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 世界使徒職 [영]The World Apostolate ofFatima, The Blue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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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한국 본부장인 트라우너 몬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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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한국 본부장인 트라우너 몬시놀.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전념해 온 신심 사도직 단체. 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에서 발현한 성모 마 리아의 메시지를 실천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소리 없는 군대, 기도와 희생의 군대, 주님 앞에 겸손되이 무 릎 끓고 기도하는 군대' 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푸른 군대' (The Blue Army)라고 불리기도 한다. [기원과 역사]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의 시작은 파티마 에서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어린이들의 단순한 기도(마태 18, 19-20 참조)와 봉헌의 삶이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 직 이라는 명칭과 이 사도직이 생기게 된 기원은 단순하지만 오묘하다. 미국에서 《스카풀라의 사도직》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으로 일하던 해퍼트(J. Haffert) 기자는 1946년에 파티마 의 성모 발현 목격자인 루시아(Licia dos Santos, 1907~ 2005) 수녀를 찾아가 약 네 시간 동안 대화하면서 오직 한 가지 질문만 하였다. "성모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공산주의가 회개하고 민족들의 멸망을 막고 세계 평화가 오도록 하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 엇을 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루시아 수녀는 "매일 자 신의 모든 의무를 성모님께 봉헌하고, 그 봉헌을 생활화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루시아 수녀의 도움으로 파티마가 속한 레이리아(Leina) 교구의 주교에 게 승낙을 얻어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의 서약서가 작 성되었다. 해퍼트는 미국으로 돌아와 그 서약서에 서명 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그해 말경까지 125만 명이 서명 하였다. 한편 같은 해 미국의 뉴욕에서 가까운 플레인필 드(Plainfield)의 성모 성당에서 사목하던 콜랜(H.V. Colgan) 신부가 장례 미사 집전 중 심장 마비로 쓰러져 병원 에 입원하였는데, 그는 그해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 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에 침대 곁에 있는 성 모상 앞에서 "사랑하올 어머니, 저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다면 저는 앞으로 당신을 위하여 남은 생애를 바치 겠습니다"라고 약속하였다. 콜객 신부는 기적적으로 완 쾌되었으나, 그 약속을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파티마에 관한 기사를 읽었는데, 특히 성 모 마리아의 요청에 따르면 러시아가 회개하고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라는 약속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그 메시지를 깊이 연구한 뒤, 본당에서 주일마다 강론을 하 면서 이 메시지에 따라 마리아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하 는 사람은 가슴에 성모님의 상징인 푸른 리본을 달고 매 일 묵주 기도를 바치겠다는 서약서를 가져오도록 하였 다. 그러자 많은 신자들이 푸른 리본을 달고 서약서를 가 져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본당 신자들에게까지 서약서 를 보내어 많은 사람들이 서약을 하였다. 그는 "이제 우 리 본당은 푸른 군대가 되겠군요! 무신론 공산주의자들 이 붉은 군대를 만들었으니, 우리는 성모의 푸른 깃발 아 래에서 그들이 회개하도록 성모의 요청을 실천에 옮기는 푸른 군대가 되어야겠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때부터 푸 른 군대' 라는 명칭이 생겼고, 이 명칭은 미국 전역은 물 론 전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1948년 콜간 신 부는 해퍼트를 초청, 그의 강의를 듣고 함께 일하기 시작 하여 '푸른 군대' 의 공동 창설자가 되었다. 1950년 성모 성년에 콜객 신부와 해퍼트는 처음으로 파티마를 순례하여 약 100만 명의 서약서를 성모께 바 치고,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였던 나무 아래에 그것을 묻 었다. 현재도 서약서들을 그곳에 묻고 있으며, 그곳에서 는 새 서약자들을 위한 기도가 늘 바쳐지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약 2,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푸른 군 대에 가입하였다. 1950년 5월 8일 콜간 신부와 해퍼트 가 로마에서 교황 비오 12세(1939~1958)를 알현하였을 때, 교황은 콜객 신부에게 "신부님은 이제 무신론 공산 주의와 싸우는 총지휘자가 되셨군요. 나는 그런 의미에 서 신부님과 푸른 군대 모든 회원들에게 교황 축복을 내 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1961년 10월 21일 그들은 산 조반니 로톤도(San Giovanni Rotondo)를 방문하여 파 드레 비오(Padre Pio, 1887~1968) 신부에게 푸른 군대의 영적 아버지가 되어 주기를 요청하였고, 비오 신부는 "그 들이 서약한 바대로 충실히 살아간다면 나의 영적 자녀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며 쾌히 승낙하였다. '푸른 군대' 는 1985년 10월에 열린 국제 회의에서 로시(Rossi) 추기경 의 제안에 따라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으로 개칭되었으 나, 파티마 성모의 요청에 따르고 그것을 전하는 목적에 는 변함이 없다. [목적과 의무] 목적 :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 는 세 어린이에게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 도, 희생, 보속하고 티없는 마리아 성심에 대한 봉헌을 실 천하면, 결국 내 티없는 성심은 승리할 것이며 세상에는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하였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은 이 약속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세 가지 목적을 수행한다. 첫째, 가톨릭 교회의 올바른 가르침을 전파하 고 복음서의 진리를 완전히 따르고 지키는 것, 둘째, 파티 마 메시지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구성원 개인이 성화되는 것, 셋째, 파티마 메시지를 널리 전파함으로써 선을 실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목적들을 위해 '파티마 세계 사도직 서약' 을 널리 전파하는 특수한 목적도 갖고 있다. 회원 자격과 의무 :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회원이 되 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서약하고 실천을 약속하여야 한다. 첫째,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매일 묵주 기도 5 단을 바쳐야 한다. 둘째, 각자가 일상 생활에서 요구되는 희생들과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요구되는 희생들 을 매일 봉헌해야 한다. 셋째,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봉헌의 표지이자 그 봉헌을 늘 상기시킬 목적으로 가르멜 산 성모의 갈색 스카풀라(Scapulac)를 착용해야 한다. 넷째, 특별히 첫 토요일 신심을 지키되, 서약자는 적어도 한 번 티없으신 성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 다섯 가지 죄(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부인, 영원한 동정성에 대한 부인, 천주의 모친임에 대한 부인, 어린이들이 원 죄 없으신 성모를 경멸하거나 혹은 성모께 무관심하도록 이끓, 성모의 상본이나 성상에 대한 경멸)에 대한 배상으로 다섯 달 동안 계속해서 첫 토요일에 고해성사, 영성체, 묵주 기도 5단을 바치고 15분 동안 묵주 기도의 신비를 묵상 해야 한다. 회원의 구분 :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회원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첫째, 성모 마리아의 기본 요청을 따르기로 약속하는 서약서에 서명한 회원들이 있다. 이 들은 서약 이행 이상의 의무를 지지는 않으며, 세계 어디 서나 똑같은 양식의 서약서에 서명하고 그 서약서를 지 역 본부에 보내어 등록하면 그 국가의 본부를 거쳐서 파 티마에 송부된다. 서약자들은 아무런 회비도 내지 않으 며 회합을 가져야 할 의무도 없다. 오직 서약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꾸준히 노력할 뿐이다. 둘째, 서약하 지는 않았지만 성모 마리아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그 정 신대로 생활하려는 이들이 있다. 셋째, 파티마의 세계 사 도직의 첫 번째 목적대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서약서 에 서명하고 또 그 서약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는 봉사 자 회원들이 있다. 이들은 파티마의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파할 개인적 책임을 져야 하고 더 많은 서약자를 얻도 록 노력해야 하며, 서약자들이 서약한 목적에 따라 생활 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또한 봉 사자들은 그 조직이 성모 마리아의 '피앗' (Fiat, 주님의 뜻 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정신으로 교회의 지도를 통해 살아 있는 조직이 되도록 봉사한다. 그리고 봉사자들은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의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썰 모임 (세계 평화와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소그룹 기도 모임)과 평의회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 진출과 발전] 기원 : 1953년 주한 미군 제1 해병 탱크 여단 소속 군종 신부였던 스트럼스키(M. J. Strumski) 신부는 일선에서 사목하던 중 푸른 군대를 전파하고자 하였다. 그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로 걸을 수 없다는 진단 을 받았는데, 이 말을 들은 어머니가 그를 안고 본당에 있는 성모상 앞에 가서 성모 마리아에게 그를 바치면서 "아기가 살아난다면 하느님의 유능한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모님의 모든 힘을 다해 주십시오"라고 기 도하였다. 그 후 그는 치유되어 신부가 되었고, 전쟁 중 인 한국에 파견되어 미 해병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스 트럼스키 신부는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는 한국을 위해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국제 본부(Domus Pacis)에 파티마 성모상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파티마가 속한 레이리아 교구의 호세 코레이아 다 실바(Jose Correia da Silva) 주교가 파티마의 성모 발현 장소에서 축성된 순례 성모상을 보내 주었다. 1953년 3월 26일 한국 주교 회 의에 초대된 스트럼스키 신부는 파티마 성모상의 순례 운동 의의와 자신의 세부적인 계획을 보고하였고, 주교 들은 이 제안에 찬성하여 교구마다 전 신자들을 동참시 키겠다는 결의와 함께 정식 서명을 하였다. 그날 서울에 서는 성모 마리아에게 한국을 봉헌하는 봉헌식을 가졌는 데, 그때 판문점에서는 휴전 협정 후의 전쟁 포로 교환 협정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었다. 1953년 4월 5일 판 문점 근처 미군 제1 사단 본부 광장에서 서울 대목구장 인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파티마의 순례 성모상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축성되는 제막식이 거 행되었고, 이날 노 주교는 한국의 푸른 군대 첫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또한 장병 20여 명의 견진성사가 있었으며, 미사 후 많은 신자 장병들이 푸른 군대에 가입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봉헌하였다. 1953년 4월 파티마의 순례 성모상은 스트럼스키 신부의 안내로 남한 순례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최전방 휴전선을 출발한 파티마 순 례 성모상이 서울, 춘천, 대구, 부산, 마산을 순례하는 동안, 많은 신자들이 푸른 군대의 사도가 되겠다는 서약 을 하였다. 그러나 그해 7월 26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스트럼스키 신부가 본국으로 귀국함으로써 이 운동은 계 속 이어지지 못하였고, 열심한 신자들의 개별적 신심으 로 남게 되었다. 새로운 출발 : 스트럼스키 신부가 귀국한 지 10년이 지 난 1964년, 부산에서 사목하고 있던 독일 출신의 트라우 너(A. Trauner, 하) 신부에 의해 이 운동은 새로 출발하였 다. 트라우너 신부는 신학생 때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를 듣고 감동하여 그분의 사도가 되고 싶어하였고, 몽포르의 루도비코(Ludovicus Maria Grignion aMontfort, 1673~1716)의 가르침에 따라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봉헌하였다. 그러나 건강 때문에 사제 서품을 받 을 수 없게 된 그는 그때 그의 본당에 강론하러 온 왜관 성 베네딕도회 소속의 신부를 만나 한국에 관한 이야기 를 들은 후 한국에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초대 부산 대목구장인 최재선(崔再善, 요한) 주교의 허락으로, 1958년 4월 27일 독일에서 부산 대목구 소속 신부로 서 품을 받고 입국하여 부산의 동항 본당에서 사목을 시작 하였다. 트라우너 신부는 1963년에 독일을 방문하였을 때 푸른 군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독일의 푸른 군대 전국 회의에 참석하여, 지도 신부인 푸스(A.J. Fuhs) 신부와 국제 푸른 군대의 총무를 만나 푸른 군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베네딕도회의 상트 오틸 리엔 수도원을 방문하였을 때 한국이 위험하니 아프리카 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트라우 너 신부는 "성모님께서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라고 하셨 으니 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파티마 메시지를 전해야겠습 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푸른 군대에 대한 안내 책자를 만들고, 파티마에서 구해 온 순례 성모 상을 모시고 1964년 7월부터 전국의 여러 본당을 방문 하는 등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푸른 군 대는 한국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파 티마의 성모 메시지는 한국 전역에 전파되기 시작하였으 며, 전국 각 교구별로 푸른 군대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리고 각 교구에서 지도 신부가 임명되고 회장단도 생기 는 등 체계가 세워져 오늘날까지 약 15만 명이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 군대)에 가입하였다. 활동 : 1967년부터 첫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를 도입 하였고, 1974년에는 《묵주의 9일 기도》를 발간하여 성 모 신심 활성화 및 신자들의 내적 성숙에 기여하였다. 또 한 교황청이 인준한 파티마의 가정 순례 성모상을 들여 와 전국 가정을 순례하며 가정 성화와 일치에 기여하였 다. 또 1974년부터 매년 임진각에서 평화 통일 기원 미 사를 봉헌하며 한민족의 평화와 일치를 위한 노력도 기 울여 왔다. 최근에는 북한 인명 사전에 기록된 전 · 현직 요원 15,000명의 회개를 위한 기도 약속 운동을 전개하 면서 북한의 회개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꾀하고 있 다. 현재 이 운동에는 약 6,100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아울러 매년 전세계적으로 약 6,000만 명의 태아가 낙 태되는 생명 파괴 현상을 기도의 힘으로 헤쳐 나가기 위 해 낙태 위험에 처한 태아를 영적으로 입양하여 기도하 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통해 2004년 현재 한국 파티마 의 세계 사도직은 약 15만 명의 회원(파티마 성모의 메시지 실천을 서약한 사람)이 활동하는 조직으로 성장하여, 전국 11개 교구(서울, 원주, 수원, 인천, 대전, 전주, 광주, 청주, 대 구, 마산,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각 교구 단위 로 자립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전국 협의회를 통해 일치 를 이루고 있다.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은 부산에 본 부를 두고 있으며, 사도직 활동으로 성모 신심 묵상회(성 모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 비), 묵주 기도 피정, 썰 기도 모임, 철야 기도 등 기도 모 임과 피정을 주관하고 있다. 또한 월간지 《마리아》 및 영 성 생활을 위한 서적을 보급함으로써 회원들과 신자들의 영적 쇄신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아베마리아출판사와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는 이 사도직과의 특별한 인연 으로 세워졌고, 이러한 사도직 활동에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회원 대부분의 연령층이 50~60대 이상 에 머물고 있어, 세계 평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기도 부대에 젊은이들의 참여가 요청되고 있다. 이를 위 해 현재 한국 본부는 초 · 중 · 고등부, 젊은이들을 대상 으로 하는 33일 묵상회와 썰 기도 모임을 조직 · 운영하 고 있으나, 여기에 참석하는 수는 전국적으로 수백 명 수 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젊은이들에게 파티마의 세계 사 도직을 널리 알리기 위한 봉사자 양성을 위하여 전문 프 로그램 개발 및 봉사자 양성 센터 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가톨릭계 학교와 연계한 청소년 셀 기 도 모임 활성화 등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일선 사목자들의 관심과 지원도 병행되어야 할 것 이다. (는 마리아의 푸른 군대 ; 푸른 군대 ; →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 파티마)
※ 참고문헌  요셉 베게너 외, 남현욱 역, 《파티마와 교회》, 가톨 릭출판사, 1992/ 대전 가르멜 수녀원 역, 《파티마- 루치아 수녀 회고록》, 가톨릭출판사, 2001/ 요셉 펠레티어, 티없으신 마리아 성 심 수녀회 역, 《파티마의 춤추는 태 양》, 아베마리아출판사, 1994/ 하 안토니 오(A. Trauner),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 군대) 길잡 이》, 아베마리아출판사. 〔康明金〕