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 聖母 - 修女會 [영]Franciscan Sisters of Our Lady of Fat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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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따르고 성모님을 본받아 하느 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해 이우철(李宇哲, 시몬) 신부가 1969년 3월 23일 설립한 수녀회. 설립 당시 명 칭은 '어머니회' 였으나, 1980년 11월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로 개칭하였다. 현재 본원은 경기도 용인시 동천동 산 13번지에 있다. 〔설립자와 설립 과정]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 회를 설립한 이우철 신부는 191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하여 1941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1945년 약 현(현 중림동) 본당 보좌로 재직하던 중 광복 직후 만주나 북한 지역에서 월남하여 가족과 헤어져 본당 주위에서 방황하는 아이들 5명을 성당으로 데려와 보살피기 시작 하였다. 이러한 아이들이 점차 증가하자, 이우철 신부는 1947년 7월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승인을 얻 어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에 '소년의 마을 성심 원' 을 설립하였다. 그 뒤 성심원은 한국 전쟁으로 피해 를 입었으나, 휴전 후 미군과 미국 가톨릭 구제회(N.C.W.C.) 등의 원조를 받아 복구되었다. 이우철 신부는 이 후 성심원 운영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원아를 돌보는 직 원들이 여러 가지 문제들로 자주 바뀌자 어린이 보육 사 업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보육이라는 특수 사목을 위한 수도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1967년 10월 성심원 직원 회의에서 어머니회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후 이듬해 3명의 지원자(김의경, 박성분, 이청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969년 3월 23일 미혼 여성들로 구 성된 '어머니회' 를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이후 어머니회 는 1971년 4월 11일 '파티마의 성모 소자매회' 로 개칭 되었다. 이 신부는 지원자가 계속 증가하자 수녀회 운영의 체 계화를 위하여 1972년 3월 수원교구 주교관을 방문하여 수녀원 운영에 관한 전례책과 <수녀 서원 예식서>를 입 수하였다. 3월 22일에는 김의경(프란치스카 데레사) 수 녀가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이우철 신부는 이듬 해 2월부터 수녀회 회원들을 위한 특별 수련 시간을 마 련하였다. 그리고 1974년 2월 13일 수녀회를 성모 마리 아께 봉헌하고자 '파티마 성모회' 로 명칭을 변경하였으 며, 1978년 10월 2일 다시 성 프란치스코 제3회 정규 수녀회(파티마의 성모 수녀회)로 재발족하였다. 그러나 수 녀회는 설립 초기에 정체성 문제로 많은 혼란을 겪었다. 이때 이 신부는 성심원의 운영과 같이 특수 목적을 위해 설립한 수도회는 프란치스코회 영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는 오기선(吳基先, 요셉) 신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 래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조사하고 한국에 진출한 프란치스코회 가족들을 만나 그 자신이 프란치스코 제3 회 회원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제3회 수도 가족으로 재 출발한 수녀회는 1979년 10월 14일 수녀들 5명이 첫 서원을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3월 17일 수녀원 본원과 수련소를 수원교구 내에 마련할 수 있도록 수원교구장 김남수(金南洙, 안젤로) 주교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영 성]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세계 평 화와 일치, 죄인의 회개를 위한 구속적 소명을 갖고 교회 의 사도직에 참여한다. 또한 그리스도 인류 구원의 협력 자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기도하며, 그분의 생애를 재 현하는 삶을 통하여 현존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자 한다. 특히 설립자인 이우철 신부가 강조한 '묵(默) · 인(忍) · 애(愛)' , 즉 고요함 중에 덕(德)으로 나아가며 사랑함으로써 복음을 증거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관상 생 활과 사도직 활동을 통해 주님께 매일을 봉헌한다. 그리 고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본받아 기도와 보속, 침묵, 노동, 모성적인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한다. 〔수녀회의 발전 및 사도직 활동] 수녀회는 1980년 11 월 1일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로 개칭하여 김남수 주교의 인준을 받고 김 주교의 집전하에 착복식 을 가졌다. 그 후 수녀회의 수련소 및 성심원 원사 건립 기공식이 1984년 2월 21일 수지에서 거행되었으나, 다 음날 수녀회의 설립자 이우철 신부가 지병인 간암으로 선종하였다. 이 신부의 사망 후 수녀회는 1984년 2월 29일 용인으로 성심원을 완전히 이전하고 성심원의 운 영권 및 재단 운영권을 수녀회가 인수하였다. 같은 해 11월 8일 수련소 및 성심원 원사 축복식이 김남수 주교 의 주례로 거행되었으며, 이듬해 1월부터 북수동 본당 관할 공소인 풍덕천리에서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리고 1991년 5월 11일 5명의 수녀가 성심 기도원에서 첫 종신 서원식을 가졌다. 1992년 11월부터는 무의탁 노인 부양을 시작하였고, 이듬해 9월에는 노인 복지 활동을 위한 여주 '성모의 집' 건립 기공식을 가졌다. 수녀회는 1995년 1월 5일 김남수 주교로부터 회헌을 인준받았다. 그리고 1999년 2월에는 재단 법인 설립을 허가받았으며, 3월 1일 서울 대교구 '마석 글라라 양로원' 에 2명의 수녀를 파견하였 다. 또한 2001년 1월 청주교구의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인 '충주 사랑의 집' 이 개원하자 2명의 수녀를 파 견하였으며, 2002년 3월 19일에는 회헌 및 교구 설립 수녀회로 인준을 받아 교구장 교령 선포, 종신 · 유기 서 원 갱신식을 가졌다. 현재 수녀원은 설립자인 이우철 신 부의 뜻에 따라 수지 동산 내에 있는 가옥을 매입하여 수 원교구 내 불우 아동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노 력하고 있으며, 또한 여주에 있는 성모의 집에도 요양원 의 추가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2004년 현재 수녀회에 는 종신 서원자 38, 유기 서원자 19, 청원자 1명 등 총 58명이 있다. (→ 이우철) ※ 참고문헌  윤선자, 《이우철 신부의 생애와 활동》,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2001.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