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렌코프, 비트마르 Farrenkopf, Witmar(1906~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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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 성 오틸 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비트 마로(Witmarus) 세례 명은 통긴(Longin). 한 국명은 王文 박위명 (朴偉 明). 1906년 8월 23일 헤르비폴(Herbipol) 교 구의 노이도르프(Neudorf)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민스터슈바르 자흐(Muinsterschwarzach)수도원의 성 루트비히(St. Ludwig) 소신학교에서 공 부하다가 밖르츠부르크(Wiinchug)에 있는 새 김나지움 으로 전학하여 인문주의적인 교육을 받았다. 1928년 뭔 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29년 5월 12일 유기 서약을 하였으며, 1932년 부터 밖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34 년 3월 12일 민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18일 한국 선교사로 파견된 그는, 1935 년 1월 30일 지베르츠(E. Siebertz, 池仁洙, 1907~2000) 신부와 함께 덕원 수도원에 도착하여 한국어를 공부하며 도서관 사서로 일하였다. 그리고 1935년 9월 고산 본당 에서 6주 동안 사목 실습을 한 후, 북청 본당의 초대 주 임 히머(C. Hiemer, 任竭忠, 1884~1968) 신부가 본당 신 축 공사 중 흥남 본당으로 전임되자 10월 북청 본당의 2 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부임 두 달 만인 12월 15일에 원산 대목구장 사우어(B. Sauer, 辛上院, 1877~ 1950)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1936년 8월에는 80여 평의 교사를 완공하여 4년제 소 학교인 해성학교를 인가받았는데,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 의 수가 많아지자 지방 유지들의 도움으로 증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1937년 후반에 덕원 수도원의 당가 신부로 전임되었으나, 북청 유지 교우들의 요청으로 북청 본당 으로 다시 돌아가 해성학교 증축 공사를 끝냈다. 본당의 정착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던 그는 1940년 회령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본당 사목과 해성학교 운영에 헌신하 였다. 1945년 8월 초순 일본군의 퇴각과 소련군의 진입 을 예상하고 회령에서 8km쯤 떨어진 계림 준본당으로 본당 수녀들과 함께 피신하였다. 8월 21일 본당이 불탔 다는 소식을 듣고 회령으로 돌아갔던 파렌코프 신부는, 8월 22일 소련군에게 피살당하였다. (- 덕원 수도원 ; 북청 본당 ; 지베르츠, 에른스트 ; 치머만, 프리돌린 ; 함 흥교구 ; 회령 본당) ※ 참고문헌  Schematismus Monachorum Et Fratr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O.S.B 1934~19461 A. Kasper · P. Berger, HWAN GAB(還甲), Miunsterchwarzach, 1973/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이 정순 엮음, 《원산 수녀원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88/ 한국 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 업회, 1991/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 Todesanzeige von Abtei St. Ottilien, 1945.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