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센도르프, 로베고트 프리드리히 콘스탄틴 폰 Tischendorf, Lobegott Friedrich Konstantin von(1815~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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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독일의 루터 교회 신학자. 신약성서 본문 비평가. 1815년 1월 18일 독일 작센의 렝게펠트(Lengefeld)에 서 물리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티센도르프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을 배우는 동안(1834~1838), 그리스어 문 법 학자인 바이너(J.G.B. Winer, 1789~1858)의 영향을 받 아 신뢰할 만한 성서 본문이 필요하며, 성서의 권위에 대 한 믿음을 복원시키기 위해 그리스어 성서를 원본에 가 장 가까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데 투신하기로 결심하였 다. 1838년 박사 과정에 들어간 그는 그리스어 신약성 서의 본문 개정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다음해에 라이프 치히 대학의 시간 강사가 되었고 1843년 1월 6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성서 사본을 수집하고 연 구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이를 위해 광범위한 지역을 여 행하였기에 교수 활동이 어려웠지만, 1845년에 라이프 치히 대학의 부교수로 발령을 받았고 1860년에는 정교 수가 되었다. 신약성서 그리스어 본문을 원문에 가깝게 재구성하려고 하였다. 티센도르프는 25세 때 작센의 지원을 받아 양피지 위에 쓰여 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고대 사본의 하나인 에프렘 이중 사본(Codex Ephraemi Rescriptus)과 파리 국립 도서관에 있는 다른 사본들을 해 독하는 일을 하였다. 그 당시의 심경은 "나는 거룩한 임 무, 신약성서의 본래 형태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에 직면 해 있소" 라고 약혼자에게 쓴 글에 잘 반영되어 있다. 또한 그는 옛날 사본들을 찾고 조사하기 위해 유럽과 근동 근처에 있는 도서관들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고, 그 노력의 결과로 시나이 반도 남단에 위치한 성 가타리나 수도원에서 4세기경의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렸다. 성 가타리나 수도원을 처음 방 문한 1844년에 그는 양동이에 담아 놓은 땔감 속에서 양피지 묶음을 우연히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살펴보니 대문자로 쓰여진 70인역 구약성서의 한 부분이었다. 그 래서 그 양동이에서 꺼낸 43장 이상의 양피지를 라이프 치히로 가져가도록 허락을 받았다. 역대기 상권, 예레미 야, 느헤미야, 에스델서 등이 적혀 있는 이 양피지는 라 이프치히 대학에 보관되었다가, 1846년에 발견된 장소 를 밝히지 않은 채 그의 연구를 후원해 준 왕의 이름을 따서 프레데리코 아우구스타누스 사본(Codex Frederico Augustanus)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1853년에 티센도르프는 같은 사본의 다른 부분을 얻 기 위해 성 가타리나 수도원을 다시 방문하였지만, 아무 런 수확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와야 하였다. 그러다가 러시 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1855~1881)의 후원으로 다시 수도원을 방문한 1859년에야 비로소 구약성서 대부분과 신약성서가 붙어 있는 70인역 사본이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카이로에 잠시 머물고 있는 성 가타리나 수도원 원장의 허락을 받아, 사본을 빌 려 그 내용을 모두 옮겨 적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수도원 측과 협상하여 이 사본을 러시아 황제에게 선물하도록 주선하였으며, 복잡한 흥정을 거쳐 약 7,000달러에 구 약성서 대부분과 신약성서 전체 및 《바르나바 서신》, 헤 르마스(Hermas)의 《목자》가 수록된 사본들이 상트페테 르부르크(Sankt Peterburg)의 제국 도서관에 소장되었다. 이 시나이 사본은 4세기 후반 이집트에서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1933년 소련 정부로부터 대영 박물관이 매 입하여 현재 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러시아 황제 알 렉산드르 2세는 티센도르프가 가능한 원본에 가깝도록 작업한 복사본을 출판하도록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주었 다. 이 사본은 1862년 러시아 건국 1,000주년을 기념 하여 2절판 4권으로 출판되었고, 이 업적으로 그는 옥 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66년에 티센도르프는 로마에 가서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의 복사를 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러 나 사본을 연구한다는 구실로 8일 동안 몰래 바티칸 사 본을 복사하고, 그 본문으로 새 가톨릭 판본 작업을 하고 있던 편집자를 설득하여 6일 동안 연구 기간을 연장받아 전체를 복사하였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필사 속도와 정 확성을 지녔던 그는 바티칸 사본을 완전하게 복사하여 1868년의 가톨릭 판보다 앞서 출판하였다. 티센도르프는 주로 본문상의 증거를 모으려는 작업을 꾸준히 펼쳐, 현대 성서학계의 기본 바탕이 되는 본문 비 평(textual criticism)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려 놓았다. 1841년에 《그리스어 신약성서》(Novum Testamentum Grace)를 처음으로 펴낸 이후 1842년에 파리에서 세 개의 판본을 펴냈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초기 본문은 1849 년의 라이프치히 2판이다. 이 판본은 티셴도르프가 13 번째 판본으로 사용하였던 그리스어 본문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그와 다른 학자들이 사본이나 번역판, 그리고 교부들의 저술에서 찾아낸 여러 가지 이문(異文)들을 모 두 풍부한 비평 재료로 달아 놓았다. 2판을 발행한 직후 티센도르프는 중풍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3판은 그레고리(Caspar René Gregory)가 서언을 달아 세 차례에 걸쳐 발행되었다(Leipig, 1884, 1890, 1894). 그는 1874년 12월 7일 라이프치히에서 세상을 떠났다. (→ 성서 사본) ※ 참고문헌 W. Biard, History of NT Research 1, 1992, PP. 322~3281 W.R. Baird,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John H. Hayes ed., Abingdon Press, 1999, p. 5771 B.M. Metzger, The Text ofthe New Testament Its Transmission, Corruption and Restoration, Oxford Univ. Press, 1968(메쓰거, 강유중 역, 《사본학》, 기독교문서선교회, 19924)/ C. Böttrich, 《TRE》 33, pp. 567~570. [李禹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