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블레즈 Pascal, Blaise(1623~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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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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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의 원본 표지.
17세기 프랑스의 자연 과학자 · 철학자 · 종교 사상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폭넓고 깊이 있게 여러 분야에 관한 글을 남긴 천재적인 인물. [생 애〕 파스칼은 1623년 6월 19일 프랑스 오베르뉴 (Auvergne) 지방의 클레르몽페량(Clemmme-Feromd)에서 아버지 에티엔(Etienne Pascal)과 어머니 앙투아네트(Antoinette Bégon)의 둘째로 태어났으며, 누나 질베르트(Gilberte)와 누이동생 자클린(Jacqueline)이 있다. 클레르몽 페랑 지방의 조세 법원 부원장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1626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1631년 세 자녀를 데리 고 파리로 이사하였다. 그는 법률가이면서도 당시의 자 연 과학과 수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고, 많은 학자들과 친 분을 맺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파스칼은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맘껏 펼쳐 천재성을 발휘, 17세 때인 1640년에 《원추 곡선론》(Essai pour les coniques)을 발표하여 학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에 노 르망디 지방의 부총감으로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루앙 (Rouen) 시에서 살게 되었을 때는 아버지의 세무 관계에 관한 복잡한 계산을 돕기 위하여 2년간의 연구로 계산기 를 발명하였다. 이 계산기는 최근까지 사용된 수동식 계 산기 또는 컴퓨터의 원조로 여겨지며, 파스칼의 수학적 이론을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기계로 구체화한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토리철리(E. Torricelli, 1608~ 1647)의 실험' 에 대해 들은 그는, 진공(眞空, vacuum)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1646년 프랑스에서 최초 로 진공에 관한 실험을 하였다. 진공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자연 과학상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당 시의 신학자나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하느님의 존재 문제 와 아울러 깊은 관심사였다. 회심 : 1646년에 파스칼은 루앙에서 얀센주의(Jansenismus)의 신봉자였던 데상(Deschamps) 형제와 기유베 르(Guilleber)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파스칼 가족에게 생시랑(J.D. de H. Saint-Cyran, 1581~1643) , 아르노(A. Arnauld, 1612~1694) 등의 작품을 가르쳤다. 파스칼은 그 들에게 감화를 받고 이른바 '최초의 회심' 을 하였으나, 이 회심은 그의 지적 활동에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 았다. 이전과 다름없이 그는 과학적 연구에 심취하여 유 체 정력학(流體靜力學), 확률론 등에 중요한 업적을 남 겼다. 1651년에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그해에 누이동생 자클 린이 얀센주의의 본거지인 포르루아얄(Pot-Royal de Champs) 수도원에 입회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 파스칼의 반대로 입회하지 못하였고, 다음해인 1652년에 입회하여 착복식을 하였다. 파스칼은 이때 이 른바 '세속 시기'(1651~1654)로 불리는 제2 단계의 삶을 살고 있었다. 병이 악화되자 유명한 의사를 찾아 파리로 온 그는 포르루아얄 수도원에서 만난 지도자들과 생긴 불화로 신앙 생활과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금 은 마음의 휴식을 취하라' 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사교계 에 발을 닫게 되었다. 중요한 과학 연구 방법 중 하나인 '기하학적 정신' 과 대비하여, 사교계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섬세한 정신' 과 '설득술' 을 터득한 파스칼은, '마 음을 이끄는 기술' 이 인간의 마음을 '설득'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654년 말경, 그는 사교계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병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사교계의 사람들 이 애독하던 몽테뉴(M. de Montaigne, 1533~1592)나 에피 쿠로스(Epicouros, 기원전 341~270)의 저서들을 읽어도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자클린이 수녀가 되는 것을 반 대하였던 파스칼은, 누이동생에게 자기의 정신적 불안을 하소연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23일 밤 10시 30분 ~12시 30분까지 불 (feu)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강렬 한 신비 체험을 통하여 '결정적 회심' (1654)을 하였다. 이 '결정적 회심' 을 통해 그는 과학자, 사교가에서 신앙 인으로 변모하였다. 특히 '결정적 회심' 의 요약은 《메모 리알》(Le Mémorial, 1654)로 불리는 한 장의 비망록에 적 혀 있었는데, 이것은 파스칼의 사후 그가 항상 입고 다니 던 저고리의 소매 안에 비밀스럽게 꿰매어져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1654년의 ''불'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 한 파스칼의 신앙인으로서의 절대적인 회심이었다. 그는 포르루아얄 수도원 근처에 살면서 수도자처럼 엄격한 신 앙 생활을 하였다. 단식과 금욕을 지키는 것은 물론, 감 각의 욕망을 피하기 위해 사치스런 생활을 모두 버리고, 고행하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파스칼은 "나는 청빈을 사랑한다. 그도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광세》 L. 931)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그' 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안센주의자로서의 활동 : 이 시기에 파스칼은 얀센주 의와 예수회 사이의 논쟁에 가담하였으며, 아르노와 니 콜(P. Nicole, 1625~1695)의 권고로 《프로뱅시알》(Les Provinciales, 1656~1657)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익 명으로 된 18통의 길고 짧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1653년부터 예수회와 파리 대학교 신학부, 특히 교황청 과 프랑스 정부는 얀센주의를 금하기 시작하였고, 그 탄 압은 더욱더 강화되었다. 《프로뱅시알》은 아르노의 추 방, 인쇄소 차압, 관헌들의 수색, 얀센주의자들의 저서가 금서 목록에 기재되는 일 등이 벌어지자, 관헌의 체포를 피해 지하에 숨은 필자가 익명으로 과감한 비판을 계속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번잡하고 난해한 신학 문제 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 언어로 논증하였 다. 즉 한 시대의 중요한 신학 문제를 시골 친구에게 쓰 는 편지처럼 유머와 재치를 담고 기술하여 파리 대학교 신학부와 교황청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파스칼은 복음의 순수함을 지킨다는 정의심에서 논쟁에 참가하였으나, 점차 상황이 절박해지자 포르루아얄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기 시작하였다. 1661년 교황청은 얀센주의를 이단으로 인정하는 '신앙 선언문' 에 프랑스 의 모든 사제와 수도자들이 서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때 누이동생 자클린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리자, 그 후 파스칼은 침묵을 지키면서 얀센주의와 거리를 두었다. 이 와중에 1656년 3월 24일, 거의 3년간 누낭염을 앓고 있던 그의 질녀가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전시된 예수 그 리스도의 가시관을 만진 후,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건이 일어났다. 파스칼의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예수 회는 이것을 참된 기적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나, 파 스칼은 "기적이란 무엇인가?" 라고 자문하면서 깊은 성 찰에 잠기게 되었다. 그리고 "기적이란 유일한 진리가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것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도 사랑의 결여에 불과하다" 라고 단언하였다. 파스칼은 <프로뱅시알》의 발표를 단념하고, 1657년부 터 《그리스도교 변증론》(Apologie de la religion chrétienne, 1657~1662)의 집필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 책은 그의 사 후인 1670년에 《종교 및 약간의 문제에 관한 파스칼의 사상집》(Les Pensées de M. Pascal sur la religion et sur quelques autres sujets, 1670), 줄여서 《광세》(Pensese라라는 이 름으로 출판되었다. 1662년경 파스칼은 파리의 성당과 수도원들을 방문하면서 전례에 참석하고 깊은 관상을 하 였으며,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서 사랑을 실천하였다. 같은 해 8월 17일에 그는 병이 악화되어 심한 고통을 받았고, 결국 병자성사를 받은 후 "하느님, 저를 영원히 지켜 주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 겼다. 그로부터 24시간 동안 경련이 계속되다가, 마침내 1662년 8월 19일 오전 1시에 3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 었다. 〔업적과 사상] 과학자로서 파스칼의 업적은 17세기 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즉 물리학, 기 하학, 미적분학, 산수학, 확률론, 계산기의 발명 등에서 이론과 실천적 업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신 앙인으로서의 영성적 업적과 사상을 중심으로 약술한다. 영성적 서한문 : 페리에 가문으로 시집 간 누나 질베르 트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보낸 서신을 수록한 <페리에 가 족에게 보낸 서신》(1648~1658)은 주로 영성에 관한 파스 칼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또한 파스칼과 로아네즈 공작 가문과의 친교에서 맺어진 영성적 관계를 9편의 서신에 담긴 《로아네즈 양에게 보낸 서신》(1656~1657)이 있다. 내적인 기록 : 흔히 《메모리알》이라고 불리는 이 기록 은 결정적 회심 때의 신앙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은총 의 해, 1654년 11월 23일 \theterore 밤 10시 반경부터 자정 반에 이르기까지"라고 정확한 날짜를 명시하면서 시작되 는 이 글은, 파스칼에게 찾아온 하느님의 현존을 명확하 게 기록하면서 자신의 신비 체험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 다. 이 글에는 살아 있는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뜨거 운 감격과 확신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격적 하 느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글을 통해 신앙인으로서의 파스칼의 참모습을 볼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그가 이해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대 한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팡세》에 포함되어 있는 <예수의 신비>(Le Mystère de Jésus)는, 파스칼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 한 명상록이다. 그리고 《질병의 선용을 위한 기도》(Priere pour le bon usage des maladies, 1660?)를 집필할 당시, 그는 병이 심해져 1년 이상 거의 모든 지적 활동을 중단해야 하였다. 그는 그 후로도 온전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였 는데, 이 '기도문' 은 그 무렵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반성 : ① <죄인의 회심에 관 한 문헌》(Ecrits Sur la conversion du pécheur) : 파스칼의 생 애에서 '회심' 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메모리알》로 대 표되는 '결정적 회심' 은 그의 그리스도교 변증론의 기초 를 형성한다. ②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과 오늘날 신자와의 비교》 (Comparaison des chrétiens des premiers temps avec ceux d'aujourd'hui) : 파스칼은 교회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영 성적 반성의 기초로 삼아, 과거와 현재를 비교 · 조명하 면서 그리스도교적 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부분적으로 영성을 취급한 문헌들 : ① 《에픽테토스와 몽테뉴에 관한 드 사시 신부와의 대화》(Entretien avec Monsieur de Sacy Sur Epictète et Montaigne, 1655) : 파스칼 은 포르루아얄 수도원에서 피정을 하면서, 그 수녀원의 고해 신부였던 르 메트르 드 사시(Le Maitre de Sacy)와 대담을 한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에서 그는 일반 사상가 들의 저서가 종교적 영성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기여하 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② 《은총에 관한 문헌》(Ecrits sur la Grace, 1655~1656) : 파스칼은 신학의 대중화를 위한 저술을 통하여 영성의 심화를 도모하였다. 여기서 그는, 인간은 온전히 하느님 에게 의존하는 존재이며, 하느님은 항상 주도권을 갖는 다고 하였다. 겸손, 포기, 영성적 청빈 등이 이 문헌의 핵심적 주제들이다. ③ 《프로뱅시알》 : 이 저서는 논쟁적인 성격이 강하지 만, 반면 영성적인 내용도 풍부하다. 이 저서의 원제는 <현재 소르본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어느 시 골 친구에게 보낸 편지》(Lettres écrites a un provincial par un de ses amis, sur le sujet des disputes présentes de la Sorbonne)이다. 최초의 편지는 1656년 1월 23일자로 된 10쪽 정도의 소책자이며, 다음해 3월 27일자의 18번째 편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의 논쟁을 담고 있다. 당 시 정부의 검열과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파스칼은 집필 하는 동안 피신하면서 비밀리에 이 책을 인쇄하여 배포 하였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루이 드 몽탈트 (Louis de Montalte)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이 편지들의 내용은 얀센주의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과 예수회의 주장 처럼 타락한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신학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에게 흥미 있는 서한문 형태로 서술한 것이다. 파스칼은 신학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었으나, 아르노와 니콜에게서 받은 자료를 기초로 하여 독특한 문장으로 드 라마틱하게 이 글을 집필하였다. 처음 10편까지의 편지 는 시골에 사는 친구에게 보내는 형식을 취하였으나, 그 다음부터는 직접적으로 예수회 신부들에게 보내는 공개 질문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예수회의 신부 개인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으로 변모하였다. 19번째 편 지는 미완성으로, 그의 생전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이 작품의 가치는 이중적이다. 우선 프랑스 고전주의 문학의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포르루아얄과 예수회의 논쟁은 단순한 종교상의 논쟁만이 아니라, 당시 의 정치와 사회 문제에 깊이 관여한 이른바 '참여 문학'의 한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이를 통해 파스칼이 현실 문 제에 얼마나 민감하고 통찰력 있는 비판문을 작성하면서 참여하였느냐를 엿볼 수 있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요약》(Abrégé de la vie de Jésus-Christ, 1660?) : 파스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요약하면서, 독특한 그리스도론을 전개하였다. 즉 예수 의 삶을 단계별로 열거하면서 요점만을 들어 예수의 신 비를 명상하게 하였다. ⑤ 《귀족들의 조건에 관한 담론》(Discours sur la condition des grands, 1661?) : 이 글은 미래의 귀족들(국가 지도 자)의 영성적 교육을 위해 서술한 담론으로서, 세속적 영 예의 허망함을 강조하고 '탐욕의 왕' (지상의 왕)을 '사랑 의 왕' (하느님)과 비교하였다. ⑥ <팡세> : 이 글은 파스칼이 세상을 떠난 지 7년 후 에 《종교 및 약간의 문제에 관한 파스칼의 사상집》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파스칼이 남긴 저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 글은, 현대에도 동서양 모두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이 글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증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 은 본질적으로 상대적 가치에 대한 욕구가 존재한다는 것과 참된 종교에 의해 욕구의 충족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득' 시키려고 하였다. 또한 참된 종교는 그리스도교밖 에 없다는 것을 '논증' 하려는 의도에서 남긴 유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팡세》를 흔히 그리스도교 변증 론 또는 '호교론' 이라 부르기도 한다. 《팡세》에는 세 가지 사상적 흐름이 있다. 첫째, 몽테뉴 로 대표되는 모랄리스트(moralise)의 인간론이 자리잡고 있다. 파스칼은 그리스도교 사상가이면서 회의주의와 상 대주의를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팡세》에 나타 나는 일상적 현존재 분석은 몽테뉴의 《수상록》(Essais)에 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둘째, 파스칼은 성서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즉 그리스 도교 진리의 가장 큰 증거로서,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표징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중세 이후 성서 해석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었지만, 《팡세》의 독창성은 이 표징적 해석을 인간과 세계의 모든 현상에 적용한다는 점이다. 즉 세속적 가치의 추구는 초자연적 가치 추구의 표징, 인간 사회의 질서는 하느님의 질서의 표징, 유대교 회당은 그리스도 교회의 표징으로 해석하 였다. 따라서 인간 역사의 진행은 최종 목적지인 절대 존 재를 향해서 '표징하는 것' 과 '표징되는 것' 과의 무한 관계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셋째, 근대 과학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비교적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지만 《팡세》의 여러 장을 면밀하게 분석하면, 파스칼의 '현상의 이유' 에 대한 논 리는 당시 실험 과학의 방법인 가설적 연역법을 이용하 고 있다. 이것은 그가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원리 로 사용한 그리스도교의 교리, 특히 원죄의 교리가 자연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에서 '가설' 의 위치를 차지한 다는 사실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평 가] 지난 3세기 동안, 파스칼이라는 인물과 사상 에 대한 해석에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다. 그리스도교 입장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신앙인으로서의 파스칼을 긍 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반면 볼테르(Voltaire, 1694~1778) 나 콩도르세(Condorcet, 1743~1794) 등 18세기의 사상가 들은 파스칼에게 매혹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비난하 였다. 니체(F. Nietzsche, 1844~1900)는 《팡세》를 '피로 쓰 여진 책' 이라고 하면서 121번에 걸쳐 자신의 저서에 인 용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 불안과 절망의 한계 상황을 넘으려는 실존주의자들이 그를 모델로 삼는가 하면, 변 증법적 구성을 담고자 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Lefeve, Goldmann, Althusser)과 구조주의자들까지도 파스칼로부 터 영감을 받았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의 갈대 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 이다. 그 를 짓누르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증기, 물 한 방울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짓누른다 할지라도, 인간은 그를 죽이려는 것보다 한결 고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죽 음을, 그리고 우주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 문이다"(《광세) 단편 391). (→ 아르노, 앙투안 ; 얀센주 의) ※ 참고문헌 B. Amoudru, La vie posthume des Pensées, Paris, Bloud et Gay, 1936/ Z. Tourneur, Beauté poétique, Histoire critique d'une "Pensées" de Pascal et de ses annexes, Melun, 1933/ L. Lafuma, Recherches pascaliennes, Paris, Delmas, 1949/ E. Baudin, La philosophie de Pascal, vol. 4, Neuchatel, Ed. de la Baconniere, 1946~ 1947/ P. Humbert, L'oewre scientifique de Blaise Pascal, Paris, Albin Michel, 1947/ Ecrits sur Pascal, Ed. du Luxembourg, 1959/ Blaise Pascal, L'homme et l'oeuvre, Paris, Minuit, 1956/ Pascal Present, Clermont Ferrand, G de Bussac, 1962/ Pascal, Textes du Tricentenaire, Paris, Bibliothèque Mazarine, 1963/ H. Gouhier, Pascal, commentaires, Paris, Vrin, 1966/ -, Pascal et L'humanisme chrétien, Paris, Vrin, 1974/J. Mesnard, Pascal, Paris, D.D.B., 1965(변규용 역, 《파스칼 : 인간과 사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7). 〔卞圭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