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야스, 카미유 시프리앵 피에르 Pailhasse, Camle-0-yir-prame(86~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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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파리 외방전교회 한국 선교사. 세례명은 가밀로, 한국 명은 하경조(河敬朝) . 1868년 9월 19일 프랑스 아베롱 (Aveyron)의 올스에리노드(Ol-c-Rimhosd에)에서 태어났 다. 사제였던 형에게서 영향을 받아 선교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후, 1889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들어가 1893년 7월 2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6 일에 파리를 출발하여 이듬해인 1894년 2월 1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1894년에 파이야스 신부는 신나무골(현 경북 칠곡군 지 천면 연화리)에 머물면서 경상도 북부 지방을 맡아 전교 활동에 힘썼고, 같은 해 9월에는 가실(佳室, 왜관읍 낙산 리)로 이주하여 가실(현 낙산) 본당을 설립하였다. 당시 그가 담당한 전교 지역은 칠곡을 비롯하여 성주, 문경, 상주, 함창, 안동, 김천 등 경상도 북서부 일대와 충청도 황간, 전라도 무주 등지였고, 공소는 17개소였다. 1898년 7월에는 조선 대목구장 뒤텔(G.C.-M. Mutel, 閔德孝) 주교의 지시에 따라 황해도 지역에서 활동하면 서 장연군 두섭〔道習] 공소를 본당(장연 본당)으로 승격 시키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파이야스 신부는 장 연 · 문화 2개 군 전역과 은율 · 승화 · 해주 3개 군 일부 지역을 맡아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헌신적인 노 력으로 1899년 3개의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장연 읍내 에서 예비 신자만 1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 이 천주교로 개종하였다. 이와 같이 장연 본당의 기반을 다지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파이야스 신부는 과로와 영 양 부족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결핵에 걸려 더이상 사목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에 1901년 2월 홍콩의 파 리 외방전교회 요양소를 거쳐 프랑스로 귀국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1903년 3월 9일에 몽 베통(Montbeton)에서 사망하였다. → 낙산 본당 ; 장연 본당) 大學 ※ 참고문헌 《M.E.P. 선교사 약전》 《가톨릭 사전》 《위텔 주교 일기》 I · Ⅱ,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 1993/ 한국교회사연구소, 《黃海道天主敎會史》, 黃海道 天主教會史 刊行事業會, 1984/ 李元 淳, 《韓國天主教會史研究》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梁仁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