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

救世軍

〔영〕Salvation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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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월리엄 부드(왼쪽)와 한국 구세군의 개척자 호가드 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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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자 월리엄 부드(왼쪽)와 한국 구세군의 개척자 호가드 정령.


군대식 조직과 운영으로 선교, 빈민 구제, 사회 사업에 중점을 두는 프로테스탄트의 한 종파. 1865년에 영국 런던의 감리교 목사인 월리엄 부드 (William Booth, 1829~1912)와 그의 부인 캐트린 부드 (Catherine Booth, 1829~1890)가 창립하였다. 부드는 15세 때 깊은 신앙 체험을 한 후, 23세에 감리교 목사가 되어 본격적으로 전교 활동에 투신하였다. 그러나 순회 부흥 강사직을 원했던 그는 교회 내의 반대로 타구역에서 복 음 전도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자, 1861년 설교가인 아내 캐트린과 함께 감리교회를 떠났다. 이후 동부 런던에 정 착하면서 부드는 가장 소외된 빈민 계층과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부드는 본래 새로운 교파를 만들 의도는 없었으나, 계 급 의식과 구태 의연한 선교 방식에 젖은 기존 교회가 자 신이 인도한 빈민들을 이끌지 못함을 알게 되자, '그리스 도교 전도회' (The Christian Mission)를 창립하고 전도와 구 제 사업을 하였다. 전도 사업이 영국 전역으로 활발히 확 장되자, 부드는 복음 전파에 있어서 대중적인 호소 방식 과 그 호소를 지속시키기 위한 조직의 문제를 수정하기 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1878년 부드는 '그리스도교 전 도회' 를 '구세군' 으로 개칭하여 군대 조직을 취하고 자 신이 초대 사령관이 되었다. 1879년 초기 구세군은 가까 운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지에 파급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로 전파되었다. 19세기 말경 에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로 선교 활동을 확장하였으며, 현재는 96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1991년 12월 현재). 전세계의 구세군을 감독 · 통제하는 만국 본영(萬國本 營)은 현재 런던에 있으며, 총지휘관인 대장의 휘하에 9 개의 주무 부서가 있다. 각 나라에는 군국 본영(軍國本 營)이 있으며, 조직은 군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 국의 경우, 군국 사령관 아래 서기 장관이 있어 각 부서 의 서기관들을 지휘 · 감독한다. 지방 본영에는 지방 장 관이 있어 개별 교회인 영문(營門)을 감독한다. 영문에 는 담임 사관이 목회하고 있으며, 타프로테스탄트 교파 의 재직에 해당하는 하사관과, 평신도인 병사들이 있다. 〔교 리〕 모든 구세군 병사가 서약해야 하는 '11개 항 신조' 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구세군 신조의 형성 과 정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공통으로 인정하는 것은 영국 국교회의 39개조 신조와 요한 웨슬리의 25개 조 신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11개 조항을 요 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 의 표준은 오직 신 · 구약 성서이다. ② 삼위 일체 및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믿는다. ③ 인류 시조의 범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다. ④ 믿는 자마다 그 안에 증거를 갖게 됨을 믿는다. ⑤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 은 모든 신자의 특권이 다. ⑥ 영생과 육신 부활, 종말의 심판을 믿는다. 11개조 신조에는 종교 개혁가들의 신앙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즉, '오직 믿음' , '오직 성경' , '오 직 은총' 이다. 구세군 교리의 두 가지 핵심은 '구 원' 과 '성결' (聖潔)이다. 첫째, 철저히 개심함으로 써 성령의 역사로 인한 영적 변화가 일어나 구원받 게 되며, 둘째, 죄에서 구원받은 후 계속 성결한 생 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이한 점은, '믿는 자마다 갖게 되는 증거' , 곧 성령에 의한 내적 증거이다. 여기서 성령에 의한 내적 변화가 구원의 주관적 증거라 면 계속적인 순종의 삶과 실생활에서의 성결은 객관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스럽고 정결한 생활은 구원을 위한 필수 조 건으로서 '모든 신도들의 특권' 임을 강조한다. 회개 후 에 반드시 요구되는 이 '성결' 은 요한 웨슬리의 가르침 에서 유래한다. 웨슬리는, 죄인을 용서하시는 바로 그 능 력이 또한 악한 경향과 기질을 가진 인간의 마음을 정결 케 한다고 가르쳤다. 구세군은 더 나아가 온전한 구원은 단순히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투쟁의 삶과 희생을 통 해, 다시 말해 '전투적인 성결' 을 통해 성취된다고 가르 친다. 구세군은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나 복음주의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교리로 인정하 지 않는다. 이 같은 관점에서 성사(聖事, Sacrament. 프로 테스탄트에서는 '성례전' 이라 함)를 준수하지 않으며 전례 도 없다. 그렇다고 구세군이 성사의 가치를 전적으로 부 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사는 구원에 필요 불가결한 요소가 아니며, 또한 성사 의식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 이 그 의식의 진정한 의미도 모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이유는 성사가 생명 있는 체험의 필요성을 때때로 모호 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혼인 예식은 행하지만 성 사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한 예이다. 또한 신적 계시의 원천으로서의 성서는 인정하지만 신학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한국의 구세군〕 1908년 10월 영국 런던 만국 본영의 호가드(R.Hoggard) 정령 일행이 내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서대문구 평동에 본부를 정하고 2개의 영(營)을 설립하였다. 1910년 2월부터 성경 대학이라는 명칭으로 한국 구세군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사관 양성을 시작했으 며, 1985년 경기도 과천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용하고 있다. 1918년, 당시 겨울에 얼어죽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평동 사관학교 내에 구호소를 설치하고 급식을 실 시했다. 그 후 고아원, 미혼모 사업, 금주 · 금연 운동 등 본격적으로 사회 사업을 실시해 왔으며, 현재 55개의 사 회 사업 및 교육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1928년 개설된 자선 냄비 사업은 구세군 사회 사업의 상징이 되었다. 1940년에는 일제가 구세단으로 개칭하였으나 광복 후 다시 구세군으로 환원하였다. 1911년 12월 현재 한국의 군국 본영인 구세군 대한 본영을 중심으로 7개 지방에 214개의 영문(營門)이 있으며, 종신직인 사관의 수는 504명, 병사와 예비자를 포함한 군우(軍友)의 수는 11 만여 명이다. ※ 참고문헌  E. Delaney, 《NCE》 12/F. Coutts, The Weapons of God, London : Hodder & Stoughton, 1986/ W. Clark, 《DEM》/ E.H. McKinley, 《ER》 13. 〔李官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