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치아노, 바르셀로나의 Pacianus Barimomensis(310?~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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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성인, 주교. 저술가. 축일은 3월 9일. 310년경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적다. 결혼을 하여 후에 로마의 장관이자 집 정관이 된 덱스터(Flavius Dexter)를 낳았으나, 파치아노 는 바르셀로나의 주교가 되었다. 예로니모(Hieronymus, 347~419)는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을 소개한 《명인록》(De viris illustribus, 106)에서 파치아노의 학덕과 성덕, 사도 적인 열정을 칭송하였는데, 이 책은 파치아노가 392년 이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과 그가 덱스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전해 준다. 파치아노는 베르질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기원 전 70~19)를 흠모한 뛰어난 문장가였다. 파치아노의 저 술 중에서 확실하게 그의 작품으로 밝혀진 것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세례론》(De Baptismo) 혹은 《새 신자를 위 한 강론》은 세례를 통한 영적인 쇄신과 정화에 대해 설 명한다. 아울러 원죄의 영향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는데, 이는 아우구스티노(Augusimus Hipponensis, 354~430) 이전에는 드물게 다루어진 주제였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엄격한 참회를 주장하는 노바시아누스(Nowaiamus, 200?~ ?)의 제자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데, 파치아노의 저 서 《노바시아누스 논박》(Contra Novatianos)은 이러한 노 바시아누스파의 주장들을 반박하는 세 개의 '심프로니아누스에게 보내는 서한' (Letters to Sympronian)을 모은 것 이다. 이 책에서 그는 세례 이후에 지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 가능하며, 교회는 이러한 용서를 베풀 권한을 부여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성인의 교리는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155?~230/240?)와 치프리아노(Cyprianus, 200/2107~258)의 교리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프로니아누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는 다 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나의 이름은 그리스 도인이다. 그러나 나의 성(性)은 가톨릭이다." 여기에서 성인이 말하는 가톨릭의 의미는, 교회가 온 세계로 퍼져 나간다는 것과 그 모든 지체들 안에서 신앙은 단일하다는 것, 그리고 그 모두가 하나인 머리에 복속한다는 뜻이 다. 파치아노의 저서인 《준비 혹은 권고책》(Paraenesis sive exhortatorius libellus)은 회개를 호소하며, 속죄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을 기다리는 무서운 벌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 책에서 세 가지 사죄(死罪)인 우상 숭배, 살인, 간음 에 대한 공적인 회개의 의무를 역설하고, 그리스도교 신 자의 삶 전체에 걸친 회개와 보속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 하였다. 이 책은 4세기 스페인 교회의 보속 행위와 보속 에 대한 신자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하고 풍부한 자료를 제공한다. 당시 교회는 전통적인 보속의 관습 보 존과 새로운 사목 여건에 대한 적응의 필요성 사이에서 합일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었기에 이 문제에 대한 증거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 밖의 저서 들은 분실되었고, 모린(G. Morin)이 파치아노의 저서로 분류한 책들이 실제로 그의 저서인지는 의심스럽다. 그는 392년 이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세상을 떠난것으로 여겨진다. (-) 노바시아누스) ※ 참고문헌 S.J. McKenna, 《NCE》 10, 2003, PP. 743~7441 É. Amann, (DTC) 11-2, pp. 1718~1721/ M.P. McHugh, Encyclopedia of Early Christianity, vol. 2, E. Ferguson ed., Garland Publishing Inc., 1997, p. 846/ J. Liebaeri, (Cath) 10, pp. 376~377.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