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영〕Ti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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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승려들.
중국 남서부에 있는 티베트족 자치구. 흔히 '세계의 지붕' 이라고 일컬어진다. 좁은 의미로 티베트는 120만k㎡의 '시짱[西藏] 자치 구 를 의미한다. 티베트 권역에는 일반적으로 시짱 자치 구와 칭하이성[青海省], 쓰촨성[四川省] 서부와 윈난성 〔雲南省〕 일부 및 간쑤성[甘肅省]의 일부까지 포함된다. 남쪽은 인도 · 네팔 · 부탄 · 미얀마, 남동쪽은 윈난성, 동 쪽은 진사(金沙) 강을 경계로 쓰환성, 북쪽은 신장웨이 우얼〔新疆維吾爾〕 자치구에 접한다. 주도(州都)는 라싸 [拉薩]이며 인구는 2,682,400명(2000)으로, 해외 망명 자가 약 13,000명에 달한다. 지구상에서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티베트 고원은 상 대적으로 독립적인 지형에 속한다. 평균 해발이 4,000m 이상이며 동서로 2,500km, 남북으로 1,200km, 총면적 은 200만k㎡에 달한다. 매우 광활한 곳이기 때문에 다양 한 자연 조건을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강우량과 산소 량이 낮다. 〔역사와 불교〕 티베트인은 티베트 고원의 야루짱부(雅 魯藏布〕 강 유역에서 농경 생활을 해 온 토착민들과 티 베트 북부의 칭탕(青塘) 고원의 유목민들을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지역에서 유입된 종족들이 융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다. 이들이 창조한 티베트의 역사는 대략 7세기 초 이전의 소국 시기, 10세기 초까지의 토번(吐蕃) 제국 시기, 13세기 초까지의 분열 시기, 14세기 중엽까지의 사캬파(薩迦派) 시기, 17세기 중엽까지의 재분열 시기, 19세기 말까지의 겔룩파(Dge-lugs-pa, 黃帽派) 시기, 1950년까지의 달라이 라마(Dalai Lama, 達賴喇麻) 친정 과 독립 시기, 그리고 1951년 이후의 중국 편입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불교가 티베트에 들어오기 전에 티베트인들은 토착 신 앙인 뵌교〔苯敎〕를 믿었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지리적 환경은 티베트의 산신 신앙인 뵌교 신앙의 바탕이 되었 으며, 이는 최종적으로 불교 사상에 통합되었다. 티베트 는 '뵌교' 와 '불교' 의 오랜 투쟁과 융합의 과정을 거쳐 불교의 나라로 변화되었다. 티베트 역사에서는 불교의 수용에서 랑다르마(郞達瑪, 809~842)의 불교 탄압까지 의 시기를 '전홍기' (前弘期)라고 부르고, 1045년 고승 아티샤(Atisa, 982~1054)가 인도에서 초빙된 이후의 시기 를 '후홍기' (後弘期)라고 부른다. 현재 티베트 문화의 핵심은 티베트 대장경을 중심으로 한 불교 문화이다. 티베트에 불교가 수용된 것은 토번 제 국 시기로, 7세기 초 성립된 토번 제국은 티베트 문화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토번 제국을 건설한 손짼 감포(松贊幹布, 608?~650)는 티베트 고원을 통일하고 633년에 수도를 야룽 계곡에서 라싸로 옮겼다. 또한 그 는 불교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통치를 공고히 하였으며 톤미 삼보타(Thonmi sambhota)를 인도에 파견,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게 하여 티베트 문자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티베트에 불경이 널리 번역 · 유포되었다. 중국 불교와 인도 불교가 함께 전래되었으나, 티베트인들은 중국 불교보다는 인도 불교를 더 선호하고 중시하였다. 토번 제국의 붕괴 후 티베트는 400여 년에 걸친 긴 분 열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는 동안 불교가 가장 중요한 사 회 구성 원리로 자리잡았다. 분열 시기의 유산 가운데 하 나가 바로 저명한 영웅담 《게싸르 대왕 전기》이다. 이후 9~14세기에 이르는 불교 부흥기에는 닝마파〔寧瑪派〕, 카규파(喝擧派), 사카파 등의 교파가 형성되어 불교 문 화를 핵심으로 하는 티베트 문화가 정비되었다. 13세기 에 사카파의 라마인 팍 파(Phags-pa, 1235~1280)는 중국 의 원 왕조를 창건한(1279) 쿠빌라이 칸(Kublai Khan, 忽 必烈汗, 1215~1294)의 조언자가 되었으며, 칸의 지원으 로 티베트 전역을 통일하면서 오랜 분열 시기를 끝냈다. 그는 티베트와 중국의 관계를 승려인 라마와 후원자인 황제의 관계로 정립하였으며, 이것이 이후 티베트 대외 관계의 주요 내용이 되었다. 현재 티베트의 가장 중요한 종파인 겔룩파는 총카파(宗喀巴, 1357~1419)의 종교 개혁으로 나타났다. 1409 년 총카파는 라싸의 간덴사에서 전소법회(傳昭法會)를 열고 수천 명의 승려를 결집시켜 개혁의 기치를 올렸다. 그리고 약진을 거듭하여 1643년에는 제5대 달라이 라마 인 로상 강쪼(Lozang Gyatso, 1617~1682)가 몽골왕인 구 시 칸〔顧實汗〕의 도움으로 티베트의 종교계와 정치계를 평정, 겔룩파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로써 티베트에는 달 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Panchen Lama)를 중심으로, 대소 활불(活佛)들을 포함하는 정교 합일 제도가 완성되었다. 위로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아래로는 군소 활불에 이르기 까지, 각급의 라마들이 전생(轉生) 체제를 통해 각급의 정권을 장악하여 정교 일치를 이룬 것은 티베트 사회만 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현대의 티베트는 청대의 티베트 정복, 청말의 티베트 자립, 중화민국 시대의 세 차례 전쟁, 1950년 무렵 중국 공산 정부와의 전쟁, 1959년의 독립 운동 등을 거쳐서 형성되었다. 청나라가 1720년 티베트에서 몽골 세력을 몰아내고 티베트 전역을 장악하였으나, 티베트의 종교적 자율성은 훼손되지 않았다. 이것이 추후 독립 운동의 원 동력이 되었다. 1840년 아편 전쟁 이후 변방 민족들의 자립 경향이 거세져 제국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 하였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에 청조의 지배력이 유명무 실해진 상황에서 티베트는 영국과 1888년, 1904년 두 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여야 하였다. 이어서 1910년 청 제국군이 티베트를 공격해 오자 티베트는 사실상 독립 국이 되어 1904년에 패배하였던 영국 측의 지원까지 받 아야 하였다. 그러나 결국 1950년 10월 중국군의 공격 에 군사적으로 대항할 능력이 없던 티베트 정부는 저항 을 포기하고, 1951년 5월 23일 중국 인민 정부와 <티베 트의 평화적인 해방 방법에 관한 협의> 17조를 체결하 였다. 그 내용은 티베트를 독립 국가가 아닌 '민족 구역 자치' 를 시행하는 중국의 한 '지방' 으로 규정하는 것이 었다. 중국의 점령 정책에 대한 티베트인의 반발은 1959년 3월 10일 전면적인 반란으로 표면화되었다. 3월 31일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후에도 티베트의 대대적인 반란 또는 독립 운동은 거세게 전개되었지만 1961년에 이르러 대체로 진압되었으며, 1965년 9월 1 일 시짱 자치구가 성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6 년 이후 10여 년간 중국을 휩쓴 문화 대혁명(1966~1976) 의 광풍은 티베트에도 대단히 큰 영향을 주었다. 현재의 티베트는 중국의 다른 지역과 유사한 개혁 · 개방의 물결 에 휩싸여 있으며, 특히 낙후된 서부 지역을 대상으로 한 '서부 대개발 정책의 대상이다. 〔가톨릭의 전래〕 가톨릭 신자는 티베트 전체 인구의 0.3%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티베트의 인연 은 오래되었다.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36~323)이 티베 트를 정복하였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으나, 당대(唐 代)에 네스토리우스주의를 따르는 선교사가 티베트 지역 을 방문하여 그리스도교 문화를 일부 전하였다는 이야기 는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초기 활동 : 최초로 티베트에 도착한 유럽 선교사는 안드라데(Antonio de Andrade, 1580~1634) 신부를 책임자 로 하는 예수회원들이었다(1624-165). 1626년 3월 15 일 카세야(Estevão Cacella)와 카브랄(João Cabral) 신부는 티베트에 선교회를 설립할 목적으로 인도의 선교 기지를 출발, 1627년 말에 부탄을 떠나 티베트 서남부의 시가 쩨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1630년 3월 6일에 카세야 신 부가 사망하고, 1632년에 카브랄 신부마저 이곳을 떠남 으로써 시가쩨에 세워진 선교회는 폐쇄되었다. 또한 예 수회의 데시데리(Ippolito Desideri, 1684~1733) 신부는 1714년 인도의 델리를 출발하여 티베트의 라싸에 도착 하였다. 이후 그는 티베트 전역을 돌아다니며 주요 사찰 과 학교들을 방문하였고 티베트 종교와 경전들을 연구하 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발표하였으며, 가톨릭 교리에 근거하여 그 내용들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카푸 친 작은 형제회가 이 지역의 선교를 위임받게 되자 예수 회원들은 1721년 티베트를 떠났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활동 : 인도 서부의 해안 도시 수라트(Surat)에 있던 프랑스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선교 사들은 인도 동북부와 티베트를 새로운 선교지로 결정하 였다. 이 일에 가장 열심이었던 인물은 프랑스 출신인 프 랑수아 마리(Francois Marie de Tours) 신부였다. 1703년 3월 14일 교황청의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은 회의를 열어 카푸친 작은 형제회가 제의한 인도 동북부와 티베 트 선교 계획에 동의하였다. 1704년 4월 로마를 떠난 6 명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 회원 중에서 프랑수아 마리 신 부와 주세페(Giuseppe da Ascoli) 신부는 1707년 6월 12 일 티베트의 라싸에 도착하여, 티베트어를 배우고 무료 의료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1707~1712년까지 2~3명의 성인과 1명의 아이 그리고 12명의 죽을 위험 에 있는 아이에게 세례를 베푼 것이 전부였다. 더이상 체 재 경비가 없었던 선교사들은 티베트를 떠나야만 하였 다. 결국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티베트 1차 선교는 5명 의 사망자와 11,000루피의 경비만을 소모한 채 큰 성과 없이 끝났다. 제2차 선교 활동은 1714년 5월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도미니코(Domenico da Fano) 신부를 비롯한 세 명의 선 교사가 라싸에 도착한 것은 1716년 10월 1일이었다. 선 교사들은 1차 선교 활동에서 얻은 신망을 바탕으로 무료 의료 사업을 계속하면서 공개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 으나 즉각적인 선교 효과는 없었다. 게다가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준가르부(準喝爾部)의 티베트 침략으 로 1717년에 라싸가 함락되자, 재산상의 손실을 입은 것은 물론 선교 활동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티베트를 점 령한 준가르부 지배층이 선교사들을 박해하고 외국인들 의 티베트 방문을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淸) 의 강희제(康熙帝, 1661~1722)가 준가르부의 토벌을 위 해 티베트로 군대를 동원하였고, 1720년 티베트는 결국 중국에 병합되었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는 1721년 5월부터 선교 활동을 다시 시작하였는데, 1727년까지 이루어진 이 시기는 선 교 활동의 황금기였다. 도미니코 신부와 함께 티베트 선 교 활동에 나선 조아키노(Gioacchino da S. Anatolia) 신부 는 30여 세의 건강하고 의술도 뛰어난 선교사였다. 1722년 도미니코 신부가 티베트를 떠났음에도 불구하 고, 그는 정력적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조아키노를 비 롯한 몇몇 선교사들의 무료 치료와 교리서 번역은 티베 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제7대 달라이 라마와 실 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선교 활동의 성과가 나 타나고 있을 때인 1727년에 내전이 일어났다. 내전 후 다시 시작된 선교 활동은 1733년 8월까지 지속되었으나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였다. 선교사의 수가 매우 적었을 뿐만 아니라 후임자도 없고 선교사들의 건강도 매우 나 빠져서 고원에서의 선교 활동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명목상 티베트 선교사는 1730년 말에 16명 이었지만 곧 5명으로 줄었고 나머지는 모두 세상을 떠났 으며 새로운 인원이 보충되지 않았다. 1732년과 다음해 에 라싸에 있던 2명의 신부가 티베트를 떠났다. 그때 라 싸에는 14명의 중국인 신자와 4명의 영세자, 13명의 티 베트인 영세자와 5명의 네팔인 영세자가 남아 있었다. 20여 년에 걸친 선교 활동의 결과라 하기에는 너무 미약 한 수준이었다. 제3차 선교 활동은 1737년부터 시작되었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선교사는 모두 16명이었는데, 이 중 7명 이 1741년 1월 6일 오후 라싸에 도착하였다. 티베트의 섭정은 선교의 자유를 확인해 주었다. 그로 인해 표면상 선교 활동은 매우 순조로워, 1742년에는 라싸의 영세자 수가 27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신자가 늘어남에 따라 티 베트 불교와 공개적인 갈등이 발생하여, 결국 라싸의 선 교 거점은 폐쇄되었고, 1745년 4월 20일 마지막 선교사 가 티베트를 떠났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는 1704~1745년까지 41년간 선 교 활동을 하였지만, 실제 활동 기간은 30년 정도였다. 그들은 티베트 문화를 유럽에 소개하고 유럽 문화를 티 베트에 소개하는 등 문화 교류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또한 이들의 철수가 티베트 선교의 중지를 의미하는 것 은 아니었다. 네팔과 인도에 선교 거점을 유지하면서 티 베트 선교를 재개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1792년에 티베트는 힌두스탄(Hindustan) 대목구에 속하게 되었다. 대목구의 설립과 선교사들의 활동 : 티베트 지역에는 오랫동안 선교사의 발길이 미치지 않았다. 다만 1844년 에 2명의 선교 수도회 소속 회원(Evariste Huc, Joseph Gavet)이 라싸를 잠깐 방문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영국이 점차 인도 북부와 뱅골 지역을 점령해 가자 1821년에는 티베트 대목구가 설립되었으며, 1845년에 교황청의 추 기경 회의는 티베트와 힌두스탄 대목구를 아그라(Agra) 대목구와 파트나(Patna) 대목구로 분리하였다. 그리고 1846년 3월 27일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831~1846) 는 칙령을 통해 라싸에 티베트 대목구를 설립하였다. 이 후 티베트 선교는 파리 외방전교회가 관할하는 새로운 시기로 들어섰으나 변경 근처에 몇몇 불안정한 선교 거 점을 확보하였던 1854년 당시, 티베트를 통과하려던 파 리 외방전교회 신부들(Nicholas Krick, Auguste Bourry)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860년 북경 조약 이후 선교사들의 활동은 합법적이 되었다. 그러나 선교사의 티베트 진출은 철저히 금지되 었다. 그래서 티베트 인근인 쓰환성 서부의 캄(Khams) 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 활동하면서 교 육 및 의료 선교 사업을 하였다. 캄에 있던 외국 교회 중 체계가 잡히고 가장 광범위한 것은 가톨릭 교회였다. 1879년에 교황청은 중국을 5대 대목구로 구분할 때, 쓰 촨성 · 꾸이저우성[貴州省] · 윈난성과 함께 티베트를 제 4 대목구에 예속시켰다. 1900년에 파리 외방전교회는 3 명의 신부를 파견하였는데, 그중 2명은 직접 캄의 바탕 [巴塘]까지 진출하였다. 그런데 자신들의 기득권이 잠식 당한다고 생각한 바탕의 라마와 토사들이 영국군의 티베 트 원정 시기인 1905년 3월에 성당 세 곳을 불태우고 2 명의 프랑스 선교사와 청조의 관리들을 살해하였다. 공산 중국 지배하의 티베트 : 1910년까지 티베트 지 역에는 21명의 유럽 신부들과 2,407명의 티베트인 가톨 릭 신자들이 있었다. 교황청은 1910년에 티베트를 쓰환 성의 캉딩〔康定]을 중심으로 한 시캉[西康] 교구에 포함 시켰으며, 1939년에 시캉 교구는 캉딩 교구로 바뀌었 다. 그러나 공산 체제가 들어선 후, 종교를 아편이라고 생각한 중국의 지도부는 종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 다.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의 문화 대혁명 기간 동안, 티베트에서는 종교를 완전히 뿌리뽑기 위한 정책 들이 계속 시행되었다. 모든 종교 예식들이 금지되었고, 6,000개의 성당, 교회, 사찰 등의 종교 시설들이 파괴되 었다.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의 집권 후인 1980 년부터 종교의 자유는 다시 인정되었으나 사회적인 억압 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중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 티베 트 독립 운동과 종교를 계속 방해하였고, 그러한 현상은 특히 중국의 애국 교회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가톨릭 신자들과 같은 소수 계층들에 집중되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선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실 제적으로는 정부의 간섭하에 교회를 통제하려 하고 있 다. 특히 티베트에 대해서 중국 정부는 더욱 강력한 통제 정책을 펼치며 활동을 제한하고 있어 현재 이 지역의 가 톨릭 교세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그 전모가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개혁 · 개방 정책으로 외부와의 접촉이 늘 어나면서 가톨릭만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트의 여러 교파 가 티베트 선교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50년 당시 신자 5,870명, 성당 38개, 신부 16(교구 소속 6, 수도회 소속 10), 수녀 30명이 있었다. (→ 라마교) ※ 참고문헌 김한규,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 혜안, 2003/ Warren W. Smith Jr., Tibetan Nation : A History of Tibetan Nationalism and Sino-Tibetan Relations, Boulder(Colorado), Westview Press, 1996/ 張雲, 《青藏文化》, 瀋陽, 遼寧教育出版社, 1998/ 伍昆 明, 《早期傳教士進藏活動史》, 北京, 中國藏學出版社, 1992/ 마르 꾸 쩨링 · 이상룡, 《티벳 불교권 선교》, 도서출판 NCD, 2003/ E.R. Hambye, 《NCE》 14, 2003, pp. 71~72. 〔朴章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