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 본당
龜山本堂
글자 크기
2권

1 / 2
구산 성지 전경.
수원교구 소속 본당. 경기도 하남시 망월1동 358-3 소재. 1979년 6월 30일 신장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 었으며, 주보는 도움이신 성모 · 성 김성우 안토니오. 관 할 구역은 하남시 망월동, 장수동, 미사동, 선동과 풍산 동 일부. 〔교 세〕 1979년 859명, 1984년 1,041명, 1989년 547명, 1994년 597명. 〔역대 신부〕 초대 길홍 균(吉鴻均) 이냐시오(1979. 6~1984. 9), 2대 서명석(徐明 錫) 안드레아(1984. 9~1987. 9), 3대 김진태(金振泰) 안드 레아(1987. 9~1989. 2), 4대 박승룡(朴昇龍) 글레멘스 (1989. 2~1990. 12), 5대 이승범(李承範) 알로이시오(1990. 12~1992. 2), 6대 이용남(李龍南) 골롬바노(1992. 2~현재). 〔설립과 변모〕 구산(龜山)이라는 지명은 마을 북쪽 한 강 변에 세워진 작은 산이 거북이 등같이 생긴 데서 유래 한다. 이곳에 최초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1830년대 이 전으로추측되지만, 확실한 것은 1836년 1월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의 모방(P. Maubant, 羅伯多祿) 신부가 조선 에 입국하여 이 고을의 김성우(金星禹, 안토니오)를 회 장으로 임명하고 공소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구산 공소 는 설립 이후 1979년 6월 본당으로 승격되기까지 약 140년 동안 6차례나 관할 본당이바뀌었다. 최초의 관 할 본당은 약현(현 중림동) 본당이었으나 얼마 후 종현(현 명동) 본당으로, 1927년에는 백동(현 혜화동) 본당, 1948 년 신당동 본당, 1958년 경안(광주) 본당을 잠시 거쳐 천 호동 본당으로 이관되었다가 1963년 수원교구가 설정되 면서 서울대교구에서 수원교구로 편입되었으며, 1967년 에 신장 본당으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6 년 11월 각각 공소 강당을 건립한 후, 1956년 5월에 다 시 신축한 강당(대지 502평, 건물 36평)이 현재까지 성당 으로 쓰이고 있다. 당시 신자들은 신당동 본당 김창문 (金昌文, 요셉) 신부의 주선으로 이 강당을 세웠는데, 여 기에는 공소 회장이던 김정호(金正浩, 베드로)의 힘이 컸다. 1979년 6월 30일 구산 공소는 서울시 강남구 하일동 의 일부를 편입하여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초대 주임으 로 부임한 길홍균 신부는 성지 성당을 건립하는 데 힘써 건축 설계도를 완성했다. 3대김진태 신부는 마을 작목 반(作木班)을 편성하여 지역민들의 친목과 생활의 안정 을 돕는 데 힘썼으며,4대 박승룡 신부는 하나의 구역이 었던 구산을 2개구역으로 분리하면서 본당을 현재와 같 은 형태인 5개 구역 12개 반으로 재정비하였다. 1991년 8월 수녀원이 건립되면서 다음해 1월 이후 사랑의 씨튼 수녀회가 이곳에서 본당의 사목을 돕고 있다. 현재까지 이 본당은 박건순(朴建淳, 베네딕도), 김학렬(金學烈, 사 도 요한), 김학무(金學武, 세자 요한) 신부 등 3명의 성 직자와 수도자 10명을 배출하였다. 〔구산 성지〕 구산은 박해 시대 이래로 유명한 교우촌 이자 순교 성지이다. 구산에서 배출된 순교자는 1841년 에 4월 29일 교수형을 받고 순교한 성 김성우 안토니오 를 비롯하여 그의 둘째 동생 만집(萬集, 아우구스티노 1798~1841), 셋째 동생 문집(文集, 1801~1868)과 김성우 의 아들 성희(聖熙, 1815~1868), 만집의 아들 차희(次熙, ?~1858), 문집의 아들 경희(敬熙, 1823~1868) , 사촌인 주 집(胄集)의 아들 윤희(允熙, 1834~1868)와 최지현(崔址 鉉, ?~1868), 심칠여(沈七汝) 등 모두 9명이다. 이 중 김 성우의 시신은 구산 선산에 안장되어 있다가, 1927년 5 월 30일 서울교구의 라리보(A. Larribeau, 元) 보좌 주교 의 지휘 하에 발굴되어 용산 신학교로 이장되었는데, 구 산 공소에서는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1949년 5월 30일 이곳 구산에 김성우의 순교 기념비를 세웠다. 1967년 구산 공소가 신장 본당의 관할 공소로 된 이 후 교우들은 각자의 농토를 조금씩 떼어 봉헌하는 방법 으로 약 5,000평의 땅을 팔아 현재의 성지 기념 성당 후 보지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1977년 9월 김성우의 묘비 를 새로 건립하였는데, 이때 오기선(吳基先, 요셉) 신부 가 비문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1978년 9월에 김성우 부인의 묘비를 건립하였으며, 김완식(金完植, 아가돈)을 주축으로 한 5명의 성지개발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본당 승격 이후 성지 개발 계획은 본당 사목의 중점이 되었다. 1980년 수원교구장인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와 안젤로니(L. Angeloni) 교황 대사의 공동 집전으로 성지 봉헌식을 가졌다. 그 후 길홍균 신부는 성지 기념 성당 신축 예정지에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 상 (김세중 작)을 건립하고 1983년 10월 8일에 축성식을 가 졌으며, 김진태 신부는 1988년 10월 성지 내에 천막 강 당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개발 제한 구역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1995년 1월 현재까지도 성지 기념 성당의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수원교구) ※ 참고문헌 천주교 수원교구, 《수원교구 30년사》, 1993/ 하성래, 《성 김성우 안토니오와 구산의 순교자들》, 1984/ 천주교 구산교회, 《구산 성지》, 1989. 〔元載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