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 [히]757@ [그]Фaporio [라]Pharao [영]Phara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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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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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과 함께 있는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
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 파라오는 '큰 집'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후대 에 이집트의 왕을 가리키는 직함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왕국을 다스리는 절대적 통치자로서의 파라오는, 그가 맡은 역할과 사회적 위상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가지 칭호 와 직함을 사용하였다. 왕권이 신성시되고 강화되었던 초기에는 이집트 백성과 우주의 신들 사이를 매개하기 위해 인간으로 나타난 신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졌으나, 고왕국 시대를 거치면서 왕의 지위가 점차 낮아져 막강 한 힘을 발휘하는 독자적인 신이라기보다는 '태양신의 아들' 처럼 특정 신에 종속된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 후 신왕국 시대에는 여러 신들의 뜻을 집행하는 대리인으로 여겨졌다. 〔의미의 변천] 파라오는 전통적으로 신의 영역과 지상 에서 하는 역할을 아우르는 여러 가지 칭호와 직함을 가 졌다. 즉 '호루스' (Horus), , '황금 호루스 , '두 여신의 총아' ,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수호신' , '태양신 라 (Ra)의 아들' 등의 이름들이다. 그렇지만 '파라오' 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칭호의 일부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3000년대 초기에는 왕과 궁정 관리들이 거주하 던 엠피스(Memphis)의 복잡하고 넓은 왕궁의 일부를 가 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점차 확장되어 중앙 정부의 권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왕국 제18 왕조(기원 전 1550~1295) 시기에, 특히 투트모스 3세(기원전 1479~ 1426)가 다스리기 이전에는 때때로 왕 자신에게 적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의미의 변천은 이집트 왕국 안에서만 일 어났다. 대외적으로는 신왕국 시대가 끝나기 전(기원전 1070)에 통치자인 왕을 가리키는 예의 바른 완곡 어법으 로서 공적인 전문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제22 왕 조의 초대 왕인 세송크 1세(기원전 945~924)가 다스리던 시기부터 '파라오'' 라는 이름이 간혹 공적인 비문에 쓰이 는 왕의 칭호 목록에 포함되었고, 기원전 8세기에는 긴 타원형의 윤곽으로 왕의 칭호를 나열하는 데 포함되었 다. 이렇게 공적인 일과 문서에만 사용되다가 기원전 7 세기에 일반적으로 왕을 가리키는 동의어로 사용되면서, 테베의 일꾼들이 말하는 '우리의 어진 왕이신 파라오' 와 같은 일상적인 담화에도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파라오' 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지기 시작하 였다. 프톨레메우스 왕조(기원전 305~30)의 신전 비문에 단지 왕을 뜻하는 문맥에 지속적으로 '파라오' 이름이 나타나지만,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 전 27~서기 14)에 의해 이집트 왕조가 멸망함으로써 이 집트 왕을 가리키는 말은 사라졌다. 그래서 서기 3세기 말에 시작된 롭트 교회에서는 파라오를 완전히 잘못 번 역하기도 하고, 이슬람 전통에서는 몇몇 왕을 가리키는 개인 이름으로 변형시키기까지 하였다. [성서의 용례] 어느 파라오인지 고유 명사를 덧붙이지 않은 채, 단순히 '이집트 왕' 을 가리키는 뜻으로서 '파라 오' 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실례는 구약성서에서 흔히 발 견된다. 창세기, 출애굽기, 열왕기 하권 등 성서에 나오 는 용례는 이집트 제21 왕조 시기의 용법으로, 파라오의 자연적인 어의 변화의 최종 단계를 확인시켜 준다. 제21 왕조 이후로는 '파라오' 라는 칭호와 왕의 이름을 함께 사용하였는데, 이는 "이집트 왕 파라오 호브라"(예레 44, 30), "이집트 왕 파라오 느고" (예레 46, 2)라는 식으로 성 서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엠피스 ; 이집트) ※ 참고문헌 Donald B. Redford, (ABD) 5, pp. 288~2891 성서 백 과 대사전 편찬위원회 편, 《성서 백과 대사전》 4권, 성서교재간행 사, 1980, pp. 445~448. 〔李禹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