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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나 임무를 맡겨 어느 곳에 보내는 행위. I. 성서에서의 파견 성서에서 하느님은 자신이 계획하고 섭리하는 일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부르고, 특정한 곳으로 보낸다. 그런데 성서에서 말하는 파견은 구세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 고, 구체적 사건을 통하여 명백히 표명된 하느님의 적극 적 소명(召命)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파견의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인 경우도 있고, 특정 개인인 경우도 있다. 파견은 예정이나 소명과 관계된 개념이지만, 누군 가를 파견하여 사명을 부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소 명이나 파견이 어떤 한 사건과 연관됨에도 불구하고, 소 명은 하느님 뜻(계시)의 수령에 보다 밀접히 관련되며, 파견은 하느님 뜻의 실현에 보다 밀접히 관련된다. 때로 는 소명 없이 파견만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사야 예언자 는 당시의 국내외 정치적 상황의 변화를 바라보고 즈스 로 하느님께 나아가 예언자로 보내 줄 것을 청하였고 그 래서 파견을 받았다(이사 6장). 또한 하느님의 음성을 구 별하는 능력이 주어지기까지 오랜 기간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며, 이 경우 부르심의 사건과 보내심 사이에는 시간적 간격이 있어 마치 별개의 사건처럼 보 이기도 한다.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예언자들 : 하느님의 파견이 가장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예언자의 경우이다(예레 7, 25). 이 경우 모세가 그 효시이며, "내가 너를 보낸다"라 는 하느님의 말씀이 예언자의 소명의 핵심을 이룬다(출 애 3, 10 ; 예레 1, 7 : 에제 2, 3-4 ; 3, 4-5).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소명에 대하여 각자의 성격에 따라서 응답한 다. 이사야는 즉석에서 결의를 표명하고- "제가 있지 않 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 8)-예레미야는 이의 를 제기하였다(예레 1, 6). 모세는 자신의 파견을 보증하 는 징후를 요청하거나(출애 3, 11-13), 회피하거나(4, 13), 불평을 하였다(5, 22). 그러나 그들은 결국 하느님 의 부르심을 따랐다. 다만 예외로 요나는 이방인의 구원 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만민에게 선교하는 사명 을 거부하였다(요나 1, 1-3). 이와 같이 하느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파견되었다는 자각은 참된 예언자의 본질적 요소이다. 이 점은 예레미야가 투쟁하였던 거짓 예언자 들처럼,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지 않았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자들과 참된 예언자를 구별하는 표지 였다(예레 14, 14-15 ; 23, 21. 32 : 28, 15 ; 29, 9). 넓은 의미로 볼 때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섭리적 역할을 하 는 인물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파견되었으 나, 그들이 받은 사명의 유무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예언 자의 증언이 필요하다.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가 수행하는 사명은 모두 하 느님의 구원 계획에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항상 이스라엘 백성과 직접 관련되어 있지만, 이 관련성 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언자들은 백성을 회개시키고 벌을 예고하고 약속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되었으며, 전달하라고 위임된 하느님의 말씀과 밀접히 연결되어 사 명을 다한다. 그 외에 이스라엘의 역사적 운명과 직접 관 련된 사명을 받은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요셉은 이집트 에서 야곱의 아들들을 맞이하기 위하여(창세 45, 5), 모세 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기 위하여(출애 3, 10 ; 7, 16 ; 시편 105, 26) 파견되었다. 여호수아, 판관 들, 다윗, 바빌론 유배 이후 유대교의 건설자들, 마카베 오가 독립 전쟁(기원전 166~160)의 지도자들 같은 하느 님 백성의 지도자와 해방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지적을 할 수 있다. 비록 성서의 저자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인물들이라 분명히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하느님 으로부터 파견된 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 리고 그들을 매개로 하느님의 계획은 그 목적을 향하여 전개되어 나갔으며, 때로는 이방인들도 그 과정에서 섭 리적 역할을 하였다. 아시리아가 하느님께 불충실한 이 스라엘을 처벌하기 위하여(이사 10, 6), 그리고 고레스(키 루스 2세, 기원전 551~529)가 바빌로니아와 싸워서 이스 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하여(이사 43, 14 : 48, 14-15) 파견 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결국 구원의 역사는 이러한 각각의 파견들이 상호 작용으로 한 가지 목적을 향해 협 력함으로써 진전되었다. 이스라엘 백성 :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대해서도 파견 이 적용된다. 파견과 소명은 밀접히 관련된 개념이다. 따 라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 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어떤 이유로 인해 파견을 받았 다는 것이다. 즉 이 백성은 주변의 여러 민족 중에서 선 택되어 야훼를 섬기기 위한 거룩한 백성, 사제적 백성이 되라는 사명을 받고 있다(출애 19, 5-6). 그러나 그들이 타민족들을 대신하여 이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계시가 진전되면서 예언자들은 이교 민족들도 유일한 하 느님을 섬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합류할 때가 온다 는 것을 알려 주었다(이사 2, 1-3 ; 19, 21-25 : 45, 20-25 : 60장).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전 인류의 선 두에서 모든 민족을 비추는 소명을 받았다. 또한 이스라 엘에게 하느님 계획의 실현을 맡긴 것도 타민족들을 여 기에 참여시키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상은 아브라함의 소명에서 이미 싹트기 시작하였고(창세 12, 3), 하느님의 뜻이 더 상세히 계시되면서 명백해졌다. 바빌론 유배 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야훼 의 사자(使者)로 파견된 종이라고 자각하였다(이사 42, 19). 즉 이교 민족들 앞에서 야훼의 증인이 되어 야훼야 말로 한 분뿐인 참된 하느님임을 알리고(이사 43, 10. 12 ; 44, 8), "율법이 지닌 불멸의 빛을 세상에 전해 줄" (지 혜 18, 4) 책임을 느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민족적 소 명은 모든 민족이 하느님께 향하도록 해야 한다는 보편 적 관점을 갖게 되며, 이교 민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 47, 4)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의 백성은 개종한 이민족에게도 문호를 개방 한다(이사 56, 3. 6-7). 따라서 당시에 저술된 성서에는 새로운 정신이 침투해 있는데, 예를 들면 요나서에는 이 민족을 위하여 파견되는 예언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잠언에는 지혜의 사자가 만인을 지혜의 잔치에 초대한다 는 내용이 담겨 있다(9, 3-5). 이로써 이스라엘은 야훼를 전하는 민족이 되었다. 후기의 사상 : '하느님의 파견' 이라는 사상은 종말에 관한 예언자들의 교훈에 나타나 있다. 예언자들은 "백성 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이사 42, 6) 되는 야 훼의 종의 파견(이사 42, 6-7 : 49, 5-6)을 말하였고, 가 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야훼가 보내는 신비 적 예언자의 파견(이사 61, 1-2), 하느님 앞에 길을 여는 한 사자의 파견(말라 3, 1), 제2의 엘리야 파견(말라 3, 28), 그리고 동포에게 야훼의 영광을 보여 줄 개종한 이 방인의 파견(이사 66, 19-20)에 대하여 말하였다. 하느님의 말씀, 지혜, 영에 관한 사상은 곧 인격화되었 고, 이 말씀과 지혜와 영의 파견은 주저없이 예고되었다. 하느님은 "말씀"을 파견하여 당신의 뜻을 지상에 실현시 키고(이사 55, 11 : 시편 107, 20 ; 147, 16 ; 지혜 18, 1416), "지혜" 를 보내어 인간의 일을 돕게 하고(지혜 9, 10), "영"을 파견하여 땅의 모습을 변화시키며(시편 104, 30 ; 에제 37, 9-10), 거룩한 뜻을 인간에게 알린다(지혜 9, 17). 이러한 가르침은 신약에서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서곡이다. 왜냐하면 신약성서 는 하느님의 말씀이자 지혜인 하느님 아들의 파견과 교 회 안으로의 성령 파견을 설명할 때 예언자들의 이 교훈 을 인용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하느님 아들의 파견 : 예수 그 리스도는 세례자 요한을 최후에 출현한 가장 위대한 예 언자요 하느님의 사자이며 말라기가 말한 제2의 엘리야 라고 평가하지만(마태 11, 9-14), 실은 자신이 이사야서 가 말한 대로(61, 1-2) 가장 뛰어난 하느님의 사자로 사 람들 앞에 나타났다(루가 4, 17-21). 그는 '포도원 소작 인들의 우화' 에서 자신의 사명이 예언자들의 파견을 계 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주인은 그 종들을 파견한 후에 자기 아들을 파견하였다며 양자의 근본적 차이를 분명히 한다(마태 21, 34-39 : 마르 12, 2-8 : 루가 20, 1015). 그래서 예수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를 파견한 분, 즉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하느님(마태 11, 27)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과 같다(마태 10, 40 ; 루가 9, 48 ; 10, 16 ; 요한 13, 20). 이와 같이 예수가 하느님 아 버지의 파견을 받았다는 지각은, "나는 이 일을 하러 떠 나 왔습니다"(마르 1, 38), "나는 이 일을 위해 파견되었 기 때문입니다"(루가 4, 43), "사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습니다" (루가 19, 10) 등의 뜻깊은 말로 표현되어 있고, 그와 아버지의 신비스런 관계가 암 시되어 있다. 그가 파견된 목적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마 르 1, 38 : 루가 4, 30), 율법과 예언자의 가르침을 완성하 고(마태 5, 17), 땅 위에 불을 놓고(루가 12, 49), 평화가 아닌 칼을 주며(마태 10, 34 : 루가 12, 51), 의인이 아니 라 죄인을 부르고(마태 9, 13 : 마르 2, 17 : 루가 5, 32), 잃 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고(루가 19, 10),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는 데 있다(마태 20, 28 ; 마르 10, 45). 이와 같이 예수가 행한 구원 사업은, 갈릴래아에서의 설교부터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희 생으로 바치기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 에 기초를 둔다. 그런데 아버지의 계획에 의하면 예수의 사명에는 한 가지 제한 조건이 있다. 그는 "오직 이스라 엘 가문의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습니다"(마태 15, 24).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회개하여 모든 민족 앞에 하느님의 나라를 증거할 사명을 의식해야 하는 것이다.요한 복음서는 예수가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었다는 사실을 그의 설교에서 거듭 지적하고 있다(3, 17 : 10, 36 : 17, 18). 예수의 원의는 자신을 파견한 성부의 뜻과 일을 (4, 34 ; 6, 38-40 ; 9, 4) 실행하고, 성부로부터 들은 바 를 전하는 데 있다(8, 26). 그는 성부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6, 57 : 8, 16. 29), 예수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하 느님에 대한 태도가 된다(5, 23 : 12, 44-45 ; 14, 24 ; 15, 21-24). 예수가 행하는 사업의 완성인 수난은 자신을 파 견한 분께로 돌아가는 것이다(7, 33 ; 16, 5). 그가 요구 하는 신앙도 결국 그가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11, 42 ; 17, 8. 21. 23. 25), 여기에는 파견된 아들에 대한 믿음(6, 29)과 파견한 아버지께 대한 믿음(5, 24 ; 17, 3)이 포함된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의 가장 깊은 신비의 한 면이 계시된다. 즉 하느님이 아들을 파견하여 자신이 아버지임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신명 6, 4 ; 요한 17, 3). 사도들의 편지에서 성자의 파견이 중심 주제가 되는것은 당연하다. 하느님은 "때가 찼을 때" (갈라 4, 4), 인 류를 구해 양자로 삼기 위하여 아들을 파견하였다(로마 8, 15). 하느님은 믿는 이들이 아들에 의하여 살 수 있도 록, 아들을 세상의 죄를 씻는 구세주로 파견하였다(1요한 4, 10). 여기에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최고의 증거 가 있으며(1요한 4, 9-10. 14), 따라서 예수는 신앙인이 고백하는 가장 뛰어난 "사도 및 대제관" (히브 3, 1)이다. 성자로부터 파견된 자 : 지상에 있는 동안 예수는 '열 두 명' 을 파견함으로써 자신의 사명이 계속되도록 하였 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 라 불린다. 예수는 이미 공생활 중에 자신의 파견 목적인 복음 선포와 병자 치유를 위하 여(마태 10, 1. 7-8 ; 마르 6, 7 ; 루가 9, 1-2) 제자들을 자 신보다 앞서 파견하였다(루가 10, 1). 그들은 수확을 위하 여 주님께서 파견한 일꾼이며(마태 9, 38 : 루가 10, 2 ; 요 한 4, 38), 왕자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을 안내하 기 위하여 왕이 파견한 시종이다(마태 22, 3 ; 루가 14, 17).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가는 길에 빛나는 장래를 꿈 꾸어서는 안 된다. 파견된 자가 파견한 자보다 높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요한 13, 16). 종은 주인과 같은 대우를 받 을 것이다(마태 10, 24-25). 예수는 "믿음이 없고 비물어 진"(마태 17, 17) 세상이 그들을 박해하고 죽인다는 것을 알기에(마태 23, 24 ; 루가 11, 49), "마치 양들을 이리들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이" (마태 10, 16 ; 루가 10, 3) 제자 들을 보낸다. 그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는 예수 자신과 나 아가 하느님께 대한 처우이다. 예수는 이 사실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 는 것이요, 여러분을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물리치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나를 물리치는 사람은 나를 파견하신 분 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루가 10, 16). 또 "내가 보내는 이 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 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입니 다"요한 13, 20). 사실 "아버지께서 나를 파견하신 것처 럼 나도 여러분을 보냅니다" (요한 20, 21)라고 하신 말씀 대로, 사도들의 파견은 예수의 파견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또 이 말씀은 예수 부활 후에 사도들에게 한 마지 막 파견의 깊은 의미를 해명하는 열쇠이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자각하여 복음을 전하고(마르 16, 15),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아(마태 28, 19) 땅끝까지 그리스 도의 증인이 되기(사도 1, 8) 위하여 출발하였다. 그리하 여 파견된 성자의 사명은 사도와 교회의 파견으로 계속 이어졌다. 사도 행전에 나오는 바오로의 소명도 하느님의 파견이 라고 해석된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예언자들의 소명에서 보이는 전통적 표현으로 '선택된 그릇' 인 바오로에게 "나는 너를 멀리 이방인들에게로 보낼 터이니 가거라" (사도 22, 21)라고 하셨다. 이방인을 위한 이 파견은 야훼 의 종의 파견과 흡사하다(사도 26, 17 ; 이사 42, 7. 16). 사실 야훼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왔고, 그리 스도로부터 파견된 자들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길 잃 은 양들에게(마태 15, 24) 가져다준 구원의 소식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게 된다. 바오로는 항상 다마스커스로 가 는 길에서 체험한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자신이 사도임을 주장하였다(1고린 15, 8-9 ; 갈라 1, 12). 그는 복음이 천 하에 전파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 고, 그들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인도하였으 며(로마 1, 5),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사명을 찬양하 였다(로마 10, 14-15). 선교에 의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로마 10, 17). 각자의 사명을 다하는 사도들 외에 교회 전체도 선교할 때 성자의 파견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령의 파견 : 사도들이나 복음 선포자들은 단순히 자 신들의 노력만으로 선교의 임무를 수행한 것은 아니며, 선교의 의무는 오히려 성령의 힘에 의해 수행된다. 예수 는 최후 만찬 때 성령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협조 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요한 14, 26). 또 "내가 아버지로부터 여러분에게 보낼 협조자, 곧 아 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은 나에 관 해 증언할 것입니다"(요한 15, 26 ; 16, 7)라고 하였다. 이 런 말을 통해 보면, 성령의 파견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 께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루가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여러분에게 보내겠습니다"(루가 24, 49 ; 참조 : 사 도 1, 4 ; 에제 36, 27 : 요엘 3, 1-2)라는 예수의 말을 전함 으로써 성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성부의 역할은 약속을 실현시킨 점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성령 강림의 참된 의미도 여기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사건은 성령 파견의 시작을 의미하며, 교회가 존속하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 성령은 예수의 제자인 열두 명이 파 견된 자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파견되며(요한 20, 21-22), 그들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든다(사도 1, 8) . 그들은 하늘에서 파견된 성령의 빛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1베드 1, 12), 후대의 선교자들도 이와 같이 행동한다. 교회는 이렇게 말씀을 선포하고 선교 사명을 다하기 때 문에, 성령의 파견은 교회의 신비와 본질적으로 연관된 다. 인간 성화의 원천도 성령의 파견에 있다. 인간이 세 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느님이 그들의 마음에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는 아들의 성령을(갈 라 4, 6) 주시기 때문이며, 이러한 성령의 파견은 그리스 도를 믿는 자의 체험의 대상이 된다. 마침내 하느님이 주 는 신비의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요 지혜인 성자가 출 현하고, 성령이 신적 위격으로서 인간 역사에 개입하여 내면적으로 인간을 하느님의 자녀로 변모시킴으로써 완 성된다.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 하느님의 파견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고자 먼저 약속하면서 모세를 불러 자신의 역사에 동참시켰다. 이 처럼 하느님은 홀로 행동하지 않는다. 당신의 백성과 함 께 행동하기에 하느님은 모세를 보냈고, 오늘도 끊임없 이 우리를 파견한다. 모세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에는 예 수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복음 전파를 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지속하도록 하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구약이나 신약처럼 특별히 선택받은 자들만이 파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이 파견 된다. 파견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독일어에서 '직업' 을 의미하는 '베루프' (Beruf)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임무'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세속적인 직업은 하느님이 부여한 임무로, 일터를 하느님에 의해 파견받은 현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러한 이해는 독일 신비주의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데, 세속적 직업에서의 의무 이행을 도덕적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내용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로써 세속적인 일상 노동이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느 님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수도자적 금욕주의를 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세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 다. 여기서 현세적 의무란 곧 세속적인 직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직업의 현장에서 선교 사명을 갖는 것이 다.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수행하려고 하 였던 구원 사업을 계승하는 자들을 의미하며, 그렇기 때 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인 직업의 현장에서도 그리 스도의 구원 사업을 깨닫고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둘째, 전례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성당에서 미사가 끝 날 때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또는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실천합시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라는 파견을 받는다. 이는 세상에서 복 음을 전하고 실천하라는 파견이며, 세상에서의 삶을 경 신례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주일에 미사에 참여 하는 자들은 정결해야 하므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부 족함과 잘못을 고백하고,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삶에서도 도덕적 으로 정결해야 하며, 사회 정의의 실현을 통하여 하느님 의 뜻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하느님이 자 신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 보내는 것은, 정 의와 사랑을 실현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이러한 사명을 하느님의 도움으로 이행하여야 하며,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 스도인들은 사회적 정의, 생명 존중 및 민주적 질서 등 복음에 합당한 문화를 형성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 성소(聖召〕) ※ 참고문헌  G. Fuchs, 《LThK》 9, 2000, PP. 456~459/ W. Gesenius, Handwiuterbuch, Berlin, Springer-Verlag, 1962/ B.O. Long, 《TRE》 5, pp. 676~684/ J. Pierron · P. Grelot, X. Léon-Dufour ed., Vocabulaire de Théologie Biblique, Paris, Cerf, 1977. [편찬실] : Ⅱ. 전례에서의 파견 (⇨ 폐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