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강 본당 退江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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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소속 사벌 퇴강 준본당의 전신. 경북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 398 소재. 1922년 9월 24일에 본당이 설립되었으나, 1970년경 함창 본당의 관할 공소가 되었 고, 2003년 7월 11일에 사벌 퇴강 준본당으로 설정되었 다. 주보는 성모 그리스도의 도움. 관할 구역은 상주군 사벌면 목가리 · 목상리 · 매호리 · 퇴강리, 문경군 영순 면 말응리 · 율곡리. (교 세] 1967년 1,213명. 〔역대 신 부] 초대 이종필(李鍾弼) 마티아(1922. 9~1931. 11), 2대 이성인(李聖仁) 야고보(1931. 12~1934), 3대 정수길(鄭 水吉) 요셉(1935.6~1940.6), 4대 김준필(金俊弼) 아우구 스티노(194. 8~1948. 9), 5대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1954~1956. 7), 6대 최영호(崔榮浩) 비안네(1956. 7~ 1965. 1), 임시 이동훈 안토니오(1965. 1~?), 7대 이석진 (李錫震) 그레고리오(7~1965.6), 8대 박태산(朴泰山) 요 아킴(1966~1968. 8). 〔복음의 전래와 공소 시기] 1866년경 김해 김씨 집성 촌에 살고 있던 김현영은 천주교 서적을 읽고 입교를 결 심하였지만, 때마침 일어난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인하 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886년 한불수호조약(韓 佛修好條約 체결 이후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완화되 자 김현영은 손자인 김종록에게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권유하였고, 김종록은 그 뜻을 받아들여 인근 공소에서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1899년에 김종록은 최면집, 김 운배와 함께 가실(현 낙산) 본당의 문경 공소 표석골에서 세례를 받아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이들을 중심으 로 1903년 공소가 설정되었다. 김현영은 자손들을 입교 시킨 후에 자신도 세례를 받고자 하였으나, 같은 해 갑작 스러운 발병으로 대세를 받고 사망하였다. 같은 해 김천 (현 황금동) 본당의 김성학(金聖學, 알렉시오) 신부가 공 소로 와서 신자들에게 판공 성사를 주었다. 대구 대목구 장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가 1915년 11월 17 일에 퇴강 공소를 사목 방문한 것을 계기로 신자수가 증 가하여 새 공소와 사제가 거처할 집을 지었고, 1921년 11월 17일 드망즈 주교는 재차 공소를 방문하여 성 요 한 세례자를 주보로 하여 공소를 축성하였다. 〔본당의 설립과 활동] 1922년 9월 24일 퇴강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이종필 신부가 부 임하였다. 같은 해 본당 사무실을 신축하였고, 1924년 에 성당을 건설하여 대구 대목구 부주교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로써 1866년 이전부터 전래되어 온 복음의 씨앗이 약 60년 만에 퇴강 본당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2대 주임 이성인 신부 재임기인 1933년에는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대건학원을 세워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고, 3대 주임 정수길 신부 재임기인 1937년경에는 함창읍 오동리 72번지에 초가를 마련하여 함창 공소를 설립하 였다. 1940년 6월에 정수길 신부가 언양 본당으로 전임 된 후 한동안 주임 신부가 부임하지 않았고, 대신 함창에 서 활동하던 서형석(徐亨錫, 프란치스코) 신부가 퇴강 지역의 전교까지 담당하였다. 1941년 서 신부가 사망한 뒤에는 상주(현 서문동) 본당에서 퇴강 지역을 담당하다 가, 주임 신부가 공석이 된 지 4년 만인 1944년 8월에 김준필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1948 년에 김 신부가 옥포 본당으로 전임됨으로써 주임 신부 자리는 다시 공석이 되었고, 이에 상주 본당의 정행만 (鄭行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가 퇴강 본당의 관 할 지역을 돌보다가 1954년 김명제 신부가 5대 주임으 로 부임하였다. 1952년에 왜관 감목 대리구가 설정되어 상주와 문경 지방의 사목이 왜관 감목 대리구에 속하게 됨에 따라 1956년 문경 점촌동 본당의 최영호 신부가 6대 주임으 로 부임하였다. 새로 부임한 최 신부의 헌신적인 노력으 로 1958년에만 165명이 세례를 받을 정도로 본당의 신 자수가 급증하였지만, 1924년에 건설된 성당 건물이 협 소하여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1956년 10월 구 대건학원 자리에 새 성당 공사를 착공하여 약 10개월 후에 건평 92평의 고딕식 성당과 62평의 사제관을 완공 하였고, 1957년 8월에는 왜관 감목 대리 비테를리(T. Bitterli, 李聖道) 몬시놀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 다. 그 후 1969년 5월에 안동교구가 설정되면서 퇴강 본당은 다시 왜관 감목 대리구에서 안동교구로 편입되었 으나, 곧 폐쇄되어 함창 본당의 공소가 되었다. 〔준본당 설립] 퇴강 본당이 공소가 된 후 그곳에 있는 사제관, 교육관은 여름 신앙 학교 등으로 활용되었다. 하 지만 최근 퇴강 공소의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기 념하려는 움직임이 전개되기 시작하여 1999년 11월 22 일에는 1899년 김종록, 최면집, 김운배의 공소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봉도 전교 100주년 기념 행사' 를 안동교구장 박석희(朴石熙, 이냐시오) 주교의 주례로 거 행하였으며, 퇴강 공소 출신 사제와 수도자 및 평신도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 미사에 이어 '만남의 집' 축복식 및 개원식이 거행되었다. 그 후 2003년 7월 사벌 퇴강 준본당이 신설되어 초대 주임으로 이준건(李 俊鍵, 콜베) 신부가 임명되었다. 계림동 본당의 사벌 · 매협 · 매호 · 묵상 · 목가 · 삼덕 공소와 퇴강 공소를 묶 어 준본당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리고 7월 11일에 안 동교구장 권혁주(權赫周, 요한 그리소스토모) 주교의 집 전으로 설립 미사를 봉헌하였다. 현재 사벌 퇴강 준본당 은 퇴강 본당의 유산을 계승하는 동시에 농촌 지역의 공 소 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첫발을 내닫고 있다. (→ 안동교구 ; 함창 본당)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안동 교구사 자료 제4집 - 교구 전사》, 천주교 안동교구, 1997.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