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샤르트르의 Thierry de Chartes(1000~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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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사람. 프랑스의 철학자. 신학자. 샤르트르 학파의 지도자. 라틴어식 이름 은 샤르트르의 테오도리코(Theodonicus Chartonensis) . [생애와 활동] 플라톤주의 철학자이며 스콜라학파의 신학자였던 티에리는 프랑스의 북서부 지방인 브르타뉴 (Bretagne)에서 1100년경 태어났다. 그의 출생 연도와 장소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그는 샤르트르 학파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그의 형 베르나르도(Bernardus Chartonensis, +1124/1130)가 학장으로 있던 샤르트 르의 학교에서 공부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티에리는 1121년경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샤르트르 교구의 주 교좌 성당 학교에서 가르쳤으며, 1140년경에는 파리 대 학에서 수사학 강의를 하였다. 이 강의를 들었던 그의 제 자 중에는 후에 샤르트르의 주교가 되는 솔즈베리의 요 한(Joannes Saresberiensis, 1115~1180)도 있다. 1141년 샤 르트르로 되돌아온 그는 주교좌 성당 학교에서 다시 강 의를 하였고, 1141년 파리로 떠난 포레의 질베르(Gilbert de la Porrée, 1080?~1154)의 뒤를 이어 샤르트르 주교좌 성당의 참사위원 겸 이 도시의 대부제(achidiaconus)가 되었다. 티에리는 형 베르나르도보다 더 신플라톤주의 원칙을 옹호하였다. 일반적으로 중세는 플라톤주의보다 아리스토텔레스(Anistotess, 기원전 3847383~322/321)에 더 집중 되어 있었다. 그가 살던 12세기는 마치 초기의 그리스도 교처럼 그리스도교 신앙과 그리스 철학이 만날 때 야기 되었던 논쟁과 문제점들이 되살아나고 있었고, 많은 학 파들이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조화시키려 고 시도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베르나르도, 포레의 질베 르, 티에리 등으로 구성된 샤르트르 학파는 12세기의 철 학과 신학 사상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들은 신비적인 성향이 강한 신플라톤주의에 집중함으로써 신앙과 철학의 조화 및 일치를 시도하였다. 플라톤 (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사상이 거의 일반인 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그 당시에 티에리를 포함한 샤 르트르 학파는 주로 고전 철학가와 작가들을 연구하여 가르쳤고 문학, 철학의 아름다움〔美〕 그리고 수학 등 자 연 과학을 가르쳤다. 티에리는 형 베르나르도에 의해 창 시된 샤르트르 학파의 전성기에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과 논쟁을 하였다. : 티에리는 1148년에 질베르의 이론이 탄핵된 랭스 (Reims) 교회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149년에는 프랑크 푸르트(Frankfut) 의회에 참석하였다. 1155년에는 드뢰 (Dreux) 시의 대부제가 되었으나, 곧 자신의 모든 책을 샤르트르 도서관에 기증한 후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자로 살다가 1156년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와 주장] 티에리는 형 베르나르도처럼 라틴 어, 그리스어 등의 문법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수사학에 대한 그의 저서가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수 사학 입문서인 치체로(M.T. Cicero, 기원전 106~43)의 《독 창력에 대하여》(De inventione) 주석서에서 그는 전반적 인 의미를 잘 파악하게 해 주며, 주장에 대한 토론과 주 석을 이용하여 문자적 의미를 분명히 밝혀 준다. 또한 그 는 자유 학예(artes liberales)에 대한 《엡타테우콘》(Epateuchon)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의 서언에는 샤르트르 학 파의 총체적인 모든 계획이 소개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그것의 표현이라는 두 가 지 기본 구조가 필요하며, 철학은 모든 사물의 진리를 완 전하게 이해하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따라서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 고, 교양을 쌓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학문을 잘 조화시켜 야 하는데, 이 중에서 그리스어 · 라틴어 등의 문법이 가 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티에리에게 있어 일곱 가지 학문은 철학의 유일한 수단이다. 그의 철학은 '실재' 와 '보편적인 초현실' 이론 설명에 있어서 플라톤을 적용시키고 있으며, 그의 사상 은 신피타고라스주의(Now-Bryacoocem) 원칙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드러난다. 티에리의 형이상학의 핵심은 형 베 르나르도처럼 '일자' (一者, unitas)와 수(數)이다. 그는 '일자' 를 하느님과 동일시하고, 하느님과 실제로 존재하 는 것을 동일시한다. 즉 신은 개체 본질의 형상이다(Divinitas singulis rebus forma essendi est). 또한 존재하는 것 은 그것이 하나이기 때문(0mne quod est ideo est quia unum est)이라고 주장하였다. 모든 것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벌 써 하느님의 머리(이데아) 속에 있었다는 의미에서 볼 때 하느님은 모든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들을 완전히 가 능 상태에서 존재 상태로 옮기는 필연적 존재 그리고 형 상들 중의 형상적 존재이다. 티에리가 사용한 형상은 바 로 원인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필연이란 미래에 발생 할 사건에 있어, 다시 말해 여러 원인들을 결정짓는 신적 생각이 형성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존재하는 모든 원인의 원인이다. 하느님의 이 결정은 자 연법 혹은 운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티에리의 이론에 따르면, 신이 존재하는 모든 것과 모 든 것의 본질적 원칙은 동일하다. 이렇게 되면 그의 철학 체계는 범신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서 모든 것 안에 신적인 존재가 내재한다는 것은 하느님 의 본질과 사물의 본질이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 안에 있는 본질적 형상' (forma essendi)은 유신론적인 본질로서, 하느님은 그 자신 안에 모든 형상을 그리고 피 조물의 모델을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은 범신론과 는 거리가 멀다. 티에리는 신학적인 문제의 여러 부분에서 대담한 혁신가이다. 《6일간의 작업론》(De sex Dierum Operibus)에 나 타나 있듯이, 창세기를 주석하는 그의 목적은 윤리적인 면이나 비유에 대한 설명보다는 창조의 순서에 따라 설 명함으로써 성서의 유용성에 초점을 두려는 것이다. 우 주 기원에 대해서는 신플라톤주의를 따르지만 성서의 창 조와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으며, 모세를 가장 사려 깊 은 철학자(Prudentissimus philosophorum)라고 하였다. 티 에리는 신학에 있어서 인간 언어의 불충분함에 대해 언 급하였다. 그는 보에시우스(A.M.T.S. Boetius, 470/475?~ 524)의 <삼위 일체론>(De Trinitate)을 주석하였는데, 삼 위 일체에서 삼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3' 이라는 수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 일체 를 설명할 때 번호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데에는 호의적 이었다. 모든 증가된 수는 1이라는 수에 어떤 수를 더하 거나 배가시켜서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1이라는 수는 근원이고 아버지인 하느님이며 영원한 존재이다. 그에 의하면, 삼위 일체의 단일성은 바로 창조되지 않고 '좇아 나심' 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1이라는 수가 1 이라는 수에 의해 증가되면 결과적으로 같은 1은 아니지 만, 이 1은 처음의 1과 같은 것이다. 산출된 하나는 산출 하는 하나와 같다. 이처럼 배가된 숫자로서 하나(아들)는 원래 하나(아버지)와 같다. 그는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 지와 같고, 아버지와 같으므로 영원하다. 삼위 일체에서 성령은 하나가 동등함을 열망하고, 동등함이 하나를 원 하는 아름다운 상호적 사랑에 의해 산출된다. 이 사랑의 연결이 바로 성령이다.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에 대해 티에리는, 수많은 사물들은 모두 하느님의 무한한 능력을 보여 준다고 하였 다. 수많은 숫자적 창조는 사물의 창조이며, 이 모든 사 물의 형상 역시 '일자' 에 의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의 단 일 형상에 참여하기 때문에, 인간 개개인이 자기만의 독 특하고 독립적인 형상을 가진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 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를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 [평 가] 티에리의 사후 그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그를 유럽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칭하였으며, 자 신들이 쓴 저서들을 헌정할 정도로 그를 존경하였다. 현 대의 몇몇 신학자들도 그를 아리스토텔레스에 버금가는 철학자로 여기고 있다. 그의 저서는 수사학 분야에서 큰 공헌을 하였으며, 프랑스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소 개함으로써 변증법 분야에 기여하였다. 1- 자유 학예 ; 질베르, 포레의 ; 철학) ※ 참고문헌  A. Cleval, Les écoles de Chartres au Moyen Age du V au XVI siècle, Paris, 1895/ R.L. Poole, Illustrations of the history of Medieval Thought and Learning, London, 1920/ E. Hoffmann, Platonismus und Mittelalter, Vortrge der Bibliothek Warburg 3(1923~1924), Berlin, 1926, Pp. 17~82/ C.H. Haskins, The Renaissance of the Twelfth Century, Harvard Univ. Press, Cambridge, 1927/ J.M. Parent., La doctrine de la création dans l'école de Chartres, VrinInstituté d'études médiévales, Paris . Ottawa, 1938/ H. Schipperges, Die Schulen von Chartres unter dem Einfluss des Arabismus, Sudhoffs Archiv fiur Geschichte der Medizin und der Naturwissenschaffien 40, 1956, pp. 193~210/ T. Gregory, Platonismo medie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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