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 본당

伽泉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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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성주군 가천면 창천3동 567 소재. 1961년 4월 22일 성주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 었으며, 주보는 파티마의 성모. 관할 구역은 성주군 가천면 · 수륜면 · 금수면 전지역과 대가면 일부, 고령군 운 수면 일부. 공소는 동원, 법전, 신계, 금수, 늑바위, 챙기, 적산, 수륜, 보월, 오천, 송계, 공소 등 11개소. 〔교 세〕 1989년 1,496명, 1993년 1,899명. [역대 신부] 초대 정환국(鄭桓國) 알로이시오(1961. 4~1964. 9), 2대 되 플러(Egbert Döpler, 정묵덕) 에크베르트(1964. 12~1972. 1), 3대 서경윤(徐景胤) 알베르토(1972. 1~ 1972. 5), 4대 젱글라인(Josef Zenglein, 송만협) 요셉(1972. 5~1978. 7), 5대 박창호(朴昌浩) 요셉(1978. 7~1980. 5), 6대 허연구(許淵九) 모이세(1980. 5~1982. 1), 7대 최홍덕 (崔弘德) 야고보(1982. 1~1986. 1), 8대 최창호(崔昌浩) 야고보(1986. 1~1987. 6), 9대 정홍규(鄭洪圭) 아우구스티노(1987. 6~1989. 6), 10대 이정효(李丁孝) 예로니모(1989. 6~1993. 10), 11대 박승재(朴承再) 알로이시오(1993. 10~현재).
〔설립과 변모〕 본래 가천 지역은 성주 본당에 속해 있던 한적한 곳으로 이미 1954년에 왕 레기날드 신부에 의해 공소로 설립되었다. 그 후 이 지역에는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본당 설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또 본당 과 먼 공소들이 많은 탓에 미사 참례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므로 1960년대 초에 들어 성주 본 당에 재임하던 정환국(알로이시오) 신부는 이곳 신자들과 협력하여 우선 성당을 건립하게 되었는데, 이때 서독 교우들이 건립 기금을 도와주었다. 그 후 1961년 4월 22일, 신축 성당은 왜관 수도원의 비트렐리(이성도 디모 테오) 몬시놀에 의해 축성식이 거행되었는데, 대구교구에서는 이에 맞추어 이곳을 성 베네딕도회 관할 본당으 로 승격시켜 주었다. 당시 본당의 신자수는 650명이고, 공소수는 7개소였다. 이후 본당 신자들은 신심 단체를 구성하는 등 본당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였고, 1966년에는 관할 오천 공소의 강당을 축성하였다. 그러나 1970 년대 말부터 시작된 이농 현상과 잦은 본당 신부의 교체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 왔다. (→ 대구대교구)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