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사
救世史
〔영〕salvation history · 〔독〕Helisgeschich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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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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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사에서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켰다(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성당 조각).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은 하느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행위가 그 중심 내용을 이루므로 그러한 역사관으로 세 상 역사를 바라볼 때 이를 구세사 또는 구원사라고 부른 다. 성서의 역사가 기본적으로 종교사였다는 사실을 처 음으로 발견한 것은 독일의 성서학자들이었으므로 구세 사를 뜻하는 독일어 'Heilsgeschichte' 는 영어권 학자들에 게도 받아들여져 학술 용어가 되었다. 〔성 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사건들 자체보다는 그 사건들이 왜, 무슨 이유로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 러나 그들의 사고는 철저히 종교적이기에 순전히 세속적 인 역사란 있을 수 없었고 모든 역사가 종교적인 역사였 다. 그러므로 전체 구약 시대를 통해서, 그 역사적인 사 건들 뒤에서 이스라엘에게 영향을 미치는 하느님의 손길 을 보았다. 구약성서 : 구세사라는 개념은 모세 시대의 체험에 근 거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행위로 기억했다(출애 15, 1-18 ; 신명 5, 15 ; 여호 24, 17 ; 아모 9, 7 ; 호세 13, 4 ; 미가 6, 4 ; 그외의 많은 시 편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이 유는 그 백성과 계약을 맺고(출애 19, 1-6), 그들을 성조 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이다(신명 4, 1). 이스라엘은 이 사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옛 전통들을 기억해 내고, 자신들이 유사 이전부터 하느님 의 손길로 인도되었음을 깨달았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 함과 이사악과 야곱을 부르시고, 그들 과 계약을 맺으며 땅과 번영을 약속하 였다(창세 12-50장). 창조와 죄에 대한 인간의 최초의 체험과 은총은 하느님께 서 아브라함을 부르기 위한 서막이었다 (창세 1-11장). 신명기 작가들과 역대기 작가들은 하느님께서 어떻게 왕국의 건 설을 허락하였으며, 다윗 왕조와 계약 을 맺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1사무 7 장 ; 1역대 17장). 왕들이 당신을 저버렸 을 때, 하느님께서는 유배와 국가 독립 의 상실로써 당신 백성을 벌하였다. 그 리고 그들이 정화된 다음에 다시 세워 주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역사를 인도 한다는 믿음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러 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종말론으로서 그들은 지상 의역사를 넘어서 구세사의 정점을 바라본 것이다. 즉 옛 계약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에 의해 완성되며(예레 31, 31-34 ; 에제 37, 26-28), 다윗 왕국은 메시아 안에서 새 롭게 재건된다(이사 9, 5-6 ; 11, 1-5 ; 아모 9, 11-15 ; 호 세 3, 5). 모세의 구원의 시대는 새롭게 되고(호세 2, 1617 ; 이사 11, 11-16 ; 52, 11-12 ; 예레 31, 2-6 ; 에제 20, 33-38) 다시금 낙원이 돌아온다(호세 2, 20 ; 아모 9, 13 ; 요엘 4, 18 ; 이사 11, 6-9 ; 에제 34, 25-29). 그러나 '남은 자' (이사 6, 13 ; 예레 23, 3)들만이 구원되고 또한 구원은 대신 고난받는 하느님의 종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사 52, 13-53). 예언서들로 시작해서 다니엘서와 제2 경전의 문서들 로 이어지는 묵시 문학은 종말론적인 관점을 전개하면서 새로운 요소들을 도입한다. 그러한 새로운 요소들 중에 서 전형적인 것은 역사를 정해진 시기들로(다니 2, 37-45 ; 7, 1-14) 구분하는 경향, 현재의 악한 세대(aeon)가 맞 게 될 마지막을 상세하게 묘사함(에제 38-39장 ; 다니 12, 1), 그리고 세상 종말까지의 시간 계산(다니 9, 24-27 ; 12, 7) 등이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구원에 대한 희망에 강한 추진력을 제공한다(다니 12, 2-3).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자기 민족 을 이집트에서 구해 낸 까닭이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을 주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었으며, 이 하나인 하느님이 이 스라엘을 선민(選民)으로 삼아 언제나 그 역사 속에 활 동하며 구원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살아 있 는 하느님을 알았고 따라서 역사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 런데 여기에서 양면성을 볼 수 있다. 우선, 타락의 역사 가 구세사의 배후를 이루고 있다. 예컨대 창세기에서, 낙 원의 타락 · 형제간의 살인 · 노아의 홍수에서 바벨탑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 이야기들로써 인류 멸망사의 진행을 묘사했다면,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는 '땅의 모든 종 족' , 즉 온 세상이 믿고 받아들일 인류 구원사의 새 출발 을 보여 준다. 이 밖에도 성서에 나타나는 대로 인간과 인류의 역사는 멸망과 구원이라는 - 하느님의 뜻에 대 한 인간의 불복, 그러한 인간의 배반에 대한 하느님의 징 벌과 새로운 구원의 약속, 그리고 인간의 응답과 새 출발 을 통한 그 약속의 실현이라는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특수 구세사와 온 인류의 보편 구세사 라는 양면도 끊임없이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스라 엘의 선민 의식은 오도된 옹졸한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로 화할 위험을 안고 있었으니, 걸핏하면 남달리 보호받는 처지를 하느님의 유일한 구원 공동체로서의 특권인 줄로 알아듣고, 심지어는 사마리아인의 차별 대우와 예루살렘 모(母)공동체로부터 쿰란 공동체의 이탈 등 민족 내부의 분열을 낳는 편협의 길로 나아가기까지 하였다. 이스라 엘이 선택된 이유는 만민을 위하여 사제적인 봉사를 수 행하라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이 백성이 온 세상을 위한 축복의 존재가 되기 위하여 미지의 장래를 향해 새 출발 하는 바로 그때에만, 역사 안에 활동하는 하느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신앙은 그 진실함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잠정적인 선민 성별은 하느님의 점진적인 교육 방식에 의하여 결정적인 '마지막 때' 의 만민 구원 을 겨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순수한 유일신 신앙 과 메시아 대망이 일단 한 백성에 의하여 역사를 통해서 수행되고, 또 그 백성 안에서 메시아가 일어나야 했던 것 이다. 이 백성은 하느님께 속한다는 것과 하느님이 당신 이름(야훼)을 계시해 주는 그런 역사 안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동시에 실제로 체험해야 했다. 이스 라엘은 이렇게 만인을 위한 보편적 구원이 마침내 시작 될 수 있도록 선택의 부담과 은총을 동시에 간직해 나가 야 했다. 그들의 개인적 · 국가적 흥망 성쇠가 야훼께 충 성을 다하느냐 않느냐에 달렸음을 깨달으면서 그들은 구 세사가 절정에 이르면 조상들과 맺은 옛 계약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 대치되어 완성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믿 음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성서는 한 민족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특수 구세 사)로서 선포할 뿐 아니라 하느님이 인류와 창조 사업 전 체에 관여하는 더 넓은 맥락에서 본 역사(보편 구세사)를 제시하고 있다. 구약성서는 이렇게 폭넓은 전망을 가지 고 있다는 점에서도 예수의 성서이다. 이런 넓은 전망에 서만 하느님 아들의 파견도 적시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들의 파견은 인류 전체에, 나아가 창조 전체 에 적중한다. 이 한 분의 생애와 수난과 죽음으로 하느님 은 만유(萬有)에 의미가 있음을, 이 한 분의 역사에서 각 자가 취할 의미가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예수 자신의 말씀으로 표현하자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것이다 (마르 1, 14). 신약성서 : 예수께서는 당신의 업적을 예언(마태 11, 4-5)과 구원의 희망 전체(마태 13, 16-17)라고 여긴다. 그 분은 당신 자신을 구약 구세사의 마지막에 위치시키며 (마태 23, 37-38),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며(마르 1, 15), 실제로 그 나라는 당신의 활동 안에 현존하고 있다고 선포한다(마태 12, 28). 그러나 구세사 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모든 이의 부활과, 심판을 통한 최종적인 완성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예수께서는 인간들에게 참회와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바로 이것 이 초대 교회가 자신의 주님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왜 냐하면 초대 교회에서도 구원은 예수 안에 '이미' 왔지 만(히브 1, 2 ; 요한 5, 25) '아직' 미래의 것으로 남아 있 기 때문이며(사도 3, 21), 현재의 악한 세대가 아직도 존 재하고 있으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기까지 다가오는 세 대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갈라 1, 4 ; 1고린 7, 2631). 본래 하나의 작품인 루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기 본 개념은 예수의 지상 활동을 이스라엘의 시대와 교회 시대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루가는 복음 전파를 위한 시대(루가 21, 24 ; 사도 1, 8)와 그 이후의 예 수 재림을 예견하고 있다(루가 21, 24 ; 사도 1, 11). 그는 구세사의 시기들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으며(루가 16, 16 ; 사도 10, 36-43) 그 개념은 본질적으로 초대 교회와 다른 공관 복음서들과 동일하다. 성 바오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음' 은 구원의 시간이 '지금' (2고린 6, 2 ; 로마 3, 21 ; 에페 2, 13)에 있 는 종말론적인 실존(갈라 2, 20 ; 6, 15 ; 2고린 5, 17)이 며, 이는 종말론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로마 6, 22 ; 1고린 1, 8 ; 필립 3, 12-14) 이 지나가는 현세에서 종말 론적인 '천상적' 행동을 요구한다(1데살 5. 4-10 ; 1고린 7, 29-35 ; 로마 12, 2 ; 골로 3, 5-11). 그리스도교의 관점 에서 볼 때 그 이전의 모든 역사는 구원이 없던 시기였으 며, 이제 비로소 새로운 아담인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 속하였다(로마 5, 12-21 ; 8, 29 ; 1고린 15, 22. 45-49). 그 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는 이들의 원형이요 영적 인 아버지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약속을 받은 이 (갈라 3장)로서 두드러져 보인다(로마 4장). 모세는 율법 의 중개자이며, 이 율법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진 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율법은 점점 심하게 침해를 받아 왔고(갈라 3, 19) 따라서 더 큰 죄에 대한 인식(로마 3, 21)을 가져왔다(로마 5, 20-21 ; 갈라 3, 22. 24). 구원 의 새로운 시대에는 대다수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앙이 하느님의 성실함을 무효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의 성실함은 장차에 있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회개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로마 9-11장). 하느님은 유대 인과 이방인들 모두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불렀다(에페 2, 11-22).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의 지상 생활이 종말론적인 계시 와 구원의 시간이지만(6, 47 ; 8, 51), 역사는 모든 이들 의 부활과 심판 안에서만 그 목적에 도달하게 된다(6, 39-40. 44). 요한 묵시록은 메시아의 시대에도 무서운 환 란이 있겠지만 결국은 종말론적인 구원의 우주적인 계시 가 주어질 것이며, 악의 세력의 멸망이 있을 것이고(19 20장), 새로운 세상에서 하느님의 통치가 확립될 것이라 고 가르친다(21장). 〔교의신학〕 구세사라는 용어는 주로 19세기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성서 신학자인 폰 호프만(J.C. von Hofmann) 의 영향에 의해 형성되었고 성서 주석의 원칙과 신학적 주장 양자를 다 지칭하는 말이다. 성서 주석의 원칙으로 서의 구세사는 하느님께서 성서 안에 점진적으로 당신 자신과 당신의 뜻에 대해 계시하였다고 주장한다. 따라 서 주석가들은 성서적 신앙의 유산 안에서 유기적인 성 장을 기대해야 한다. 이 원칙은 "시대를 판별하라. 그러 면 성서의 책들을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성 아우구스 티노의 격언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적 측면에서 구세사는 상 호 연결되어 있는 두 가지의 신 학적 개념들을 제시한다. 언어 는 이해의 표지이므로 구세사라 는 용어는 두 명사들, 즉 '구세' (救世)와 '사' (史)라고 하는 두 현실들이 이루는 하나의 개념을 가리킨다. 구원은 하느님에 의 해 계시되고 성취된 하느님의 행위이며, 이 행위는 인간을 악 에서 구해 내어 하느님의 은총 에 다시 결합시킨다. 하느님의 행위에서 특별히 악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목적만을 고 려할 때에는 '구속' (redemption)이라는 명사나, '구속의' (redemptive)라는 형용사를 붙여서'구속사' (救贖史) 또 는 '구속의 역사' 라고 한다. 역사는 실제적인 인간 사건 들의 진행 과정과,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해석적인 기억과 기록 두 가지 모두에 관계된다. 신학적 개념으로 서의 구세사는 '구원은 역사적인 것이며, 역사는 구원적 인 것' 이라고 주장한다. 구원의 역사성(사적 확실성)은 세 가지의 주장들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하느님의 구원 행 위는 그분이 인류 안에서 이루는 실제적인 일들을 통해 서 시간 안에서 시작된다. 둘째, 시간 안에서 시작된 하 느님의 구원 행위는 인간 활동의 역사적 과정들 내에서 완성된다. 셋째, 하느님의 구원 행위는 시간 안에서 수행 되는 것이므로, 과거 · 현재 · 미래의 현실화를 지니고 있 다. 하느님께서 이루는 구세사 : 하느님의 구원 행위는 인 간과 그의 역사를 존재케 하는 창조 행위라는 맥락 안에 놓여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정의롭게 만들었고, 인 간 세상을 좋은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자신의 인격과 세상에 악을 불러들 였으며, 그 결과 역사 안에 악을 이끌어 들였다. 성서의 근본적인 계시는 인간을 이 악에서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목적이다. 보편적인 창조 행위의 맥락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행위는 새로운 창조, 창조를 통한 구원으로 드러난 다. 첫번째 창조 행위에서부터 인간의 사건들의 과정이 흘러나왔듯이 구원의 행위에서 실제의 사건들이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들 안에 진행되고 있는 악의 과정을 가로막고, 개입하여 인간이 죄로 인해 잃버버린 것을 회 복시킨다. 구원 행위는 인류의 역사적 상황 회복을 목적 으로 하기에, 또 악에서의 해방과 하느님과의 재결합으 로 귀결되는 그러한 사건들을 시간과 공간 안에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은 역사적인 것이다. 인간의 활동 안에서의 구세사 : 구원 사건들은 인간들 의 다양한 삶 안에서 행해진다. 이 과정들은 4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는 과거가 현재의 모태가 되는 연속 성의 과정, 과거가 현재를 위한 가능성의 조건이 되는 우 연성의 과정, 과거가 현재의 결정 요소가 되는 내재성의 과정, 현재가 과거로부터 주어진 것에 대한 자신의 특성 을 발휘하는 초월성의 과정이 있다. 인류에게 한 번 행해 진 하느님의 업적은 이 과정들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 안 에 펼쳐지며 인간 삶 안에서 전개된다. 구세사의 실현 : 구원 행위는 단 한 번만 행해지는 것 이 아니다. 하느님의 개입은 되풀이되며, 그 각 행위들은 인간사(人間事)에 위탁되고, 역사의 과정 안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창조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의 모든 '말씀' 들 하나하나가 세상으로 보내져 그 효과를 발휘한다. 신약 성서는 하느님께서 '말씀' 을 사람이 되게 하여서 우리와 함께 계시게 함으로써 결정적으로 단호하게 개입하는 '충만한 때' 에 대해 말하고 있다(요한 1, 1-18). 신약성서 저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성자 파견은 '현재' 이며 '지금' 이다. 그 이전에 있었던 하느님의 개입들은 과거이다. 미 래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된 그 구 원 사건의 역사가 인간 역사의 과정들을 통해서 완성되 는 것이다. 신학도 역사가 구세사임을 주장한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루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의해 시작되 는 과정들이 악으로부터의 해방과 은총의 회복으로 귀결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사건들에 대한 기억과 기록 그 자체가 구원적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 억과 기록(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은 구원적인 것이다. 왜냐 하면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과거의 체 험들의 기억을 암송하는 것을 듣는 신자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는 분이라는 것과 그분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며, 성령의 감도 를 받아,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에 응답하기 때문이다. 〔윤리신학〕 그리스도교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 합에 의해서 하느님의 역사적인 구원 과정 속으로 들어 간다. 예수는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를 통해서, 하느님 구원 계획의 완전성을 그분을 믿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 에게 계속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도덕의 원천 :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리스 도 안에서의 새로운 실존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 에서 만물이 새롭게 됨으로써 절정에 달하는 과거의 모 든 구원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에페 1, 3-14). 모든 역 사의 종결인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린 그리스도를 믿 는 이들은(골로 2, 6-7) 더 이상 단순히 과거와 동료 신자 들로부터 시간, 공간, 환경에 의해 단절되지 않는다. 오 히려 그리스도와 또 모든 시대 그리스도의 지체들과 하 나가 되어 함께 행동하며,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를 육화한다(골로 1, 24 ; 2, 11-12 ; 3, 1-17). 그러므로 만일 간통을 한다면, 그리스도의 지체를 매춘부와 결합시키는 것이다(1고린 6, 15-17). 공동체 안에서 불화를 일으킨다 면 하느님의 신전을 파괴하는 것이다(1고린 3, 16-17). 동정으로 산다면 그것은 주님을 위한 것이다(1고린 7, 32-34). 혼인을 한다면 그와 그 아내는 교회를 위한 그리 고 교회와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 사랑의 모상이 되는 것 이다(에페 5, 25-33). 고통을 당할 때, 그리스도를 체험하 며,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 을 같이 나누는"(필립 3, 10 ; 골로 1, 24) 것이다. 이처럼 도덕적 삶 전체는 그리스도의 승리에서 솟아 나오고, 그 리스도의 재림에서 절정에 이르며(1데살 3, 11-13), 따라 서 구세사의 결정적인 승리와 결합된다. 교리적인 중요성 : 그리스도교 안에 우주의 완성을 위 한 하느님의 계획이 계시되었고 또 실행되고 있음은 분 명하다. 인간의 전 역사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승천 안에서만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선언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중요한 진리로 선포되어야 한다. 평화와 전쟁, 가난과 인구 과잉,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들도, 모든 피조물들이 신음하면서 '영광이 나타나 하느님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누리는 완 전한 자유에 참여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진리(로마 8, 18-22)와 떼어놓고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교 리가 궁극적인 역사 - 인간적인 실재라고 확신하는 증인 들만이 교리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단순히 인간이 라는 사실만으로 그러한 증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선 교사나 교리 교사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그리 스도께서 당신의 가르치는 사명을 계속하도록 파견한 성 령의 권능과 조명을 통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달한다 (요한 14, 15-17. 26 ; 15, 26-27). 그러므로 그들은, 성서 안에 거룩하게 기록되어 온 구 세사와 친숙해져야 하며, 또한 교회가 그 역사와, 신학적 성장과 전례와 성사 생활 안에서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 에서 이루는 하느님 구원의 열매를 나누어 주어 왔으며, 계속해서 나누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된 다. 구원은 과거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 안에서 가지는 그 불멸성에 의해서 구원은 모든 과 거를 현재 이 순간에 인류에게 지극히 중요한 관계를 맺 게 한다. ※ 참고문헌 E. Beaucamp, The Bible and the Universe, tr. D. Balhatchet, Westminster, Md., 1963/ G.E. Wright and R.H. Fuller, The Book ofthe Acts ofGod, Garden city, New York, 1957/J. Baillie, The Idea of Revelation in Recent Thought, New York, 1956/ J.E. Fallon, 《NCE》 12/ Johannes Feiner · Likas Fischer (Hrsg.), Neues Glaubensbuch. Der gemeinsame christliche Glaube, Freiburg, 14, Auflage, 1978(이경우 · 정한교 역 《하나인 믿음 - 새로운 공동 신앙 고백서》, 분도출판사, 1979)/ Walbert Bühlmann, Wenn Gott zu allen Menschen geht. Für eine neue Eefahrung der Auserwählung, Freiburg, 1981(정한교 역, 《選民과 萬民 - 選擇 사상의 再吟味에 의한 宣敎 자세의 再定立》, 분도출판사, 1983). 〔鄭漢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