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
救世主
〔라〕Salvator · 〔영〕Savi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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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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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 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제우스.
I . 성서적 측면 "세상을 구제하는 자" 혹은 "인류를 구원하는 자"를 뜻하는 말. 이 말 속에는 어느 한 민족이나 국가의 범주 를 초월하여 온 세계를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주 론적인 사고(universalism)가 전제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구세주라는 말은 인간의 종교적 혹은 문화적인 사고가 종족이라는 고립적이고 배타적인 범주로부터 온 세계를 향하여 확대되면서부터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 다. 그래서 이 말은, 종교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신' (God)이라는 말보다 훨씬 발달된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 인류 문화에 있어서 세계를 하나의 울타리로 보는 사고는 헬레니즘(hellenism)과 더불어 시작되었 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마체도 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에게해로부터 인더스 강까지, 그리고 흑해와 다뉴브 강으로부터 사하라 사막에 이르는 방대 한 땅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단지 영토를 확장시킨 다는 것보다는, 세계를 하나의 범그리 스 문화권(pan-hellenic world)으로 만들겠 다는 의도가 있었다. 세계 시민주의(cosmopolitanism)라는 말로도 표현되는 알렉 산더의 이러한 이상은 그 후 수세기를 지속하게 될 헬레니즘이라는 독특한 문 화가 생겨나는 데 중요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헬레 니즘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전통을 계승하되, 그 지 평을 크게 확대하여 '세계' 를 무대로 하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철학 및 종교의 장을 연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정치 체제로서의 알렉산더 제국은 알렉 산더가 죽은 후 곧바로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우선 알렉 산더의 세 부하 장수들에 의해 셋으로 나뉘어진 제국은 더 이상 세계 국가(cosmopolis)가 아니라, 힘의 구심점 없 이 서로 투쟁하는 소단위 정치 집단들의 집합이었다. 따 라서 지중해 지방은 오랜 기간 동안 정치 · 군사적인 혼 란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혼란은 사람들의 삶에 큰 불안 을 안겨 주었다. 사람들은 이 모든 혼란과 불행의 배후에 '튀케' (τύχη)라는 무서운 운명의 여신이 있어, 사람들의 삶에 제멋대로 재앙을 던진다고 믿었다. 따라서 당시 지 중해 지방의 각 종교에서는 자기들이 믿는 신이 바로 사 람들의 삶을 튀케의 횡포로부터 보호해 줄 구원자라고 내세우게 되었다. 제우스, 아스클레피우스, 이시스, 세라 피스 같은 신들이 '구원자' (σωτήρ)라는 호칭으로 불리 게 된 것은 대체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한편 기원전 3세기부터 서서히 지중해 세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한 로마 공화국은 자기들이 온 세 계에 평화를 가져오고 또 그리스 문화를 보호할 능력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공화정 말기에 군 사력을 기반으로 로마의 절대 권력을 움켜쥐게 된 율리 우스 체사르(Julius Caesar)는 사람들에 의해 '세계의 구원 자' 라고 불려졌다. 이러한 전통은 훗날 제정 로마의 통 치자들에게도 이어지게 되어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베스파티안, 티투스, 트라얀, 하드 리안 등의 황제들이 한결같이 '세계의 구원자' 라는 칭호 로 불려지게 되었다. 〔구약성서〕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분으로 고백되고 있다. 그러나 고대 이 스라엘 종교에서 '구원하는 자' (מוֹשִׁיעַ)라는 분사형 명 사를 하느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하지는 않은 것 같다. 히 브리 성서의 그리스어 역본인 칠십인역에서도 '소테르' (σωτήρ)는 신명(神名)에 대한 공식 용어(terminus technicus)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후기 유대교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된 단어 '메시 아' (מָשִׁיהַ)는 '기름 붓다' 라는 뜻을 가진 동사 מָשָׁה(māšah)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구원자' 라는 뜻을 가진 מוֹשִׁיעַ (môšiy'a)와는 어원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말이다. 또 한 실제로 유대교 안에서 '메시아' 라는 말은 '세계를 구 원할 자' 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 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는 정치적인 의미 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 물론 후기 유대교의 묵시 문학에 서는 이 단어가 민족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자로 나타나 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메시아가 구원자로서의 하느님 자신과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엄밀하 게 말하면, 구약성서에서는 '구세주' 라는 개념이나 단어 가 명확하게 하느님을 지칭하는 언어로 사용되지는 않았 다고 볼 수 있다. 〔신약성서〕 신약성서에서는 '소테르' (σωτήρ)라는 단 어가 모두 24회 사용되고 있는데 그 분포를 보면, 필립 비서 3장 20절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신약성서 형성사에 있어서 후기 문서군에 속하는 책들에 편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바오로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서간 (authentic Pauline epistles)에는 이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 고, 최초의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이나 예수의 어록 자료 인 Q문서에는 전혀 쓰인 흔적이 없으며, 또한 마태오 복 음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 단어는 복음서 문학에 서는 루가 복음(1, 47 ; 2, 11) 및 사도행전(5, 31 ; 13, 23) 그리고 요한 복음(4, 42)에만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서간 문학에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와 디도에게 보 낸 편지, 그리고 베드로의 둘째 편지에 집중적으로 나타 난다. 이러한 분포로 미루어 보아 이 단어는 신약 시대 후기에 주로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리스도교 공 동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바오로의 편지들 : 바오로가 직접 쓴 서간 중에서는 유일하게 필립비서 3장 20절에 소테르가 쓰였다. 이 문 장은 분명하게 소테르라는 단어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서 아직 예수나 하느님에 대한 칭호로 굳어지기 전 단계 를 시사해 주고 있다. 즉 문장 속에는 구세주가 "기다리 다"라는 동사의 목적어로 되어 있고, 그 뒤에 구세주와 동격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를 설명해 주는 구조이다. 다시 말해서 아직 구원자라는 단어가 그리스 도교 공동체에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사용될 단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필립비서는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쓰 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당시 네로는 "세계의 구 원자이며 세계에 유익을 주는 자"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바오로는 필립비서 3장 20절에서, "네로 황제는 진정한 구원자가 아니다. 굳이 구원자를 이야기하자면,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구원자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 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바오로는 적어도 현존하 는 문헌에 의하면, 교회 역사상 제일 처음으로 예수에게 '소테르' 라는 단어를 적용시킨 사람이다. 루가 · 사도행전 : 루가는 그의 두 권의 책 속에서 소 테르를 네 번 사용하고 있다. 먼저 그의 복음서에서는 이 단어가 1장 47절과 2장 11절에서 쓰이고 있는데, 전자 는 하느님을, 후자는 그리스도를 '소테르' 로 부르고 있 다. 그러나 1장 47절의 소테르는 '나의' 라는 속격 인칭 대명사의 수식을 받고 있으므로 '구세주' 라는 칭호로 쓰 인 것이 아니라, '나의 구원자' 라는 보통 명사의 용법으 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루가 복음 2장 11절은 이 복음서 속에서 예수라는 인물이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되는 구절로서, 루가의 그리스도론을 잘 나타내 주 는 중요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루가의 탄생 설화 중에서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해 주 는 말 속에 있으면서, 예수에 대한 세 가지 칭호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칭호 중에서 대표격으 로 쓰인 칭호가 바로 '소테르' 이고, 이 말을 "그분은 그 리스도 주님이시다"라는 관계 대명사절이 수식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루가 자신이 예수의 대표적인 칭호를 구세주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것은 루가의 '구원자-그리스도론' (soter-christology)이라이라고 부 를 수 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이 단어는 5장 31절과 13장 23절 에 사용되고 있는데, 전자는 베드로의 연설 속에서, 그리 고 후자는 바오로의 연설 속에서 각각 예수를 '소테르' 라고 부르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바로 사도행전의 두 주 인공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루가가 사도행전에서도 이 두 구절들을 통해서 그의 구원자-그 리스도론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루가가 그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하여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Heilsgeschichte)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잘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요한 문학 : 요한 문학에서의 '소테 르' 는 요한 복음 4장 42절과 요한1서 4장 14절에서 각각 예수의 칭호로 한 번씩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경우 모두 구원자 뒤에 '세상의' 라는 속격 명사가 따라 나온다. 다시 말해서, 신약 시대에 예수를 '구세주'' 라고 부르는 전 통은 요한 공동체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디모테오서와 디도서 : 이 서간들에 서는 예수에게뿐만 아니라 하느님에게 도 구세주(구원자)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는 '소테르' 가 세 번 나오는데, 모두 하느님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즉 1장 1절과 2장 3절에서는 하느님을 "우리의 구원자"로, 4장 10절에서는 "모든 인류의 구원자"로 부르고 있 다. 한편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는 "우리의 구 원자 예수 그리스도" 라는 표현이 1장 10절에 한 번 나올 뿐이다. 이 서간들 중에서 구원자를 가장 많이 사용한 서간은 디도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에는 '소테르' 가 모두 여섯 번 쓰이는 데, 세 번은 하느님에게(1, 3 ; 2, 10 ; 3, 4), 그리고 세 번은 예수 그리스도에게(1, 4 ; 2, 13 ; 3, 6) 적용되는 말로 나타난다. 더구나 1장 3절과 1장 4절, 2장 10절 그리고 3장 4절과 6절이 문맥상 서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어서, 마치 저자가 의도적으로 "우리의 구원 자이신 하느님"과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를 같은 문맥 속에 함께 사용하려 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론이 많이 발달된 때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 다. 유다의 편지 및 베드로의 둘째 편지 : 유다의 편지와 베드로의 둘째 편지 사이에는 직접적인 의존 관계(direct literary dependency)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유다의 편지 1장 4절부터 16절까지가 베드로의 둘째 편지 2장 의 직접적인 자료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유다의 편 지에는 25절의 마지막 송영 부분(doxolgy)에서 "우리의 구원자 하느님께만"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 구절은 하느님을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디 모테오서와 디도서의 전통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 다. 물론 이 구절은 자료 비평상 베드로의 둘째 편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분에 속하는데, 실상 베드로의 둘 째 편지는 이 '소테르' 의 사용에 있어서 유다의 편지와 는 다른 전통을 보여 주고 있다. 베드로의 둘째 편지는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후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이 '소테르' 의 사용에 있어서도 역시 가장 발달 된 단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 편지에서는 '소테르' 가 다 섯 번(1, 1 ; 1, 11 ; 2, 20 ; 3, 2 ; 3, 18) 쓰이고 있는데,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었다. 그런데 이 구절 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베드로의 둘째 편지에서는 "우리 의 주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구가 이미 하나의 고정된 정식(formula)으로 굳어진 듯한 인상을 받 는다. 이러한 표현은 예배 의식과 관련된 용어로도 쓰인 것 같으며, 신약 그리스도론의 발달 과정 중 가장 후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문구라고 말할 수 있다. 〔결 론〕 위의 개관에 준거해 볼 때, 우리는 구약과 신 약 시대에서 구세주의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 게 발전되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우선 구약 시대에는 하느님을 명확하게 '구세주'' 라고 부르는 전통이 생겨나 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포로기 이후 예언자들 사이에서 선민 사상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편협한 국수주의를 넘어 서서 세계를 하느님의 구원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생 겨났으나, 이때에도 초점은 "나라들의 빛" 으로서의 이스 라엘에 있었으며,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하느님"이란 개 념은 명확하게 성립되지 않았다.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세계를 한 지평으로 바라보 는 사고의 형식이 생겨나게 되는데, 신약에서의 '구세 주' 의 개념도 이러한 문화사적인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고 볼 수 있다. 우선 신약성서에서는 '구세주' 라는 개념 이 '소테르' 혹은 '세상의 구세주' 라는 표현으로 나타나 고 있는데, 신약의 초기에는 이 말이 하느님이나 예수 그 리스도를 지칭하는 말로 잘 쓰이지 않다가, 루가와 요한 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칭호로 신학화되었다. 이 '소테르' 라는 단어는 주로 디모테오서와 디도서, 베 드로의 둘째 편지에 많이 나타난다. 디모테오서와 디도 서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함께 이 칭호를 사용 하고 있고, 베드로의 둘째 편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이 칭호를 적용시키고 있는데, 특히 베드로의 둘째 편지 에서 이 칭호는 하나의 형식으로 굳어져 가는 그리스도 론 칭호를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구세주' 라는 개념 은 다른 신명(神名)들과 비교해 볼 때 비교적 후대에 발 달된 신 이해(神理解)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약성서는 이 개념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어떻게 사 용되기 시작했고, 또 이 개념 자체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신학적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 참고문헌 Reginald H. Fuller, Jesus Christ as Savior in the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35, 1981, pp. 145~156/ E. Jenny, Messiah, Jewish, 《IDB》/ Craig R. Koester, The Savior of the World, 《JNBL》 109, 1990, pp. 665~680/ K. Latte, Heiland, Die 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 : Handwörterbuch für Theologie und Religionswissenschaft, vol. 3. J.C.B. Mohr, 1959, pp. 143~145/ J.Z. Smith, Hellenistic Religions, 《EB》 9/ P. Wendland, Soter, 《ZNW》 5, 1904, pp. 335~353/ R.J. Zwi Werblowsky, Jewish Messianism, 《ER》9. 〔朴應天〕 II . 교의신학적 측면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신앙 고백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로 부터 파견된 신(神)이며 인간으로서 인류의 구원 사명을 완수한 분, 곧 신 · 인(神人)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 서 그리스도교의 구세주 신앙 안에서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구세주 파견이라는 면과, 구원을 실현한 구세 주의 업적이라는 면이 한데 어울려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양면을 함께 지니는 그리스도교 구세주 신앙을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문화와 사상적 배경 속에서 표현해 내고 자 할 때(신학을 할 때)에는 적절한 개념과 언어가 필요하 다. 불변하는 신앙의 내용이라 할지라도 현실화되지 않 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신학 사상가들이 끊 임없이 신앙의 현실화 작업을 시도해 왔다. 이러한 사실 을 신학사와 얽혀 있는 교의사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먼저 그리스도교 세계가 구세주 신앙을 자신이 속한 문화권의 사상적 환경 속에서 어디에 역점 을 두어 표현(신학)하고자 하였는지 교의사적인 측면에 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교의화된 후 전통적으로 이 어져 온 구세주 교의에 대한 현대 신학의 모습을 간략하 게 정리하고자 한다. 〔표현의 역사〕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세주라는 칭호가 이교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되었기에 즐겨 사용하지 않았 다. 신약성서 안에서 그리고 이어진 사도 교부들의 작품 안에서 하느님, 혹은 예수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던 다 른 호칭들에 비해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드물게 등장한 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어떻든 초대 교회에서는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 혹은 해방 이 이루어졌음을 믿고 있었기에 비록 사용 빈도는 낮지 만 예수를 지칭하기 위해 그리스도, 주님 칭호와 함께 '구세주' 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즉 이교 문화권의 사용 방식을 긍정하거나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이며 주님인 예수야말로 구원을 가져다 준 분, 구원의 유 일한 작인(作因)이라는 믿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다. 이처럼 구세주인 예수에 관한 그리스도교 구원론은 처 음부터 그리스도론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그 리스도론은 구원을 전제로 하는 신학이다. 예수 그리스 도야말로 하느님께서 하는 일, 곧 구원 사업을 유일하게 맡아 이루는 분인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하 느님이며 인간이기에 인류의 구원이라는 업적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몇 세기 동 안 교회의 사상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실체인 "만물의 복원" (사도 4, 21) 을 확신하고 선포했던 사도들의 신앙에 그 토대를 두고, 하느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고 있으며 또 인류가 그분을 통해서 만물의 새로운 질서 안에서 진 입하게 되었다는 구원론을 전제로 하였다. 그리고 그 구 원을 가능하게 한 그분에 대한 신앙을 존재와 본질의 규 명이라는 면에서 시대적 개념과 언어를 빌려 표현하고자 했다. 즉 그들은 구원론을 그리스도 존재론적으로 전개 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이러한 그들의 신학에 근거해서 인간 구원의 신비를 그리스도의 신 · 인성 일치의 신비 안에서 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분의 신성은 하느님인 아버지와 같은 신성(제1차 니체아 공의회, DS 125)이지만 그분의 인성도 충만한 인간으로서 우리와 같은 인성(제1 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DS 150과 칼체돈 공의회, DS 301)이 며, 그분의 신성과 인성은 바뀔 수 없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치되어 있어 그분은 하나이고 같은 분이며,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이며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어머니 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분(에페소 공의회, DS 264와 칼체돈 그리고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DS 422)이었다. 또 한 그분은 인간이기에 죄 이외에는 참다운 인간의 삶, 참 다운 인간의 행위, 참다운 인간의 자유, 참다운 인간의 의식을 행한 삶을 산 분(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DS 553~559)이라는 내용으로 집약되었다. 따라서 이후의 공의회들, 예를 들면 제4차 라테란 공 의회(1215), 제2차 리용 공의회(1274) , 피렌체 공의회 (1442) 및 트리엔트 공의회(1547)와 기타 최근의 교황 회 칙들과 선언들에서도 교부 시대의 교의를 반복해서 가르 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가르침에 서도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에서 인류 구원의 신비를 정 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어떻든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전제로 한 구세주의 존재에 관한 교리는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 함께 완결된 셈이다.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는 동방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를 하 느님과 인류 사이의 중재자로 보았고 그런 까닭에 그분 이 인류를 구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아우구스티노 (Augustinus), 인격과 위격성에 관한 선구적 규명을 시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역할을 정리해 보려 했던 보에시우 스(Boethius), 그리고 그리스도 보상론(theory of satisfaction)을 통해 그분의 업적을 보려 했던 안셀모(Anselmus) 의 사상을 수정, 자신의 사상 속으로 흡수시켜, 그리스도 의 중재자로서의 역할과 그리스도 생명의 신비의 발현으 로서의 육화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밝히려고 했다. 그러 나 실제적인 관심은 '우리 인간을 위한 그분' 즉 기능적 인 면보다는, '그분 자신' 즉 존재 문제에 기울였기에 실 제로 강조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 구성, 곧 하나 의 신적 위격과 본성들의 결합, 그리스도의 지식, 그분 의지의 작용, 그분의 능력, 그분의 의식 등에 관한 신학 이었다. 그 결과 근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신비에 관한 한 구세주로서의 기능 규명과 본질을 중심으로 한 존재 규명의 연결 작업이 없는, 이른바 강생에 대한 하나 의 발전된 형이상학만을 넘겨주고 말았다.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를 포함한 스콜라주의(scholasticism)자들이 신학 의 발전에 기여한 바는 크다. 교부 시대에 형성된 교의를 계승하면서 분석하고 설명하는 가운데 체계화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구세주 신 앙에 관한 한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주의자들은 구세 주 존재의 신비에 중점을 둔 신학을 전개하였고 그들의 이 신학은 근세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토마스 아 퀴나스가 교회의 유일한 신학자도 아니요, 그의 저서가 성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세주 신학을 포함하여 그의 신학은 최근까지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어떤 사람 들은 20세기 중반까지의 신학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학 대전》(Summa theologica)에 대한 주해의 역사라고까지 말했다. 〔현대 신학의 동향〕 구세주의 신비에 관한 현대 신학 의 동향을 간단하게 소개하기란 쉽지가 않다. 신학 전반 에 걸쳐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신학의 흐름이 그리스도 중심적이면서도 '우리를 위한 그리스 도' 라는 구세주 신비의 보편적 의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 고, 또 그리스도론의 향방이 신학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론적인 측면에서 구세주의 신비에 관 한 신학의 흐름을 요약할 수 있다. 가톨릭 신학에서 보는 구세주 :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가톨릭 신학은 원칙적으로 파견된 구 세주의 존재론적인 문제에 집중되었다. 구세주로서의 그 분의 역할 혹은 기능에 관한 것은 아니었으나 크게 두 가 지 계기, 즉 성서 연구에 비평적 시각의 수용과 인간 존 재에 대한 진화적인 이해를 시도하면서 전환이 이루어졌 다. 이 두 가지 계기는 인간을 중요시하면서 인간의 이성 과 오성 안에 역사적으로 비평적인 요소가 있음을 깨닫 게 해준 18세기 계몽주의 사조로 마련되었다. 그러나 가 톨릭의 구세주 신학의 전환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기 시 작한 것은 칼체돈 공의회 1,500주년 기념제(1951)를 통 해서였다. 구세주의 신비에 관한 내용이 교의화되었지만 성서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 성서의 해석인 교 의 역시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마땅히 비평 과정 을 거쳐 구세주 신비의 성서적이면서 교의적인 측면을 신학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때 나왔다. 그 후 성서 주석학과 교부신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현대의 사조, 예를 들면 역사적이고 현상학적인 의식을 바탕으 로 한 철학적 인격주의 등에서 발견한 언어와 개념들을 사용하는 가운데 이른바 현대 구세주 신학을 전개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라너(K. Rahner), 킹(H. Küng), 카스퍼 (W. Kasper), 스킬레벡스(E. Schillebeeckx)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사람이 된 말씀이라는 본질 · 존재 위주의 하강(下降) 측면보다는 역사상의 예수,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그분의 역할 혹은 기능을 위주로 한 상승(上 昇) 측면을 출발점으로 하되 마지막에는 하강 측면과 연 결시키는 방식으로 구세주 신학의 발전적인 양상을 보여 주었다. 라너는 자신의 구세주 신학을 '상승 그리스도론' 이라 칭한다. 그의 출발점은 인간과 역사적인 예수와의 만남 이다. 그러나 하강 그리스도론을 간과하지 않는다. 인간 의 역사 안에 들어온 하느님에 관한 신학 역시 힘이 있고 의미가 깊다고 본다. 그의 구세주 신학은 초월이라는 신 학적 방법이 갖는 기능에 역점을 두고 있다. 세상은 본래 의 자신보다 상위의 어떤 것으로 되어 가는 진화 운동을 하는데 그것을 자기 초월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자기 초월의 역량이 바로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있고 이 현존은 처음부터 있었기에 세상의 역사관 곧 구원의 역사라고 본다. 또한 항구한 시작과 자기 초월이라는 절대적인 보 장이 바로 위격적 일치(hypostatica unio)인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말씀과 육(肉)의 결합이며, 실제로 그 안에서 물질과 정신의 결합이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궁극적인 그 결합으로 인해 역사는 마 지막 국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와 짧은 순간의 실패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인간의 자유와 인간을 세상의 발전적인 변형에 참여할 수 있게 하지만 하느님의 자아 통교를 거절하고 하느님 을 향한 운동을 거부할 수도 있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세상은 홀로 물질과 정신을 자신 안에 결합시키는 인 간을 통해서 자신을 의식하게 되고 인간은 자아 초월을 위한 인간의 역량을 실제화하는 한, 자신의 최종 목표인 하느님의 왕국을 향하여 움직이므로 결국 인간은 물질이 었던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처음 부터 이렇게 총체적인 진화의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 안 에 집중되어 있는 까닭에 왕국을 향한 과정은 그분 안에 서 취소되거나 역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분이야말로 말씀이 사람이 된 분이고 육(肉)과 물질을 취함으로써 세상을 취한 분이며 사람이 된 말씀이기에 은총을 줄 뿐 아니라 은총 자체이고, 자신이 선포하는 왕국이라는 것 이다. 그래서 위격적 일치는 사변적인 교리만은 아니라 는 것이다. 킹이 말하는 예수는 라너의 그리스도론에서 보이는 것 처럼 우주적인 인물은 아니다. 그분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말하고 행하는,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후의 사람들에게도 충격을 가하는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정상적인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청으로서는 그분 이 비록 왕국을 선포하지만 그분 자신이 왕국은 아니라 고 본다. 그러나 법과 전통 그리고 의식 등 모두가 왕국, 즉 인간의 안녕에 직결되므로 구원을 곧 인간화로 여긴 다. 결국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죄의 인격화를 실 현했고 또 모든 죄인의 대표로 등장했는데 그분의 추종 자들은 그분의 죽음 후에 그분이 살아 있는 것(부활한 것) 으로, 즉 그들은 그분 안에서의 변화를 체험했다는 것이 다. 큉에 의하면 예수의 그 행위가 교회 안에서 계속된다 는 것이다. 카스퍼의 그리스도론은 나자렛 예수의 역사와 함께 시 작된다. 그리고 역사 자체가 유발시키는 철학적 반성에 도달하며 마지막으로 구원론적으로 정리된다. 우리가 예 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믿고 있는 구속의 의미들은 항상 신약성서의 저자들과 교회의 교부들 그리고 공의회의 심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서 그리스도론의 전체가 구원론은 아니다. 그는 좀더 보 수적인 성서 주석학파를 따르는 가운데 예수에 관한 사 고에 있어서 함축적인 그리스도론을 전개한다. 예수는 그분의 칭호들이 드러내고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존재 였기에 칭호들을 받아들이기를 꺼려 했다는 것이다. 그 러나 카스퍼는 예수가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대표자라는 생각에 있어서는 큉과 같다. 하지만 육화를 역사적 진화 의 완전한 부분이라고 여긴 라너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오히려 하느님이 질서와 우주에 대한 균형 을 회복하기 위해 사람이 되었다는 안셀모의 의견에 가 깝다. 카스퍼의 특징은 위격적 일치에 관한 성령론적 해 석일 것이다. 아들을 삼위의 한 위격으로서 외적으로 향 할 수 있게 한 것은 성령이며, 예수가 당신의 죽음과 부 활 후에 역사적인 인물로부터 해방된 다음, 온 인류가 구 원의 단일성 안에 함께 나오게 한 것도 성령이라는 것이 다. 스킬레벡스는 그리스도론의 방법이 두 가지라고 본다. 요한의 모델에 따른 '위로부터의 것' 과 공관 복음에 따 른 '아래로부터의 것' 이다. 그는 공관 복음의 그리스도 론을 따라 역사적 예수가 하느님의 비유이자 인간성의 모범이라고 여긴다. 인간으로서 '위타(爲他) 존재' 인 그 분은 하느님의 자아 증여 혹은 남을 위한 존재로서 우리 가운데 성사 - 그분이야말로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보 편적 사랑의 성사라는 것이다. 스킬레벡스는 예수가 새 로운 교리나 종교 체계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 히려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고 그 나라를 실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실천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데 그 실체가 바로 교회이며, 교회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그리스도의 실행을 중재하기 위해 부름받았고 또 이 일을 위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테이야르 드 샤르댕(Teihard de Chardin)과 피트 스코넨 베르히(P. Schoonenberg)는 진화적 전망을 같이 가지고 있 다. 샤르댕에게는 모든 역사가 출발점인 그리스도를 향 한 운동이다. 그리스도는 이미 사랑-향방, 즉 그리스도 적인 차원을 부여하면서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 안에 현 존한다는 것이다. 스코넨베르히는 근본적으로 샤르댕과 같은 견해를 갖지만 그리스도의 선재 문제에 강조점을 둔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성삼의 제2위는 시간 안에서 특정한 순간에 존재가 된 예수의 인간적 인격이 라는 것이다. L. 보프나 J. 소브리노와 같은 해방신학자들은 신앙의 그리스도를 넘어서서 역사적 예수를 강조한다. 예수는 자신을 설교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의 실현인 하느 님 나라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를 요구하 는 가난한 이, 억압받는 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선포하였 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예수를 통해서 그들 곁에 계신다고 본다. 결국 회개란 확신의 문제일 뿐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고, 개인의 것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구조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떻든 현대 가톨릭 그리스도론이 원리로 삼는 것들은 대강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은 참 인간이시자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며, 둘째는 그분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사건을 통해서 볼 때 그분은 바로 하느님의 자기 통교 안 에서의 결정적인 순간이자 우리가 하느님을 결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셋째, 하느님 나라는 현 존하는 미래인데 그것은 예수의 설교 안에서 중심이다. 넷째, 우리가 하느님의 성사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결 정을 내릴 때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고, 예수를 위해 우리가 내린 그 결정은 이웃 에 대한 우리의 결정과 직결된다. 다섯째, 하느님 나라는 인간화와 관련이 있고 인간화는 해방과 연관되며,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은 내밀하게 연결된다. 즉 그분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은 그분이 우리를 위한 분이 라는 것을 말해 주고, 또 그분이 우리를 위한 분이라는 사실은 그분 자신이 누구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는 것이 다. 결국 현실성이 있는 구원관, 즉 언어와 표상, 개념과 현실성과 계시로써 드러나는 구원의 구조와 내용에 관한 범주의 포괄성, 구세주와 인간 사이에 엮어진 구원 과정 과 그 과정의 현실적인 해석을 중점적으로 시도하는 것 이 현대 가톨릭 신학의 동향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도 구세주 신학의 측면에 서 하나의 기점이 되었다. 가능성으로나 사실로나 인간 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 믿음 안에서의 이 확신이 공의 회 문헌을 채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사목 헌장>에서 두드러진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이요 아버지께서 사람이 되신 당신의 아드님과 그 교회 안에서 인간들과 세계를 변혁시켜 구속할 것이고, 몸소 그 보장이 되어 준 다는 새로 얻은 확신을 표명하고 있다(2, 5, 39항). 프로테스탄트의 구세주 신학 : 프로테스탄트의 그리스 도론은 성서 비평이 자신들 안에서 먼저 발전하였으며 자신들의 사고 방식상 신적 실체 안에서 어떤 인간적 실 체를 확인하려는 일에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아래로부터 의 그리스도론적 접근 측면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진 한 편 극단적 자유주의의 경향에 대한 반발로 우파적 경향 을 보였다. 몇몇 대표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구 세주 신학을 정리해 본다. 불트만(R. Bultmann)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 확신을 가 지고 자유주의의 가설에 도전했다. 그의 실존적 해석은 개별 인격의 사적 영역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로 하여금 해방주의와 정치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게 했다. 그의 이론은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에서 신격화된 예수를 받아 들이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의심을 받았다. 쿨만(O. Cullmann)은 불트만의 우파로서 구세사를 예수 그리스도 이해의 핵으로 삼았다. 그분이야말로 직선적 시간의 중 심이자 하느님의 정언적 계시라는 것이다. 그는 존재론 적 그리스도론보다는 기능적 그리스도론을 선호했다. 신 약성서의 제칭호들은 존재론적이라기보다는 기능적인 면에서 예수께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바르트(K. Barth)는 불트만에 반대하면서 자유주의에 강력하게 직접적인 공 격을 가했다. 그는 예수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보았기에 그에게 있어서 모든 신학은 그리스도론이었다.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하는 것 외에 하느님으로부터 그리고 하느님 께로의 접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틸리히(P.Tilich)는 불트만이 성서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던 것에 비해 조직신 학적인 그리스도론을 전개했다. 양자가 모두 예수의 메 시지와 파견을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했다. 틸리히에게 그 리스도는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걱정과 소외를 인간이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존재" (new being)인데 그 분이야말로 당신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러한 것들을 정 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회퍼(D. Bonhoeffer)는 자유주의와 바르트 사이에서 중간적인 신학 노선을 취했다. 그에게는 예수가 "다른 이들을 위한 사람"이었다. 그분은 '나를 위한 분' 이며, 성인들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그 공동체를 통해서, 오 늘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본회퍼의 그 리스도론은 1960년대의 세속 신학 안에서 예수께 대한 세속적 해석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판넨베르크(W. Pannenberg)는 쿨만처럼 신적 계시의 전달 방법인 역사를 강조한다. 계시는 역사의 종국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전의 사건들이 계시적인 것이 되 는 것은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뿐이다. 그는 예수의 신성 이 아버지께 대한 그분의 완전한 헌신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역사적 사건인 부활 안에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충 만하게 설정되었다고 본다. 그의 그리스도론은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 아니라 앞을 향한 그리 스도론이라 특징지을 수 있다. 몰트만(J. Molmann)은 그 리스도론의 관점에 있어서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자들 과 가까운 신학을 전개하는 프로테스탄트계 신학자이다. 그에게 십자가는 중심점이면서 정치적인 사건이다. 하느 님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실제로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고 또 인류 가운데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한 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참된 삶은 하느님의 왕국을 실행하는 삶으로서 실현된다고 보기에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 가난한 이들, 박해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 안에서 드러나는 신학적 향방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시각의 차이 에서 기인한다. 첫째, 부활에 대해 이해할 때 그것을 객 체로 보는가, 주체로 보는가 혹은 양쪽을 다 보는가이다. 둘째, 예수의 신성에 대해 이해할 때 공의회의 표현을 전 유하는 식인가, 거부하는 자세인가, 혹은 비평적으로 재 전유하는 식인가이고, 셋째, 출발을 위로부터 하는가, 아 래로부터 하는가, 혹은 앞을 향한 것으로 하는가이고, 넷 째, 예수께서 선교하신 하느님 왕국의 정치적 의미에 관 하여 이해할 때 전적으로 정치적인 것으로 하는가, 완전 히 비정치적인 것으로 하는가, 혹은 폭 넓게 정치적인 것 으로 하는가이고,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해를 구축하기 위해 신약성서를 연구해 나갈 때 보수적인가, 아니면 극단에 이르는 자유주의인가, 혹은 폭 넓게 횡단 적인가이다. (→ 구원론 ; 그리스도론 ; 메시아 ; ⇦ 구원 자) ※ 참고문헌 G. Kittel . G. Friedrich(eds.), 《DNT》7, pp. 1004~1021/ Henricus Denzinger(ed.), 《ES》, Freiburg : Herder, 35th eds., 1965/ Justo L. Gonzalez, A History ofChristian Thought 1, Nashvill : Abindon Press, 8th printing, 1983/ J. Neuner, S.J. · J. Dupuis, S.J.(eds.), Jesus Christ the Saviour, The Christian Faith in the Doctrinal Documents ofthe Catholic Church, London : Collins, rev. ed., 1983/ J.N.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 London Adam & Charles Black, 5th ed., 1980/ M. Schmaus, Dogma I, London : Sheed and Ward, 4th imp., 1977, pp. 227~2541 K. Rahner(et als. eds.),《SM》 2, London : Burns & Oates, 1968, pp. 95~111/ K. Rahner, The Development of Dogma : T.I., vol. 1, pp. 39~77/ 《DS》, 1792, 1800, 1836, 1839, 1875/L. Berkhof, Systematic Theology, Michigan : WM. B. Eerdmans Pub. Co., reprinted, 1981, p. 415/ M. Schmaus, Dogma 3, London : Sheed and Ward, 1971, pp. 211~228/ Richard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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