 고 완성됨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충만함으로 모든 문화들이 새로운 친교로 재통합될 것이 요구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과 죽음을 겪었던 것처 럼 모든 문화들에는 회개가 요구된다. 회개는 사랑으로 부터 벗어난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에 대립되는 모든 요 소의 제거를 요구하는 것이며, 신적 충만함과 완전함 그 리고 삶의 법칙이다. (는 문화 적응 ; → 교회와 문화 ; 문화 ; 문화 순응 ; 복음화 ; 새 복음화 ; 선교 ; 〈선교 교 령> ; <현대의 복음 선교>) ※ 참고문헌  Evangelizzazione e culture : Atti del congresso intermazionale scientifico di missiologia, Roma, 5~12 Ottobre, 1975, Roma, PUU, 1976/ A. Amato, Incilinzine-Comttsolizzine Teologia di contesto : Elementi di bibliografia scelta, Salesianum 45, 1983, Pp. 79~111/J. Amstutz, Kirche der Volker : Skizze einer Theorie der Mission, Freiburg im Breisgau, 19721 A. Chupungco, Cultural Adaptation ofthe Liturgy, New York, 1982/ P. Divarkar, The Encounter ofthe Gospel with Culture, FABC Papers 7, Hong Kong, 1978/ J. Gritti, L'expresion de lafoi dans les cultures humaines, Paris, Centurion, 1975/ M.J. Herskovitz, Man and His Works : The Science of Cultural Anthropology, New York, Herder and Herder, 1952/ L.J. Luzbetak, The Church and Culture. New Prespectives in Missiological Anthropology, Maryknoll N.Y., Orbis Books, 1988/ 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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