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빙겐 학파 - 學派

〔영〕Tübingen School · 〔독〕Tübingen Sch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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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반부터 독일 튀빙겐 대학의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학부에서 시작되어 일정한 흐름을 유지한 대 학 내 신학 연구자들을 지칭하는 용어. 튀빙겐 학파의 구 성원들은 서로 다양한 신학 주제와 내용을 연구하였지만, 자신들의 내부적 일체감을 유지시켜 주는 이 학파의 형식적이고 지역적인 일치에 동의하고 있었다. 튀빙겐 학파의 이념은 현재 튀빙겐 대학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 독일뿐만 아니라 전세계 신학계의 흐름을 일정 정도 조정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튀빙겐 학파는 '가톨릭 튀빙겐 학파' (Katholische Tübingen Schule)와 프 로테스탄트 튀빙겐 학파'(Evangelische Tübingen Schule)로 나눌 수 있다. 〔가톨릭 튀빙겐 학파〕 학파의 태동과 의미 : 가톨릭 튀 빙겐 학파의 태동은 19세기 초반의 독일 사회가 겪고 있 던 종교 · 사회 · 문화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유럽 전역을 휩쓸던 혁명의 시대 이후 교회의 세속화는 점점 빨라졌고, 가톨릭 교회의 전반적인 몰락마저 우려될 정 도로 위기감이 닥쳐왔다. 그리고 소위 신학적 앙시앙 레 짐(Ancien Regime : 후기 스콜라 신학, 합리주의, 자연주의, 초 자연주의, 계몽주의)의 폐허 위에서 독일 민족 운동이 확산 되고 있었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가톨릭 신학의 재편과 교회의 개혁 그리고 신앙의 활력을 위한 획기적인 시도 가 요청되었다. 이러한 교회 안팎의 개혁적 국면에 부응 한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태동은 교회 내에 신선한 바람 을 불러일으키며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위한 주도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가톨릭 튀빙겐 학파는 가치 중립적인 의미에서 볼 때 튀빙겐 대학 가톨릭 신학부에 종사하는 신학자들을 지칭 하므로, 가톨릭 신학부가 이 학파의 중요한 핵심 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연적 개념 이해 외에 이 학파가 내포하는 질적인 의미도 고려한다면, 현재까지 이 학파 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신학 연구의 방향성 역시 부각되 어야 한다. 사실 학파의 출발과 발전 과정 속에서 이러한 의미들은 이미 정리되고 있었다. 학파의 기초와 신학적 관심사 : 가톨릭 튀빙겐 학파 태 동의 결정적인 기초는 1812~1817년까지 엘방겐(Ellwangen)의 프리드리히 대학에서 드라이(J.S. von Drey, 1777~1853)가 다졌다. 이 학파의 창시자 또는 대부로 불 리는 그는 1812년에 자신의 논문 개정본인 <가톨릭 신앙 의 정신과 본질>(Vom Geist und Wesen des Katholizismus) 을 발표하면서 이 학파의 방향성을 예고하였으며, 1817 년 튀빙겐 대학의 가톨릭 신학부 교수로 부임한 후 1819년부터 《튀빙겐 신학 계간지》(Tübinger Theologische Quartalschrift)를 발간하였다. 이 잡지의 발행으로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핵심적인 구심점이 마련되었으며, 이후 드라이와 뜻을 같이하는 그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가톨릭 신학부의 구성원이 계속 늘어났다. 또한 바르트(K. Barth, 1886~1968)가 독일 가톨릭 정신의 새로운 대부라 칭한 교회사가 묄러(J.A. Möhler, 1796~1838)가 1826년부터 튀빙겐 대학의 조교수로 승진하여 강의를 하면서부터 신 학 연구, 교회 정책 수립과 방향 설정에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가톨릭 튀빙겐 학파는 후기 계몽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독일 관념론의 영향권 아래서 독특한 미래 지향적인 내용과 형식을 선택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 로운 역사 의식의 지평 위에서 가톨릭 신학과 정신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이 학파의 다양한 연구 주제와 활 동을 요약한다면, 역사와 그리스도교에 관한 관계 규정 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학파의 신학적 해석 틀 은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일종의 유 기적 사고로 이를 통해 교의와 교회사가 지닌 변증법적 관계를 살폈고, 신조학(信條學, Symbolik)이라는 이름으 로 교회의 역사에 드러난 그리스도교 각 종파 간의 신경 들을 재구성하였다. 특히 드라이는 역사 비판적인 방법과 추론적인 방법의 구성적 접합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학문 방향성은 엄격한 학문성 (Wissenschaftlichkeit), 실천적 현실 관련성(Gegenwartbezogeneheit) 그리고 정통 교회가 지닌 한계를 인정하면 서도 보다 성숙한 교회 정신(Kirchlichkeit)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즉 가톨릭 튀빙겐 학파는 그들의 연구 정신을 교회의 신앙에 연결하면서 합리적인 종합을 시도하였다. 학파의 성장 :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성장 과정을 살 펴보면, 초창기의 이념이 손상되지 않고 형식적 통일성 을 현재까지 유지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 학파의 초창기 는 19세기 초 드라이를 필두로 학파 기관지의 공동 발기 자였던 히르셔(J.B. Hirscher, 1788~1865)와 묄러의 시대로 서, 1835년 묄러가 뭔헨 대학으로 옮긴 시기까지이다. 이들 소위 1세대의 뒤를 잇는 쿤(J.E. von Kuhn, 1806~ 1887)의 이론적 교의 신학과 헤펠레(C.J. von Hefele, 1809 ~1893)의 신조학 연구, 그리고 슈타우덴마이어(F.A.Staudenmaier)의 철학과 교의 신학 연구 등은 이 학파에 무게를 더해 주었다. 이 학파의 지속적인 발전은-질적 이고 목표 지향적인 면에서-구성원들의 학파에 대한 경험적인 소속감과 그 근본 이념에 대한 동의 속에서 이 루어졌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정체성은 무너지지 않았고, 뢰슈(S. Lösch), 아담 (K. Adam, 1876~1966) 그리고 가이젤만(J.R. Geiselmann, 1890~1970)이 초기 구성원들의 뒤를 이어 20세기에 이 학파를 이끌었다. 가톨릭 튀빙겐 학파의 커다란 유산은 자유주의 정신과 비판적 개방성으로 항상 살아 움직이는 현재에 신학을 매개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신학 담론의 틀로 이끌어 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흰네르만(P. Hiinnermann), 카스퍼(W. Kasper), 큉(H. Küng) 등이 이 학파 를 대표하면서 현대 신학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튀빙겐 학파] 프로테스탄트 튀빙겐 학파는 이중의 발전 과정을 거쳤다. 보통 전기와 후기로 구 분하는데, 전기는 1777~1797년까지 신학부 교수를 지 낸 슈토르(C.G. Storr)의 학문적 입장과 관련이 있는 튀빙 겐 대학 프로테스탄트 신학부의 흐름이다. 그리고 후기 는 1840년대경 슈토르의 제자인 바우어(F.C. Baur, 1792~ 1860)가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구성한 바우어 학파 (Baursche Schule)를 형성하던 시기이다. 전기 프로테스탄트 튀빙겐 학파 : 이 학파를 대표하는 주요 기관지는 슈토르와 그의 제자들이 발간한 《그리스 도교 교의 신학과 윤리》(Magazin für christliche Dogmatik und Moral, 1796~1812)였다. 전기 학파는 계몽주의와 합 리주의적 경향에 반대하면서, 성서의 초자연주의(Supranaturalismus)를 자신의 특징으로 내세웠다. 이 학파는 역 사 비판적 입장을 거부하고 순수하게 성서적으로 머물 것을 요청하였으며, 성서는 하느님의 권위에 의해 인정 되고 그 자체로 부정할 수 없는 계시라는 것을 강조함으 로써 성서의 초자연주의적 입장으로 모든 신학적 판단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후기 프로테스탄트 튀빙겐 학파 : 이 학파는 바우어를 중심으로 1832~1852년까지 기관지인 《신학 연감》(Theologische Jahrbuch)을 발간하였다. 후기 학파에 직 · 간접 적으로 영향을 준 리출(A. Ritschl, 1822~1889)은 바우어 와 가까웠고, 1856년부터 후기 튀빙겐 학파와 입장을 함께하였다. 그리고 바우어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오버베크(F. Overbeck) 역시 이 학파의 동조자였다. 이 학파의 주요 특징은 초대 그리스도교의 구체적 입장과 신약성서의 생성 과정에 관한 세밀한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전기 학파와는 달리 신학 연구의 역사 비판적 관 점이 주된 출발점이었다. 후기 학파는 역사 비판적 연구 방법론(특히 신약성서학 부분에서)의 성과를 교회사와 교의 사에 적용하려 하였다. → 묄러, 요한 아담 ; 바르트, 카 를 ; 아담, 카를) ※ 참고문헌  K. Adam, Die Katholische Tübinger Schule, Gesammelte Aufsätze, Augsburg, 1936, pp. 389~412/ W.L. Fehr, The Birth of the Catholic Tübingen School. The Dogmatics of J.S. Drey, Chicago, 1981/ J.R. Geiselmann, Geist des Christentums und des Katholizismus, Mainz, 1940/ ----, Die Katholische Tübinger Schule. Ihre theologische Eigenart, Freiburg, 1964/ U. Köpf, 《LThK》 10, 2001, pp. 290~291/ S. Lösch, Die Anfänge der Tüibinger Theologische Quartalschrift 1819~1831, Rottenburg, Neckar, 1938/ R. Reinhardt, Tüibinger Theologen und ihre Theologie, Tübingen, 1977/ P. Schanz, Die Katholische Tüibinger Schule, 《ThQ》 80, 1898, pp. 1~49/ M.B. Schepers, 《NCE》 14, 2003, pp. 233~234/ M. Seckler, Katholische TSch., 《LThK》 10, 2001, pp. 287~289/ B. Welte, Beobachtung zur Systemgedanken in der Tüibinger katholische Schule, 《ThQ》 147, 1967/ K. Werner, Geschichte der katholischen Theologie, Miinchen, 1886. 〔吳敏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