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2세 Paschalisif(~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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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2세.

파스칼 2세.


교황(1099~1118). 베네딕도회 회원. 본명은 라이네리 오(Rainerius). 그의 재임 기간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지원을 받는 대립 교황들의 위협 속에서 성직 서임권 논 쟁으로 얼룩졌다. [생 애] 이탈리아 중부의 라벤나(Ravenna) 근처에 있 는 비에다 디 갈레아타(Bieda di Galeata)에서 태어난 라 이네리오는 소년 시절에 베네딕도회에 입회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문헌들에는 그가 클뤼니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는 설과 발롬브로사(Vallombrosa)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는 두 가지 기록이 있는데, 후자가 정확할 것으로 추정된 다. 20세 때 그는 로마로 파견되어 교황 그레고리오 7세 (1073~1085)의 업무를 보좌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1078년 로마의 산 클레멘테(San Clemente) 성당 명의의 사제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2세(1088~ 1099)는 그를 바오로 대성전에 있는 수도원의 아빠스로 임명하였으며, 이후 교황 대사로 스페인에 파견하였다. 이러한 활동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성덕은 타인의 존경 을 받기에 충분하였으며, 그 결과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선종하였을 때 여전히 무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으 로 선출될 수 있었다(1099. 8. 13) 교황 파스칼 2세가 활동하던 시기의 교회는 교회와 국 가, 교황과 황제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고 각각의 권력 에 부합하는 권위를 확보하려는 요구가 높았던 시기였으 며, 교회 내에서는 개혁과 쇄신의 목소리가 높았던 시기 였다. 그래서 파스칼 2세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 이전부 터 추진되었던 이른바 '그레고리오 개혁' (Reformatio Gregoriana)의 정책들을 계승하여 추진하였다. 교황으로서의 그의 첫 번째 사명은 대립 교황들에 대 한 처리 문제였다. 성직 서임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의 대립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하 인리히 4세(1056~1105)는 카노사 사건(Canosa)으으로 황 제로서의 권위가 재기 불능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교황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지만, 황제로서의 권위를 회복 하기 위해서는 교황과의 관계 악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다. 1080년 두 번째로 파문된 황제는 라벤나의 귀베 르트(Guiber)를 글레멘스 3세(1080~1100)라는 대립 교 황으로 세웠다. 그런데 1100년 글레멘스 3세가 사망한 이후 다른 대립 교황들에 대한 황제의 지원 정책은 점차 철회되었으며, 이후에 등장한 대립 교황들은 파스칼 2세 에게 더이상 위협 요소가 되지 않았다. 대립 교황이었던 테오도리코(100-1102)와 알베르토(1102)는 수도원에 유폐되었으며 실베스테르 4세(1105~111)는 로마를 탈 출한 후 교황직을 포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 서임권을 둘러싼 교황 파스칼 2세와 황제 하인리히 4세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 었다. 교황과 황제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호 화해 와 조정의 입장을 취하였지만, 서임권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황제는 시종일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였으며, 따라서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결 국 교황은 1102년에 개최된 로마 교회 회의에서 황제에 대한 파문을 재확인하였으며, 황제의 성직 서임권 역시 금지하였다. 이에 대해 황제는 다소 유화 정책을 전개하 면서 마인츠(Mainz)에서 개최된 제국 의회에서 교황과 의 관계 회복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예루살렘에 대한 십자군 원정을 추진할 것을 밝혔다. 이 러한 상황에서 1104년 하인리히 4세의 아들인 독일 왕 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하인리히 5세(1106~1125)라 칭 하였다. 두 황제는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하였는데, 교황 은 교회와의 관계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하인리 히 5세를 지지하였다. 하지만 약속과는 달리 하인리히 5 세는 성직 서임권에 대한 황제의 권한을 확고하게 주장하 였다. 결국 교황은 황제와의 관계 회복을 위한 일체의 협 상을 거부하였으며, 1106년과 1107년 및 1110년 세 차 례에 걸쳐 하인리히 5세의 사절들을 접견하였지만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1106년 과스탈라 (Guastalla), 1107년 트루아(Troyes) 1108년 베네벤토 (Benevento), 1110년 라테란(Lateran)에서 개최된 교회 회의에서 황제를 단죄하였다. 양측의 분쟁이 악화되는 와중에 하인리히 5세는 로마에서 대관식을 거행하고 서 임권을 획득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양측의 격렬한 논쟁 의 결과 수트리(Sutr)에서 비밀리에 정교 조약이 체결되 었다(1111. 2. 9). 황제는 서임권을 포기한다는 조건하에 이전 황제들이 제국 내의 교회에 하사한 영지와 권리들 을 교황에게서 되돌려받았으며, 교황은 하인리히 5세가 황제로 즉위하는 데 동의하였다. 1111년 2월 12월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이 정교 조 약의 내용을 발표하였을 때, 교황의 지지자들은 물론 황 제의 측근들까지 그 조약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 조약은 교회와 제국의 전체적인 내적 관계의 종식, 즉 교회와 국 가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신성 로 마 제국 내에 있는 교회의 경우 재산은 물론 제후로서의 지위를 비롯한 모든 권리들을 포기해야만 하였다. 교황 과 황제 측에서 동시에 일어난 저항으로, 황제는 잠시 로 마를 떠나면서 교황과 추기경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약 2개월 동안 모진 감금 생활을 한 교황 파스칼 2세는 주 교 임명권을 달라는 황제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1111년 4월 13일 하인리히 5세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대 관하였다. 이 사건은 교황 측의 일치를 파괴하는 치명적 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교황은 교회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황제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하였으며, 프랑스와 이 탈리아 교회는 이러한 교황의 결정에 강력한 이의를 제 기하였다. 결국 교황은 이단의 혐의를 받게 되었으며, 이 를 해명하기 위한 신앙 고백을 통해 서임권에 관한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결정을 재확인해야만 하였다. 1112년 9월 빈(Wien)에서 개최된 교회 회의에서 하 인리히 5세에 대한 파문이 결정되었고, 이를 토대로 교 황은 1116년 황제에 의해 행해진 서임을 노골적으로 비 난하였다. 이렇게 오랜 기간에 걸친 하인리히 5세와의 대립 시기 동안 교황은,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 정책을 수행하는 문제에서 비롯된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모 (Anselmus Cantuariensis, 1033~1109)와 영국의 국왕 헨리 1세(1100~1135) 사이의 논쟁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교황과 황제의 갈등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황은 1118년 1월 14일 로마로 돌아왔으며, 며칠 후인 1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평 가] 교황 파스칼 2세의 정책은 일반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더욱이 로마를 제외한 다른 지 역에서 행한 교회의 개혁과 쇄신을 위한 그의 활동에 대 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심지어 지지자이든 적대 자이든 교황과 동시대의 인물들조차 그의 정책을 비난하 였다. 교황은 제국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실패하였으 며, 그의 전임자들과 비교할 때 교황으로서의 업무 수행 능력이 상대적으로 열등하였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세속의 재산과 권리에 대한 그의 태도는 정당하 였다고 할 수 있다. 교황은 세속의 재산과 권력으로부터 영적인 특성을 배제시켰으며, 그 결과 이중적 서임권을 미리 고려함으로써 서임권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던 1122년의 보름스 정교 조약(Concomrdatum Wormatiense) 의 기초를 다졌던 것이다. 결국 교황으로서 그의 정책은 교회와 국가의 권한 및 교황과 황제의 직무들을 확실하 게 구분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 그레고리오 개혁 ; 보름스 정교 조 약 ; 성직 서임권 논쟁 ; 카노사 사건) ※ 참고문헌  Histoire des Papes, vol. IV, Paris, Administration de Librairie, 1842, pp. 245~290/ J. Gilchrist, 《NCE》 10, 2003, pp. 915~916/ H. Seibert, 《LThK》 7, 1993, pp. 1407~1410/ J.N.D. Kelly, Oxford Dictionary of Popes, Oxford Univ. Press, 1996, pp. 160~161/ August Franzen, 최석우 역, <세계 교회사》, 분도출판사, 2001/ Rudolf Fischer-Wollpert, 안명옥 역, 《교황 사전》, 가톨릭대학교 출 판부, 2001, pp. 84~86. [邊琪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